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는 깨끗한 물이 그렇듯이 부정한 것을 씻어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수는 꼭 사제만 챙겨들고 다니는 물품이 아닙니다. 웬만큼 열심한 신자들 집에 가보면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긴 성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거룩한 물이 어디에서 온 걸까요? 어떤 분들은 성수니까 성지에서 퍼온 물이라고 알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동네 이름 성수동과 연관 지으시는 분들은 좀 너무 많이 가신 겁니다.)
알고 보면, 성수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집 근처의 성당에 가면, 성전 입구에 항아리가 놓여 있습니다. (혹시 못 찾으시겠으면 본당 사무실에 가서 문의하시면 됩니다.) 그 항아리 안에 들어있는 물이 성수입니다. 그 물을 작은 병에 덜어 갈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성수의 용도는 집을 축성하거나 유혹을 물리치는 데 있습니다. 속이 안 좋을 때 마시는 분도 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이건 남용의 한 예로 보입니다. 그냥 뿌리는 것으로 족합니다.
보통 성당에서 사용하는 성수는 부활성야 미사 중에 큰 항아리에 물(수도물도 괜찮습니다. 깨끗한 물이면 됩니다.)을 담아 사제가 세례수 축복기도와 부활초를 항아리에 담그는 행위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이 물이 상하지 않고 이듬해 부활 때까지 잘 보존되도록 약간의 소금을 집어넣기도 합니다. 그래서 항아리를 열고 안을 들여다봤을 때, 희미하게 소금끼 흔적이 보이기도 합니다. 세례수는 우선 성당에서 세례를 베풀 때 사용하는 성수이지만, 일반 가정으로 나눠갈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성수가 부족해지면 어떻게 하냐구요? 또 축복해서 준비해 놓을 수 있습니다. 한 해에 딱 한 번 김치 담그는 게 아닌 거랑 비슷한 이치입니다. 참고로 세례수와 달리 앞서 언급한 일반적인 용도의 성수도 필요에 따라 축복기도를 통해 만들 수 있습니다.
|
|
|
▲ 성유축성미사에서는 한 해 동안 교회에서 사용할 기름을 축성하고, 사제들의 서품 서원을 갱신한다. ⓒ한상봉 기자
|
한편, 성유(축성 기름)는 정말 일 년에 한 번씩만 만들어 집니다. 언제냐 하면 해마다 부활절을 앞둔 성목요일 오전에 주교와 사제단이 모여 봉헌하는 성유축성미사 때입니다. 각 교구의 주교좌성당에 사제들이 모여 함께 미사 봉헌을 하고 사제로서 서원을 갱신합니다. 주교는 미사 중에 세 가지 종류의 기름을 축성하고, 사제들은 이 기름을 나누어 가지고 갑니다. 이렇게 교구 내 각 본당과 수도회 공동체로 가져간 기름은 보통 세례와 병자성사 때 사용됩니다. 여기에 덧붙여 주교는 견진과 성품(신품) 성사를 위해서도 축성기름을 사용합니다.
기름의 종류가 세 가지라고 말씀드렸는데, 이 모든 성유의 기본 요소는 일반적으로 올리브기름(식물성 기름이면 다른 종류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입니다. 기름의 종류가 나뉜 것은 성사의 내용이 다르기에 사용되는 기름도 구분하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기름의 종류를 보자면 우선, 예비신자 성유(O.C: Oleum Cathecumenorum)가 있습니다. 사제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고, 교회의 일원이 되기를 청하는 예비신자에게 예식을 통해 발라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크리스마 성유(S.C.: Sanctum Chrisma)라고 부르는 축성된 기름이 있습니다. ‘크리스마’라는 단어에 이미 ‘기름으로 축성되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그리스도가 '축성된 기름부은 사람'이란 뜻이니까요.) ‘크리스마 성유’라고 하면 의미상 ‘성유성유’ 하는 것과 같은 셈입니다. 하지만 크리스마가 그리스도 덕에 거의 고유명사처럼 쓰이는지라 우리는 오래 전부터 그것을 크리스마 성유로 불러왔습니다. 이 기름은 세례, 견진, 성품성사를 위해 사용됩니다. 크리스마 성유는 다른 두 가지 성유와 달리 기름에 향을 풍성히 하려고 발삼을 첨가하여 축성합니다.
마지막으로, 병자성유(O.I.: Oleum Infirmorum)가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병자성사 때 사용됩니다.
간단히 이해하자면, 기름은 예식을 통해 사람을 온유하게 하거나 굳세게 만드는데 사용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기름(자동차 연료 말고)을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따져보면 기름이 우리 삶에 주는 유익함을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쳤을 때 사용하는 연고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렇다고 병자성유를 약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축성된 기름은 사람의 마음을 열어 하느님께 향하게 하고, 악의 유혹에 대항할 힘을 주며, 성령이 주시는 치유의 힘을 통해 건강을 청하는 행위에 사용되는 은총의 상징적 요소인 것입니다.
올리브기름을 사용하기에 향을 맡아보면 발삼을 첨가한 크리스마 성유를 빼고는(향에 민감하지 못한 분들은 그것마저도 헷갈립니다.) 어떤 기름이 병자성유고 예비자성유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병에 ‘O.C., S.C., O.I.’라고 써 놓아야합니다.
파리에서 부제품 받고 처음으로 아기의 세례식을 집전했을 때, 당황하여 세 개의 기름병 앞에서 머뭇거렸던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약자로 쓰여진 저 알파벳이 뭘 의미하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로 적혀있지 않았으니 정확히 알파벳 이니셜의 뜻을 알고 있어야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아봤지만 집에서 샐러드에 뿌려먹는 올리브유랑 구분이 안되고... 잠시 난처해 하다가 기억이 돌아와서 식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엘루아(Eloi)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준 아기는 벌써 여섯 살이 되었군요. 그 가족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야겠습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첫댓글 잘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