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
[응급실]
지하 3층 주차장마저 차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그래도 간신히 한 곳 빈자리를 발견한 운전석 아내는 남보다 먼저 잽싸게 끼어들기 모션으로 핸들을 돌린다. 주차 간격들이 너무 좁아 조수석의 나는 먼저 내려야 차문을 열기에 수흴 할 것 같고, 수신호로 후진하는 것을 도울 겸 황급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
“응?”
나는 순간 신음소리를 내며 두 팔을 내 저었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어지러워 주저앉아야 할 지경인데, 앞이 깜깜해 지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 손에 주차장 기둥이 잡혀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니, 다시 어지러운 것은 사라지고 앞이 보이는데, 아내가 막 주차를 끝내고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나를 부축하러 다가온다. “또 어지러워요?”
“ 글쎄,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는데…”
“왜요?”
“지금 막 차에서 내리는 데 바닥에 쓰러 질 뻔 했지 뭐야. 언제 TV 화면을 보니까 사고 처리하는 과정에 부상자를 잘 못 다루어 더 큰 부상이나, 생명의 위험을 만든다드니, 여기서 응급실 갈 동안 내가 쓰러지고 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능청을 떨자, 아내는 정말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안다시피 부추기며 출입구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출입구 안쪽에는 다행히 세대의 휠체어가 대기 상태로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띤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부상(浮上) 가속도에 머리 쪽 혈류가 급속 하강하여 어지럼증이 더 악화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는 기우로 끝나고, 일층 응급실에 휠체어를 밀고 들어갔다. 응급실은 복도에서부터 대기해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나는 몇 차례 친 인척이나 가까운 친구가 큰 병원 입원 할 때, 일차로 거치는 곳이 응급실임을 보아왔고, 그나마 응급실 한쪽 구석 자리라도 얻어내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밖에서 실제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앰뷸런스나 119 소방차에 실려 와서 응급실 사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이름난 큰 병원의 경우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입원 희망자의 수에 비해 입원실이 모자라 대기하느라, 응급실을 수술실, 중환자실 혹은 장기입원 치료실의 전 단계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응급실 은 항상 만원이고, 많은 사람들이 북새통을 만드는 곳이다.
다행히 이 대학병원 노인 의료센터에서 약 처방을 위한 진료를 받아왔고, 오늘 오전에 이곳에 와야 할 사유를 전화 상담 해 둔 덕에 남 앞질러 수속은 끝이 나고, 응급실 구석자리 침대위에 드러누웠다. 응급실은 가운데 나지막한 칸막이 좌우로 넓은 방 두 개를 휑하니 터놓은 상태에서, 천정에는 형광등 조명시설이 눈부시도록 밝은 빛을 내려 쏘고 있고, 그 밑에는 촘촘히 환자용의 폭이 좁은 침상이 놓여 있으며, 사이사이 칸막이 비닐 커튼들이 몇 군데 말고는 모두 열린 채 레일에 걸려 있다. 천정이 휜 색에다, 벽이며 침대 커버는 물론, 드나드는 간호조무사와 의사, 간호사들의 가운이 모두 흰색의 천이니, 온통 백색 천지에 점점이 환자 보호자의 유색 의복들이 점박이 되어 있다.
내가 구석 두 개의 빈자리 중에 가장 구석자리 좁은 침대에 드러눕기 무섭게, 병원 조무사나 간호사가 잽싸게 매달려 심전도 전기 줄을 비롯하여, 링거 병의 호스, 채혈 혹은 주사를 위한 바늘집을 만들고,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감지하는 모니터에 전기 줄을 연결하느라 바쁘다.
이런 상황 중에, 나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상기하고 있다.
“오늘은 공과금 납부 할 일도 있으니, 나갈 일 있으면 일찍 서둘러 나갔다 옵시다.”
“당신 감기가 나한테 올랐나 봐요. 오늘은 좀 쉬어야겠는데, 공과금 내일 납부해도 되잖아요?”
“월말에는 사람들이 붐빌까 해서 오늘 내려 했는데…, 내일 같이 나가지 뭐.”
점심상에서 아내와 주고받은 말을 끝으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소파로 자리를 옮기는데
“어, 어”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마루에 나가 쓸어졌다.
“왜 그래요?”
“아까부터 좀 어지럽더니 이렇게 심하게 어지러운 건 처음이네”
나는 마루를 집고 간신히 일어서면서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얼른 손을 뻗혀 하루도 빠짐없이 사용하는 태불 위에 혈압계를 찾아, 급하게 혈압을 재어본다.
“얼마가 나왔어요?”
“95에 55에 40이네, 혈압도 너무 낮지만 맥박이 또 45야.”
“그렇게 오늘 아침에는 약을 먹지 달랬는데…, 약 기운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봐요.”
“어제 아침에 약 먹는 거 잊어버리고 나갔다 와서, 저녁 늦게 아침 약을 먹었지만, 오늘 나갈 일을 생각해서 미리 아침 약을 또 먹긴 했지만, 그 때문에 이렇게 어지러울까? 그렇지 않아도 요새 내 친구들도 어지름 증 때문에 쓰러져 병원에 가서 별 검사 다 받았다고 하드만, 그게 뭐 ‘기립성 저혈압증’이라나? 노인들 자리에서 벌떡 벌떡 일어나면 머리에 피가 밑으로 쏠려…”
“노인성 나쁜 병은 다 가진 사람이 매사 조심을 하지 않고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아내의 일침에 할 말이 없는 나는 내 병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내 딴은 초연히 대처 해 온 지난날들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관상동맥 경화 사실을 알고 미국까지 가서 심장동맥 우회수술을 성공적으로 잘 해냈다고 자랑하기도 올해로 만 23년이 지났고, 그 새 혈압 약은 조금씩 매년 키워 나가고, 집안 내력이라는 높은 혈당을 내리는 약도 투약 한 지 5,6년이 넘었다. 매년 겨울이면 더 숨이 차고 협심증 증세가 느껴지면, 그 때마다 혈압강화약이나 심장 약 처방을 바꾸어가며 잘도 견디어 왔다. 작년 초 겨울에는 나들이 따라가는 전철에서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한 협심증이 보통 때면 2,3분에 그칠 것이 5분이 넘도록 너무 오래 지속되는 현상에 놀라, 20년이 넘도록 주머니에 넣고만 다니던 비상 약 ‘니트로 글리세린’을 혀 밑에 녹여 먹고 안정을 한 일이 있었고, 두 서너 차례 그런 현상을 더 겪고서야 큰 병원치고는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S대 부속 병원 김 박사를 찾았다.
그 때 까지는 멀리 서울 시내 U종합 병원 최 박사에게 정기적으로 진료를 맡겨 왔으나, 너무 먼 거리에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기 마땅치 않아, 가까운 곳을 물색하려 특별히 최 박사에게 부탁했더니 스스럼없이 같은 대학 스승으로 모시던 김 박사를 추천 해 주었다. 앞 뒤 내력을 다 듣고 난 병원 노인 의료 센터 김 박사는 첫 눈에 자신에 찬 소신으로
“이미 부정맥이 와 있구먼, 한 마디로 ‘심박 세동’이라는 부정맥 증상인데, 요즈음 약도 좋아서 약물 치료 먼저 해 보고, 여차하면 수술해서 전기 요법으로도 대처 할 수 있습니다.”
하는 말이 무척 믿음직했다. ‘심박 세동’이라는 병명에 인터넷의료 정보도 읽어보고, 그 병에 좋지 않다는 카페인이나 알코올은 되도록 삼가게 되고, 무엇보다 그 날의 혈압이나 맥박을 조사하느라 매일 몇 차례 혈압계로 혈압을 제 보고 기록 하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처음에는 보름, 다음에는 한 달 간격으로 서너 차례 약을 바꾸어 가며 처방을 받고 나서, 가슴 숨 차는 느낌은 물론, 매일 몇 차례 재보는 혈압과 맥박은 점차 안정이 되어가다가, 금년 초에 약간은 빠른 맥박 수치를 낮춘다는 하트형 ‘콩고르’라는 맥박 감축 알약을 추가하고 나서, 몰라보게 안정된 표준치에 가까운 데이터가 나오자, 나는 물론 김 박사마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기쁜 결과가 되었다.
“이번 처방약이 이토록 환자 몸에 딱 들어맞는 것이 신통스럽습니다. 심장 박동이 좋아 졌으니 이제 석 달에 한번 약이나 타러 들리시고 다른 조치 필요가 없습니다.”
불과 한 달 보름 전 청진기를 가슴에서 떼면서 김 박사가 한 이 말을 듣고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우리 부부는 한시름 놓은 듯했다. 실제로 소화기능은 물론, 쉬 피곤하고, 이곳저곳 시원찮던 몸이 한결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한테 마다 자랑도 하고, 김 박사를 용한 의사로 추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주일 전부터 일과처럼 재보는 혈압계에 맥박 수치가 70을 전후해서 잡히던 것이 60을 지나 때로는 50에서 40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맥박에 대한 의료 상식을 들추어 보면, 맥박이 40전후면 위험한 상태로 알려지고, 달리 조치를 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단골 약방의 약사도 일차 의사의 재검을 권한다. 실제로 맥박이 낮은 시간에는 약간씩 머리가 어지럽기도 했으나, 매일 그러한 것도 아니고, 그 것도 오후 늦게 전 후해서 생길 뿐이고, 다음 처방을 위한 진료일자는 아직도 40여일 남았으니 며칠은 추이를 지켜봤다.
마침 다른 진료 받을 일도 생기고 해서 병원에 미리 전화를 하고 김 박사를 찾은 것이 며칠 전이다.
“음, 맥박을 낮추는 약이 너무 센 것이로군요. 약 봉지에서 하트형으로 생긴 알약을 반으로 쪼개고 먹도록 하시오 아마 괜찮아 질 것입니다.”
내 설명을 듣고 진찰을 끝낸 김 박사가 한 말이다. 내 생각에도 일찍이 이 약을 처방 받고나서, 빠르다고 생각하던 심장맥박이 신통하게 느려지며 안정 상태에 들었던 일로 미루어, 그 약의 효과가 이제는 축적되어 과다하게 맥박을 느리게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김 박사 말대로 아침마다 “콩코르”라는 알약을 반으로 줄여 투약하고 하루 이틀 만에 맥박은 70전후로 호전되었다.
바로 어제 아침에는 서울 시내에서 매달 있는 고교 동창회에 서둘러 시간을 맞추느라 아침에 약을 먹은 것으로 착각하고 그냥 나갔다. 아침 약 봉지에는 혈압 강하를 위한 알약에 맥박 조절 알약하며, 혈당강하 약 까지 모두 네 개의 알약과 한 개의 캡슐을 합해 모두 다섯 가지의 약을 몽땅 먹지 않은 것이다.
친구들과 만난 김에 점심에는 맥주도 한 컵 마시고, 바쁜 일이 없으니 당구를 치느라 두 시간 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당구 치는 시간에 소화불량과 함께 어지럼증과 약간은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있었으나, 점심에 자장면을 너무 맛있게 빨리 먹어 채한 것 때문으로 여기고 소화 재를 사다 먹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잘 넘길 수 있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서야 아내가 쏘아붙인다.
“저기 테이블에 내 놓은 약봉지가 아침에 안 먹고 간 것 아니오?” “어? 그러고 보니 아침에 약을 안 먹었네. 어쩐지 낮에 소화불량인줄 알았더니 그게…”
“감기가 아직 떨어지지도 않고, 몸도 성치 않는 사람이 뭘 그토록 나다니고 그래요!”
나는 얼른 약봉지에서 콩고르 반쪽을 분리하고 입에 틀어넣었다. “투약 시간이 10시간 늦었다고 별 일이야 있겠어?”
하는 심정 이였다. 오늘 아침 아침 식후 30분이면 예의 약 봉지의 약을 먹을 시간이다.
“어제 저녁에 약을 먹었는데 또 먹으면 너무 과하지 않은가요?” “그럼 좀 있다가 천천히 먹을까?”
이런 대화를 주고받고도 어느새 아침 9시가 되어서는 약 봉지를 입에 틀어넣고 말았다. 11시경 매일같이 혈압계 수치를 살피니 고혈압 90, 저혈압 60, 맥박 45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혈압과 맥박이 너무 떨어지네. 약 먹는 시간 때문인가?”
“오늘은 약을 안 먹을 걸 그랬나 봐요. 약 먹는 걸 너무 집착해서 원…. 다시 재 봐요”
혈압을 두 번 세 번 재 봐도 수치는 마찬가지로 나온다. 기계가 이상이 생겼나 하고 아내 혈압을 재보니 120-80- 69 아주 정상으로 나온다.
“좀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뭐”
하는 말로 얼버무리고 12시 가 지나 점심상에서 일어나오다 나도 모르게 현기증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고 만 것이다. 시계가 2시가 될 때 까지는 혈압을 몇 차례나 재보았다. 수치는 점점 나빠지며 맥박이 40을 밑돌더니 나중에는 혈압계에는 수치대신에 ERR라고 측정 불능으로 글자가 나온다. 몸을 추서려 조금만 움직여도 현기증이 심하게 느껴진다. 심장 수술 후 23년이 지났다고 자랑 했는데, 이제 한계에 도달했나 보다. 라고 느껴지며, 항상 생각 했던 것처럼 다른 고통 없는 최후이기를 갈망하면서, 혹시나 저 혈압으로 중풍 같은 후유증이 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가 엄습 해 온다.
나도 아직은 감기가 덜 떨어진 몸 이지만, 아내는 어제부터 심한 고뿔 증세를 보이고 몸도 못 가눌 듯이 늘어져 있다.
“감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나요?‘
“감기로 열이 오르던가. 혈압이 높아지면 몰라도 맥박이 40도 안되게 떨어지는 것이 이상한데, 병원에 나가 봐야 할까 봐.”
말을 하면서 아내 눈치를 살피는데,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당신 운전 하겠어? 내가 김 박사와 전화 통화를 시도 해 보려는데, 아마 전화하면 당장 오라고 할 텐데.”
“오라면 내가 운전 할 테니 전화 해 봐요,”
이래서 다이얼을 돌렸고, 결과는 오늘은 김 박사 진료가 없는 날이라고 했다. 전화를 받은 병원 여자 안내양은 아주 친절하게 나의 증상에 대해 여러 번 묻고, 노인 의료센터 다른 부서와도 상의 했다고 하면서, 예약 해 둘 테니 응급실을 사용하라고 일러주었던 것이 그간의 경과 사항이다.
응급실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내 몸에는 링거 같은 수액이 방울방울 떨어져 들어가고, 혈액 검사를 위한 혈액 채취 하느라 따끔한 주사침도 꽂았다. 모니터의 각종 수치가 분주하게 변하는 동안, 팔뚝에는 아예 혈압 검사를 위한 압축기가 계속 붙어있어 일정시간 간격으로 자동으로 검사를 하고 있다. 그새 심전도를 재보고, 등판에 필름을 깔고 X레이 촬영도 해 갔다.
의사의 문진이 몇 차례 있을 때, 나는 투약 시간을 조정하지 못한 일들을 설명하고, 그동안 직접 혈압을 측정하고 기록해둔 노트를 보여 주었다. 입력된 내 진료 기록들이 정리되어 있어 경과 사항을 잘 알고 있는 응급실 담당 의사는 “단순히 투약 시간 때문에 약물 과다 현상인지, 아니면 심장병의 다른 악화 인지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과가 나올 때 까지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그 동안에는 물을 포함해서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 합니다. 통증이나 어지러움 같은 느낌이 있으면 즉시 말해 주셔야 합니다.”
하고 설명을 해 준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가 넘었다. 베개가 마땅치 않아 아내가 어디서 딱딱하지만 받칠 것을 구해왔다. 당장은 크게 괴로운 곳도 없이 몸은 편안하다. 침대가 구석 자리이지만 이웃의 여러 환자들이 들고 나는 광경을 훤히 볼 수 있다. 응급실에 누워 있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고령의 노인이다. 유난히 할머니들이 눈에 많이 띤다. 특히 앞자리 두 환자가 이제 막 새로 들어와 진료를 받는데, 그중에 한 할머니는 무척 노쇠하여 몰골이 말이 아니다.
간호사에게 내가 들어올 때 맥박을 물어보니 35라고 했다.
“35면 위험 수준이 아닌가? 여기 오길 잘 했지?”
“그럼요, 적어도 맥박이 50은 넘어야 됩니다. 잘 오셨어요.”
“지금은 어때?”
“지금은 수액 주사로 위험단계는 아니지만 아직도 50전후의 수치이니 더 지켜봐야 됩니다.”
이런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는 아내도 자못 긴장한다. 감기 기운을 가진 채 응급실에 따라와 눕지도 못하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무척 힘들어 보인다. 이웃의 병상에서 쉴 틈 없이 간호조무사가 들랑거리며, 심전도, X레이 등의 검사하는 작업을 지켜보는 일이 고작이지만, 이런 것들을 지켜보느라고 시간은 덜 지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갑자기 내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응급실 입구 어디선가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큰 소리로 고통을 호소하고 단말마적인 신음 소리와, 의사의 검사 협조를 부추기는 말과, 보호자의 환자 나무라는 소리로 온 방안이 시끄러운 비명과 고성으로 가득하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그쪽에 관심이 다 쏠리고 있다.
“나 이거 안 해!, 나 나갈 거야. 어, 어음 아이고 나 죽어.”
“나가긴 어딜 가! 나가면 어쩔 건데!”
“어르신 자 자, 이거, 입을 다물고 숨을 들이켜야 합니다. 자 ,어서.” 소동은 한참 동안 계속된다. 나는 이 소동을 소리로만 듣고도 저 할아버지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면 저토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까 하는 상념에 젖어들며, 늙고 병들어 사라질 운명의 같은 처지의 한 사람으로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면서, 문득 2년 전, 년 말 아내의 급성 질환으로 A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던 일이 머리에 떠오른다.
전국, 아니 전 세계가 신종 독감의 공포에 휩싸여 있을 때다. 정부차원에서 ‘타미 풀루’인가 무슨 항생제를 전국의 병원에 배포하기에 역 부족이라고 법석을 떨고 있었다. 조금만 감기증상이 있던가, 두통이나 미열이 있으면 병원을 찾으니 병원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지역 혹은 단체별로 예방백신 주사로 홍역을 치루고 있던 시기에 아내가 감기 증상을 호소한다. 약사 출신이라 일반 감기에는 약이 없다는 상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약국에서 사다놓은 해열 진통 드링크제로 대처 하다가, 열이 계속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소화 불량에 두통이 계속되자 병원을 찾았다.
“당신은 건강 체질이라 병원 신세 지는 일도 드문데 웬 일이야? 몇 년 전 당신 신우염 때문에 잠시 병원 신세 진 일 있지만 지금도 그때 같은 것 아니야? 감기정도로 병원 가는 일이 없었는데…”
병원 가기 전에 내가 아내에게 한 말이다. 이곳에서 가장 번화한 오거리 단골 내과 병원을 찾았을 때, 무척 많은 사람들이 감기 때문에 먼저 와 있었다. 내가 통상 혈압약이나 혈당 강하 약을 처방 받으러 오기 때문에 잘 알지만, 언제나 마찬가지로 밀리는 환자를 소화 하느라 의사는 바쁘기만 하고, 청진기나 혈압계는 대는 둥 마는 둥, 문진을 하고나서 약 처방을 지시하기 까지는 체 2분도 걸리지 않는다. 아내 차례가 되어 의사 앞에서 체온을 제고 혈압을 재고하는 곳에 나도 따라 들어가 한마디 했다.
“체온이 가끔 아주 높아지는 것이 보통 감기하고 다른 것 같은데…, 오래 전에 신우염으로 치료받은 일이 있습니다. 잘 좀 살펴 주십시오.”
내 말을 들어서 인지 간호사를 불러 아내의 혈액 검사를 하라고 지시한다. 오래 기다려 다시 의사 앞에 불려 갔을 때 의사는
“특별히 다른 신체 이상이 없으니 요새 유행하는 독감 약을 처방 해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타미풀루’ 감기약 일주일 분을 약국에서 사서 복용했다. 괜스레 혈액 검사 하느라 시간과 돈만 팔만여 원을 허비한 샘이 되었다.
처방 한 약을 복용해도 감기 증상은 금방 호전 되지 않는다. 내일 모래면 주말이면서 아버님 제삿날인데, 아내가 몸져 누워있으니 큰일이다. 걱정하는 며느리에게도 독감 낮기 전에는 오지 못하게 했다. 곧 쾌차 할 줄 알았던 병세는 점점 심해 질뿐, 일어나 제사상 마련 할 엄두도 낼 수 없다. 나는 당황하여 혼자 어떻게 해결 할 양으로, 전기밥솥에 밥만 지워두게 하고, 제사 올릴 음식을 백화점 식품점에서 작만 하도록 시도 했다.
“제사 음식은 명절에나 미리 준비 해 놓지, 내일이 크리스마스 휴일인데 준비 한 데는 없지요. 동내 반찬 가게를 가 보세요.”
백화점 종업원 말을 듣고 동내 반찬 가게를 찾았으나, 제사 음식은 하루 전에 주문하면 잘 작만 해 주지만, 당장 오늘 쓸 물건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생선전, 부치게 몇 가지만 사 들고 집에 왔더니, 아내는 열이 펄펄 나고, 더 혼수상태가 되어있다. 집에 있는 아스피린 정을 추가 복용해도 열이 내리지 않는다. 주말 오후 병원에 다시 갈 수도 없다. 금세 일어나지 못하는 아내가 원망스럽지만 그냥 앉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 혼자서 일찌감치 제사상을 차린다고 시간을 소비했다. 상 위에는 밥 두 그릇 , 냉수 한 사발, 생선전, 부치게 각 한 접시에, 미리 사둔 정종 술 주전자가 전부다. 그래도 촛불을 켜고, 지방을 써서 붙이고 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소파에 누워있는 아내는 신음 소리만 내고 있다.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넘었다. 체온계로 아내의 체온을 재어 보니, 초저녁에 39를 넘나들던 수치가 무려 40도에 육박하고 있다. 이래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어디 야간 병원 응급실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급하게 네 차례 제사상 앞에서 제배를 하고나서, 두 아들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 했다. 다시 체온을 재어 보니 어라 수치가 42도에 다다랐다. 아내는 이제 온 몸을 벌벌 떨며 춥다고 한다. 결국 나는 전화기를 들고 119를 돌렸다. 앞뒤 이야기를 하고 주소를 말 하고, 아내한테 옷매무새를 고치고 간단한 세면도구랑, 옷가지를 챙기게 하고 기다린 지 10여분, 119 구급차는 제때 와 주었다.
“신종 독감이 확실하시다면, 가장 가까운 K종합 병원에 가시지요. 어떻게 내일은 토요일이고 바로 크리스마스 연휴가 닥치는 데 의료진이 걱정입니다.”
구급차 따라온 직원이 하는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체온이 급격히 올라 갈 줄 몰랐습니다. 상태가 심각 할 지도 모르니, 이왕이면 좀 멀지만 A대학부속병원으로 가 주십시오. 전에 며느리의 급한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때 보니 시설이 좋은 것 같습디다. 다른 합병증에 즉시 대응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내를 들것에 눕힌 채 구급차에 밀어 넣으며 주고받은 말이다. 멀리 가자는 말에 구급차 따라온 소방서 요원은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 했으나, 내가 곧
“연휴가 닥치는 데 미리 대처 못하고, 이렇게 두 분께 폐를 끼치니 미안 합니다 만, 이왕 와 주셨으니 선처바랍니다. 멀리 가시니 기름 값이라도 부담 해 드리지요”
하면서 양해를 구하자 차는 속력을 내어 밤길을 달렸다. 전화로 두 아들에게 행선지를 말했더니 벌써 가까운 거리까지 와 있었다. 소방차에 실려 온 신종 독감 환자라고 접수한 병원은 비교적 신속하게 응급실로 안내 해 주었고, 그것도 다른 환자에게 전염을 예방하기위한 특별이 마련한 곳이지만, 여전히 비닐로 막은 칸막이에 찬바람이 휑하니 들어오고 주위가 산만하여 서글프기 한량없어 보인다.
갖가지 조사를 하고 긴급으로 해열 진통의 조치에 환자는 안정을 찾는 것을 보고, 들여다보는 의사에게
“동내 병원에서 혹시 예전에 앓았던 신우염 증상인가 혈액 검사까지 했는데, 독감으로 판정하고 처방해준 약을 복용해도 전혀 차도가 없이 위험한 지경을 보고 달려왔습니다. 어디 마땅한 입원실에 옮길 수 있으면 선처 부탁드립니다.”
묵묵부답인 의사 대신에 간호조무사에게 부탁했으나 소용없었고, 두 아들이 와서 지켜보는 동안 나는 원무과에 몇 차례 들락거리고 대기하기를 두 시간 넘어 지나, 새벽 두시가 되어 서야
“다른 입원 실은 연휴 기간이라 빈방이 나지 않고, 특실이면 당장 옮길 수 있습니다. 특실 중에도 1인 실만 가능 한데, 일 40만원으로 입실 요금이 비쌉니다.”
하는 말에 동의를 하고 방을 옮겼더니, 방은 참으로 아늑하고 좋으면서 각종 소모품이랑 보호자 이용시설까지, 조금 전 응급실이 판자촌이면, 이것은 호화 주택임에 틀림없으나, 어쩌면 비싼 방에 입실을 유도하도록 그동안 애를 먹인 것 같은 심정에 기분은 좋지 않다.
만 이틀 밤 낮 동안 여러 가지 검사와 진료 덕분에 아내는 쾌차 했으나, 결과는 급성 신장염으로 판정이 나고, 이 병은 약을 쓰고 안정하면 쉽게 완치된다는 말을 전해 듣고 퇴원 할 수 있었다.
치료비가 보험 보조금을 공제 하고서도 비싼 특실 사용료 때문에 무척 많다. 나는 동내 병원 의사가 원망스러워 손해 배상 투정이라도 해 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내가 과거 신장 질환의 병력까지 말 해준데도 성의 있는 진단이 없이, 요새 유행하는 독감으로 가볍게 처방한 것이 괘씸하고, 그때 항생제 투여만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을 연휴에 응급실을 찾게 한 실수를 그냥 넘길 수 없어 동내 병원을 찾아갔다.
내가 진료 기록과 비용 명세를 보이며, 오진에 대해 불평을 하자 의사는 꿀 먹은 벙어리 시늉을 한다. 대기하는 수많은 환자를 염려해서 의사는 곤혹스런 얼굴만 하고, 한마디 사과하는 말도 하지 못한다. 내가 만약 큰 소리로 비용 모두를 배상하라고 떠들면 사태는 것 잡을 수 없이 커지겠지만, 배상청구는 소리쳐서 되는 일도 아니고 남의 영업만 방해하는 것 같아 마음을 가라앉히기로 하고
“연휴가 아니었어도 이렇게 놀라고 큰 비용이 나지 않았을 것을 참작 하더라도, 그날 혈액 검사하고서도 급성 신장염을 찾아 낼 수 없었다면 검사 비라도 돌려 줘야 내 기분을 풀겠소, 알아서 하시오.” 하고 다음 환자를 위하여 자리를 비켜 주니, 의사는 얼른 종업원으로 하여금 현금 8만 여원을 나에게 집어주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런 지나간 일을 회상하느라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으니,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데 그렇게 웃는 낯을 해요?”
하고 묻는다.
“응, 당신 2년 전, 년 말 연휴에 응급실 찾던 일, 그것 생각하다가 동내 병원 의사 생각이 나서, 허허허…”
“그래요? 나는 오래 전, 큰애 자동차 사고로 병원 다니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 두 차례 심전도 검사와, 매 30분 간격으로 자동 혈압 측정기가 작동 하고 있었다. 이때 앞자리에 있는 노쇠한 할머니 상태가 너무나 나쁜지 의사와 보호자가 밀담을 나누고 종업원들이 급하게 무슨 장치를 설치하는 광경이 보이는데, 아마 산소 호흡기를 매달아 비상사태에 대비하는가 여겼다. 그러나 종내는 환자 침상을 그대로 밀고 응급실을 나간다. 아마 중환자실이나 아니면 정규 입원실로 가는 것으로 상상되었다.
나는 이때, 아까 아내가 꺼낸 큰아들 교통사고 수습하던 일들이 새삼스럽게 뇌리에 떠나지 않는다.
벌써 20년이 가까운 세월이 지나 명료한 기억은 없으나 잊지 못 할 일들은 생생히 떠오른다. 큰애 준이가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고, 지금 K성모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다는 전갈을 받고 병원에 간 것이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다. 정오경에 급한 공중전화 걸 일로 교대 정문 앞 부근에서 도로를 가로 질러 길을 건너다 택시에 치이게 되고, 구급차가 응급실에 싣고 와서 보호자를 찾는데 상당한 시간이 허비 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휴대 전화기가 없으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준이는 다리와 머리를 크게 다쳐 완전히 혼수상태에 처해 있고, 응급실에서 최소 필요 조치만 할 뿐, 아직 수술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 차량 기사가 어디서 들었는지, 이 병원은 교통사고 환자처리에 아주 인색하기로 소문난 곳으로, 교통사고 환자가 궁극적으로 영업상 이익이 없는 사고 보험 수가로만 치료비가 정산되기 때문이라 했다. 가능하면 잘 아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응급실에 문의하면 담당의사가 없다는 말과 다른 외래 환자가 워낙 밀려 있다는 변명으로, 도대체 환자의 수술 치료에 대한 성의나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준이 어머니와 정정 긍긍하고 있는 사이, K 그룹 회사 이사로 있는 준이의 외삼촌 집과 의논 한 결과, 마침 일산 B 병원 정형외과 주임의가 외삼촌과 지기가 있어 연락이 되고, B병원으로 환자를 옮기면 늦더라도 직접 시술 해 보겠다고 연락이 왔다. 수속을 밟고 엠브란스를 불러 밤 10시가 넘어 환자를 실은 차가 B병원에 도착 한 것이 12시가 다 되었을 무렵이다. 그기에 도착해서 눈에 띤 것은 우리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교통사고 환자가 대기하고 있는 사실이다. 시간을 다투는 외과 수술이 너무 늦으면 큰 후유증이 올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 일행이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특별히 나오셨다는 기별과 함께, 수술실에 들어오라고 호명하는 간호사가 먼저 준이의 이름을 불렀을 때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랐다.
먼저 온 대기 환자는 듣는 말로는 부상이 더 심한 40대로써 보호자 는 나이 많은 시골 사람같이 보이는데, 병원 처분만 기다리고 우왕좌왕 하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지만, 애써 외면하고 우리는 준이의 병상을 밀어 수술실에 밀어 넣었다.
복도에서 서성거리기를 3시간이나 지나, 수술이 잘 끝났다는 연락과 함께, 준이는 중환자 입원실로 옮겨졌다. 다음 차례 바로 먼저 와 있던 환자는 의사의 휴식 시간 때문에 새벽까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병원 사람의 말에 당사자 보호자는 무척 실망 했으며, 우리 일행도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을 금 할 수 없었다.
꼬빡 밤을 새우며 입원 실 주위를 맴돌던 나에게 데리고 온 기사가 귀속 말로 전달하는 이야기는, 먼저 대기하던 그 환자는 수술을 시도했으나 너무 심한 부상으로 결국은 회생을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 말을 듣고 마치 우리가 차례를 뺏어서 그 사람을 살리지 못한 듯이 한동안 미안스런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 지금 응급실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최근에야 그때보다 환자 처리 시스템과 통신, 교통수단이 월등히 진보되었기 때문에, 그때 같은 불행한 일은 드물 것으로 생각 하면서도, 아직도 한 밤중, 주말이라도 되는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응급 처리를 받지 못하고 불행을 당하는 일이 비일 비재 할 것을 생각하며, 언젠가 친구가 미국 어디에서 차를 몰다 교통사고를 낸 것을 헬기가 동원되고, 급격한 수술조치로 극적으로 생명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20여 년 전 일이고 보면, 역시우리는 이제야 겨우 선진국 수준을 따라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멈추게 한 것은 초저녁 비명을 질러대던 이 방의 예의 할아버지가 다시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큰 소리를 지르며 치료를 거부하는 소동이 다시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응급실에서 나갔던 앞자리 할머니 환자 일행이 다시 침상을 밀고 들어와 처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나에게는 의사가 들어와 차분한 말투로 경과 사항을 설명한다.
“아버님은 긴급 수액 주사와 안정으로 혈압과 맥박은 안정이 되고 있으나, 맥박이 50이 넘는 수치로 지속 될 때 까지는 더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 혈액 검사 결과 심장 지수에 미세한 결함이 보이기는 하고, 심전도 상에서도 새로운 경색 흔적이 비치지만, 당장은 결론 낼 수없는 단계이니, 우선 보호자와 함께 저녁 식사라도 하시고 적어도 밤 11시 까지는 더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때 시계를 살피니 7시다. 아직도 네 시간이나 좁은 침상에 누워 있어야 한다. 아내를 시켜 지하층 식당에서 죽파는 집이 있으면 제일 비싼 죽을 사오라고 시켰다. 한참을 기다려 돌아온 아내의 손에는 카스텔라 빵과 병에 든 두유, 그리고 생수 병이다.
“아래 식당 점포는 다 철시 중이고 빵집에도 다른 것은 동이 나고 없어요.”
생각보다 카스텔라는 부드럽고 먹을 만했다, 아내도 다른 감기약 대신에 쌍화탕으로 감기를 다스린다. 몸을 일으켜 배를 채우고, 바로 옆 벽에 걸린 TV에서 말소리는 들리지 않으나 화면만이라도 보고, 가까운 다른 침상의 환자 들락거리는 광경을 살피고 있으니 그런 대로 시간은 잘 지나갔다. 앞자리 다시 들어온 나이 많은 할머니 보호자로 두 아들과 며느리로 여겨지는 세 사람이 너무나 쇠약한 어머니 앞에서 정정 긍긍 하다가 의사와 숙의 하려는 지 자리를 떠난 사이, 혼자 혼수상태로 누워 있던 할머니는 가느다란 신음소리와 함께 팔 다리를 무척 추운 듯이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보다 못한 아내가 지나가는 의사를 불러 할머니를 살펴 보야 될 것으로 주의를 환기 시키자, 이어서 담당 의사, 간호사, 보호자들이 모두 들어와 대응 조치를 취하느라 한동안 할머니를 달래고 덮을 것을 더 가져 오고 했으나, 할머니 사정은 나아지는 같지 않다.
종내에는 다시 산소통 같은 것을 매달고 응급조치를 취하는 가 여겼더니, 결국 다시 할머니는 침대에 실린 채 응급실을 나간다. 지나가는 할머니 얼굴은 이미 사색이 완연하고, 소생의 가망이 많지 않은 예감이 떠오르는 것은 우리 부부만의 느낌만이 아니고, 함께 나가는 환자 보호자나 병원 종업원 눈빛에도 역력하다.
나는 그 할머니가 최후를 이렇게 힘들게 맞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누구나 겪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비통함에 나 스스로 로 처연한 생각과 더불어, 이곳에 누워있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길고 짧은 차이는 있으나, 다 같이 최후를 향한 단계적 수순을 밟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가 최후를 맞을 때는 산소 호흡기를 물리고 중환자실에 필요 없는 연명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까 봐. “
“ 예, 요새 그렇게 하기위해 미리 유서를 써 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내 말에 아내가 덫 붙인 말이다.
“유서가 아니라 죽음의 품의 유지 위임장을 변호사나 의사에게 미리 써 두게 한다는구먼. 보호자들의 체면과 의료진의 책임이나 심지어 돈벌이 때문에 아무 보람 없이 최후를 맞는 이에게 고통을 연장시키는 행위야 말로 죄악이지.”
하고 말을 하면서, 언젠가 헐값의 국가 보조 ‘호스피스 병동’에서 괴로운 최후를 단축시키던 막내 동생에게 매정한 병원의 처사를 비난 했던 일이 실없는 생각이었다고 여겨졌다.
“오래 힘 드셨지요? 지금 시간까지 몇 차례 혈액 검사와 심전도 검사 등을 지켜봤더니, 약간의 심장 지수가 나빠진 것도 있지만, 투여 할 약의 양 조절 필요성 때문으로 결론이 났으니, 맥박 조정 약으로 처방된 두 가지 약을 이날부터 제외하고 드시고, 가장 가까운 날 김 박사에 진료 받을 수 있도록 사전 조치를 해 드릴 테니, 지금 퇴원 수속 하셔도 되겠습니다.”
11시가 되어 나타난 젊은 의사의 말을 듣고 침상에서 일어났다. 깜깜한 밤거리에 자동차를 몰던 아내가
“그래도 당신은 항상 운이 좋아요. 그래서 점쟁이가 당신은 명이 길다고는 했지만, 당신이 오늘 오전에 혼자 은행일로 나갔다가 쓰러지기라도 했으면 아주 큰일 날 뻔 했을 텐데, 내가 감기던 핑계로 말렸으니 망정이지……”
하고 말하는 말을 듣고, 나는 미소만 띤 채, 언젠가 큰일 날 날들의 환영을 보느라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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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봄 볕 같은 따스함이 넘치는 월주형! 내내 강건하시기를...
점점 가까워지는무엇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그것의 불안하고 불편 함이 서서히 다가온다. 아내와 둘이 있을때 감당 못할 일들이 더러 닦친다. 참 난감 할때가 있다 월주형의 이야기 일부 이지만 급한 질병으로 병원행은 해야하고 기동력은 없고 할때의 최근 경험이 많은것을 생각케 하더군요 .
琴松, 劍農, 관심 가지고 읽어주시고 댓글 더욱 감사합니다. 지금은 알약 한톨 빼고 안정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 보다 대형 병원의 응급실 실태가 아직도 미심스러워 쓰 보았던 것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