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5절).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마음으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겸손하신 종의 마음입니다(6절~8절).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6절). 그렇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고, 우리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하나님 앞에서 기꺼이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8절). 이것이 곧 복음입니다. 그러니 복음에 합당한 삶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은 자기를 낮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지체들을 돌아보고 섬기는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셨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온 세상의 주관자가 되게 하셨고, 그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님이라 시인하게 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9절~11절).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죽음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며, 주님으로 모시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主權) 아래 있습니다. 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의 주인이심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고 기꺼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따르겠다고 고백한 자들입니다. 그러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마음을 동일하게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은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복종하는 마음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십니다(12절). 이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이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여기에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아직 구원받지 않았다는 의미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어가라는 말씀입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너는 인간이 좀 되라”라고 말할 때 상대방이 아직 인간이 아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인간답게 살아가라는 의미인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라면, 구원받은 자답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3절부터 16절에서는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소원을 갖게 하시는 분이십니다(13절).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한 열망과 소원, 비전(Vision)을 품게하시고, 그 일을 행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소원으로 가득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행할 때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14절). 즉 불평하지 말고, 논쟁하거나 의심하는 태도를 갖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이 어그러진 세상에서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5절). 그리고 생명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고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16절).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빛 된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이렇게 살아간다면 자신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했던 것이 기쁨이 되어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6절~18절). 빌립보 성도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바울 자신이 전제(奠祭)로 드려진다고 해도 기뻐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17절, 18절). 전제(奠祭, Drink offering)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제물을 모두 드린 후에 맨 마지막에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제사 의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전제로 드린다는 것은 자신의 피를 쏟아붓더라도 기뻐한다는 의미라고 여겨집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치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기뻐할 것이라는 의미심장(意味深長)한 고백입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9절부터 30절까지는 빌립보 교회에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보낸다는 말과 그들을 잘 환영하고 섬겨달라고 부탁하면서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빌립보 성도들이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모를리는 없지만, 편지를 들고 가는 이들을 언급하면서 이들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 바울의 편지를 들고 빌립보 교회로 갈 적임자(適任者)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이들은 주님의 일보다는 자기들의 일에 바빠서 이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바울은 말합니다(21절). 그러나 디모데는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빌립보 성도들을 염려하는 자였고(20절), 디모데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상황을 바울에게 잘 전해준다면 바울의 마음도 편안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19절). 디모데는 바울을 아버지처럼 섬기면서, 복음 전하는 일에 함께하였던 귀한 일꾼이었다고 소개합니다(22절).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디모데를 보내어 자신의 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한 명을 더 보낸다고 하면서 에바브로디도를 소개합니다. 아마 에바브라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로서 빌립보 교회에서 바울을 위해 헌금한 것을 가지고 바울에게 보내진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25절). 그런데 로마에 있는 바울에게로 와서 에바브로디도는 심각한 질병을 얻어 목숨까지 위태로웠던 상황까지 갔었던 것 같습니다(26절, 27절). 그러나 다행히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회복되었고, 이로 인해 바울도 마음이 더 안정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아마 에바드로디도가 바울이 있는 로마에 가서 심각한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빌립보 성도들도 들었을 텐데, 에바브로디도를 다시 빌립보 교회로 보내어서 에바브로디도의 건장함을 보여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28절). 바울은 에바브로 디도에 대해서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복음을 위해 섬긴 자라고 소개합니다(30절).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권면하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한 바울은 마치 디모데와 에바르도디도가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본(本)인 것처럼 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권면합니다(29절). 주님 안에서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자들을 존귀히 여기는 태도는 우리 공동체에서 꼭 필요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틀 후면 성탄절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빛 된 삶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매일성경
#안창국목사의말씀묵상
#빌립보서2장5절부터30절
#빌립보서묵상
#복음에합당하게살아가는삶
#너희안에이마음을품으라
#그리스도예수의마음
#하나님이시지만육신을입고이땅에오신예수그리스도
#성육신
#기꺼이종된모습으로십자가에서죽으신예수님
#모든이름위에뛰어난이름으로높임받으시는예수님
#모든무릎을예수의이름에꿇게하셨다
#모든입으로예수그리스도를주라시인하게하신하나님
#두렵고떨림으로너희구원을이루라
#세상에서빛된삶
#디모데
#에바브라디도
https://cafe.naver.com/lighthousegoyang/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