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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상업미술로 치부되던 일러스트레이션이 가진 다양한 면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탈리아 국립 피사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고종희 교수(한양여자대학 일러스트레이션과)가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일러스트레이션적인 측면이 강조된 화가의 작품을 찾아서 정리하고 있다. `비추다` `조명하다`란 뜻을 가진 일러스트레이션은 한마디로 `말하듯이 내용을 설명해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회화가 화가 자신을 위해 그린 그림이라면, 일러스트레이션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림"이라고 고교수는 정의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는 작가를 분리해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즉 서양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보더라도 이들이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대중미술의 질을 높이고, 회화적 기법까지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구가한 알브레흐트 뒤러(1471-1528). 널리 알려진 뒤러의 작품으로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전범으로 평가받는 `토끼` `식물습작` 등을 들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정확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주변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드러내는 화풍이 뒤러 일러스트레이션의 특징이다. 500년 전의 그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 자유로운 정신과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태도는 독창적이고 새롭다. 오히려 살바도르 달리, 막스 에른스트 등의 현대회화의 거장들이 16세기 플랑드르 지방에서 태어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1450-1516) 등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6세기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디(1527―1593)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 그림이 5세기 전인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졌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다. 책의 형상으로 사람의 얼굴을 그린 `도서관 사서`, 과일로 얼굴 모습을 담은 `야채상` 등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치밀한 사실성을 바탕으로 한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이 독자와의 소통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장치가 됨과 동시에, 이런 극단적인 사실성이 도리어 새로운 상상력을 만들어내는 기폭제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작품성★★★★ 대중성★★★★) / 문화일보 배문성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