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사지 석불좌상
간월사지 승려상
간월사지 승려상
석조여래좌상 전각
석소여래좌상 모신 법당
법당내 신중탱
간월사지 석불좌상
보물 제370호
높이 135㎝. 현재 새로 지은 사찰 안에 봉안되어 있고 옛 절터가 발굴되어 법당자리가 밝혀졌다. 광배와 대좌의 일부가 없어졌으나 상의 보존상태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신체비례는 몸체에 비하여 얼굴과 손이 약간 크며 육계(肉髻)는 나발(螺髮)의 머리와 거의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낮게 표현되었다. 둥근 얼굴에는 양감이 남아 있고 눈·코·입이 작고 단정하게 표현되어 부드럽고 원만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좁은 어깨와 빈약한 가슴 표현, 굴곡이 별로 드러나지 않은 신체구조는 약간 딱딱하고 위축된 조형감을 준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앞가슴 쪽에서 길게 늘어져 속옷과 띠매듭이 보이고 두 다리는 여러 겹의 U자형 옷주름으로 덮여 있는데 다소 형식화된 조각수법을 보여준다. 일부가 보수된 오른손은 무릎 위에서 내려와 있고 왼손은 결가부좌한 발 중앙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아 성도(成道)할 때 부처가 취하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임을 알 수 있다. 대좌는 팔각형으로 중대석(中臺石)이 없어졌으나 앙련(仰蓮)이 새겨진 상대(上臺), 복련(覆蓮)과 안상(眼象) 속에 동물조각이 새겨진 하대석(下臺石), 그 밑에는 역시 각 면에 안상이 있는 팔각대석이 차례로 놓여 있다. 이 석불좌상은 전체 비례면에서 균형이 잡혀 있지 않고 불신이 약간 위축되었으나 단정한 조각수법이나 엄숙하면서도 부드러운 얼굴표정 등에서 8세기말에서 9세기경의 석불좌상에 나타나는 양식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통일신라 후반기에서 말기에 유행하는 항마촉지인 계통의 석불좌상이 한국적으로 수용·변천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불상의 하나이다.
법당내 관세음보살상
간월사지 범종
간월사지
시도기념물 제5호
간월사는 신라 진덕여왕(재위 647∼654)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법맥을 이어오다가 임진왜란 때 없어졌다고 한다. 그 후 조선 인조 12년(1634)에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그 후의 내력은 알 수 없다.
현재는 금당지 등의 건물터와 축대 등이 남아있다. 또한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70호)과 2기의 석탑이 남아 있는데, 이들은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남아있는 불상과 석탑은 고대 불교미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간월사지 동 삼층석탑
간월사지 서 삼층석탑
간월사지 관음보살 입상
간월사지 삼성각
삼성각내 칠성탱
삼성각내 산신탱
삼성각내 독성탱
간월사지 찾아가는 길
서울산IC →양산방면 →1㎞ →우측 →작천정계곡 → 간월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