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자리 잡은 작은 유인도이다.
마라도는 대한민국 영토의 자존이다.
이 작은 화산섬의 존재로 대한민국의 영해를 확대하는 중요한 기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라도에는 '뽀르찌운꼴라'라는 마라도스러운 작은 성당이 있다
누구나 뽀르찌운꼴라 앞에 서면 지극히 낮아지고 작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마라도 가는 배는 모슬포항과 송악산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모슬포 운진항에서 오후 1시 50분에 출항하는 배를 예약해 놓았다
모슬포항에서는 오전 9시50분부터 마라도행 배가 5회 출항한다
간밤에는 혹시라도 바람이 강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잠을 설쳤다
우리를 태운 블루레이 2호가 운진항 등대를 벗어나자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배의 뒷쪽에 익살스러운 빠삐용의 모형이 설치되어 있었다
선착장에서 빠삐용절벽을 배경으로 추억의 사진을 남기라는 글귀가 씌여 있었다
배는 약 30여분 만에 마라도 살레덕선착장에 닿았다
마라도에는 살레덕과 자리덕 선착장 두 곳이 있는데 풍향에 따라 선착장 중 한 곳에 배가 선다.
해식단애의 무늬가 찬장처럼 가로 세로 그어져서 ‘찬장’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 ‘살레덕’이란 이름이 붙었다.
정기여객선이 마라도에 도착하면 빠삐용절벽이 먼저 펼쳐진다.
오랜 해풍의 영향으로 해식동굴과 기암절벽이 만들어졌다.
영화 ‘빠삐용’에 나오는 것처럼 길고 웅장한 수직 절벽을 자랑하는 해식단애가 보인다.
아래에는 커다란 해식동굴 두 개가 있는데 거인의 콧구멍처럼 나란히 두 개 뚫려서 코배기 쌍굴로 불린다
섬은 제주도의 남서쪽에 보석과 같은 형태로 남북의 길쭉한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지형적으로는 동쪽이 서쪽보다도 다소 높은 섬의 형태를 띤다.
섬을 탄생시킨 분화구가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해저의 화산활동에 의해 섬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해안가에 할망당(애기업개당)이 있었으나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할망당은 바닷가 돌 울타리 속에 돌집을 만들어 신체(神體)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신체는 백지와 오색천이고, 그 바깥에 신의 옷(치마, 저고리)을 만들어 바친 것이 있다.
언젠가 핸드폰 CF에 나오더니 마라도는 짜장면으로 유명해졌다.
짜장면 집은 두 집이 있는데 서로들 원조라고 플래카드를 높이 내걸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섬의 분위기를 해치며 돈벌이에만 신경을 쓰는 이런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는 학생이 없어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그래서 정낭도 닫혀 있다.
1958년 설립되었으며, 2003년까지 졸업생 수는 83명이다.
학교 부지 앞으로 펼쳐진 평원은 예전 학교 운동장 자리인데 지극히 낭만적이다.
상주인구가 100명도 안되는 마라도에 3대 종교시설이 모두 있다.
탐방로에서 만나는 순서대로 기독교 교회당, 불교의 기원정사, 천주교의 성당이 그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세운 교회당은 관리가 안되고 방치되어 있었다
한없이 푸른, 까마득한 쪽빛 바다가
뼈 마디마디를 다 뚫고 들어왔다
문득 삶이 느껴지지 않아
협죽도 붉은 꽃잎이 떨어지던 날
푸른빛이 광기를 발하며 빛을 내뿜고 있던 그곳으로 갔다
푸른빛에 휩싸이지 않고 있는 것은
제 붉은 살을 바람에 내맡기고 있는 협죽도뿐
마라도에서 꽃들은 모두 엎드린다
갯쑥부쟁이처럼 키 낮추고 풀보다 낮아져야
왜 바람을 견딜 수 있다 푸른빛에 찔리지 않는다................................................................조용미 <마라도> 부분
자리덕 선착장 앞 억새길을 따라 올라가면 길가에 기원정사라는 근사한 사찰이 있다
상당히 규모가 큰 불상이 세워져 있었고, 스님들이 직접 기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절 앞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새긴 돌이 있었는데...번뇌에 찌든 중생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짜장면집 거리를 지나 해안가에 동화 속 집 같은 초콜릿 캐슬이 보인다.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초콜릿 박물관에서 홍보관으로 지어놓은 건물인데 그 옆 빨간 카페에서는 커피와 디저트도 판다.
사유지여서 이장을 통해 말만 잘해서 사전 허락을 받으면 앞마당에서 하룻밤 야영할 수도 있다고 한다.
마라도 한 귀퉁이에서 해풍을 맞으며 군락을 이루며 싱싱하게 살고있는 백년초가 보였다
손바닥선인장(백년초)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신비한 약효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민간요법에 많이 사용되어 왔다
선인장 앞에서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검은고양이가 탐방객들의 귀염을 받고 있다
빨간 카페에서는 커피와 초콜렛, 와플도 판다
카페의 그림이 너무 예뻐서 사진만 찍고 나왔는데...미안하다
최남단비 뒷쪽에 장군바위가 있다.
바위는 마라도의 수호신이 되어 마라도를 지켜주고 있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쪽을 향해 신사참배 했던 곳이란다.
오늘날에는 마라도 주민들이 해신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이 장군바위는 사람의 발자국이 닿으면 거센 바람이 분다는 전설 때문에 섬사람들은 결코 올라가는 일이 없다고 한다.
최남단비는 1985년 10월에 세운 상징비로, 마라도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징표이기도 하다.
표석 정면에는 ‘대한민국최남단(大韓民國最南端)’이라는 한자어가 쓰여 있다
이곳으로부터 대한민국의 끝이자 시작인 의미심장한 바람이 불어온다
2000년 건립된 이곳은 정기 미사는 없지만, 배가 뜨는 시간에 맞춰 건물을 개방한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매우 아쉬웠다
성당으로 축성 받았으나, 사제가 상주할 수 없어 경당이 되었다고 한다
내게 주어진 작은 몫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 작은 몫조차 짊어지지 못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당신께 매달리나 봅니다
그렇게 당신을 알아가나 봅니다
평생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 작은 경당은 '뽀르찌운꼴라'라고 불리우는데 지극히 마라도스럽다
‘뽀르찌운꼴라(Porciuncola)'의 어원은 ‘작은 몫’, ‘작은 부분’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탈리아 아씨시(Assisi) 지역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손수 벽돌을 쌓아 만든 작은 성당을 말한다.
이 조그만 경당은 故 민성기 요셉 신부가 부산 대연교회 주임신부로 재임하던 시절에 지었다.
그리고 민 요셉 신부는 2004년 10월 11일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경당은 우리 죄처럼 단단한 전복껍데기 지붕에, 예수의 오상(五傷)의 빛이 내려오도록 설계되었다.
실제로 건물을 찬찬히 살펴보면 유리로 된 채광창 5개가 있는 지붕은 전복을 꼭 빼닮았다.
천장 5군데서 빛이 들어오는데 이는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오상(五傷)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오상(五傷)은 예수가 사형당할 때 받은 다섯 군데의 상처(못에 찔린 양손과 양발, 창에 찔린 옆구리)를 말한다
그렇습니다
아씨시의 뽀르찌운꼴라를 가거나
마라도의 뽀르찌운꼴라를 가기 위해서는
정화-조명-일치의 3단계를 끊임없이 살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뽀르찌운꼴라를 가기 위해서는
묵상하고 기도하며 관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뽀르찌운꼴라에 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뽀르찌운꼴라를 살고 싶습니다..............................................................민성기 <마라도 뽀르찌운꼴라> 부분
그곳에 두고 왔다
바람, 햇빛, 그리고
내가 만질 수 없었던 잔혹한 푸른빛....
뽀르찌운꼴라에서 등대를 지나 살레덕선착장까지를 '별빛보호구역'이라 칭한다
마라도에서 하룻밤 묵으며 별빛을 사냥하는 낭만적인 꿈을 꾸며 걸었다
날씨가 맑아서 한라산이 뚜렷하게 보였다
한라산 꼭대기에 걸려있는 구름이 신비로웠다
한라산에 오른지 2년이 넘었는데 언제 다시 올라볼꺼나??
섬에서 가장 높은 동쪽 해안 언덕(해발 36m)에는 마라도등대가 있었다.
1915년부터 100년 넘게 불을 밝힌 최남단 마라도 등대는 1987년 3월 새로 개축하였다
그러나 다시 등대를 세우느라 분주하였는데...그 덕에 뽀르찌운꼴라 경당의 분위기가 망쳐버렸다
하늬바람은 제주도 모슬포에서부터 마라도 북쪽까지 이는 바람이다.
샛바람은 마라도 남쪽에서 일어난다.
바람이 양쪽으로 분다고 해서 양바람, 양두새로 불리운다.
장마가 걷히고 나면 한동안 갈바람만 불어댄다.
마라도 사람들은 갈바람이 불면 “두 일뤠 열바흘 갈바람만 분다‘”고 한다.
바다 쪽으로 머리를 두른 무덤이 보였다
섬에서 태어나 섬에 묻힌 고인의 집이 애잔하였다
죽고 나면 이렇게 손바닥만한 곳에 묻히는데 아웅다웅 사는 모습들이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