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사악해지는 구나... 수형아.
누나는 안타까울 뿐이다.
그 순진하던 맑은 눈의 광주 소년은 어디가고...
근데.. 재밌긴 하다.
앞으로 너가 무슨 말을 하든 의심부터할 거 같아 걱정이긴 하지만....--;: 이제는 말할수 있다. 동현과 내가 가슴속에 품어왔던 1박 2일의 기구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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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일요일 아침 동현과 나는 전화 통화를 했다. 그리고 나서 12시에 광주 충장로(서울의 명동 쯤으로 생각하면 됨)에서 만나기로 했다.
: 내가 그곳에 도착한 시각은 12시 15분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뛰어 가던 나는 많은 인파 사이로 보이는 동현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의 머리색이 희한한 색깔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본인은 갈색 염색에 오랜지색 브릿지를 넣었다고 했지만 그것은 정말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요상한 색이었다. 그리구 단지 싸다는 이유로 나를 배신하고 지혼자 먼저 염색을 하다니....어쨌든 우리는 광주 최고의 레스토랑인 유생촌에 가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곧장 겜방으로 가서 1:1:1이라는 오동현만이 생각 할 수있는 방법으로 배틀넷 2승을 추가했다. 그 방법이란 우선 1:1:1로 겜을 시작한 후에 우리끼리 동맹을 맺어 2:1로 바꾸는 것이다. 나는 오동현의 얍샵함에 감탄했다. 겜방에서 나온 후 우리는 한동안 어디로 갈까 고민하며 방황했다. 그 때 생각난 곳이 바로 완도 였다. 우리는 곧장 터미널로 가서 완도행 버스를 탔다. 완도에 겨우 도착하니 그곳 역시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미개한 대구 아이들처럼 비를 맞지 않았다. 광주인은 문화인이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간 우산으로 간단히 비를 피해 선착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완도에 들어가니 벌써 7시, 우리는 서둘러 근처 횟집으로 들어갔다. 횟집에 들어가니 정말 인상좋게 생기신 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겨 주셨다. 우리는 완도회와 함께 소주잔(물론 천년의 아침)을 기울이며 진솔한 애기를 나누었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는 멀리 광주서 왔다고 서비스로 안주를 한가지 더 내오셨다. 1시간 남짓 지나자 둘다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 했다. 그래서 우리는 밤바다를 보면서 술이나 깨자고 바닷가로 나갔다. 그리고 한 10분 쯤 걸었을까? 그 때 우리의 눈을 번쩍 띄우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전방 30m쯤에 고등학생으로 보이은 이쁜 여자 둘이 걸어오고 있는 것이 었다. 우리는 이 기회에 연애계에 진출해야 되지 않겠냐며 계획을 세우기 시작 했다. 그런데 역시 오동현은 용감했다. 둘이 말을 하다가 갑자기 그 쪽으로 뛰어가더니 그 쪽과 뭐라고 애기를 계속하는 것이 었다. 그리고 나서 몇분 후 그 여자들과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었다. 내 가슴은 마냥 뛰기 시작했다. 아! 내 인생에도 드디어 봄이 오는구나! 그런데 그 여학생들의 애기를 듣고 나자 사정은 달라졌다. 그 아이들은 광주 모 여상에 다니는 학생들인데 삶이 힘들어 가출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저녁은 먹었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아직 못 먹었다고 했다. 아마도 돈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았다. 측은한 마음이 든 동현과 나는 저녁이나 먹여서 광주로 보내야 겠다고 생각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우선 근처 매운탕 집에 데려 가기로 했다. 그들은 무척 배가 고팠던지 밥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동안 동현과 나는 여학생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동현은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말을 줄줄 늘어 놓으면서 꼭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그의 진지한 모습을 보았다. 진짜로 그 때 동현은 멋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그 여학생들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근데 여기서 동현은 더 멋있었다. 여학생들의 어깨를 다독거리더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마지막 배를 놓칠까봐 서둘러 선착장으로 갔다. 그런데 그때 막 마지막 여객선이 저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무척 당황 스러웠지만 곧 이성을 회복하고 대책을 세우기 시작 했다. 그리고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결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 여관을 찾았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방이 한 개 밖에 안남았다고 했다. 그래도 어쩔수 없다 싶어 그거라도 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우리 넷을 훓어 보시더니 방을 못 빌려 주겠다는 거다. 그래도 우리는 아주머니께 사정을 말하고 계속 부탁했다. 10여분 간의 설득 끝에 우리는 겨우 방을 빌렸다. 그리고 우리는 밤새도록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알고보니 한명은 아버지가 판사이시고 한명은 아버지가 광주의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왜 그런 집 자식 들이 가출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조금은 가출한 이유가 수긍이 가기도 했다.
: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첫 배로 완도를 나선 우리는 10시 경에 광주에 도착했다. 터미널에는 그 애들의 부모가 마중 나와 있었다. 아마도 그 애들이 전화를 했나 보다 그런데 동현은 한번더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진정으로 된 놈이었다. 그 애들 부모가 고맙다고 주는 봉투를 거절하는 것이 었다(꽤 두툼했다). 그리고 나를 계속 잡아 끌었다 빨랑 가자고... 사실 탐욕스러운 눈으로 돈을 바라보고 있었던 나는 아깝기도 했지만 동현이를 보면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동현이는 집으로 가고 나는 서둘러 짐을 싸서 바로 서울로 올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