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 윤선
사바나를 향한 에튀드 외
-케이지를 열어 보셨나요
다즐링, 나는 옥색 눈을 가진 코숏이에요
하늘과 맞닿은 꼭대기 층에서 13년째 살고 있어요
베란다에서 까마득한 바닥을 내려다봐요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며 밟던 화단 건반들이
기지개 한 번이면 발끝에 닿을 듯해요
나는 요즘 몇 개의 층계를 잃고 있어요
층계만 잃은 것이 아니에요
잘 조율해 둔 발톱도 잘 부풀린 꼬리도
꺼내오지 못해요
비대해진 심장 때문이에요
매일 잠 속에서
빈 층계를 한꺼번에 뛰어오르려다가
미끄러지는 꿈을 꾸는 걸요
세상에서 마지막 가야 할 길은 정해진 악보인가 봐요
우리 집에서는 나만 병든 게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식물들은 더 푸르게 자라나 봐요
식구들의 꿈을 향한 힘든 걸음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서로를 베는 일도
초록으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화분 아래로 줄을 선 개미들도
정다운 음표처럼 보여요
가끔, 높은 곳에 올라가 구름도 만져봐요
파란 하늘 속으로 꼬리를 숨기고
붉은가슴울새의 깃털을 당겨보기도 해요
파닥이며 중심 잡기를 여러 번 메트로놈처럼
내일을 기다린다는 건 그런 건가 봐요
생각의 촉수가 흔들리다 음을 잡는 일이거든요
구름에 발을 담그고 아래를 내려다봐요
무지개다리는 어디쯤 있는지
아무리 살펴보아도 내 불안을 오려 놓은
검은 구름 몇 장뿐
긴 시간 자라온 흰 수염만 떨구어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일은 나의 최적화예요
꼬리를 부풀리고 발톱을 세워
사바나로 달려요, 에튀드
억센 댓바람 소리 솟구쳐 올라요
건반 위를 달리는 별, 별, 별,
숨이 차요
다즐링은 내 이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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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는 나의 스탠스입니다
스탠드에 불을 켭니다 잠시만 잠시만 필라메드*
스탠드는 눈을 뜹니다
펼쳐진 책 위를 옴팍하게 덮어씌운 큰 눈
글자들이 말을 겁니다
낯선 북벽의 침대에 몸을 누이지만
피안의 강은 멈출 줄 모릅니다
당신은 잠을 못 이룹니다
협곡을 만나고
앙상한 뿌리가 솟은 나무 위로 흙탕물이 들이칩니다.
시간에 묻힌 뼈 없는 영혼의 소리 같습니다
포레의 소나타 악절 위로 앵그르의 구불거리는 아이들 위로
논리도 없고 계획도 없이 (간사하게 밀어닥치는 간헐적인 기억이)
물밀듯이 쳐들어오는 초록의 폭발처럼
바퀴를 감춘 밤의 무궁한 음절처럼
기쁜 일과 슬픈 일 사이 등을 밝힌 우울의 무지개처럼
잠시만 누웠다가 불 켜진 스탠드 앞에 앉으려고 합니다 필라메드
그런데 말입니다 (누군가 말을 걸어 오지만 눈꺼풀이 무겁습니다)
오늘로 이어지는 꿈들이
블로뉴 숲 달빛 아래 밤안개로 흐릅니다
머리칼이 날리고
숄이 흘러내리고
나뭇잎들은 깊은 터널을 만들고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갑니다 내 볼은 동굴 빛으로 익어갑니다 )
나는 편안해집니다
걸으면서 풍경들을 줍습니다
몽상이 펼쳐진 내 안에
가둬 둔 말들이 들키기 싫어 단추를 목까지 채웁니다
스탠드는 나의 스탠스입니다
스탠드 앞으로 모여든 빛의 소란들
살롱에는 침묵마저 빛나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깊이보다 넓이 넓이보다 높이
그들이 사랑하는 피라미드를 닮은 숫자들 (고공을 뛰어오릅니다)
동물원은 공원에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어둠 속 얼굴들은 푸른 동그라미로 계산됩니다 (스노비즘!)
아차, 가까운 이들이 검은 등불 아래 숨을 다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살롱의 밤은 깊어갑니다 이런 미친!
침대에 빠뜨린 잠은 눈은 뜨지 못합니다
책장 넘어가는 소리
이야기는 살아서 불빛 아래 기어다닙니다
밤새 스탠드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필라메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장인물, 샤를뤼스 남작의 세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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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2018년 ⟪시와반시⟫로 등단했으며 시집 ⟪별들의 구릉 어디쯤 낙타는 나를 기다리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