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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마음공부방] 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 제1부 세전(世典) 제8장 휴양(休養) 2. 휴양의 도
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 제1부 세전(世典)
제8장 휴양(休養) 2. 휴양의 도
설교 : 전성욱 교무님
일시 : 원기 105년 4월 29일
타이핑 : 심현승
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 제1부 세전(世典) 제8장 휴양(休養) 2.휴양의 도사람이 휴양기에 당하여는 생사에 대한 일과 정신통일이 가장 크고 긴요한 일임을 철저히 알아서 일상생활을 오직 수양에 집중할 것이니, 휴양의 도는, 첫째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기어이 보려하지 말 것이요, 둘째는 귀에 들리지 않는 일을 기어이 들으려 하지 말 것이요, 세째는 설사 보이고 들리는 일이라도 나에게 관계없는 일을 기어이 간섭하지 말 것이요, 네째는 의식용도를 자녀나 책임자에게 맡긴 후에는 대우의 후박을 마음에 두지 말 것이요, 다섯째는 젊은 시절에 지내던 일을 생각하여 스스로 한탄하는 생각을 두지 말 것이요, 여섯째는 재산이나 자녀나 그 밖의 관계 있는 일에 착심을 두지 말 것이요, 일곱째는 과거나 현재에 원망스럽고 섭섭한 생각이 있으면 다 없앨 것이요, 여덟째는 자기의 과거에 대한 시비에 끌리지 말 것이요, 아홉째는 염불과 좌선 공부를 더욱 부지런히 할 것이요, 열째는 무시선 공부에 노력을 계속할 것이니라. |
오랜만에 얼굴보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니 참 좋습니다. 오늘은 휴양의 도에 대해 공부를 할 건데요. 오늘 휴양에 도를 공부하면서 ‘휴양을 해야겠구나, 휴양을 어떻게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시면 좋겠다는 염원을 가지고 시작해보겠습니다. 전서 747쪽을 보면 제 8장 휴양(休養)이 있죠. 休(쉴 휴) 자에 養(기를 양) 자입니다. 몸과 마음을 쉬어서 지치거나 병든 몸과 마음을 회복한다는 뜻이 휴양입니다. 쉬는 방법은 수만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쉬시나요? 쉬어라 하고 시간이 주어지면 어떻게 쉬십니까? 잡니다. 일 번으로 나올 줄 알았습니다. 두 번째는 먹어요. 몸 회복하는 데에는 자고 먹는 게 최고지요. 그리고 휴대폰을 해요. 휴대폰을 하면 회복이 되나보군요. 노래방을 갑니다. 신나게 부르고 나면 해소가 됩니다. 떠납니다. 산으로, 바다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또 뭐하나요. 음악을 듣고 미술관을 갑니다. 친구를 만나고 저는 운동을 갑니다. 장모님은 사우나를 가신다 하고. 아무것도 안하기도 하지요. 요즘 멍 때리기 대회도 있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뭐에요? 우리의 몸과 마음, 육근을 멈춘다. 쓰지 않는다. 무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뇌는 멍 때리고 있어도 돌아간다고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뭔 생각이 떠오르나요? 어떤 잡념이 떠오르나요? 숨겨왔던, 잊어왔던 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있던 잡념이 떠오르지요. 그래서 사실은 멍 때리기를 해도 온전한 휴양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수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깊은 경지의 명상. 안 해본 사람은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하지만 해본 사람은 압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쉬고 싶나요? 맨날 쉬고 싶나요? 지금도 쉬고 싶고, 쉬라고 하면 계속 쉴 수 있어요? 계속 쉬고 싶어요? 3일만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가만히 놔두면 병납니다. 그래서 휴양은 적당히 적당한 시기에 하는 것입니다. 그게 언제냐를 오늘 그 말씀을 해주십니다. 요즘 사람들은 쉬어라 하면 쉬겠다, 휴양하겠다면 쉬어서 회복하는 것도 있지만 보상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열심히 공부했으니 좀 쉬어줘야 돼, 열심히 일했으니 좀 쉬어줘야 돼’ 같은 보상 심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잠깐 쉬는 것은 쉰 게 아니고 오래 쉬어야 쉬었다 합니다. 하루 쉬라고 하면 ‘에게’ 그러고 삼일, 일주일 쉬어야 한다 생각하고 한 달을 쉬어야 유럽도 갔다 오잖아요? 그 정도 쉬면 쉰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원불교의 휴양, 쉰다는 것은 꼭 그 기간을 정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적당히 잘 쉬어주고 특별히 기간을 정해서는 더 잘 쉬어주는 것 그래서 몸에 마음에 회복, 보상을 넘어서 새로운 준비의 개념을 휴양이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말씀드리려 하고 그 내용은 본문에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께서 정리하신 세전에 나와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휴양에 대하여]
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 제1부 세전(世典) 제8장 휴양(休養) 1. 휴양에 대하여천지에는 사시의 절서가 있고 사람에게는 일생의 시기가 있나니, 천지가 그 절서를 어기지 아니하므로 만물이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거두는 차서를 얻게 되는 것 같이 사람은 그 시기를 잃지 아니하여야 일생의 생활과 생사 거래에 원만함을 얻나니라.그러므로, 대종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유년기에는 문자를 배우게 하고, 장년기에는 도학을 배우며 제도 사업에 노력하게 하고, 노년기에는 경치 좋은 한적한 곳에 들어가서 세상의 애착 탐착을 다 여의고 생사 대사를 연마하게 한다 하시었나니, 사람이 청소년기에는 주로 학업에 전력하여 인격의 기초를 이루어야 할 것이요, 장년기에는 주로 사업에 종사하여 인생의 가치를 나타내어야 할 것이요, 노년기에는 주로 수양에 전일하여 영원한 세상에 정신의 종자를 충실히 길러야 하나니라.그러므로, 사람이 젊어서 사업을 하는 가운데도 적당한 시기를 따라 휴양을 취함이 필요하거니와 만년에 있어서는 더욱 전문적인 휴양이 긴요한 것이며 휴양하는 도와 해탈하는 도를 잘 밟아 나아가야 영원한 세상의 영육 생활에 결함이 없나니라. |
휴양이 없어도 살 수는 있습니다. 결함이 없는 원만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시기에 맞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천지는 춘하추동의 사시 순환이 있지요. 우리나라에서 이것이 어그러진 적이 있습니까? 봄이 왔다가, 가을이 왔다가, 여름이 왔다가, 겨울이 왔다가 한 적 있습니까? 음양상승의 이치에 따라서 삼복도 있고 꽃샘추위도 있지만 그 것이 전체의 판세를 뒤엎고 순서를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강약, 음양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있어지는 변동이고 변화입니다. 그래서 천지는 사시순환을 꾸준히 지켜왔다. 그래서 만물이 그 안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도 천지의 이치를 따를 때, 다시 말하면 질서를 따를 때 순서를 따를 대 원만해집니다.
생(生) – 유년기 – 장년기 – 노년기 – 사(死) |
우리가 태어나면 죽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태어나면 유년기가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청소년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장년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살다보면 노년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갑니다. 노년기를 여기서는 휴양기로 이야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유년기에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죠?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교육이죠, 태교, 유교, 통교. 장년기에는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신앙 각각의 도가 있습니다. 가정에는 부모 자녀 부부 형제, 사회에는 남녀, 노소, 강약, 공중, 신앙에는 신앙의 도, 신자의 도 국가에는 치교의 도 국민의 도, 세계에는 인류의 도, 그 각각의 도가 있어서 그 것을 배우면서 사업을 한다고 합니다. 노년기에는 뭘 해야하나요. 휴양 그리고 해탈, 열반, 천도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를 각 가정에 맞게 배웁니다.
그리고 그 중심은 무엇인가. 유년기에는 학업을 통해서 인격의 기초를 이루어라 하였습니다. 장년기에는 사업을 해서 인생의 가치를 나타내라 하셨습니다. 휴양기에는 수양을 통해서 정신의 종자를 기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대종사님께서 공부 방법을 내주실 때 삼학으로 정리를 해주셨는데 이 삼학 수양, 연구, 취사는 언제 하는 건가요? 일생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태어나면서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하는 것입니다. 온전하지 않을 뿐이죠. 그 삼학을 각각에 함에 있어서 유년기는 연구가 중심인 삼학입니다. 장년기는 취사가 중심인 삼학, 노년기는 수양이 중심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삼학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항상 삼학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무엇을 중심으로 하냐는 각 시기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유년기는 배울 때이니 연구 위주, 유년기에도 수양과 취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장년기에는 움직이고 활동하고 사업을 벌여야합니다. 취사 위주인데 수양과 연구가 함께합니다. 노년기에는 취사와 연구과 함께하는 수양의 시기로 잡아야합니다. 이것이 각각의 인생의 시기이고 중심이 되는 공부입니다. 이것을 순서에 맞게 할 때 우리의 인생이 원만해집니다. 이것을 언제 확인할 수 있나요? 죽음에 다다르면 알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꼭 가봐야 압니까. 우리가 배워서 미리 해보자는 것이지요. 우리가 늙어서 인생의 막바지에 다다라서 ‘아 그때 내가 더 배웠어야 했는데, 더 일을 했어야 했는데, 수양을 했어야 했는데’하며 후회합니다. 뒤에 가면 누가 모르나요, 다 알지요. 그런데 그 때 가면 늦지요. 그러니 미리 알아서 준비하고 그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오늘은 휴양의 도이니깐 노년기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셨죠? 그러면 수양을 해야 합니다.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을 열심히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인생을 저렇게 열정적으로 사시니 참 좋다. 나도 저렇게 해야지’ 그런 생각이 드시나요? 아무 생각도 없고 ‘뭐 각자 뜻대로 사는거지’ 하시나요? 물론 에너지가 있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그것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나요? 노년기는 마음은 살아있지만 몸이 옛날 같은 생기가 없습니다. 노년에는 에너지가 다해가는 시기입니다. 남은 에너지를 다 쏟아버리고 나면 갈 때 허망합니다. 그래서 수양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수양은 말씀드렸듯이 회복이면서 새로운 준비입니다. 그래야 이번 생뿐만이 아니고 막 달려가고 쾌락으로 가고 극으로 치닫는 사람들은 이번 생만 사는 사람입니다. ‘이번 생에서 살면 끝이지, 인생 한번 멋지게 살아봐야지’ 하면서 다 쏟아버리고 갑니다. 정말 이번 한 생으로 끝나나요? 우리의 몸은 이번 한 생으로 끝나지만 본래 마음, 그 성품자리는 영생을 갑니다. 그 성품을 몰라서 그렇지만 들어서 알고 믿으면 영생을 준비해야 합니다. 노년기에 수양을 하라는 것은 영생을 잘 사는 방법입니다. 이번 한 생을 잘 마무리하자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잘 사는 방법으로 휴양의 도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격상 나는 도저히 안 움직이고는 못살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외부 환경에 의해서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떨 때 이러한 순서를 밟기 어려울까요?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입니다. 전쟁이 나거나, 큰 병에 걸리거나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당장 먹을 게 없으면 이러한 과정을 밟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정말 그런 경우가 아니면 이 단계를 밟는 것이 원만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 단계를 밟는다고 해서 물론 모두가 원만한 삶이 되는 것은 아니고 개인 따라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지어 놓은 것도 차이가 있을 것이고 지금 내가 지어 놓은 것도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밟아갈 때 영원한 삶의 원만한 삶을 어느 정도 길을 잡고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나도, 아파도, 가난해도 우리의 역사를 보면 다 배우려고 했고 쉴 때는 쉬었습니다. 6.25 전쟁이 났을 때에 그렇게 쫓겨 가면서도 학교가 다 중지되었어도 천막치고 배웠습니다. 나중에 부산에 가니깐 학교가 생겨서 거기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선생님들이 가르쳐줬습니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배우려고 찾아갔고 부모님들은 전쟁통에 먹을 것이 없어도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보냈습니다. 배워야 삶이 원만하다, 배워야 잘 산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힘들어도 쉴 때는 쉬었습니다. 국제 시장이라는 영화가 있었잖아요. 거기 보면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가셨던 분들이 한국 사회에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너무너무 힘들게 일하잖아요. 어떻게 저렇게 일할까 싶은데 파티를 하는 장면이 나오죠.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와중에도 파티를 열어서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람은 유년기, 장년기, 휴양기 이 뿐만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특수한 상황이 생겨도 배우고 쉬고, 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과정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가집니다. 그리고 생과 사의 중간에 있는 그 과정을 밟아가자는 것입니다.
[휴양에 대한 법문]
또 휴양에 대해 말씀해주신 법문들을 간단히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대종경(大宗經) 제4 인도품(人道品)43.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모범적인 가정을 이룩함에는 첫째 온 집안이 같이 신앙할 만한 종교를 가지고 늘 새로운 정신으로 새 생활을 전개해야 할 것이며, 둘째는 호주가 집안 다스릴 만한 덕위와 지혜와 실행을 갖추어야 할 것이며, 세째는 호주가 무슨 방법으로든지 집안 식구들을 가르치기로 위주하되 자신이 먼저 많이 배우고 먼저 경험하여 집안의 거울이 되어야 할 것이며, 네째는 온 식구가 놀고 먹지 아니하며 나날이 수지를 맞추고 예산을 세워서 약간이라도 저축이 되게 할 것이며, 다섯째는 직업을 가지되 가림이 있어서 살생하는 직업이나 남의 정신 마취시키는 직업을 가지지 말며, 또는 권리를 남용하여 남의 생명·재산을 위협하거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이 없게 할 것이며, 여섯째는 될 수 있는 대로 부부 사이에도 물질적 생활을 각자 자립적으로 하면서 서로 부유한 가정과 부유한 국가·사회를 만들기에 힘쓸 것이며, 일곱째는 국가·사회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며 특히 자력 없는 사람을 보호하는 기관과 교화·교육의 기관에 힘 미치는 대로 협력할 것이며, 여덟째는 자녀에게 과학과 도학을 아울러 가르치며 교육을 받은 후에는 상당한 기간을 국가나 사회나 교단에 봉사하게 할 것이며, 아홉째는 자녀에게 재산을 전해 줄 때에는 그 생활 토대를 세워 주는 정도에 그치고 국가나 사회나 교단의 공익 기관에 희사할 것이며, 열째는 복잡한 인간 세상을 살아 가는 데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하여 매월 몇 차례나 매년 몇 차례씩 적당한 휴양으로 새 힘을 기를 것이니라.] |
모범적인 가정을 이룩하기 위한 10가지를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에 ‘복잡한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데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하여 매월 몇 차례나 매년 몇 차례씩 적당한 휴양으로 새 힘을 기를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휴가도 가고 훈련도 가고 계시죠? 휴가 안 가신 분 있어요? 꼭 챙겨서 가잖아요. 훈련은 빼먹어도 휴가는 가잖아요. 안 그런가요? 휴가는 못가도 훈련은 가죠.
예전(禮典) 제1통례편(通禮編) 제2장 평거(平居) 2. 평거시의 주의1. 기침(起寢)과 취침을 일정한 시간으로 하며, 식사와 청결과 집무와 휴양 등을 각각 적당한 시간으로 하여, 일상 행사를 규율 있게 할 것이요2. 세면 양치 등을 매일 하고, 목욕과 세탁을 적당한 시일에 하여 몸을 항상 정하게 가질 것이요3. 실내와 정원과 도로를 살펴서 도량을 항상 깨끗이 할 것이며, 수용 도구를 자주 정돈할 것이요4. 한가한 때에 응용의 형세를 보아서 모든 사물에 미리 연마와 준비를 할 것이요5. 혼자 있는 때에도 늘 마음을 경계하고 위의를 챙겨서 방심하거나 함부로 하는 일이 없게 할 것이요6. 부모 사장(師長)을 모실 때에는 그 있는 바 처소를 따라 적당한 시간으로 문후(問候)하며 그 명하시는 바를 진실히 이행하여 각각 시봉의 도를 다할 것이요7. 직접 자신을 감독하는 어른에게는 반드시 출고반면(出告反面)의 예를 분명히 할 것이며, 비록 수하 사람에게라도 측근자에게는 그 출입과 처소를 알릴 것이요8. 매일 취침 전과 기침 후에는 일정한 정성으로 신혼경례(晨昏敬禮·교례편 2장 4절)를 올리며, 취침 전 경례 후에는 약 십분간 일기나 유무념법으로써 하루의 심신 작용을 대조할 것이요9. 처처불상 사사불공과 무시선 무처선의 도리를 생각하여 천만 경계에 항상 공경 일념을 놓지 말 것이니라. |
평소에 어느 한 곳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일과 식사와 휴식을 가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수업을 들을 때에도 아침에 9시에 가면 그 때부터 시작해서 5시가 될 때까지 계속 수업 듣나요? 50분하고 10분 쉬고 했지요. 공부할 때도 반드시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하루를 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계속 공부하고 일하나요? 아니죠. 쉬어야합니다. 밥 먹고 나면 잠깐 쉬고, 저녁에 돌아오면 잠깐 쉬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에너지가 생깁니다. 몸과 마음을 쉬어줘야 합니다. 일주일 동안 일을 몇 시간 행하죠? 주당 40시간, 최대 52시간하라고 법으로 정해놨지요. 그 이상으로는 하지 말라고 왜 정해놨을까요? 유럽이 하니깐 그냥 따라가는 건가요? 이제는 균형을 잡아가는 것입니다. 옛날 6, 70년대에 어떻게 일했습니까?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다 일했습니다. 그러니깐 그렇게 많이 죽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투쟁으로 우리가 이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겁니다. 쉬어야 합니다. 주말에도 쉬어야지요. 기독교 교리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실 때 7일 동안 계속 일을 하셨으면 우리가 쉴 때가 언제 있었겠습니까. 6일 동안 일하시고 하루 쉬셨지요, 그래서 일주일 문화가 생겼습니다. 그 문화가 안 들어 왔을 때 대종사님 당대 때에는 법회를 언제 봤나요? 삼순일로 봤잖아요. 한 달에 세 번씩 봤습니다. 10일씩 끊어가지고, 그런데 일주일 문화가 들어오면서 우리가 거기에 따라서 생활 패턴을 바뀌어나가게 됐지요.
[언제 쉬어야 하나]
쉬어야 합니다. 휴양기를 가져야합니다. 일 년으로 봐도, 아까 이야기한 대로 휴가도 가야되고 훈련을 나면서 휴양의 시간을 가져야합니다. 그 뿐만 아니고 법적으로도 일 년에 80% 이상 일한 사람은 15일 이상의 유급휴가를 주라고 법으로 정해놨습니다. 그게 권리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원만해 집니다. 사회에서도 그 것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또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일생을 통해서는 국가에서 언제 쉬라고 했습니까? 퇴임이 언제이지요? 65세이지요. 65세가 넘으면 열심히 일했다고 대우해주지요. 그 과정을 통해서도, 일생을 통해서도 휴양을 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제정했고 대종사님께서는 법으로 도를 밝혀주셨습니다. 유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나누어서 그에 맞게 노년기에는 수양에 전력해서 잘 쉬고 준비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의 휴양]
실제로 대종사님도 쉬셨습니다. 휴양을 가셨습니다. 1916년 대각을 하시고 뭘 하셨지요? 1년 동안 제자들을 모아서 제자들과 같이 저축조합을 만들어서 1년간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3년째가 되는 해에 뭘 하셨나요? 바다를 막자고 일을 하셨습니다. 방언 공사를 1년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 교화를 해보신 분들은 정말 열심히 교화하면 힘드나요? 단원 불공했는데 효과 없으면 힘들잖아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제자를 모아서 돈을 모아서 사업을 하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실제로도 일을 하시고 대종사님께서도 일을 하시면서 심신이 지치셨습니다. 그리고 휴양처가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휴양처를 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방언 공사가 끝나던 3월 즈음에 변산에 가보시기도 하고, 7월 달에는 제자를 보내기도 하고, 10월 달에는 당신이 직접 들어가셨습니다. 거기가 봉래정사가 되었고 중간에 금산사에 가서 약 두 달 동안 계시면서 휴양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마음도 계속 가는 것이 아니라 깔아졌다 올라갔다 합니다. 그 때 충전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에서도 휴양을 하도록 기관을 많이 만들어 놨습니다. 퇴임을 하시면 원로 교무님들이 계시는 수도원, 남자 원로 교무님들은 원로원에 가십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나요? 우리는 훈련원으로 가지요. 훈련원에 곳곳에 만들어서 마음을 공부하면서 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훈련원에 전화해가지고 ‘저 가서 좀 있으면 안 됩니까?’ 하면 오지마라는 데 없습니다. 가실 수 있습니다. 만덕산, 봉도 다 갈 수 있습니다. 오지 말라고 안합니다. 생활 속에서는 어디가 휴양하는 곳인가요? 교당입니다. 교당에 와서 휴양을 하고 가셔야합니다. 더 확대해서는 집이 휴양처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안 되어 있으면 내가 적당한 시기에 따른 휴양을 못하고 있다. 곳곳이 휴양처가 되어야 됩니다.
[휴양 시 유의점]
휴양을 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중, 고등학교 학생들한테 쉴 때 뭐하냐고 하면 게임을 한다고 합니다. 게임을 하면 쉬어지냐고 물으면 성질이 난대요. 그러면 쉰 건가요? 쉬긴 쉬었는데 충전은 안 되지요. 잠도 적당히 자야지 24시간 내내 자면 몸이 노곤해져서 안 일어나지고 오히려 가라앉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몽땅 먹어버리면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몸을 망치게 됩니다.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하게 하면 안 되고 중도에 맞게 해야 합니다. 사람 만나는 것도, 여행가는 것도 중도에 맞게 해야 합니다. 휴양의 목적에 맞게 몸과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휴양을 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휴양의 도]
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 제1부 세전(世典) 제8장 휴양(休養) 2.휴양의 도사람이 휴양기에 당하여는 생사에 대한 일과 정신통일이 가장 크고 긴요한 일임을 철저히 알아서 일상생활을 오직 수양에 집중할 것이니, 휴양의 도는, 첫째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기어이 보려하지 말 것이요, 둘째는 귀에 들리지 않는 일을 기어이 들으려 하지 말 것이요, 세째는 설사 보이고 들리는 일이라도 나에게 관계없는 일을 기어이 간섭하지 말 것이요, 네째는 의식용도를 자녀나 책임자에게 맡긴 후에는 대우의 후박을 마음에 두지 말 것이요, 다섯째는 젊은 시절에 지내던 일을 생각하여 스스로 한탄하는 생각을 두지 말 것이요, 여섯째는 재산이나 자녀나 그 밖의 관계 있는 일에 착심을 두지 말 것이요, 일곱째는 과거나 현재에 원망스럽고 섭섭한 생각이 있으면 다 없앨 것이요, 여덟째는 자기의 과거에 대한 시비에 끌리지 말 것이요, 아홉째는 염불과 좌선 공부를 더욱 부지런히 할 것이요, 열째는 무시선 공부에 노력을 계속할 것이니라. |
휴양의 도 법문을 보면서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넘어가겠습니다. 여기서는 원불교의 휴양은 몸과 마음을 쉬는 것도 있지만 결국 수양으로 귀결된다는 말씀을 해놓으셨습니다.
첫째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기어이 보려하지 말 것이요, 둘째는 귀에 들리지 않는 일을 기어이 들으려 하지 말 것이요, |
우리의 몸에는 여섯 가지의 감각 기관이 있지요. 눈, 귀, 코, 입, 몸, 마음을 합쳐 육근이라고 하지요. 그 중에서 대표적인 정보 수집 기관이 눈과 귀입니다. 눈 감고 귀 막으면 여러분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처음부터 다 막고 익숙해지면 몸으로도 느끼고 한다고도 합니다. 여러분들 잘 쓰던 눈과 귀를 막으면 얻을 게 별로 없지요. 그래서 집중하라고 할 때 눈은 크게 떠라 귀를 쫑긋 기울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눈 뜨고 귀만 열고 있으면 온갖 정보가 들어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고 거슬리게도 하고 온갖 경계를 일으킵니다.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들어옵니다. 그런데 굳이 잘 안보여도 넘어서 보고 잘 안 들려도 가까이 가서 듣고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수양을 하는 데에 있어서 정신통일과 생사해결이 중요하다고 하지요. 왜 선을 하려고 앉으면 잡념이 일어나나요? 전에 겪었던 센 경계들, 해결 되지 않은 경계들이 올라옵니다. 그것도 많은데 굳이 안 만들어도 되는 경계를 만들어서 스스로 쉴 수 없게 만듭니다. 듣지 않아도 될 것,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면 대부분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 그거 듣느라고 에너지 써야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데 안 들리는 것을 들으려면 애를 써야합니다. 에너지가 훨씬 많이 쓰이고, 내가 안 들어도 될 것은 나하고 관계가 없는 일이지요. 또는 나에게 안 좋은 일일 가능성이 있지요. 또는 누구의 안 좋은 일일 수도 있지요. 좋은 일이라도 해도 그 것을 통해서 내가 얻는 것은 번뇌밖에 없습니다. 남의 집 부부가 왜 싸웠는지, 왜 이혼했는지, 남의 집 애기 성적이 왜 이리 궁금하나요. 안 알려줘도 통해서 다 듣는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그 에너지를 안으로 돌려서 나를 살펴야 합니다. 특히 휴양기에는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쓰면 휴양이 되질 못합니다. 그래서 휴양의 도 첫 번째, 두 번째는 눈, 귀만 말씀하셨지만 육근 기관을 존절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째는 설사 보이고 들리는 일이라도 나에게 관계없는 일을 기어이 간섭하지 말 것이요,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가만히 있어도 들리고 보입니다. 그렇게 보여도 나랑 관계가 없으면 간섭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무관사에 동하지 말라는 계문도 있지요. 장기나 바둑을 둬보신 분들은 아실텐데 누가 제일 밉지요? 거기 두면 안 되는데 하면서 가는 훈수 두는 사람이 제일 밉지요. 제대로 알려주던가, 아니면 상대편은 괜히 끼어들어서 밉잖아요. 내가 누구랑 다투고 있을 때 누가 밉나요? 끼어들어가지고 누가 옳다 그르다 아는 척하고 하는 사람이 밉지요. 나와 관계없는 일에 끼어들게 되면 그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고 내 마음도 요란하게 됩니다. 번뇌를 치성하게 하고 수양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평소에도 그래야하지만 휴양기에는 특히 더욱 조심해야합니다.
네째는 의식용도를 자녀나 책임자에게 맡긴 후에는 대우의 후박을 마음에 두지 말 것이요, |
어떤 일에 권한이나 책임을 후진에게 맡기면 대우를 해주건 안 해주건 마음을 두지지 말고 따지지 말아야합니다. 그것은 후진이 할 것입니다. ‘왜 나를 대우해주지 않냐’고 하면 스스로 번뇌에 빠져들게 되는 일입니다. 물론 우리 원불교는 공도자 숭배를 하라고 사요에 밝혀 놓으셨지요. 그래서 공양의 도를 다 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그 것은 그들의 일입니다. 내 스스로는 그 것에 마음을 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물려줬으면 지켜봐야합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겼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못 믿고 간섭을 하나요. 맡겼으면 믿어 줘야지요. 물려줬으면 잘 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도움을 요청하면 해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시작도 안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고, 그렇게 못 믿으면 도대체 왜 맡기나요. 도대체 맡겼으면 믿어줘야지요. 그래서 권한이나 책임이나 물려줬으면 참견이나 대우해달라 하지 말고 다 내려놓고 수양하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휴양기에는 더 그렇습니다.
다섯째는 젊은 시절에 지내던 일을 생각하여 스스로 한탄하는 생각을 두지 말 것이요, |
한탄한다는 것은 잘못한 것이 있다는 것이지요. 잘못한 것을 자책하고 한탄하면 과거의 일이 없어집니까? 스스로 괴롭게 할 뿐이지요. 대종사님께서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으면 뭘 하라고 하셔습니까? 참회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참회를 사참과 이참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참은 반성하는 것이고, 사과하고 보상해주는 것입니다. 잘못에 대해서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하며 뉘우치고, 그 사람에게 사과하고 그에 맞는 보상하고 마음으로만 ‘내가 잘못했지’하며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참으로는 내가 이 마음이 있지만 본래 마음자리에는 죄성이 없다. 그 것을 깨쳐야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장래에 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젊은 시절에 지냈던 일을 생각하며 한탄하지 말고, 참회하고 본래 그 빈자리를 비춰보는 것으로 수양을 해야 합니다.
여섯째는 재산이나 자녀나 그 밖의 관계 있는 일에 착심을 두지 말 것이요, |
관계있는 일입니다. 재산이나 자녀 그 밖에 관계있는 일은 뭔가요? 내가 일생을 살면서 나의 희망이고, 에너지였고 목적지였던 재산, 권세, 명예, 자녀, 배우자 등등에 대해 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애착 탐착이라고 하고, 미운 마음이 있으면 원착이라고 하지요. 그렇게 특별히 사랑했던, 미워했던 것들에 착심을 두지 말라, 집착하지 말라. 그 것에 대한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수양은 멀어집니다. 평소에도 놓으려고 연습을 해야 하는데 휴양기에는 특히 더 놓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눈에 멀어지면 덜 생각나고 하잖아요. 그래서 법문에 휴양기에는 한적한 곳에 들어가서 수양을 해라는 말씀이 법문에 있지요. 그래서 휴양기에는 그렇게 특별한 장소나 그런 것을 가질 필요도 있습니다. 마음으로만 먹어서 되면 좋은데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겸하면 좋겠습니다.
일곱째는 과거나 현재에 원망스럽고 섭섭한 생각이 있으면 다 없앨것이요, |
과거에 있었던 일 없앨 수 있습니까? 과거로 가서 ‘그렇게 안 해야지’ 하고 놓을 수 있어요? 타임머신이 개발되면 가서 조언을 해줄 수 있겠지만 아직은 없어서 과거의 일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지울 수 있습니다. 생각은 내 것이거든요. 없애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요. 마음으로 내가 놓을 수 있고 또 내가 그 사람을 직접 만나서 섭섭했던 것은 풀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천도품에도 그 법문이 있지요.
대종경(大宗經) 제9 천도품(薦度品)3. 대종사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열반이 가까운 병자로서는 스스로 열반의 시기가 가까움을 깨닫거든 만사를 다 방념하고 오직 정신 수습으로써 공부를 삼되 혹 부득이한 관계로 유언할 일이 있을 때에는 미리 처결하여 그 관념을 끊어서 정신 통일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할지니, 그 때에는 정신 통일하는 외에 다른 긴요한 일이 없나니라. 또는 스스로 생각하되 평소에 혹 누구에게 원망을 품었거나 원수를 맺은 일이 있거든 그 상대자를 청하여 될 수 있는 대로 전혐(前嫌)을 타파할 것이며, 혹 상대자가 없을 때에는 당인 혼자라도 그 원심을 놓아 버리는 데에 전력하라. 만일 마음 가운데 원진을 풀지 못하면 그것이 내생의 악한 인과의 종자가 되나니라. 또는 스스로 생각하되 평소부터 혹 어떠한 애욕 경계에 집착하여 그 착을 여의지 못한 경우가 있거든 오직 강연히라도 그 마음을 놓아 버리는 데에 전력하라. ... (중략)] |
열반이 가까울 때에는 가서 풀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직접 못 갈 때에는 오게 해서 풀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과를 봐서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도 10년 전 쯤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있어서 1~2년간 원망심도 나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말로 계속 나오더라구요. 말 안해야지 했는데 해도 막 나오는 것을 보면서 엄청나게 잡혀있구나 싶었습니다. 스스로 괴로우니깐 3년 쯤 지나니깐 놓으려고 했습니다. 놓으려고 하니깐 옅어지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면이 있었구나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놓고, 놓고 해보니깐 일은 남아도 원망하거나 섭섭한 마음은 내가 놓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의지로도 할 수 있지만 안될 때에는 그래서 수양의 방법으로도 그래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덟째는 자기의 과거에 대한 시비에 끌리지 말 것이요, |
시비(是非), 못한 것만이 아니라 잘한 것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시일이 지나면 잘한 것은 포장이 되어서 정말 잘한 것처럼 보이게 되고 못한 것은 잘 포장이 되어서 덜 잘못한 것으로 되지요. 그렇지 않으면 괴로워서 못삽니다. 우리의 뇌가 그렇게 되게 놔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잘한 것, 잘못한 것에 끌리지 않아야합니다. 마치 내가 과거에 잘한 것이 있으면 그 것이 나인 양 싶습니다. 제가 여기 안암 교당에 오기 전에 춘천 교당에 살았었는데 나름 열심히 살고 재밌게 살았습니다. 그러니깐 점점 포장이 되고 그 때 인연들과 만나면 ‘그 때가 좋았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면 막 포장이 됩니다. 그러면 내가 잘 산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니지요. 그 잘한 것에 끌리면 누가 ‘너 그 때 힘들었지? 별로 안 좋아 보였어’ 하면 나는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번뇌가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못한 것에 끌려가지고 ‘내가 그 때 그 것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며, 그 것이 나의 전체인양 합니다. 이것도 놓아야 합니다. 이해가 잘 안 될 때에는 타력을 입어서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트라우마나 과거의 기억에 의해서 고통 받고 있던 것을 병원을 가서 해결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시대는 아닙니다. 그런데 교당에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인데 마음으로만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혼자 극복 못할 때에는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는 마음에 대해서 스스로 끌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홉째는 염불과 좌선 공부를 더욱 부지런히 할 것이요, |
원불교의 수양 방법 중 하나는 염불과 좌선입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수양의 방법들이 있습니까. 가장 기본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대종사님께서 그 것만 경험해봐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 두 가지가 가장 표리의 관계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로서 효과적인 수양의 방법이라고 두 가지를 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걸 평소에 잘 단련해놓으면 웬만한 경계는 경계가 아니게 됩니다. 내가 아침에 선을 잘 하고 나가면 웬만큼 누가 건드려도 평소에는 걸렸던 것들도 수월하게 넘어갑니다. 그 때 잠깐이지만 이것이 누전된다고 생각해보십쇼. 평소의 경계는 경계가 아니게 됩니다. 또 경계가 와도 넘어설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평소에 젊을 때에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노년기에는 더욱 더 그 시간을 늘리고 그 것에 주력을 해야 합니다.
열째는 무시선 공부에 노력을 계속할 것이니라. |
무시선의 강령이 뭐지요? 육근이 무사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라. 육근이 유사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 하셨지요. 일이 있을 때에는 정의를 양성하라. 일이 없을 때에는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해라. 이 표준을 잡고 지켜 나가라. 무시선 공부가 삼학의 총합이지요.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일생을 통해서 할 공부입니다. 그런데 이 노년기에는 무시선 공부를 물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을 막 만들면서 무시선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줄여가면서 해야 합니다. 일은 장년기 때 주로 하고 휴양기 때에는 일을 줄여야 합니다. 일이 없을 때를 만들어야 합니다. 계속 일이 있을 때 무시선 공부를 한다고 하고 있으면 그 것은 노년기에 하는 공부는 아닙니다. 일을 없게 하는 공부, 앞에 이야기 했던 첫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 지켜 가면 일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 것을 내가 다 어기면 일이 막 쌓이고 번뇌가 쌓입니다. 앞의 것들과 다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노년기에는 일을 줄여가면서 무시선 공부를 해가야 합니다.
[휴양의 도 마무리]
이상 휴양의 도를 살펴봤는데 정리를 해보면 우리는 평소에도 휴양의 시기를 잘 잡아서 휴양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생을 볼 때에는 노년기, 특히 휴양기에 휴양에 주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 현재를 통해서 생기는 번뇌의 소재들을 놓고 멀리하고 수양의 큰 길인 염불과 좌선과 더 나아가서 무시선 공부를 더욱 정진하고 그렇게 해서 이생을 빛내고 나아가서 영생을 원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휴양의 도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휴양은 언제 해야 하나요? 적당히 기회를 따라서, 시기를 따라서 중도에 맞게 해야 합니다. 특히 내가 노년기에 당했으면 지금 해야 합니다. 이 법문은 나를 들여다보는 법문입니다. 내가 노년기가 아니면 언제 하라는 이야기인가요? 적당한 시기를 따라서 잘 쉬어야 합니다. 내가 노년기면 ‘지금 내가 수양에 주력할 때구나’를 알고 그 시간을 늘리고 정진해야 합니다. 그게 공부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해당되지 않으니깐 ‘누구누구가 들어야겠네.’가 아니고 철저하게 나를 살피는 공부를 해야 나에게 적용이 되고 내 삶이 개선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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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은혜롭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