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레 느꼈다. 그의 노래가 갖고 있는 힘을. 이문세의 목소리를 통해 너무나 사랑받았던 그의 노래들은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통해 또 다른 ‘그림’을 펼쳐보이며 깊은 울림을 줬다.
‘기억은 사랑보다 더 슬퍼’라는 노랫말은 다들 가슴에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아련한 사랑의 추억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더불어 관객들은 감성적인 멜로디와 시처럼 아름다운 노랫말을 선사하고 떠난, 그를 기억했다.
‘시를 위한 시’, ‘가로수 그늘 아래’, ‘소녀’ 등 고(故)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들로만 짜여진 뮤지컬 ‘광화문 연가’ 첫 공연이 지난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창작뮤지컬로는 드물게 4만장 넘게 티켓이 팔리며 기대를 모았던 ‘광화문 연가’는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고,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격려를 보냈다.
▲엇갈린 슬픈 사랑 이야기
막이 열리면 무대 양 끝에 놓인 하얀 그랜드 피아노 두 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이 무대 위로 현재와 과거가 함께 흐른다.
작품의 큰 줄기는 유명 작곡가 상훈과 절친한 후배 현우 그리고, 두 사람의 마음을 함께 받았던 여주의 사랑 이야기다. 젊은이들이 시대와 불화했던 1980년대는 사랑마저도 흔들어놓았고, 세 사람의 사랑은 엇갈리기 시작한다.
극의 또 다른 한편은 현재의 상훈과 여주·현우 아들 지용이 콘서트 ‘시를 위한 시’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축으로 돌아간다.
작품에는 이문세가 불렀던 곡들을 비롯해 모두 30곡이 쓰였다. 곡들은 댄스, 재즈, 탱고 등 다양한 장르로 편곡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원곡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완벽주의자’였던 이영훈이 써내려간 노랫말들은 아련한 사랑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제격이었다. 사랑하는 여주를 떠나 보내야 하는 상훈이 부르는 ‘새하얀 거리에서 쌓이던 첫눈 같은 사랑, 너를 안고 숨을 쉬면 세상에 너밖에 없는데’라는 노랫말의 ‘슬픈 사랑의 노래’의 노랫말은 그대로 대사가 돼 관객들의 가슴에 박힌다.
무대도 흥미롭다. 책장을 넘기듯 스르륵 등장하는 덕수궁 돌담길, 라일락 꽃잎 떨어지는 광화문 길 등 영상을 활용한 무대가 인상적이며 조명 역시 작품의 액센트 역할을 한다.
▲배우들의 열연·열창
젊은 시절의 상훈 역을 맡은 송창의는 ‘맞춤옷’을 입은 듯했다. 뮤지컬 배우 출신으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등을 통해 뛰어난 감성 연기를 보여준 송창의는 이번 무대에서 ‘노래’로 감정의 절정을 보여줬다. 그의 담백한 목소리는 감성적인 멜로디, 노랫말과 어우러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줬다. 광주 공연에서는 윤도현이 더블 캐스팅돼 함께 호흡을 맞추며 YB밴드는 극중 상훈의 밴드로 함께 무대에 오른다.
여주역을 맡은 리사 역시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다. 이영훈 작곡가의 곡은 대부분 남자들이 부른 것들이라 여자가 부르기는 다소 어려운 게 사실. 하지만 리사는 뛰어난 가창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특히 1부 마지막에 부르는 ‘그녀의 웃음 소리 뿐’의 폭발적인 가창력은 관객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조역인 김태한과 구원영은 뛰어난 연기와 노래 실력으로 극의 웃음을 책임지며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작품은 전 출연진들이 무대에 등장, 느린 템포로 편곡된 ‘붉은 노을’을 합창하며 막을 내린다. 이 세상에 없는 그를 기억하는 이미지다. 이어지는 커튼콜. 출연진들이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붉은 노을’ 등을 부를 때 공연장은 어느덧 콘서트장으로 변신했다.
창작뮤지컬은 오랜 기간 업그레이드 과정을 통해 ‘완성작’이 된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도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다. 1부에 비해 2부가 조금 느슨한 점이라든가, 2부의 탱고신 등은 좀 생뚱맞은 점이 있었다.
광주 공연(4월22일∼24일 광주문예회관 대극장) 티켓 가격 11만원∼5만5000원. 문의 062-220-0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