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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립박물관 특별기획전
삼척번개시장 사람들
-사진 속 사람들 삶의 이야기
사진· 박태수|글· 정연휘
삼척 번개시장 새벽풍경
삼척시립박물관, 특별기획전 '번개시장 사람들'
삼척시립박물관은 9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두 달 동안 2015 특별기획전 '삼척번개시장 사람들-사진속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사진작가 박태수 씨가 10년 동안 번개시장 상인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새벽을 여는 사람들' 이란 주제로 지난해 개최한 전시회의 모든 작품, 총 46점을 삼척시립박물관에 기증함에 따라 마련됐다.
★▼↓▼전시작품에서 일부 발췌
●새벽을 여는 사람들·1 김분자 동해시 청운1길
IMF환란 그리고 인생전환
새벽을 여는 삶의 현장, 번개시장 좌판에서 주로 가자미회를 떠 판매하는 그녀의 모습은 볼 때마다 늘 밝은 미소와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경쾌하게 주받으며 회를 뜨는 그녀는 온실 밖의 야생화가 아닌 온실 안의 아름다운 꽃으로 비췄는 데, 만나서 생의 궤적 이야기를 들으니, 눈동자가 촉촉히 젖어드는 애환이 담겨 있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3 홍희자 삼척시 남양동
마음 가는 대로, 행복해요
내가 태어 난 곳은 근덕 다리실 마을이다. 다리실은 아버지 고향인데 내가 갓난 애기 때 적노리 내짓골로 왔다. 아버지가 동양시멘트 월암광업소에 다녔기에 내짓골 사택으로 이사를 했다. 유년시절을 거기 살다가 내 나이 9살 때 부모님이 집을 사서 오분리로 내려 왔다.청소년시절과 학창시절,그리고 결혼 후에도 오분리에 계속 살았으니 오분리는 정든 고향이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5 진분녀 삼척시 사직동
이사도 참 많이 다녔어요
진분녀(59세·1956)씨는 삼척번개시장 생선좌판과 채소류좌판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1평 남짓한 노점상 포장마차에서 호떡과 어묵을 판다. 시장 입점은 2010년부터이니 6년차이다.포장마차를 하면서 봄에는 톳나물 등 해초류와 쑥,냉이 산나물류를, 여름에는 옥수수 등 농산물을,가을·겨울에는 호떡과 어묵 위주로 장사를 한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8 이순남 동해시 이로동
그래,세상사 별것 아니야
참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아픈 기억은 나의 자살 기도였다. 53년 동안 살아온 내 삶에서 어찌 즐거운 일만 있고 어찌 슬픈 일만 있을까 마는 한 동안 내 우울증이 심해 도를 넘어 나를 확대하고 애들에게 고통을 안겨 줬다. 자살 시도 한 번 두 번... 네 번 째는 애들 한테 유서를 써 놓고, 새벽 2시에 자동차로 백복령쉼터에서 차문을 잠그고 버개탄에 불을 붙혀 자살을 실행, 눈을 조용히 감았다. 그 순간에 핸폰이 길게길게 울어댔다. 막내가 유서를 보고 전화를 했다. "엄마, 엄마 보다 막내가 먼저 지금 죽는다. 엄마 죽지마" 막내 목소리에 정신이 쾅! 번쩍! 들었다. 단칼에 마음을 던지고 자살선택을 접었다 ."금쪽 같은 내새끼들, 살자, 살아보자" 엉엉 울음 울며 피를 토하며 자살에서 생환했다. 내가 죽지 않은 것은 너무 다행이라는 사실이다. 자살은 우울증으로 인생이 궁지에 몰리고, 스트레스로 인한 절망감 상태에서 최후의 선택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우울증으로 매일 3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고 라디오 뉴스가 흘러 나온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9 심춘옥 삼척시 남양동
애들이 자랑스럽지요
전문가의 경험담은 계속 된다. 콩은 백태콩, 쥐눈이콩, 오리알태콩, 약콩, 녹두 등 여러종이 있지만 모두 쓰임새가 다르다. 흰콩인 백태는 두부를 만드는데 주로 쓰인다. 녹두로 키우면 숙주나물이되고, 쇠고기국을 끓일 때 많이 쓰인다. 콩나물콩으로 적합한 것은 백태보다는 작고 녹두보다는 큰 쥐눈이콩이 으뜸으로 좋다. 콩나물콩이 따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가볍고, 크기가 작고, 빨리 발아가 되고, 키우는 것이 수월하고, 무엇보다 고소하게 맛이 좋은 콩나물의 콩이 쥐눈이콩이기 때문이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10 권상래 삼척시 정하동
그리운 아내이지요
세상에서 생선生鮮 -갖잡은 신선한 바닷고기를 촌음을 아끼며 어우렁 더우렁 제일 바쁘게 사는 사람이 권상래 씨이다. 자신에게 쉴 틈새를 허락하지 않고 오로지 움직이지 않으면 몸살이 나는 사람이다.평생을 그렇게 근면하고 성실하고 바쁘게 살아온 게 체질화 된 건강한 사람이다.「새벽을 여는 사람들」 인터뷰를 따기 위해 비·바람 무관하게 봄 한 철 06:00~8:00, 60여일 새벽의 시장 사람들을 지켜보고 만나보았다. 평생을 바다와 고기와 동고동락한 사람 -권상래 씨의 반생은 고기 잡는 어부로, 또 나머지 반생은 고기 파는 생선장수로 올인하는 사나이 중 사나이다.
●새벽을 여는사람들·11 신승애 삼척시 남양동
우리 그이요, 참 좋아요
신승애(53·1962년생)씨는 번개시장에서 남편 박기태 씨와 같이 「만들리식품」매장을 운영한다. 29년 전인 1986년에 '부산상회'문을 열고, 2000년도에 김 제조 가공허가를 받으며 상호를「만들리식품」으로 변경 했다. 김가공 공장은 번개시장에서 삼척교 다리를 건너 정상동 한전삼척영업소 부근에 있다.「만들리식품」의 김은 전국 할인마트로 납품하여 인기가 좋았다. 마트가 부상하면서 재래시장이 사양길일 때, 만들리식품은 비수기와 성수기로 나눠 서로 다른 제품을 납품하면서 장사는 잘 되었다. 김의 성수기는 겨울이다. 겨울에는 김제품을, 비성수기 3월부터 10월까지는 멸치 등 건어물을 납품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 급식도 납품을 한다.
●새벽을 여는사람들·12 허명옥 삼척시 사직동
정라진 아주머니들 리어커로 20·30명이 고기 싣고와 다 팔았사요
하루는 한떼기 밭에서 밭일을 하는데 옆밭에서 밭일하던 코납데기 할머니가 "에미야, 돈이 원만하면 우리밭을 사라"고 사정을 했다. 그래 발전소 갔다온 남편과 상의를 했더니 "한푼도 깎지 말고 사라, 재민이 엄마는 할 수 있잖아" 그래서 태백다방 뒤에서 가계하는 남선생님 한테 돈을 꿔서 한푼도 안 깎고 첫밭을 샀다. 그돈 다 갚지도 못했는데 정동화 씨네가 또 사라해서 친오빠 같던 수양오빠 오라부댁이 돈을 빌려줘 그 땅을 샀다. 2년이 안돼 또 옆 땅을 사라해 사다보니 18떼기 밭을 사게 되었다.
① 비 내리는 장터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우산이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일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사랑이란 한쪽 어깨가 젖는데도 하나의 우산을 둘이 함께 쓰는 것이요./ 이별이란 하나의 우산 속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우산을 펼치는 일이다./ 연인이란 비오는 날 우산 속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요./ 부부란 비오는 날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갈 줄 알면 인생을 멋을 아는 사람이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사람의 우산이 되어 줄 때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마른 장마에 단비가 내립니다. -김수환 추기경 '우산'에서
③ 어머니,어머니,우리 어머니3
보이잖는 얼굴의 어머니, 강낭콩을 까는 주름투성이 손을 보니, 우리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좋은 세상 구경 못하고, 밭고랑에 쭈구리고 앉아 조밭을 매고, 더러는 부추 날 때면 부추 한 광주리를, 콩 날 때는 콩 몇 되를, 강냉이 날 때는 강냉이 한 광주리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귀가 때는 그것들을 판돈으로 생선 몇 마리를 사 오셨다. 우리 형제자매 공부 시키고 성가시킨 하늘 같은 우리 어머니, 지금은 어디에 계시나? 절절한 그리움을, 효도를 하고 싶어도 어머니, 어머니 목놓아 불러보아도 어머니는 어디에도 안 계신다.
⑧ 사는기 녹녹치 않지만 오늘 재밋재
우리 이렇게 번개시장에서 추운 겨울에 고기 배때고 가자미 회 썰고... 이렇게 숯불에 언손 따스히 뎁히는 이 시간 참 행복하잖소. 이 세상 살아보니 별것 아냐요, 자식 키우다 보니, 핵교 공부 시키다 보니, 시집 장가 보내다 보니, 한 세상이 젊음과 함께 훠이훠이 날아가 버렸잖소-
행복이 별것 아냐요, 큰 걱정없이 웃으며 재밌게 사는 그게 행복이제, 살아온 내 생애가 이 꺼칠꺼칠하고 주름 투성이 손등에 남아 있는게 부끄럽지 않아요. 이 손이 약손이 잖아요, 이 손이 내 아이들 키우고, 공부 시키고, 시집 장가 보내고,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한 증표가 이 손이잖소 호호호~~
4부 살아온 흔적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어 삼십에 일어섰으며, 마흔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에는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에는 귀가 순했고,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되 법도에 넘지 않았다.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 所欲不踰矩" 공자의 <논어論語> ‘위정爲政’ 편에 있는 말이다.
공자 일생의 흔적, 엑기스에서 보듯이 우리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 역사로 남아있다. 자신에, 가족에, 이웃에, 민족에, 하늘 앞에 남긴 흔적이 어떠했느냐? 하는 자문자답 앞에 부끄러움과 자존이 교차할 수 있다. 부족하기에 더 열심히 살면서 성숙을 향하여 나갔다고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민족과 하늘 앞에 말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가슴 속에 흔적을 꺼내어 글로 쓰면 내 살아온 역사, 그것이 자서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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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시장 역사
고 증 : 안익규(76) 마읍상회에서 역전공업사로
이규철(73세) 서울닭집·번개시장 45년
박기태(63세) 만들리식품·번개시장 29년
때·곳 : 2015. 6. 19. 18:00 남양동 외갓집 외
지금의 '번개시장'은 45년 전인 1970년도 7번국도 큰길가 삼척교三陟橋 입구 시장 들어오는 길목에 '번개시장'의 전신인 '새마을상가' 간판을 올렸다. 번개시장의 산역사인 이규철(73세)님과 박기태(63세)님의 고증에 의하면 시장간판을 올린 이는 허명옥 지주地主의 부군, 경찰을 퇴직한 고 최병섭 씨이다. 그 분은 삼척화력발전소에 연탄을 납품하면서 발전연료 부순물인 연탄재를 뚝방 옆의 하천부지 낮은 땅에 성토하여 600여 평의 시장을 개장했다.그 간판을 달기 전 8년전인 1962년도에 삼척역 서편에 구시장 '역전시장'이 성시盛市를 이루고 있었다.
'역전시장'에는 인근의 농산물과 해산물이 모여서 기차편으로 도계·태백·영주방면으로 이동하는 집산지 역활을 했다. 안익규(76)씨의 증언에 의하면, 1962년도 삼척군에서 시장부지를 매입하여 시장건물을 빙돌려 짓고, 강원도로부터 공식 시장 허가를 받아 상인들에게 상가를 임대하였다. 그 몇 년 전부터 새벽 일찍 반짝시장이 열리고 있었는데 군에서 건물을 짓고 편의시설을 갖춰 공식시장으로 개장했던 것이다.
'역전시장'이 형성될 때는 신새벽, 어부들이 잡아온 생선을 정라진 부두에서 받아 손수레로 대야로 끌고 이고 역으로 가는 지름길인 '송씨네 강배'를 이용하여 오십천 너른 강을 건넜다. 그 때는 삼척교 다리가 없었다. 역전시장이 1962년도에 개장하고 6년후인 1968년도에 2차선 다리가 개통됐는데, 번개시장은 다리 개통 2년 후인 1970년도에 개장 됐다.
그때는 정라항, 지금의 삼척항 부두에서 고등어·오징어·꽁치·가자미·문어 등 여러가지 생물을 받아 기차역이 가까운 강배로 이동하여 새벽 열차 시간에 맞춰 번개처럼 성시였다가 번개처럼 도계·철암·영주방면으로 이동하면서 번개처럼 파시하였다. 그러던 것이 군에서 정식으로 시장이 개장되면서 어류만이 아닌 미곡전·잡화전·채소전 등 다양한 물건들이 거래되었다.
그 시절 구시장인 역전시장의 대표적인 가게 상호와 상인들은 생선류 도·소매상 변봉순의 삼호상회, 식료품점 김세영의 대광상회, 고무신점 조상묵의 조일상회, 잡화점 이순재의 강원상회, 식료품점 박수덕의 호남상회, 잡화점 장동수의 대림상회, 과일가게 권영선의 청과상회, 주류판매점 이철우의 경북상회 등이었다. 고증을 한 안익규의 경우 마읍상회는 그분이 노곡면 마읍리에서 살다가 62년도시장 개장 3년후인 65년도에 시장에 입접했다. 미곡과 식료품을 5년간 운영하면서 그해 폐장되던 몇 개월전에 시장 돌아감이 퇴로 없는 막다른 골목 형세여서 시장을 정리하고 그해 1970년 10월 1일 역전파출소 옆에 자전거점 역전공업사를 개점했다. 그해 10월 24일 '번개시장' 전신인 '새마을상가'가 길건너편에서 새시장을 개장했다. 1962년부터 이렇게 성시를 이뤘던 구시장 역전시장이 갑과 을의 분쟁, 새시장이 기차역이 가깝고, 초창기 새시장이 장세를 안 받아 상인들이 이동거리 등 유리한 쪽으로 모두 떠나서 역전시장은 개장 8년 만인 1970년도에 폐장이 됐다.
이런 연유로 역이 가까운 큰길가에 새시장이 들어서니 해산물과 농산물이 서편에 떨어진 역전시장으로 가지않고 인근 시장으로 밀려왔다. 그렇게 되어 서편의 구시장은 폐장되고 번개시장이 성시를 이루게 된 연유이다. '새마을상가'에서 '번개시장'으로 개명된 연도는 20년 전인 1985년도다. 영서로 가는 기차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부터 농촌의 채소 등 농산물이, 어촌의 고등어 등 해산물이 집산되어 상인들끼리 팔고사고 사고팔고 하더니, 아름아름 시민들이 찾아와 갓 생산된 신선한 채소와 생선을 구입, 소문은 소문에 꼬리를 달아 이제는 삼척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번개시장이 됐다. 지금은 성시를 이뤘던 예전 보다 못하지만 시장 상인들에게는 목숨줄이고, 시민들에게는 싱싱한 바다 생선과 활어 그리고 싱싱한 산나물과 채소류를 저렴하게 살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 삼척번개시장이다.
번개시장은 신새벽 5시부터 장이 빤짝 섰다가 오전11시에 빤짝하고 파시, 사라진다고 하여 상인들과 시민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붙여준 명칭이다. 그리고 삼척시에서는 4년전부터 96억 원을 들여 갈매기형상의 번개시장 현대화 작업 중인데,시장 부지 600여 중 1/2 정도의 사유지가 해결되지 않아서 답보상태에 있다. 시민들과 번개시장조합원들과 삼척시는 번개시장 현대화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첫댓글 좋은 다큐작품 잘 보고 갑니다.
삼척을 사랑하게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