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상망호강호(魚相忘乎江湖), 인상망어도술 (人相忘於道術)
차법륜(길진)법사 /뉴저지 후암정사
어상망호강호(魚相忘乎江湖), 인상망어도술 (人相忘於道術) 이란 말이 있다. 물고기는 자신이 살고있는 강과 호수의 고마움을 모르고 인간은 천지간의 큰 법칙과 의미를 그저 잊고 산다는 말이다. 물고기가 물의 고마움을 모르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영장류에 비해 어류로서의 물고기는 뇌의 발달이 돼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환경과 그 변화에 대한 인식은 전혀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입장에서 보면 인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옛분들은 인간이 道術의 고마움을 모르고 산다는 말을 정치에 빗대어 이야기하곤 했다. 즉 사람은 도덕정치 등 현실의 정치경제가 편안하고 안락할때 그에 대한 고마움과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폭군이 나타나고 난세가 닥치고 세상이 뒤숭숭해질때야만 그 태평성대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범부들 입장에서 이러한 말이 주는 교훈은 세상사 전반에서도 늘 나타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사람의 귀한 가치를 알지 못하고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가치를 인간이 어릴때는 크게 깨닫지 못한다. 다만 부모님의 한 쪽이 없거나 또는 고아가 될때 그때서야 비로서 천지간에 무엇보다 귀한게 부모님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이 나이를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젊을때 허랑방탕하고 부모에게 못되게 굴던 사람들은 부모님이 나이를 들어 돌아가시거나 또는 자식에게서 받은 섦움을 안고 세상을 뜨게 될때 그때서야 비로서 부모라는 사람이 갖는 가치를 깨닫게 된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모자식간의 가치를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고 사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인간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들의 가치를 잊고 사는 것은 물고기가 물고기의 생명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물의 가치를 모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 부모의 가치를 모르는 것 처럼 자식의 가치를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식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 하나의 아들 딸들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크게 깨닫지 못하고 산다. 그러나 늘그막까지 자식이 없거나 또는 자식중 하나라도 예기치 못한 사고나 질병으로 세상을 뜨게되면 그 때에 받는 고통과 자식들의 소중함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부모와 자식들은 서로의 입장에 있어서는 천지간에 가장 중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친구, 직장동료등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가치인식도 똑같은 이치이다. 있을 때는 그다지 귀한 가치를 모르지만 없을 때 또는 좋지않은 관계가 될때 평소의 좋은 관계등을 그리워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이 사람의 가치를 모르고 살게 되는것은 인연관계가 늘 변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건강이 천년만년 갈것 같고 자식들이 변하지 않고 바램대 로 잘자라주고 또 친구와 직장동료등이 자신과 영원히 좋은 관계를 맺을것이라고 생각하기 때 문이다.
그러나 결코 인간이 산다는 것은 변화라는 전제를 달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부처님은 여기에 대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순간에 집착하는 작은 시야에 대해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오늘 내일 만나고 웃고 이야기하고 관계를 맺고있는 사람들이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보이고 듣는 현상의 그 배후에 있는 시시각각 변하는 엄청난 변화를 보기에 범부들 입장에서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사람과의 관계를 쉽게 생각하고 소중한 가치를 잊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중요한 것이 건강의 가치를 망각하고 사는 것이다. 건강은 단지 신문 한귀퉁이나 잡지 한구석에 나오는 교양의 차원이 아니다. 사람이 살고 무엇인가를 이루고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건강한 신체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인생이라는 긴 길을 떠나는데 좋은 몸, 곧 좋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온 여행 자체를 행복하게 효과적으로 완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어느 신문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한해 동안 우리 한국인들이 지출하는 의료비와 약값, 치료비 등은 가히 보통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토록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지면서도 의료행위를 줄이려는 의견은 미친 소리라고 비판받는다. 오히려 병원과 의사수를 늘리고 선진의료기술을 도입하라는 여기저기서 성토가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평소 건강할때 병든 고통과 엄청난 정신적 좌절을 알지 못한다. 흡연, 옴주, 과로, 스트레스 등을 거리낌없이 밥먹듯이 한다. 자신의 튼튼한 몸이 젊음이 그렇게 쉽게 가지 않을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아주 미세한 조직들로 이루어진 정교한 유기체이다. 마음의 방심을 틈타고 축적된 잦은 결과들, 결국은 자신을 병상에 눕게 하거나 심하면 세상을 뜨게 한다. 결국 건강의 가치는 늘 이야기 하는 교양의 차원, 상식의 차원이 아니라 무엇보다 잘 지켜야하는 중요한 생활의 원칙인 것이다.
인간온 인연따라 변화하고 새롭게 태어나, 사라지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 아무도 알 수 없으나 단지 인간이 죽음을 향해 가고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현실의 좋은 환경, 특히 부모형제, 자식 그리고 좋은 이웃들, 건강의 소중함은 인간이 원만한 삶을 살아나가는데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부처께서 인연따라 변하는 만상의 진리를 가리킨 것도 사람이 맞다뜨리는 현실의 중요함을 강조한 역설적인 가르침이다. 곧 변화가 있기에 현실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이 허무와 침묵과 회피를 가르치는 은둔자의 종교만은 아니다. 오히려 부처의 가르침 뒤에는 현실에 대한 역동적인 참여와 그 가치에 대한 지고한 숭상을 볼 수 있다. 아니 현대의 불도들은 바로 변화하는 인연의 큰 바다에서 적극적인 의지로 현실이라는 섬에 발을 붙여야 한다. 그것은 바로 현실에 발을 붙이지 않는 한 인연의 바다를 바로 볼수 없기 때문이다. 안정된 의식 정확한 시선은, 그리고 섬이라는 딱딱한 기반을 가지지 않고 바라보는 인연의 바다로 물고기가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는 물의 모습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1992년 10월호 미주현대불교 제 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