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서는 용기는, 환대를 마주한다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은, '유목민'을, '광야에 거주하며 양과 염소를 치며 사는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위키백과도 "정착된 목축 등을 하거나 정해진 지역에서 이동을 하며 목축 생활하는 사람이나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이다."라고 소개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유목민'하면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까? 어떤 이들을 말할까? 전통을 고수하며 사는 이들? 외부인에 대하여 배타성을 갖고 있는 이들? 아니면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해 거리를 두고 사는 이들? 맞는 듯 틀린 반응이다.
아랍 이슬람 지역이나 터키 같은 곳을 여행하는 이들의 시선에 실제 광야에 천막집을 짓고 사는 이들이 잡히곤 한다. 그들은 유목민이 맞다. 또한 그들중 다수가 양과 염소를 치며 살고 있는 것도 맞다.
날이 궂지 않은 날이면, 이른 아침 먼동이 틀 무렵, 대략 6개월 이상된 양과 염소를 몰고 들로 나갈 준비를 한다. 그것은 어린 양이 길을 오가는 것에 무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유목민 목자의 배려이다. 또한 날이 궂은 날 들판을 오가면서 비나 눈보라, 국지성 호우 등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모든 유목민이 목자 또는 목동은 아니다. 유목민의 여러 삶의 방식 또는 역할 가운데 하나가 목자일 뿐이다. 해가 질 무렵이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양뗴와 목자를 들에서 볼 수 있다. 때때로 평지를 걷고 있거나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풍경도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들로 나간 양과 염소 무리의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여행자는 이런 풍경을 멀직이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내가 '봤다'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이들의 일상에 대해서 별달리 궁금한 것도 없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식의 마주함은,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강화할 때가 많다.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몸이 반응하는, 깨달음 가득한 '앎'으로 다가서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진정한 '앎'이 아닌가?
유목민의 거주 공간, 삶의 터전인 천막은 어떤 모습일까? 전통 유목민의 천막은 대개 염소털로 만든 실로 짠 것이다. 그야말로 한땀 한땀 수많은 정성이 들어간 거처이다. 통풍성과 신축성은 물론 일정 이상의 방수성도 갖추고 있다. 더운 환경에서는 바람은 통하고 햇살은 막아준다. 추운 날씨에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준다. 비나 눈이 내릴 때, 천막 안으로 들어오는 빗물을 줄여준다.
그 터전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유목민은 누구일까? 그것을 글로 마주하는 것과 당사자를 통해 느끼는 것은 많이 다르다. 만남을 통해, 당사자의 말을 통해 알기 위해서는 여행자는 자신의 차에서 나와 손을 들어 '안녕'의 말을 전하며 그들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와 다른 듯하지만, 그렇게 다르지도 않은, 또다른 이웃인 유목민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잔잔한 미소도, 커피 향과 따스한 차를 주고 받는 환대의 손길도 마주할 수 있다.
유목민, 그들은 누구일까? 그저 광야에 사는 이? 전통을 지키는 보수적인 이들? 다시 던져보는 질문인데, 실제는 그렇지만도 않다. 광야의 천막에 살면서도 도시로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 학생, 공무원 유목민도 있다. 천막 대신 도시 속에 보금자리를 잡고 살지만, 유목민의 자긍심을 갖고 사는 이들도 있다.
지난 10월 - 11월 사이에 이집트와 요르단 곳곳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유목민 이웃들을 만났다. 그런 가운데, 지난 10월 하순 이집트 카이로 북동지역, 지중해 연안도시 포트 사이드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들판에서 유목민 대가족(어떤 이들은 부족이라 부르기도 하는)을 만났다. 4대가 주변에 천막을 치고, 낙타와 소, 양과 염소를 치며 같이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적잖이 수줍은 듯했지만, 말을 주고 받고 하는 사이에, 어찌보면, 자신들에게 아랍어로 인사 나누며 먼저 다가온 최초(?)의 이방인인지도 모르는 이에게 유쾌발랄함을 서슴없이 드러내준다. 저녁 시간이 되었으니 식사 하고 가라고 서슴없이 초대한다.
환대는 누가 말하는 것과 달리 유목민의 의무도 아니다. 그저 손을 들어 '안녕'을 말하고, 이웃으로 다가온 이를 이웃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이런 환대를 마주할 수 없다. 만남, 그것은 내가 나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행지에서의 여행 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틀에, 시선에 안주하며 다른 이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과연 그럴까?" 하는 궁금함을 갖고, 다른 이에게 다가서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인 것을 새삼 느낀다.
나와 우리의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이라는 안전 공간 밖에는, 내가 아닌 다른 이웃이 그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첫댓글 우리와 다른 듯하지만 그렇게 다르지도 않은 또다른 이웃~그들에게서 환대의 모습을 다시금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