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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직찍&포토 원문보기 글쓴이: 세인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위의 3대 프로그램 진행자와 출연진을 보면 90% 이상이 아이돌 그룹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케이팝 열풍이 본격화되기 이전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수치다. 출연진들도 대부분 겹치고, 진행하는 방식 역시 거의 유사하다. 출연진들을 살펴보면, 사실상 프로그램 간 구별이 안 될 정도다. 세 프로그램들은 사실상 음악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케이팝 아이돌 그룹들을 홍보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 예능 피디들은 대부분 이런 질문을 던지면 시청률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제 3개 방송사의 시청률은 평균 5%대를 조금 웃돈다. 가요 프로그램의 아이돌 점령은 시청률과는 다른, 복합적인 문제들이 들어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방송사 예능국에서 가요프로그램 틀을 아예 청소년들이 시청하는 아이돌 중심으로 고정시켰다는 점이다. 가요프로그램의 차별화 전략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케이팝의 장르화를 죽이는 결과가 되었다. 가요 프로그램의 효과는 그 자체로만 끝나지 않고, 파생 효과를 낳는다. 아이돌들은 가요 프로그램 출연을 기점으로 다른 예능 프로그램 진출을 노린다. 아이돌 기획사들이 원하겠지만, 예능국이 원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방송가의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가요 프로그램 한 번 출연에 예능 프로그램 세 번 출연'이라는 무언의 약속이 있었다고 하며 '일테백라', 즉 TV 한 번 나오는 것이 라디오 백 번 나오는 것보다 홍보효과가 더 좋다는 조크가 있었다. 상품가치가 높은 아이돌을 예능국에서 잡기 위해서는 아이돌을 집중 출연시켜야하는 이해관계가 존재하고, 반대로 1년에 50팀씩 데뷔하는 아이돌 그룹들이 방송에 얼굴을 비추기 위해서는 가요 프로그램에 목맬 수밖에 없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상파, 케이블 예능국 피디들이 과거부터 정기적으로 출연을 대가로 이른바 피알비를 받아 구속된 사례들이 많았다. 1997년, 2002년, 2008년 예능국 간판급 피디들 10여 명이 방송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피알비를 받아 검찰에 구속되었다. 내가 직접 제보에 관여했던 2002년 가요계 피알비 사태 때에도 많은 예능피디들이 연루되었고, 그 중에는 구속된 피디들도 있었다. 당시 본인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받았다고 했던 피디들 대부분도 2008년에 뇌물 수수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특정 연예기획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현금이 아닌 주식이 피알비의 새로운 뇌물 증여 방식으로 떠올랐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현재 주요 아이돌 제작사들이 주식 상장을 마친 상태에서 방송사 예능국 피디들이 이들 회사의 주식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고, 어떤 형태로 주식을 보유했는지, 그 액수는 얼마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케이팝을 주도하는 아이돌 가수들이 어떻게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집중 출연하는 관행이 생겨났는지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케이팝, 방송, 주식의 삼각동맹
▲케이팝은 이제 방송뿐만 아니라 주식시장,과 정치권까지 움직이는 힘을 보유했다.
'철의 동맹'이 강력한 팬덤을 입고 생겨난 것이다. 이 팬덤 형성의 뒤에 어떤 욕망이 꿈틀대고 있을까. ⓒ뉴시스
내가 판단하기에 케이팝 제작사-미디어-주식시장이 삼각동맹을 맺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이 동맹이 고의적이고 노골적이고 공공연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상부상조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내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잘못된 정보, 의도된 시나리오에 의해서 케이팝의 실체가 왜곡된다는 것이고, 이 왜곡들이 한국의 대중음악, 대중문화 환경을 다시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알고 보면 일반 대중들이 오로지 원하는 것만은 아니었고, 이 과정에서 이른바 문화자본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당사자들이 인위적인 트렌드를 만들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케이팝 커넥션을 형성하고 있다는 의문을 품게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방송, 미디어, 연예산업, 주식시장이 아이돌에 애타게 매달리는 현상이 정상적이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케이팝-방송-주식'의
삼각동맹은 우리 사회 독점을 정당화하는 '삼성 신화'의 논리, 반칙이 좀 있더라도 글로벌
경쟁력으로 국격 높은 선진사회 이룩하자는
MB의 국정철학의 또 다른 버전이다.
[한겨레] ‘…초국적 국민문화 아이콘’ 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국력의 결과물과 동일시해
‘글로벌 경쟁력’ 기치 걸고
장기계약 등 자본 몸 불리기
일본 시장 집중 등 한계 지적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문화현상 가운데 하나는 ‘케이팝’(K-pop)의 약진이었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대중문화 장르에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일었던 ‘한류’가 있었지만, 유럽이나 미국, 남미 등의 지역에서까지 한국의 대중음악이 큰 인기를 끄는 것은 전에 없었던 현상이다. 하지만 아직 케이팝의 세계적 인기의 본질이나 의미를 들여다보는 연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다 보니 남는 것은 화려한 수식어들뿐이었다. 케이팝의 구체적인 현실이 어떤지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그저 ‘세계로 뻗어나가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대중문화’ 정도의 인식만 난무했던 것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사진)는 한류, 아이돌 문화, 케이팝 등 대중문화에 대해 꾸준한 연구를 계속해 온 연구자다. 그는 최근 계간 <내일을 여는 역사> 겨울호에 ‘케이팝 -신자유주의 시대 초국적 국민문화의 아이콘’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었고, 다음달 7일부터는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에서 매주 두 차례 ‘케이팝 오디세이’라는 강좌를 열며 케이팝에 대한 분석을 본격적으로 펼쳐 보일 예정이다.
21일 만난 이 교수는 “‘초국적 국민문화’라는 관점을 갖고 케이팝을 연구하고 있다”며 자신의 연구 방향을 규정했다. 초국적 국민문화라는 말은 ‘초국’(트랜스내셔널)과 ‘국민’(내셔널)이라는 서로 대칭적인 개념을 나란히 세운 역설적인 말이다.
미국의 힙합과 유럽의 일렉트로닉 팝을 비롯해 다양한 음악 장르를 빠르게 흡수하는 혼성적인 음악 스타일, 다국적 멤버,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유럽, 남미에서까지 일어나는 다국적인 팬덤 등은 케이팝이 초국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교수는 그 초국적 현상 속에 단단한 국민문화가 깃들어 있다는 역설을 제기한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 속에서 국민문화의 흐름을 세 단계로 정리한다. 기존에는 식민지배나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저항적 국민문화’가 있었고, 지배권력의 입장에서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동원하려 했던 ‘억압적 국민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러 기존의 저항-억압의 틀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쟁력’을 기치로 내세우는 자본과 경쟁의 논리에 따라 새로운 국민문화가 출현했다고 한다.
케이팝에서 정점을 찍은 새로운 국민문화는 초국적인 조건을 폭넓게 받아들이고 스스로도 초국적이기를 지향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가 갖는 독특한 역사적·지리적 성격 때문에 오히려 국민문화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역설을 보인다고 이 교수는 분석한다.
케이팝의 국민문화적 성격은 평상시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케이팝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에는 ‘한국의 자부심’ ‘선진국가’ 등의 인식이 박혀 있다. 언론에서 케이팝을 다루는 방식에도 이런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아이돌 가수나 기획사 스스로도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전파한다’고 힘주어 홍보한다. 국가대표 운동선수처럼 병역을 면제해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반면 일본의 경우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중문화를 발전시켰지만, 우리나라에서처럼 초국적 문화 변용이 국력의 결과물로 동일시되진 않았다고 한다.
이를 좀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이 교수는 케이팝과 ‘삼성’이라는 글로벌 대기업을 비교한다. 케이팝과 삼성은 전세계를 시장으로 삼고 스스로도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적 존재이지만, 동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문화적 존재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특히 ‘글로벌 경쟁력’은 한국 내부에서 국민문화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공통적인 캐치프레이즈다. 케이팝이나 삼성은 이를 국가 차원의 일종의 ‘자본 축적 전략’으로도 활용한다. 이 교수는 “‘국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수출을 해야 먹고살 수 있다’는 인식과 역사적 경험이 만들어낸 역설”이라고 분석하고, “자본이 국민주의의 확성기를 빌려 더 강력한 초국적 자본으로 재탄생된 맥락을 더 자세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무노조 경영철학이 불가피하다는 삼성의 입장과 ‘노예계약’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장기계약이 글로벌 경쟁력의 밑거름이 됐다는 기획사 에스엠(SM)의 입장을 비교하면서, 자본의 공통적인 전략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 교수는 장밋빛으로 과장된 화려한 수식어들을 지우고 케이팝의 현실을 더 실질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케이팝은 현재 영미·유럽권에서 아직까지 제대로 된 라이선스 음반을 발매한 적도 없으며, 기획사들의 수익구조를 보면 갈수록 일본 시장에 목을 매는 등 오히려 일본 시장에 흡수되어가는 경향도 나타난다고 한다. 또 너무 아이돌 위주로 천편일률적이어서 문화 다양성이 실질적으로 억압받고 있는 현실도 문제로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