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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주재배 농부들의 둥지 개마고원 원문보기 글쓴이: 개마고원
먹이의 진실13 – 씨저의 것은 씨저에게, 물은 모두에게(2)
장마입니다. 모내기 하고 마늘쫑 따내고, 양파, 감자, 마늘을 수확하면서 부지깽이도 뛴다는 농부의 바쁜 일손이 잠시 쉬어가는 짬을 내는 때입니다. 무더위와 높은 습도가 불쾌지수를 높이지만 호박, 오이, 가지, 참외 같은 열매채소들이 풍성해지고 벼가 쑥쑥 자라납니다. 물론 풀도 함께 우적우적 자라나, 제초제도 비닐덮개도 쓰지 않는 자주재배 농부들은 풀 관리에 부쩍 마음을 써야 하는 때이기도 하지요. 집중호우가 가끔씩 재앙을 몰아오기도 하지만, 여름 장마가 가져오는 풍성한 빗물은 우리 땅의 생명을 키우는 원천임에 틀림없습니다.
지난 번에 못다한 물 이야기를 이어보지요. 이번 이야기는 물 사유화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땅에는 유명한 약수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약수’라는 말 속에는 물이 생명력과 정화력과 치유력의 근원임을 일찌감치 알아보았던 우리 선조들의 놀라운 통찰력이 담겨있습니다. 동의보감에는 정화수, 한천수, 납설수 등 서른 가지가 넘는 물의 이름과 쓰임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있습니다. 거기에 적혀있는 물의 종류를 보면, 우물물, 샘물, 빗물, 눈 녹은 물, 이슬, 서리, 바닷물같은 물의 원천, 물을 길은 시기와 시간, 물이 얻어지는 경로, 물이 흐르는 속도와 방향, 물의 온도 등등 여러가지 조건을 고려한 세심한 분류가 돋보입니다. 서구과학이 성분 하나만으로 물을 분류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지요. 우리 사람들이 물에 대해 특별하고 까다로운 감식안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선조들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병을 치료하는 물이 서구인들에게는 기적이지만 우리에게는 예로부터 내려온 전통이고 자연스런 과학이지요.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누구도 그러한 물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거나 팔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특정 장소에서만 솟아나는 특별한 약수도 발품을 들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떠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약수는 여전히 그러하지요. 우리 땅 어느 곳에서든 물은 모두의 것이었고, 우물, 샘터, 빨래터, 저수지와 같은 물과 관련된 시설은 마을 전체가 관리하는 마을 공동의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와서 ‘물의 공공성’이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하지만 그것은 특정한 필요에 의해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닙니다. 물에 대한 접근은 ‘공공성’이라는 말의 등장 자체가 황당할 만큼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자체만으로 차별없이 누리게 되는 본래의 생명활동에 관계된 것입니다. 공기와 마찬가지죠. 물은 어떤 대체물도 없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것이어서 결코 배제의 논리도, 선택의 논리도 적용될 수 없습니다. 도시가 세워지고, 사람의 생활반경이 취수원에서 멀어진 조건에서 물을 공급하는 시설들이 국가와 전체 사회가 부담하는 것으로 일찌감치 정착되어온 것도 이러한 물의 특성과 물에 대한 철학 관점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현대 대량소비사회가 저지른 물의 오염과 고갈은 깨끗한 물을 희귀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물 사유의 개념을 탄생시켰고, 그에 따라 물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물 산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했습니다. 물은 수자원이 되었고 사기업들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해내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물의 공급과 관리가 이윤의 원천이 되고 사기업이 개입된다는 것은 배제와 선택의 논리가 작동함을 의미합니다. 기업들은 ‘누구나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다’ 고 광고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지요. ‘누구나’가 아니라 ‘지불능력이 있는 자’만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의 사유화는 ‘민영화’라거나 ‘기업참여’, 또는 ‘공공-민간 파트너쉽’ 이라는 이름을 걸고 진행됩니다. 본질과 정체를 은폐시키기 위한 조어와 작명의 기술은 날로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농업, 광업, 에너지, 자동차, 반도체 등 모든 산업생산에 필요한 물 공급사업, 생수산업, 댐 건설과 관리, 상하수도 서비스, 정수산업, 해수담수화 산업, 물수송산업, 물 관련 금융과 증권화 사업 등 물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통틀어 ‘물 산업’ 이라고 말하고, 이 사업들에 전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사기업이 참여하여 이윤을 취하는 것을 ‘물 사유화’, ‘민영화’라고 말합니다. 물의 오염과 파괴를 배경으로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한 물 기업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담수공급과 관리를 사유화하고 상품화하여 엄청난 이윤을 창출하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제 몇 개의 장면들을 보겠습니다.
[장면 1]
프랑스 세느강변에 등장한 유럽 최초의 물 바입니다. 쾌적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조명 아래 100개의 상표를 부착한 물병들이 진열되어 있고 워터소믈리에가 고객에게 물의 품질을 설명합니다. 이러한 물 바들은 생수를 국제적인 신분의 상징으로 만드는 첨병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수돗물보다 5천배가 비싼 고급 생수시장을 10억 달러로 규모로 성장시키는 데 공헌합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온 고급 물들을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먹는 사람들의 존재는 이 세상이 얼마나 불평등한가를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이들은 누구이고 이 세계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장면 2]
북미 네슬레 워터스는 모하비 사막 한 복판, 모롱고 인디언 보호구역 오아시스에 생수공장을 세웠습니다. 이 공장의 수원지는 밀라드 협곡의 지층 사이에 숨어있는 사막 가운데의 작은 샘입니다. 사막에서 드물게 존재하는 참으로 귀중한 물이지만, 네슬레사는 하루 2억 갤런, 1분에 2천5백 개, 1시간에 15만 개, 하루 360만 개의 병을 채우는 물을 지하 대수층으로부터 퍼올려 판매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매우 취약하고 불안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생태계입니다. 네슬레사는 생수공장이 이 협곡의 생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메인 주의 뉴햄프셔에 생수공장을 세우려던 회사는 하루 30만 갤런의 물을 퍼내는 단 열흘간의 실험으로 주변습지가 다 말라버림으로써 공장 설립을 저지당했습니다. 그렇다면 모하비 사막의 수 천년 된 오아시스가 고갈되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장면 3]
인도의 라자스탄입니다. 사막지역이지만 우물물로 작물을 키우면서 삶을 일구어왔던 농부들이, 5년 전 인근에 코카콜라 공장이 들어온 이후 우물이 말라 생존의 위기에 몰려있습니다. 농부 보디램의 선량한 얼굴은 근심으로 주름져있습니다. 자신들은 하루 1.5m씩 우물을 팔 수 있지만 우물의 수위는 매년 4.5m씩 줄고있다고 말합니다. 54m 까마득한 깊이의 우물에서 나오는 것은 진흙뿐입니다. 파도 파도 나오지 않는 우물을 몇 개씩 파느라 빚더미에 짓눌려있지만 농부들에게 남은 건 떠나거나 죽거나 양자택일의 상황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1리터의 콜라생산에 3리터의 물을 써대는 코카콜라가 자신들의 물을 빼앗아갔다는 것을 알고있지만, 코카콜라사의 수자원관리이사는 “우리보다 농부들이 물을 더 많이 쓴다. 우리는 사용하고 남은 물로 지하수를 채워놓는다. 우리 회사의 물사용은 지하수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지하수위가 낮아지는 것은 강수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고 말합니다. 진실은 무엇일까요?
물장사가 돈이 된다는 것은 꽤 오래된 일입니다. 술장사, 커피장사, 음료수 장사가 모두 상당한 이익을 챙겼지요. 하지만 맹물을 파는 것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아마 세계최초가 아닐까 합니다. 생수의 정식 명칭은 ‘먹는 샘물’입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던 맹물판매가 1000억 달러 시장을 가진 산업으로 폭발하게 된 것은 불과 지난 30년간의 일입니다. , 석유보다도 비싸고, 수돗물보다 240~1만배가 더 비싼 값을 지불하고 맹물을 먹게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사람들의 사고구조를 바꾸는 일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1990년 플라스틱 페트병의 등장이 병입수 산업을 본격화 대중화하였고, 이 시장의 확대를 위해서 대대적으로 홍보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생수구매를 아무렇지도 않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병입수산업은 물 오염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팽창했지만 물 오염을 야기하는 데 있어 여타 산업에 뒤지지 않습니다. 다량의 석유와 전기를 소비하는 고에너지소비산업이고, 화학적으로 제조된 다량의 미네랄을 필요로 하는 화학산업입니다. 공장이 들어선 지역의 수계를 교란시키고, 지역생태계를 파괴하고 고갈시키는 무자비한 산업이며,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깨끗한 물을 없애는 모순된 산업입니다. 물론 기업에게는 더없이 좋은 조건입니다. 깨끗한 물이 사라질수록 사업은 번창할 테니까요.
병입수산업은 가장 적나라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깨끗한 물로부터 배제합니다. 그것은 세상에 등장한 순간부터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배제하였고, 최근에 행해지고 있는 고급화 전략은 물을 부의 상징으로 기호화함으로써 지불능력에 따라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다층적으로 배제합니다. 왜 생수에 지불하는 그 많은 돈을 수도설비 확장과 관리에 쓰지 않는 것일까요? 그러면 누구라도 싼 가격에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아주 단순한 의문이지만 여기에 진실이 있습니다.
[장면 가]
볼리비아의 엘 알토에 사는 리노씨의 집에는 물이 없습니다. 물을 긷기 위해 산 아래 멀리까지 가지만 우물은 마르고 작은 웅덩이에 고인 더러운 물을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여덟 살 바네사는 물이 없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동생은 오염된 물을 먹고 죽었지만, 리노와 플로라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물은 생명이라고 말하는 리노의 아내 플로라의 눈에서 간절하고 고통스러운 눈물이 배어나옵니다. 리노의 다른 아이들은 더러운 물을 먹고 병에 걸려 있습니다. 의사는 그 물을 먹으면 위험하다고 하지만 그 물을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리노의 집 옆에 있는 프랑스 수에즈사 상수도 처리공장의 거대한 파이프에서는 수백만 갤런의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물을 바라보며 우리는 왜 저 물을 못쓰냐는 딸의 물음에 리노는 돈이 없으면 쓸 수 없다고, 볼리비아 사람이지만 볼리비아 물을 쓸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들판 너머 멀리에는 만년설을 머리에 인 웅장한 산이 솟아있습니다. 바네사가 저 산꼭대기의 눈을 물로 만들면 안되냐고 묻자 리노는 미국도 물이 떨어지면 우리 얼음을 가지러와서 돈으로 하얀 산을 모두 살 거라고 말합니다. 리노는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엘 알토의 민영화된 수도국을 운영하는 수에즈사의 부사장은, “수도국 민영화 이후 공기업 때보다 3배나 많은 사람들에게 수도를 공급할 수 있다. 전에 60%만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100%가 공급받을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해놓았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단 슬픈 사실은 우리가 수도관 연결까지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파이프를 집까지 연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수도관 연결을 결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주민들의 자유의사에 달렸다.” 고 말합니다. 참으로 유려하고 말쑥하고 흠잡을 데 없는 발언입니다. 그 말을 듣노라면 리노가 당하는 물 없는 고통은 전적으로 그의 자유의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착각이 일어납니다. 쓰레기장에서 재활용품을 수집해 하루 1달러도 못되는 비용으로 살아가고 있는 리노가, 그들이 요구하는 상하수도관 연결비용 450달러와 비싼 수도요금을 결코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은 가려집니다.
볼리비아의 물 부족은 경제위기와 IMF개입이 가져온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산물입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민영화 정책으로 국가의 모든 공공부문이 사기업에 헐값으로 팔려나갔고 물 사유화(민영화) 법안은 미국 벡텔사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온갖 특혜를 담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자치적인 물 분배체계는 물론, 빗물사용까지 불법화한 법안과 수도요금 폭등은 ‘코차밤바 물전쟁’이라는 기념비적인 투쟁을 불러왔고, 그 투쟁에서의 승리는 백텔사를 내쫓고, 백텔사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부를 붕괴시키고, 마침내 볼리비아 원 주인의 후예인 모랄레스 정부를 탄생시키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리노는 모랄레스 정부가 주도한 <시민불복종결의안>에 따라 공무원의 도움을 얻어 수도관을 연결합니다. 수에즈사 몰래 연결하는 일이지만 수에즈사가 떠나면 리노의 것이 됩니다. 수에즈사에 대해서만큼은 도둑질이라는 것을 아는 선량한 리노이지만, 물로 인한 생존의 위기와 공무원의 격려는 리노로 하여금 자신과 똑 같은 처지에 있는 20만 명과 함께 감옥에 갈 결심까지 기꺼이 하게 만들었습니다. 리노가 한 일이 도둑질일까요?
[장면 나]
디트로이트에 사는 베티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도시에서 물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수도세가 밀려 수도가 끊어진 지 2년이 되었습니다. 디트로이트 수도국은 요금을 밀린 4만여 세대의 수도를 끊어버렸고 여전히 매일 60세대의 수도를 끊고 있습니다. 수도국이 이렇게 가차없이 수도를 끊고 조직을 축소하면서 이윤창출의 기반을 닦는 것은 민영화를 위해서입니다. 수도가 끊긴 수많은 세대들과 사회복지사들이 시장의 집 앞에서 민영화 반대 시위를 하고 베티는 불법으로 수도를 연결하지만, 미국이라는 부유한 나라에서 그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베티를 도와주려 하는 사회복지사의 헌신적인 노력도 밀린 수도요금 8천달러를 삭감받거나 탕감받게 할 수 없습니다. 베티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베티가 살아날 방법이 있을까요?
볼리비아에 수도 민영화를 강요한 주체는 세계은행입니다. 볼리비아에 닥친 경제위기를 해결해줄 금융지원에 붙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들이 앞장서 수행해온 수도민영화 정책이 세계 곳곳에서 실패로 귀결되고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개발도상국들을 대상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하긴 그들의 입장에서는 실패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실패란 물 공급의 실패와 물로 인한 갈등의 심화를 가리키는 것일진대, 그들의 목표는 ‘물의 공급’이 아니라 ‘이익의 창출’이니까요.
턱없이 못사는 나라이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정부를 갖고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갈 힘을 얻은 리노와, 세계 제일의 부유한 나라이지만 재정적자로 폐허가 되어가는 도시에서 무력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베티, 현재의 처지는 비슷하지만 미래의 희망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장면 A]
아라비아 반도의 아부다비는 석유발견으로 억만장자들의 천국이 된 가장 부유한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빠르게 증가하는 인구와 고층빌딩이 즐비한 아부다비는 사막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아부다비는 그들이 만끽하는 부에 걸맞게 가장 비싼 첨단기술로 물을 얻습니다. 알 타윌라 해수담수화 공장입니다. 공장은 바닷물을 끓여 증기를 모읍니다. 이 공장이 하루 올림픽 수영장 백 개를 채울 수 있는 4억5천 리터의 물을 만드는데 필요한 수증기는 50만톤, 135만 리터의 석유가 사용됩니다. 그렇게 해서 아부다비의 빌딩에서는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펑펑 쏟아지고, 거기가 사막이라는 사실은 잊혀집니다. 매우 효율적이고 편리합니다. 아부다비의 풍요는 그 시설에 의존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끄떡없을까요?
[장면 B]
물 기업 월드 워터웨이는 축구장 넓이만한 물주머니를 만들어 물을 수송하는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들은 올림픽수영경기장 천 개에 해당하는 1억~2억리터의 많은 물을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수송할 계획입니다. 깨끗한 물은 가난한 지역에서 돈이 있는 지역으로 옮겨지고 그들은 그 사업에서 이익을 챙깁니다. 그들이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를 뒤져 깨끗한 지하수에 대한 권리와 한 지역의 수역권 전체를 사들여야 합니다. 제3세계, 개발도상국의 가난은 그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물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조건입니다. 유엔은 2000년에 2015년까지 전 세계에서 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수를 절반으로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월드 워터웨이 같은 기업들의 사업기회가 사라질 테니까요. 이 회사의 한 간부는 점잖은 얼굴과 차분한 목소리로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깨끗한 물을 상품화시키는 것이다. 물이 상품화되면 시장이 생기고 이윤이 창출되며 물의 가치를 산정할 수 있게 된다.” 고 말합니다. 그것이 진짜 해결방법일까요?
[장면 C]
멕시코시티는 가라앉고 있습니다. 그러면 물에 잠기는 것인가요? 멕시코시티 시민들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멕시코시티는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가 아스텍의 아름다운 테노치티틀란을 파괴하면서 만든 도시입니다. 높은 산이 둘러싸인 분지로 사람들은 저지대에 있는 찰코호수의 물을 사용하며 생활해 왔습니다. 도시의 성장은 호수의 물을 고갈시켰고, 현재보다 5~60m 높았던 호수의 수위가 만들어낸 천국과 같은 풍경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습니다. 호수가 마르자 도시는 매일 40억리터의 지하수를 퍼올렸습니다. 그에 따라 도시는 1년에 30~40cm씩 지반침하가 진행되어 100년 전과 비교하면 평균 4m, 건물 두 층 높이만큼 가라앉았습니다. 지반붕괴로 수도 파이프가 망가지면서 누수가 심해지고, 제한 급수와 비싼 수도요금으로 인한 고통이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정부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동부해안에서 광역상수도를 끌어오겠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수도를 민영화하려는 방책이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멕시코시티라는 거대도시가 땅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있을까요?
[장면 D]
라스베거스는 네바다 사막에 뜬금없이 세워진 도시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흥청망청한 풍요와 환락을 구가하게 해준 것은 콜로라도강을 막은 후버댐의 건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후버댐의 수위가 크게 내려가면서 물 공급은 물론 발전마저도 멈춰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라스베거스가 전적으로 의존해있는 미드호수는 40m나 낮아져 20~30년 안에 말라붙을 것이라 예측되고, 시당국은 목전에 닥친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만 에이커에 달하는 6군데의 목장을 사들여 지하수를 끌어오려 합니다. 그 지하수는 라스베거스를 몇 년이나 적실 수 있을까요?
최근 몇 년간 물 부족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세계 각 곳에서 벌어지는 물 부족의 현장과 시민과 정부간에, 지역과 지역간에, 국가와 국가간에 일어나는 분쟁의 상황들을 보여주고, 머지 않아 물이 석유보다 귀해질 것이라고, 하루라도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청을 높입니다. 다큐멘터리, 서적, 대담프로, 잡지기사, 특집뉴스 등등, 실감나는 화면과 권위있는 과학자의 분석과 실력있는 전문가의 진단이 똑 떨어지게 맞추어진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자면, 금방이라도 세상 모든 물이 사라질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일까요?
부분적으로는 사실이고, 부분적으로는 사실이 아닙니다. 각 프로에 나와 물 위기를 역설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전문가들의 처방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물을 상품화하여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게 함으로써 물의 가치를 시장에서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강한 다국적 물 기업들의 자유로운 이익실현을 목표로 한 배제의 논리입니다. 또 하나는 기업에 의한 물의 사유화를 막고 공공성을 강화함으로써 물을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심적인 환경운동가들과 지식인들의 평등한 물 분배를 목표로 한 생명우선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제시하는 논리와 해결책은 이렇게 달라도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 모두 물 부족과 물 위기의 원인을 기후변화와 인구증가에서 찾고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같이 백인인 그들 모두는 물의 상품화든 물에 대한 권리든, 자신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야 할 어떤 것으로 보고있다는 것입니다. 물 부족은 사실이지만 원인은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물에 대한 접근이 그들이 베풀어야 하는 시혜인 것도 아닙니다.
[장면 ㄱ]
아라비아 반도의 오만은 연평균 강수량이 50ml에 불과한 곳입니다. 강수량보다 증발량이 많은 사막이지요. 그런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것은 선조들이 찾아낸 물과 그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설비 덕분입니다. ‘팔라지’라는 이름을 가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학설비입니다. ‘팔라지’는 수십만 년 동안 내린 비가 고인 산 아래 원천샘에서 28km떨어진 마을까지 연결되어, 오로지 낙차에 의해 흐르는 지하수로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직접 판 만여 개의 터널이 연결되어 이루어진 팔라지에서 오만 사람들은 5천년간 내려온 고대의 방법으로 물을 찾아냅니다. 마을의 물이 끊어지면 램프를 들고 180m아래 원천샘의 지하터널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환기구밖에 없는 지하터널에서 뱀과 전갈, 붕괴와 만수의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샘을 찾아나갑니다. 터널 벽에서 샘을 찾으면 알라신에게 감사를 드리고, 샘에서 물이 충분히 나올 수 있도록 망치와 정으로 벽을 까줍니다. 그들은 그 방법을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았고 아들과 손자에게 전해줄 것입니다. 그것은 세대를 이어 5천년을 변함없이 내려온 전승이며 유산입니다. 하지만 현대기술은 굴착기와 양수기를 사용하는 훨씬 효율적이고 편리한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그들은 왜 그 방법으로 물을 펑펑 퍼내지 않는 것일까요?
[장면 ㄴ]
캐나다에 사는 북아메리카 원 주인의 후예 조제핀 만다민은 오대호의 수원지에서 해안까지 걸으며 도보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물이 든 양동이를 들고 다른 손에는 자신이 인디언의 후예임을 알리는 깃털과 캐나다와 미국 깃발을 장식한 장대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홀로 먼 길을 걸으면서 오대호의 수질악화를 알리고 상황을 바꿀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그녀는 물은 생명이고 생명은 물이며 오대호가 자신들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녀는 말합니다. “우리는 원주민으로서 어떻게 물을 아끼며 어떻게 살아갈지 알고 있어요. 다른 이들은 사라져도 우리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겁니다. 자연이 우리를 먹이고 보살펴줄 테니까요.” 라고 말입니다. 그녀야말로 진정한 북아메리카 땅의 주인이 아닐까요?
[장면 ㄷ]
구답은 호주의 원 주인들 중 하나인 피나무리족의 아들입니다. 어느 날 평상시보다 일찍 깨어나 산으로 올랐다 내려오면서 백인들에 의해 자기 가족과 부족들이 모조리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들은 불을 뿜는 막대기를 가진 허연 얼굴의 악령들이었습니다. 백인들은 양떼를 먹이기 위해 강을 점령할 목적으로 원 주인들을 죽이고 몰아냈습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촌동생 유당과 함께 사막으로 쫓겨간 구답은 물을 찾아 헤맵니다. 먹을 수 있는 골풀도, 한 방울의 물도 발견할 수 없는 사막에서 두 아이는 지쳐 쓰러지지만 기진맥진한 구답의 기억 저 뒤편에서 노래가 들려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불러주던 노래였습니다. 노래가사가 일러주는 대로 비틀거리며 몸을 움직여간 구답 앞에 물이 나타납니다. 구답의 선조와 가족들이 전해준 노래에는 사막을 따라 이동하며 살아온 피나무리족의 삶의 궤적과 생존의 지혜가 담겨있었습니다. 강물이 마르고 백인들이 살 수 없어도 구답과 구답의 후예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 땅의 주인이니까요.
답이 어렴풋이 나옵니다. 물 부족의 원인은 기후변화나 인구증가가 아닙니다. 기후변화는 지구가 생긴 이래, 인간이 지구상에서 살아온 이래 항상 있어왔던 일이고 인구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습니다.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은 언제나 그러한 변화에 적응하면서 생존의 방법과 생활의 지혜를 축적하고 전승해왔습니다. 지구상의 어느 곳이든 그 땅의 주인들은 자신의 자연환경에 맞는 삶의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물의 양이 언제나 일정하다는 과학적 사실 앞에서 물 부족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깨끗한 물이 부족한 것은 오염 때문이며 오염은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기후변화조차도 내일은 없다는 듯이 써버린 지표수와 지반이 내려앉을 정도로 퍼내버린 지하수의 영향은 혹시 아닐까요?
세계은행, 유엔, 유네스코, WTO, 세계지속가능발전협의회, 공공-민간 기반시설자문기구, 미국국제개발처, 물 위생프로그램, 세계물파트너쉽, 세계물위원회, 국제물기업연합, NGO, 세계물포럼, 등등이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거창한 기구들이 정의롭게 문제를 해결할까요? 이 모든 기구들을 후원하는 것은 예외없이 세계적 물 기업들이고, 물 기업의 간부들이 기구의 간부를 겸하고 있습니다. 이 그럴듯한 기구들이 모두 세계를 무대로 물 산업을 확장시키고 각국의 수도 민영화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기반과 자금을 만들어내면서 물 기업의 자유로운 이윤창출을 돕는 강력한 물 카르텔입니다.
우리나라의 물 산업도 정부 주도하에 이미 시동을 걸었습니다. 바로 물 카르텔의 목표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지요. 2009년 KBS에서 방영된 수요기획 ‘물이 미래다’ 2부작은 물 산업 홍보용 필름입니다. 세계적인 물 부족 위기를 보여주고, 세계 물 산업의 현황을 짚어준 후, 우리나라 물 산업의 가능성을 소개한 끝에 마지막에 등장한 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정책 경제연구소 소장 권형준은 원고라도 읽듯이 또박또박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공공부분이 민간부분이나 해외기업과 자연스럽게 협력하여, 물 관련 토탈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수단을 통해 대한민국의 브랜드로 세계 물시장의 거점을 마련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라고요. 짜잔~ 하는 음악과 함께 나오는 나레이터의 짱짱한 목소리는 세계 경쟁력 확보를 위해 우리나라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물 산업을 집중지원할 행정부처의 일원화와, 공공부분, 민간부분, 해외부분의 유기적 연결을 제시합니다. 그리고는 황금알을 낳는 유망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블루골드, 물 산업, 한국도 그 출발선에 있으며 물 산업을 세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시스템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선동합니다. 공공부분을 해체하고 사기업과 해외자본까지 끌어들여 시급히 해야 할 일이 과연 우리를 위한 것일까요?
물 부족을 실감나게 홍보하여 위기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불어넣은 불안감을 이용하여 사업을 정당화하고 확장하는 방법은 잘 기획된 하나의 공식입니다. 곡물값을 올리고 유전자조작을 정당화하는 배경에 깔리는 것이 식량위기이며, 탄소배출권 시장을 만들어내고 각종 환경상품 시장을 창출해내는 배경에 깔리는 것이 지구온난화입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하나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는 데 얼마나 용의주도하고 엄청난 프로젝트가 장기간에 걸쳐 설계되고 시행되는지를 알면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환각에 빠져있는 것이나 아닐까요?
떠나면 됩니다. 세계 어느 곳이든 그 땅의 주인들을 내버려두고 주인이 아닌 자들은 떠나면 됩니다. 그러면 위기가 있든 없든, 그 땅의 주인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알맞은 생존과 생활의 방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멈추면 됩니다. 더 이상은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대량생산과 소비의 수레바퀴를 멈추면 됩니다. 그 수레바퀴를 멈추면 위기는 사라집니다. 깨끗해지고 쾌적해집니다. 일자리요? 사람을 내쫓은 기계들을 적정한 선에서 배제하면 더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해집니다.
생수 한 병을 사드는 것이 그 열 배의 물을 파괴하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생수에 지불한 금액만큼 우리가 이룩한 귀중한 수도설비가 방치되고 수도 민영화에 날개를 달아준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수도 민영화가 수많은 사람들을 깨끗한 물에서 배제하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선택과 배제의 법칙이 일상화된 사회가 그 누구에게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개마고원의 신비원 가족은 물 항아리를 마련하고 거기에 수돗물을 담아두고 마십니다. 물 속에 숯을 넣어 놓았지요. 맥반석을 넣어둬도 좋다고 합니다. 저는 정수기를 사용하였지만 이제 그렇게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 미디어에 등장하는 백인 일색의 국제적인 전문가들 가운데 유색인이 있습니다. 인도의 반다나 시바입니다. 저는 그녀를 좋아합니다. 그녀는 제3세계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이 영위해온 고유한 삶의 방식을 옹호하고, 거기서 위대한 가치를 찾아내고, 그 가치를 높이 쳐들어보이는 매우 드문 국제적 지식인입니다. 그녀는 자연의 법칙과 생명의 법칙은 어떤 거대한 프로젝트로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합니다. 씨저의 것을 씨저에게 보내면 물은 모두의 것이 됩니다.
2013년 7월 개마고원에서
첫댓글 너무 길어서 인내가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