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26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흠 없는 암컷을 끌어다가”
“그가 만일 어린양을 속죄제물로 가져오려거든 흠 없는 암컷을 끌어다가 그 속죄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들이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아 속죄제를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자기 손가락으로 그 속죄제물의 피를 찍어 번제단의 뿔에 바르고 그 모든 피를 번제단 밑에 쏟을지니라. 그는 그 모든 기름을 화목 제물의 기름을 취하는 것 같이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주께 불로 드리는 제사에 따라 그것들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제사장이 속죄한즉 그가 용서함을 받으리라.(레위기 4:32-35)
('If he brings a lamb as his sin offering, he shall bring a female without blemish. 'Then he shall lay his hand on the head of the sin offering, and kill it as a sin offering at the place where they kill the burnt offering. 'The priest shall take some of the blood of the sin offering with his finger, put it on the horns of the altar of burnt offering, and pour all the remaining blood at the base of the altar. 'He shall remove all its fat, as the fat of the lamb is removed from the sacrifice of the peace offering. Then the priest shall burn it on the altar, according to the offerings made by fire to the LORD. So the priest shall make atonement for his sin that he has committed, and it shall be forgiven him.)”
임마누엘!!
오늘 본문에는 특별한 말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만일 어린양을 속죄 제물로 가져 오력거든 흠 없는 암컷을 가져 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경우 ‘어린양’하면 속죄제물의 대명사격입니다. 주로 숫컷을 지칭하는데 특별히 암컷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하면 남자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상례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숫자를 셀 때도 여자와 어린아이는 셈에 넣지 않고 남자중에도 장정만 세는 경우다 통례였습니다.
주 예수님의 공생애의 대표적인 사역 중에 하나인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5,000명이라는 숫자가 어란아이와 여자를 제외한 숫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는 속죄의 제물을 ‘흠없는 어린 암양‘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대속의 제물은 흠이 없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대신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좌ㅣ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제물이기 때문에 만약 흠이 있는 것이면 그 흠 때문에 죽임을 당하기에 대속의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새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를 요한 복음 1:14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다른 표현으로는 ’인카네이션(incarnation)’입니다.
분명한 것은 여기 ‘말씀’은 요한복음 1: 1-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곧 하나님 이셨더라. 그분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 중에 그분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느니라.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더라. 그 빛이 어두움 속에 비치되 어두움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이를 마태복음 1:18-23 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침하기 전에 그녀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밴 것이 나타났더니 그때에 그녀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그녀를 공개적인 본보기로 삼기를 원하지 아니하여 은밀히 그녀를 버리려고 작정하였으나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마리아를 네 아내로 삼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에게 수태된 아이는 성령으로 된 것이니라. 그녀가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자이 심이라." 하니라. 이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에 관하여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이루려 하심이라. 말씀하시기를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이라는 뜻이라.”
우리 주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시어 이 세상에 오셨기에 점과 흠과 티가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흉악하고 큰 죄인의 모습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에 대하여 내일 좀 더 깊고 넓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씀 묵상을 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