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던 돼지 어깻살이 主재료
상온 보관 가능하고 부드러워 2차 대전 당시 군용 식량 지급
서양에선 '햄의 대용품' 푸대접
햄 몰랐던 동양에선 別味 인식… 부대찌개·밥반찬 등으로 안착
스팸의 고향인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서 스팸을 즐겨 먹을 뿐 아니라 명절에 선물로 주고받을 정도로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 음식이라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미국에서 원치 않지만 계속해서 받게 되는 공해 같은 이메일이나 전화를 '스팸 메일' '스팸 전화'라고 부를 정도로 스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이처럼 좋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뭘까.
스팸은 1937년 미국 식품 제조 업체 호멜(Hormel)에서 개발했다. 한국에선 통조림 햄의 대명사로 여겨지지만, 스팸은 햄이 아니다. 서양에서 햄이란 명칭은 돼지 넓적다리(뒷다리)로 만든 육가공품에만 붙일 수 있다.
스팸의 주재료는 돼지 어깻살이다. 호멜사(社)는 미국과 서유럽에서 버려지던 이 값싼 부위에서 뼈를 발라내고 곱게 갈아서 소금과 물, 감자, 결합제(보존제), 설탕, 아질산나트륨 등을 섞어서 통조림 육가공품으로 만들었다.
호멜에서는 이 신제품이 햄과 비슷한 맛이지만 넓적다릿살로 만들지 않았기에 햄이라 이름 붙일 수 없었다. 호멜사는 100달러를 걸고 신제품 이름을 사내(社內) 공모에 붙였다. 여기서 호멜사 임원의 형제가 출품한 스팸이 채택됐다. '양념된 햄(spiced ham)' '남는 고기(spare meat)' '돼지 어깻살과 햄(shoulder of pork and ham)' '미국산 특수 가공육(specially processed American meat)' '특수 가공 미군육(specially processed army meat)' 등 여러 설(說)이 있지만 스팸이란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확실히 확인된 건 없다.
1939년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은 스팸에 엄청난 행운이었다. 미국 국방부는 스팸을 군용 식량으로 지정한다. 당시 햄과 비슷한 육가공품 중 상온(常溫) 보관이 가능한 제품은 스팸이 유일했다. 칼로 썰어 먹어야 하는 햄과 달리 스팸은 숟가락으로 퍼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다는 장점도 있었다.
국방부는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엄청난 양의 스팸을 납품받아 미군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스팸은 미군을 따라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한국뿐 아니라 하와이·괌·오키나와·필리핀 등 아시아와 영국 등 유럽 심지어 당시 연합군 동맹이던 소련에까지 지원됐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스팸을 "전시 별미(wartime delicacy)"로 추억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스팸이 없었다면 우리 군대를 먹일 수 없었다"고 고마워했다.
고기는커녕 먹을 음식조차 부족하던 시기를 한참 전에 벗어났음에도 한국에서 스팸은 간편하고 맛있는 밥반찬으로 자리 잡았다. 부대찌개는 물론이고 두툼하게 썬 스팸을 듬뿍 넣은 '스팸 김치찌개'를 최고의 소주 안주로 꼽는 주당(酒黨)도 많다.
하와이에서는 일본 오니기리(주먹밥)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구운 스팸을 밥덩이에 얹고 김으로 감싼 '스팸 무스비'를 즐겨 먹는다. 오키나와에서는 전통 볶음 요리 '찬푸르'에, 필리핀에서는 샌드위치·오믈렛·수프 등 다양한 음식에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스팸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는 큰 사랑을 받게 된 반면 유럽에서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사라지다시피 했다. 같은 전투식량 또는 구호물자로 소개됐지만 원래 햄을 먹던 서양에선 스팸이 '햄의 값싼 대용품'으로 여겨진 반면 햄을 몰랐던 동양에선 '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별미 고기 요리'로 인식됐기에 이런 차이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짭조름하면서 고소한 맛이 쌀밥과 유난히 잘
어울리는 데다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알맞다는 점도 아시아의 스팸 사랑을 설명하는 이유로 설명되고 있다.
6·25 휴전 후 미군 주둔부터 따지면 65년, 1987년 국내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것부터 따져도 한국인이 스팸을 먹은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이제 스팸을 한국인 식생활의 일부로 봐도 되지 않을까. 오늘 저녁 스팸 김치찌개나 얼큰하게 끓여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