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맞이하러 다녀왔다. 매년 다녀오면서 그때그때 느끼는 감회가 다르지만 올핸 유난히 남달랐던 추억이 있었다.
속초,삼척 ..생각했던것보다 사람들이 너무많아 발길을돌려 양양으로 향했다.우린 주문진 항에 도착했을때 마음이 씁쓸하면서도 푸근한 광경을 목격했다.어시장 입구에서 휠체어를 타고 계신 할머니뒤로 가족들로 보이는 예닐곱의 사람들이 어깨를 구부린채 졸졸졸졸 종종 걸음을 치고 있었다.주름진 할머니의 입가엔 그날따라 내엄마의 미소처럼 포근함이 번지는 것을 이내 느꼈었다. 얘기인 즉슨 그할머니는 주문진항에서 67년을 이까(오징어) 배 따는데에 종사하며 세월을 보내신 토박이셨다. 중요한건 그 비린내나는 항구에서 그렇게 힘들게 고생해서 모은돈을 지역개발사업금으로 내놓으셨단다.
물론 자식들이 없냐고 의아해 하겠지만,딸하나에 아들 둘이 있단다.물론 그들은 엄마의 그런 모습이 창피하고 싫다며 한 둘 외지로 흩어졌단다. 할머님하시는 말씀, "조금 대가리들이 크더니 서로 니잘났나,내 잘났나 " 싸움으로 시간 보냈었단다...할머니는 얼마전까지(그나마 건강하실때)만해도 "자식들 싸우지않게 집집마다 조금씩 보탬을 줘야 할텐데"하며일손을놓지않으시고 새벽3시에 일어나셔서 항구일 끝나면 난전 오징어 팔고 들어오시면 새벽 한두시는 항상 넘기셨단다. 그러나,그전엔 엄마가 밥을 드시는지,잠 자리는 편안 하신지 안부한번 궁금해하지않더니, 소문에 엄마가 모아놓은 돈이 꽤 된다는 소문을 듣고서는,전혀 발걸음않던 고향길을 이삼일이 멀다하고 쌍쌍이 방문하곤 했단다.그래도 부모 맘엔 미우나 고우나 자식이 우선일텐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 휠체어를 뒤따르던 사람들은 가족이아니라,할머님 생활하시던집근처에서 연세로인해 힘든일이있거나 사고가 생겼을때 내부모처럼 식사도 챙겨드리고 병원도 모셔다 드리고,기저귀도 갈아드리고 했던 이웃이었단다.사람들 말로는 할머니의 하시는 행동이나 말씀이 예전같지 않단다(.....). 그날따라 마지막으로 일하시던 항구에 나가보고 싶다고 하셨단다................... 연초에 다시금 , 전에 게을리했던 부모에대한 참공경을 되새겨 보는 시간이었다...나는 오징어 숯불 구이를 먹으며 남의 얘기이니,고개만 끄덕거리며.......동네 분들의 말씀을 이리듣고 저리 흘렸었다. 입에서 씹히는 오징어의 맛이 그날따라 남달랐다....
첫댓글 늘 하는것 같은데 부족한게 많다. 너무 많이 부족하지..잘해야지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자구...아마두 할머님 한평생엔 후회가 없을 듯...
정말 소중한 추억을 담아왔구나 남다른 오징어맛? 그느낌 그대로 한해가 훈훈해지길..
그 할머니 생각과 고생에 십분의 일도 모르겠지만, 참 대단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