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사(龍泉寺)에서 운봉 상인(雲峯上人)에게 주다. 2수
시원한 옛 시냇물 섬돌에 들어서 울고 / 古澗泠泠入砌鳴
천 그루 숲의 나무는 산영을 둘러쌌구나 / 千章林木擁山楹
차 마시고 포단에서 잠깐 졸다 깨어 보니 / 蒲團半餉驚茶夢
한 줄기 솔바람이 소매 가득 시원하여라 / 一陣松風滿袖淸
* 산영(山楹) : 산의 바위를 깎아서 만든 돌기둥, 또는 산방(山房) 즉 산중의 집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후자(後者)인 듯하다
푸른 나무 그늘 중 한 가닥 길이 나뉘고 / 綠樹陰中一路分
반쯤 뵈는 암자 풍경 소리 구름 밖에 나간다 / 半菴淸磬出層雲
이곳 승려 타향의 나그네 보는 데 익숙해 / 居僧慣見他鄕客
석문에까지 와서 은근히 전송해 주는구나 / 相送慇懃到石門
-月沙先生集卷之四 / 甲辰朝天錄 上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하 (역) | 1999
〈용천사의 운봉스님에게 드림龍泉寺, 贈雲峯上人〉 二首。
古澗泠泠入砌鳴 옛 골자기 시원하고 시원하게
고간영영입체명 돌계단 아래로 들어오면서 울리고,
千章林木擁山楹 숲 이룬 천 아름 거목들은
천장임목옹산영 산중의 절간을 감싸고 있구나.
蒲團半餉驚茶夢 부들방석에 앉아서 조금 얻어 마셨는데도
포단반향경다몽 차 마시고 꾸는 꿈에 놀라고 보니,
一陣松風滿袖淸 한 차례의 소나무 바람
일진송풍만수청 온 소매를 가득 채웠구나.
綠樹陰中一路分 푸른 수목 그늘 가운데서
녹수음중일로분 한 가닥 길 갈라지려고하는데,
半菴淸磬出層雲 반 토굴 암자의 맑은 경쇠 소리는
반암청경출청운 층층의 구름을 뚫고 울려나오네.
居僧慣見他鄕客 이 절의 중들 타향에서 온 나그네들
거승관견타향객 만나보는데 익숙하여,
相送慇懃到石門 석문까지 따라 나와서 나를 은근하게
상송은근도석문 송별하네.
-졸역
*용천사龍泉寺: 중국 요양의 천산千山에 있는 사찰. 운봉은 그 사찰의 주지, 월사선생 41세, 명나라에 정사로 나가는 길에 이 절에 들렸음. 이 시의 배경에 대하여서는 다음에 첨부한 저자 자신의 설명문인 〈유천산기〉를 참조 요망.
*이정구李廷龜(1564-1635): 호는 월사月沙, 조선 중기의 명 문장가이며, 중국어에 능통하고 외교적 능력이 탁월하여 여러 차례 중국을 다녀오고, 예조판서를 역임하고, 대제학, 우의정에 오름.
*간澗: 양쪽 산 틈 사이로 흐르는 물
*령령泠泠: 맑은 모습이나, 산뜻한 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이면서 의태어.
*체砌: 섬돌, 돌계단.
*천장: 장(章)은 큰 재목. 《사기·화식열전》: “산에는 천 아름들이 재목이 있다山居千章之材”
*산영: 산기슭의 절. 진나라 후주陳後主 <밤 정자에 기러기 넘어 가다夜亭度雁賦>: “봄에 절간을 바라보니 해는 따뜻한데 이끼 생겨났네春望丨丨, 日暖苔生”
*다몽茶夢: 낮에 차 한잔 마시고 잠간 졸면서 꾸는 꿈. 송나라 황정견黃庭堅 〈묵헌 화준 장로에 대하여 적음題黙軒和遵老〉: “평생 동안 삼업에 깨끗하고, 속세에 살지만 정말 초연하시네. 소나무 바람은 아름다운 손님들과 함께 즐기시고, 차 마시고 잠간 꾸는 꿈 작은 스님이 원만하게 해몽 하였다네平生三業凈, 在俗亦超然.…松風佳客共, 茶夢小僧圓”
*포단(蒲團) : 부들로 짜서 만든 둥근 방석으로, 흔히 승려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무릎을 꿇고 절을 할 때 사용한다. 당나라 구양첨(歐陽詹) 〈영안사 조스님의 방(永安寺照上人房)〉: “초석의 부들방석 먼지를 쓸지 않고, 솔밭의 바위에는 사람이 없는 듯草席蒲團不掃塵, 松間石上似無人”-고전db 각주정보
*만수청滿袖清: 원나라 승려 영상인英上人 〈늦여름에 호수에서 배를 띄우고夏晩泛湖〉: “마름 뜯는 사람들 노래 가냘프고 가냘픈데 그 어느 곳에서 부르는가? 온 소매에 맑은 바람 가득하니 뼈 속까지 신선으로 변화하네菱歌裊裊知何處? 滿袖清風骨欲仙”
*일로분一路分: 남송 육유陸游 〈산수 모형 안의 조그마한 못假山小池〉: “연화봉은 세 봉우리 대치하고 있는데, 무릉도원 찾아 가는 한 가닥 길 갈라져 있구나蓮嶽三峰峙, 桃源一路分”
*반암半菴: 반 토굴, 반 지하의 암자. “菴”자는 “庵”자와 통용. 송나라 갈승중葛勝仲 〈소온의 석림곡 초당시에 화답하여和少蘊石林谷草堂〉: “반지하실 암자 한가한 땅이 만약 나를 용납하여 준다면, 곧 일생을 여기서 머뭇거리면서 살리라半庵閒地如容我, 便足徜徉了一生”
*청경淸磬: 석진정(釋眞靜) 〈거사 이영의 시에 차운하며[次李居士頴詩] 〉: “눈 오는 밤 언 병이 주춧돌에 얼어붙고, 구름 낀 아침 경 소리가 산 밑에 울려오네雪夜凍瓶黏柱礎 雲朝淸磬響山椒-동문선 제14권 칠언율시(七言律詩), 고전db에서 인용
*석문石門: 길 어귀를 막고서 있는 바위, 여기서는 이 신비한 절로 들어가는 길 어귀에 서 있는 바위 문.
이백(李白)이 젊어서 은거하던 곳으로, 은자가 사는 곳을 뜻한다. 이백의 〈하도귀석문거(下途歸石門居)〉에 “석문의 흐르는 물엔 온통 복사꽃이 떠 있네.〔流水徧桃花〕”라는 구절이 있다.-고전db 각주정보
[참고]
〈천산 유람기(遊千山記)〉
좁은 이 땅에 답답하게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것을 장쾌한 유람으로 여긴다. 나는 무술년(1598, 선조31) 겨울에 주문(奏文)을 받들고 북경(北京)으로 갔는데, 당시 내 나이 아직 젊어서 지나가는 곳마다 반드시 마음껏 경치를 찾아다니며 구경하였다. …
갑진년(1604, 선조37)에 또 주문을 받들고 요양에 이르러 한 수재(秀才)를 만나 천산(千山)으로 가는 길을 탐문하였다. …용천사(龍泉寺)를 찾아가니, 골짜기는 깊고 험준하며 등라(藤蘿)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주승(主僧) 혜문(惠文)은 호가 운봉(雲峯)으로, 시를 잘 짓고 바둑을 잘 두었다. 방의 벽에는 세 폭의 족자가 걸려 있었으니, 학사(學士)들이 준 금자(金字)로 쓴 서(敍)와 시(詩)였다. 작은 요사(寮舍)는 정갈하고 고요하며 좌우에는 불경과 다로(茶爐)가 놓여 있어 티끌 한 점 없이 탈속한 분위기였다. 그윽한 여울이 콸콸 흘러 섬돌을 통과하여 우물 모습을 이루고 절구 모습을 이룬 채 지게문을 돌아 흐르면서 그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였다. 중이 다과상을 차리고 반갑게 맞이하기에 함께 가서 서각(西閣)을 구경하였으니, 바로 중 보진(普眞)이 사는 곳으로 씻은 듯이 맑아 인간 세상의 경계가 아니었다.
…
절들은 다 구경하지 못하고 용천사로 돌아오니, 주인(廚人)이 벌써 저녁을 준비해 두었고 해도 지고 있었다.…저물녘에 동구 밖 산촌(山村)으로 나가서 유숙하였다. 영원사의 중 보초, 용천사의 중 혜문, 보진과 대여섯 명의 젊은 중들이 교자(轎子)를 잡고 이별을 몹시 아쉬워하며 5리쯤 길을 배웅해 주었다. 내가 각각 시를 지어 증별(贈別)하고 중추(中秋) 돌아오는 길에 단풍과 국화가 한창일 때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하였다. -월사집 제38권 / 기 하(記下)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하 (역) | 2003
[해설]
필자는 최근 몇 해 동안 북한산 곁에 살면서 북한산에 관하여 선현들이 적은 시문을 좀 조사하여 본 일이 있었는데, 월사 이정구 선생이 쓰신 북한산 기행문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 -국역 월사집 제38권 / 기 하(記下)을 찾아서 매우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놀라웠던 것은 그 분이 40세에 이미 예조판서를 역임하시고, 여가를 틈타서 북한산을 찾아들어 가는데, 악공 몇을 데리고 가면서 산길에 들어서자 노상 퉁소를 불게 하였다는 것, 중들의 도움을 받아서 백운대 정상까지도 올라갔는데, 그 험산 산 위에까지 역시 악공을 데리고 올라갔고, 술까지 지고 가게하여서 그 위험한 산 꼭데기에 올라가서도 역시 술판을 벌리고 노래를 연주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보다 조금 앞서 공무로 강원도에 출장을 나갔을 적에도 틈을 내어 금강산 구경을 하였는데, 이때도 역시 악공을 데리고 다니면서 노상 노래를 연주하게 하였다는 것이다.-이 이야기는 유홍준 교수의 금강산 답사기 책에도 소개되어 있다.
지금 이 시를 보니 중국의 사신으로 나가는 길에도 잠간 틈을 내어 요양근처의 천산산맥에 속한 천산(높이 708,3m)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인데, 그 때는 악공을 데리고 갔다는 말은 보이지 않고, 다만 같이 가는 부사와 서장관을 데리고 갔는데, 그 두 사람들이 모두 제일 깊은 곳까지는 따라다니지 못하였다는 것을 보니, 이 월사 선생의 체력과 호기심은 매우 특출하였던 것 같이 생각된다.
이렇게 천산을 찾아가본 기록은 흔하지는 않지만, 딴 연행록에도 더러는 전하고 있다.
이 시를 지은 배경과 작품의 내용은 위의 참고 난에서 인용한 월사선생님 자신의 설명도 워낙 자세한데다가, 역주도 매우 상세히 달았으므로 여기서 별도로 다시 부연 설명할 말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시는 그렇게 쉽지가 않게 보여, 몇 마디 더 첨부하여 보고자한다.
시의 제목에서 용천사의 주지스님인 운봉스님에게 드린다라는 말이 들어 가 있으니, 시에서 당연히 그 스님의 후의에 감사한다는 뜻이 담겨져야만 한다. 첫째 시의 앞의 두 구절은 심산궁곡에 위치한 이 절의 훌륭하면서도 독특한 환경을 노래하였다. 다음 두 구절은 이 절에서 받은 차 대접과 간단한 환대만으로도 이미 꿈길을 헤매는 것 같은 행복감에 취하게 되고, 마음과 몸이 한결 밝고도 맑아짐을 “한 바탕의 시원한 솔 바람이 소매를 가득 채웠는데[一陣松風/滿袖], 그렇게 가득 찬 것은 오로지 맑은 것뿐이라고[滿袖/淸]” 스스로 놀라워하고 있다.- 이 일곱 자 구문에서 “만수”라는 말은 앞의 넉자를 받을 때는 술어가 되지만, 뒤의 석 자 안에서는 그 다음에 나오는 “맑을 청”자의 주어가 되기도 한다. 이런 구문을 체계식遞繫式이라고 한다. 하여튼 “소매에 무엇인가 가득 찬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좋은 솔 바람이요, 맑은 것이다.
둘째 시의 첫째 구 마지막에 나오는 “나눌 분分”자는 위의 고전db의 번역과 같이 “나누어지고”라는 뜻으로만 볼 것인가? 만약 “나누어지고” 라고 한다면, 이 산속 깊이 숨어 있는 절에서 되돌아 나가는 길에 다른 데로도 통하는 딴 길이 또 나온다는 뜻인가? 필자는 여기서 녹엽이 무성한 나무그늘이 온천지를 뒤덮고 있기는 하나[綠樹陰中] 그래도 그런 무성한 밀림의 음달 가운데서도 저녁이지만 다행히 한 가닥의 조그마한 길을 간신히 “분간하여 낼 수는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여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작별하는 순간을 중시한 것으로 보아서 우리가 내려가는 길과 스님들이 마중나왔다가 되돌아가는 길이 나뉘어 지는 것으로 보고자 한다.
바로 그 다음 구에 나오는 말은 용천암이라는 절을 떠나서 밀림 속에서 저녁 때 겨우겨우 길을 찾아가면서 내려와서 이제 서로 헤어지려는데 보니, 그 반토굴의 암자에서 울려나오는 경쇠 소리는 매우 맑게 산등성이를 덮고있는 층층의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분명하고 생생하게 여기 까지 들린다는 말일 것이다.
마지막 두 구절의 뜻은 어려울 게 없다. 위에서 인용한 기문에 적은 그대로 이다. 다만 여기 사용된 “상송相送”이라는 말에서 “서로 상” 자는 여기서는 “서로”라고 풀기 보다는 오히려 “나를”(또는 우리들을)이라고 풀어야 더욱 적절한 번역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