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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5월 12일 어버이주일설교
○ 창세기 48장 15-20절 부모를 공경하라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대부분 어버이들은 어린이날을 잘 기억하고 지켜줍니다. 그래서 어린이날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안에서 행복합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이제는 자녀들이 늙으신 부모를 섬기면서 살게 되며, 또한 어버이날에 부모를 위해 부모가 기뻐하실 만한 무엇인가를 해드립니다.
지난 주에 큰 딸 예지가 왔었는데 어버이날 선물로 약간의 용돈을 주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냥 돈만 주고 간 것이 아니라 자기가 우리 부부의 선물이라고 하면서 선물 테이프에 돈을 매달아 주고 갔습니다. 어릴 때는 우리가 용돈을 주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용돈을 받는 나이가 되어 가고 있음을 절감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행하고 계신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앞세대는 뒷세대를 위해서 살고 뒷세대는 앞세대를 공경하면서 또다시 뒷세대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위해 살며, 하나님이 주신 복을 뒷세대에 계승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함께 읽으신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야곱과 그의 아들인 요셉, 그리고 야곱의 손자요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관계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시작은 야곱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요셉이 듣는 부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들인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됨으로 인해 말년을 애굽에서 17년 동안 평안하고 행복하게 보냈던 야곱은 이제 자신이 할아버지였던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처럼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야할 때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신의 뒤에 남은 아들들 열두 명과 손자들에게 죽기 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전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애굽의 총리로 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자신에게 문병을 온 것입니다. 그때 야곱의 나이는 147세였습니다. 그 당시는 사람들이 빨리 죽는 시대였는데도 하나님께 복을 받았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장수를 하다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모두가 천국에 있음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11절입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여러분은 부모로써 자식들에게 생애의 마지막에 무엇을 남겨주려고 생각하십니까? 재산입니까?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재산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이고 정신적인 복을 물려주는 부모들은 매우 소수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영적인 것을 남져주기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것을 물려준다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과 함께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자신을 찾아 왔을 때 야곱은 침상에서 힘든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침상에 기대어 요셉과 두 손자를 맞이했습니다. 그의 몸은 늙어 더이상 거동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의 정신은 언제나 맑고 영롱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고 야곱 역시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을 만나주시고 신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요셉과 두 손자에게 전합니다. 이것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반드시 해줘야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것을 빼놓고 다른 것은 다 해주는 부모들이 많은 것은 그들이 대부분 육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신은 잘되기를 바라면서도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는 그다지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실례로 대학 떨어진 것은 마음 아파하고, 입사시험에 떨어진 것은 마음 아파하면서도 신앙생활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전혀 마음 아파하지 않습니다. 자녀의 영혼보다 육신의 일에 더 마음이 가고, 또 육신이 잘 안되는 것을 영혼이 잘 안되는 것보다 마음 아파하는 것은 그가 육신에 속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야곱은 참으로 모나고 힘겨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귀히 여기셨습니다. 이로인해 연속되는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둘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돈독해졌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창세기 48장 3-4절입니다.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루스는 벧엘의 옛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에서 만나주시고 야곱의 장래에 함께 하시면서 복주실 것을 말씀하셨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외삼촌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일할 때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손들은 계속해서 태어났습니다. 무려 열한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외삼촌의 집에 머무는 20년 동안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은 외삼촌의 집에서 나와 베들레헴 으로 갔을 때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라헬은 그곳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에 대한 설명이 창세기 48장 7절에 나와있습니다.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영적인 복을 계승할 요셉에게 말합니다. 5-6절입니다.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이들이 비록 애굽에서 태어났을지라도 이들은 르우벤이나 시므온처럼 아들의 분깃을 받을 것이라고 요셉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아들들은 당사자들이 복을 받았는데 반해 요셉은 두 아들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분깃을 받는 것으로 열 두 지파에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 설명을 하던 야곱이 그들에 대하여 요셉에게 묻습니다. “너와 함께 온 이들이 누구냐?” 이는 야곱이 눈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묻는 질문입니다. 요셉이 자신의 두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그들을 가까이 오게 하여 그들을 보면서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 앞에 있는 두 손자를 축복하면서 자기의 오른 쪽 앞에 앉아있는 큰 손자인 므낫세에게는 왼손을, 그리고 왼쪽 편에 앉아있는 작은 손자인 에브라임에게는 오른손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축복한 내용이 14-15절입니다.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4절의 앞부분을 보면 요셉을 위하여 두 아들을 축복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손을 어긋 맡기고 축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 요셉이 아버지의 그런 행동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속으로 아마도 아버지가 잘 모르셔서 손을 어긋 맡기셨나보다 하고는 아버지의 손을 똑바로 잡아주고 싶어 했습니다. 자신은 큰 아들이 더 큰 복을 받는 것이 질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손이 바뀌었다고 말하면서 이 쪽이 큰 손자이고 저쪽이 작은 손자라고 말씀드리면서 손을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말합니다. “나도 안다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여러분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들이 알아야할 교훈 몇 가지를 이 성경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친정 부모나 시부모를 찾아뵐 때 가급적이면 자녀들을 동반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기 혼자 찾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혼자 가지 않고 두 아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나이드신 자기 부모를 찾아갈 때 혼자 가거나 부부만 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자녀들도 데리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부모님에게 대하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부모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대부분의 행동은 학습을 통해 배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부모님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과 또한 부모님에게 대하는 것을 자녀들이 볼 때 그들은 부모님을 섬기는 사랑의 마음과 하는 행동을 보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여러분들과 부모님의 의견이 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가요? 많은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납니다. 부모가 생각하는 것과 자녀가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똑같은 집은 없습니다. 그럴 때 대부분 서로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자기는 옳고 자기 부모는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 역시 이렇게 생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아들인 요셉의 뜻과 아버지인 야곱의 뜻이 서로 맞지 않습니다. 아들인 요셉은 당연히 장자인 므낫세가 장자권과 함께 더 큰 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인 야곱은 차자로 태어나 장자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 역시 장자의 명분을 요셉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손자에게까지 이어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큰 손자보다는 작은 손자에게 더 정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손자에게 더 큰 복을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들인 요셉과 다른 점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둘의 뜻이 대립될 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우선 이것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장자에게 복을 많이주고 차자에게 적게 주는 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손자들을 향한 사랑의 크기 문제입니다. 여러분들 역시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덜 사랑하는 사람이 있듯이 어른들 역시 누군가를 더 사랑하는 자녀나 손주가 있고 덜 사랑하는 자녀나 손주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마음의 이끌림인지라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생각을 기뻐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존중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뜻도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도 꼭 옳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하면 아버지가 다른 열 명의 형제들보다 자신을 더 특별히 사랑했던 것까지 부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셨던 아버지를 사랑했고 그런 아버지가 자신의 자식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실 때 좋아하며 감사했을 것입니다.
다만 자신의 마음은 장자가 차자보다는 우선권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잠시동안 아버지가 손을 어긋맡겨서 장자보다 차자에게 더 큰 복을 비는 것을 보고 좋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속으로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했고 그 말을 들은 야곱은 “나도 안다 하지만 형인 므낫세도 복을 받을 것이지만 동생인 에브라임은 더 큰 복을 받기를 원한다”고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곧 아버지의 말씀에 맞추어 자신의 생각을 조정했습니다. 축복을 주는 권한은 아버지에게 달려있고 그 복을 주실 분은 하나님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역시 여러분의 생각과 여러분들의 부모님의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또 여러분의 생각과 여러분의 자녀들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신앙적인 어떤 부분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기에 그 점은 부모님의 의견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부모님이 위배하신다면 그때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은 영생의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나눌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막무가내로 우기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설득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할 일입니다. 그래서 이를 위한 기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랑도 유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여러분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적인 문제가 아니고 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면 여러분들은 부모님에게 양보의 미덕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여러분들의 가족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다투는 이유도 보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이나 우선순위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방법이 더 효과적이냐 하는 것과 무엇을 먼저 해야하는가에 대한 것을 놓고 남편과 아내가 다툽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양보해도 사는 데 있어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상대방이 하자는 것 먼저 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나중에 해도 됩니다. 물론 때와 시기는 아무도 모르기에 그런 선택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난 번에 비가 많이 왔을 때 경상북도 합천군에 비가 갑작스럽게 많이 왔습니다. 그로인해 딸기와 토마토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출하를 며칠 안남겼는데 밭에 물이 넘쳐서 열매가 다 썩어버렸습니다. 이로인해 수확과 많은 돈을 벌 것을 기대했던 농가들의 피해가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그런데 농가에서는 그것을 인재라고 표현했습니다. 왜 그렇게 주장합니까? 거기에 도로 공사를 한다고 임시도로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강을 건너가는 길에 다리가 아닌 임시 도로를 만들면서 냇가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깔고 그 가운데 둥글고 큰 콘크리트 배수관을 세 개 설치해서 그리로 물이 흐르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비가 안오거나 적게 올 때는 자기 역할을 했지만 비가 많이 오니까 그 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넘쳐서 옆에 있는 농가와 밭으로 흘러 들어간 것입니다. 그 양이 너무나 넘쳐서 하우스 속으로 밀려들어가 밭 작물인 토마토 밭에 넘쳐서 그 속에 잠긴 나무와 열매들이 물러져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장래에 일어날 일을 알수 없습니다. 아랫 사람들 중 누군가가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이야기해도 윗 사람이 “무슨 소리야 이 지역에는 그런 큰 비가 오월에 내린 경우가 없어”하면서 거부하고 자기 주장대로 밀고 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해도 썩어버린 열매들을 돌려받을 수도 없고, 또 국가에서 그 돈을 배상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알 수는 없습니다. 설사 그 담당자를 문책하고 해고를 시킨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것이 사람의 한계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대통령이 잘못 선택해서 일이 벌어지면 대통령도 해고시켜야 합니까? 해고시키고 다른 대통령을 세우면 엄청나게 벌어진 각종 재앙이 해결됩니까? 인간은 최선을 다할지라도 하나님이 그 일에 대하여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가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이 바른 선택을 하도록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만이 미래를 아시며 미래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두 손자와 열 두 명의 아들들에게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축복은 후에 다 이루어지게 됩니다. 누구의 역사입니까? 야곱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야곱은 수많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붙잡았고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사랑하셔서 영적으로 그와의 친밀한 관계를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이 빈 모든 복을 하나님은 들으셨고 그렇게 역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녀들의 복을 빌어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을 공경하시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예수님도 열 두 살 때 잠시 동안은 아버지의 집인 성전을 떠나 하나님께서 사역을 하라고 명하실 때까지는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을 도우셨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원리이며 도리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부모님의 의견을 존중하고 부모를 공경하면서 순종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로인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게 하실 뿐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영원토록 모시고 사는 복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