그들을 아는 이는 없었습니다.
무심히 지나친 좁은 골목 어디에서,
20m 두께의 얇은 벽 넘어에서 차디찬 바닥 위에서,
분명 저마다의 생을 이어갔던 존재들
하지만 사는 동안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했던 그들은
죽은 뒤 누구도 잊지 못할 섬뜩한 공포가 됐습니다.
살았을 때 그랬듯 죽어서도 찾는 이 하나 없는 좁은 단칸방
쓸쓸한 적막만이 가득한 이곳을 다녀갔던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무더위가 절정이던 지난해 9월
경남 창원의 한 건물주는 한 가지 의문에 빠져있었다고 함
월 말이면 어김없이 수도요금을 주곤 했던
2층의 한 원룸 세입자가 통 소식이 없었다고 함
전에 없던 행동에 몇 번이고 찾아가 문을 두드리기도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인기척조차 없었다는 세입자
석연치 않던 점은 더 있었음
그 무렵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취가 동네 곳곳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현장에 도착한 119구조대원들이 현관문을 강제 개방한 뒤에야 드러난 그것은 죽음
하지만 좁은 원룸 안에서 숨져있었던 이는 놀랍게도 한 명이 아니었음
나란히 누워 발견된 두 사람의 신원은
51살 엄마 김 씨와 22살의 딸 박수정 씨로 확인됨
그런데 구조 대원이 지금까지도 모녀의 죽음을 기억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함
두 사람이 숨져있던 원룸의 현관 손잡이는 노끈으로 꽁꽁
묶여있어 밖에서 열기 어려웠고 창문 역시 굳게 닫혀있던 상태
일종의 밀실이었던 것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없는 상황에서 이웃 주민들 사이에서는
여러 짐작들이 새어 나왔음
모녀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보인다는 것
하지만 부검 결과는 담당 법의학자조차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고 함
둘 중 한 사람이 상대의 목을 조르거나 외상을 입힌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흔적도, 두 사람이 동시에 비극을 택한
증거도 없는 미스터리한 죽음
모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신으로 발견된 모녀의 사망 추정 시기는
코로나가 재유행했던 지난해 8월 말
때문에 감염병이나 기저질환 역시 사인으로 고려됐지만
시신에 흔적은 없었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언론에서는
굶어서 사망한 게 아니냐는 추정까지 나온 상황
하지만 시신 수습 과정을 지켜본 이웃들의 말은 다름
그렇다면 모녀의 사인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건
두 사람이 지내던 단칸방의 환경 그 자체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졌던 지난여름
꼭꼭 닫힌 밀폐된 이 공간이 두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던 건 아닐까
고 체온증을 의심해 볼 수는 있다고 함
하지만 두 사람은 왜 더위를 피해 살 방법을 찾는 대신
함께 죽음을 맞아야 했던 걸까
우린 이웃 주민들에게 숨진 모녀에 관한 얘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함
노점상을 했다는 엄마 김 씨
집안에 가득했던 쌀 역시 장사를 위해 구입을 했을 거라는 게 주변 상인들의 얘기
그런데
김 씨에 대해 아는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말을 나눠본 적조차 없다는 것
그런데 더욱 의아한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줬음
놀랍게도 이웃 주민들 중 누구도 엄마와 함께 살고 있던
딸을 만난 이가 없다는 것
두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고 모녀의 공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린 두 사람이 숨진 뒤 여전히 비어있다는 원룸을 찾았음
끼니를 준비했을 작은 부엌
그리고 두 사람이 몸을 뉘었을 방 한 칸이 전부인 공간
그런데 이곳엔 무척이나 기묘한 흔적이 남아있었음
빼곡하게 벽을 채우고 있는 수십 장의 그림들
이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몹시도 의아한 죽음입니다.
안쪽에서 노끈으로 현관문을 고정시켜 잠금장치를 해둔
방 안에서 발견된 두 사람의 죽음은 타살이 아닌 것이
분명했지만 모녀의 몸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흔적 역시 없었기 때문입니다.
출혈이나 외상이 있지도, 병사와 질식사가 의심되지도,
약물과 독물이 검출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지난해 12월 31일 이른바 창원 모녀 사망사건을
사인 미상으로 종결했습니다.
모녀는 화장실, 방, 부엌 한 칸이 전부였던 이 작은 원룸에서
단둘이 지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TV도, 노트북도, 휴대전화도 갖지 않은 채
외부와 단절돼있는 이곳에서 살았던 두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을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녀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이들의 방에 남아있는 기록
즉 이 그림들뿐입니다.
마치 전시를 하듯 집안 벽에 붙어있었던 이 그림을 통해
두 사람이 전하려고 했던 얘기는 대체 무엇일까요.
어쩌면 이 미스터리한 죽음의 이유를 밝힐 단서는 바로
이 그림들 안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와 딸의 행복한 한때가 고스란히 담긴 그림
이 소박한 작품과 딸 수정 씨의 존재는 모녀가 숨진 뒤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음
21살 청춘의 나이에도 이웃의 눈에 띄지 않은 채
방안에만 머물렀다는 수정 씨
우린 수소문 끝에 그녀의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학창 시절 수정 씨에 관한 얘길 들어봄
곁에 있는 사람마저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수정 씨는
관심 있는 분야도 다양하고 재능도 많은 친구였다고 함
그중에서도 수정 씨가 특별히 좋아했던 건 다름 아닌 그림 그리기
평소 자신이 미술 학원에서 그린 그림을 친구들에게
자랑스레 보여주기도 했다는 수정 씨
그렇다면 친구들은 수정 씨가 남긴 이 그림들에 대해
뭔가를 알지도 모름
그런데
학창 시절 내내 수정 씨와 함께했다는 친구들조차
처음 본다는 그림
그것은 몹시도 독특한 작품이었음
낙서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림엔 옷 속에 몸은 물론
장기나 뱃속의 태아의 모습까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음
수정 씨는 6년 동안 미술 학원을 다녔음
오랫동안 제자의 그림을 봐왔던 원장 선생님이라면
그녀가 그린 작품의 의미를 알아봐 주지 않을까
선생님 역시 수정 씨의 작품을 한눈에 알아봄
풍경과 캐릭터 그리기를 좋아했다는 수정 씨
하지만 단색으로 그려진 그림 앞에서 순간 선생님의 얼굴이 어두워짐
고등학교 졸업 이후 수정 씨의 소식을 아는 지인은 없는 상황
우린 모녀가 예전에 살았다는 동네에서
두 사람에 관한 흔적을 찾아보기로 함
뜻밖의 얘기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딸을 자신이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현관 앞에서 기다리게 했다는 엄마 김 씨
더위도 추위도 피할 수 없었던 수정 씨는 늘 현관 앞에서
밤을 맞았다고 함
뿐만 아니라
가족이 있지만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었고 달리 그 어디에서도
도움받을 수 없었던 수정 씨는 그때 겨우 11살이었음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지난 2010년 이웃 주민들은
엄마 김 씨를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고 함
자신을 방임했던 엄마 김 씨와 강제 분리된 뒤
시설에서 밝고 구김살 없이 자랐다는 수정 씨
그녀는 경계선 지능으로 판단을 받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미래를 준비했다고 함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다른 이를 돕는 삶을 꿈꾸기도 했다는 수정 씨
그랬던 그녀는 왜 자신을 방임했던 엄마의 집에서 함께
숨진 채 발견되어야 했던 걸까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시설에서 퇴소해
자립을 해야 하는 나이는 18살
엄마에게 학대를 당했지만 돌아갈 곳 역시 엄마 곁이 유일했던
19살 수정 씨의 선택으로 모녀는 다시 함께 살게 됐다는 것
수정 씨의 그림이 독특한 화풍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 역시
이때부터인 것으로 보임
그렇다면 혹시 엄마와의 동거가
그녀의 그림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부모로부터 상습적인 학대를 당한 피해자들의 그림에는
일정한 특징이 있다고 함
관계를 나타내는 손, 감정을 드러나는 눈 코 입과 같은
신체 일부가 생략돼 있거나 자아상 분개를 의미하는 현상, 그리고 피와 죽음에 관한 표현이 많다는 것
반면 수정 씨의 작품은 학대를 받은 피해자들의 그림과도
결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임
시설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몹시도 평범하고 건강했던 수정 씨
대체 그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실 수정 씨가 숨진 채 발견된 방 안에는
또 다른 단서가 있었음
태아나 임신과는 전혀 다른 화풍으로 그려진 모녀의 초상화
분명 그림 속에서는 몹시도 행복해 보이는 수정 씨
그런데 초상화를 본 그녀의 지인들은
우리에게 예상 밖의 얘기를 들려줌
2탄으로
(혹시라도 재밌다는 댓글들은 지양해주세요.)
첫댓글 뭐가 어찌된걸까...
허... 마음 아파
뭐야.... 무슨 일이었을까
여기서 히힉-한사람 손!!
ㅠㅠ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