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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의 기치로 노동자 총단결을 이루자!
- 63년 만에 이름을 되찾은 ‘노동절’의 의미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2026년 5월 1일, 한국 사회는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1963년 이후 ‘근로자의 날’로 왜곡되어 왔던 명칭이 63년 만에 ‘노동절’로 회복되었고, 처음으로 전 국민에게 적용되는 공휴일로 지정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노동의 의미와 위치를 다시 세우는 중요한 계기이다.
올해 세계노동절 136주년을 맞아 전국 14개 지역에서 동시에 열린 민주노총의 “열사 정신 계승!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쟁취! 원청교섭·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 전쟁 중단 평화 실현! 가자! 노동자 시대로! 2026 세계노동절대회”와 한국노총의 “되찾은 노동절, 더 큰 전진으로 주도하라! 한국노총 5.1 노동절 전국노동자대회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절을 둘러싼 역사와 현실,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본다.
노동절의 기원, 자본과 국가의 폭력에 맞선 투쟁
세계 노동절은 19세기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비롯되었다. 17세기 영국의 식민지 시기부터 아프리카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켜 농장의 노예로 삼았던 미국의 자본과 정권은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에 대한 극단적 착취와 수탈, 억압과 폭력을 일삼았다.
미국은 1776년 독립을 선언하고 1787~1789년 제헌을 거쳐 13개 주로 연방정부를 출범시켰다. 이후 19세기에는 서부 개척과 함께 북미대륙의 원주민을 대량 학살하고 영토 확장과 산업화를 본격화하였다. 1861년~1865년 미국의 남북전쟁은 농장주-노예제 기반의 남부와 산업자본 중심의 북부 간의 군사적 충돌이었다.
노예제가 철폐되어 신분에서 해방되었지만,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무산대중의 먹고 살길은 저임금·장시간·열악한 환경에서 노동력을 파는 것뿐이었다. 당시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은 하루 14~16시간, 주 60~80시간, 휴일·야간노동도 다반사였지만, 임금은 비숙련 노동자 하루 약 1~1.5달러, 숙련 노동자 하루 약 2~3달러, 여성·아동 노동자는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10세 미만도 허용된 아동노동이 광범위하게 있었다.
미국 산업자본과 정치권력의 이 같은 가혹한 처사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1886년 5월 1일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시카고에서 시작된 총파업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지만, 경찰과 자본의 폭력적 탄압으로 이어졌다. 5월 3일 맥코믹 공장의 노동자 농성 투쟁은 자본 측의 대체인력 투입, 파업 깨기 시도에도 흔들리지 않자, 경찰이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총기를 발포해 노동자 4명이 사망했다. 이에 항의하여 5월 4일 헤이마켓 광장의 약 3천 명의 야간 집회에서 의문의 폭발과 경찰의 무차별 총격으로 7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때 강제 연행, 구속되어 1887년 시카고 교도소에서 사형당한 노동운동가 4인 중의 어거스트 스파이즈(August Spies)는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외쳤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단 말인가!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
이 사건을 계기로 1889년 7월,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맞아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5월 1일을 세계 노동절로 제정했다. 이듬해인 1890년 5월 1일 첫 노동절 대회가 개최되었으며, 이후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과 연대를 상징하는 날로 기념되고 있다. 올해가 세계 노동절 136주년이고, 시카고 5.1 투쟁의 140년이다.
한국 노동절의 왜곡과 회복
우리나라 노동절 투쟁의 기원은 일제강점기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 운동에서 비롯된다. 3.1운동 이후 1921년 4월 조선노동공제회가 창립되어 상호부조와 생존권 보호에 나섰다. 1922년 10월 결성된 조선노동연맹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도 노동자의 권리와 생존을 지키기 위한 전국적 조직이었다. 이 연맹의 주최로 1923년 5월 1일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약 2천여 명이 참가한 노동절 대회가 개최되어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적 출발을 알렸다.
당시 일제의 강력한 탄압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조직적 저항을 이어갔다. 양말공, 인쇄공 등 여러 업종 노동자들이 휴업 투쟁에 나섰고, 집회와 비공개 활동을 병행하며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실업 방지 등을 요구했다. 1920년대 후반 조선의 공장 노동자는 약 10만 명 규모로 추산되는데, 이러한 초기 노동절 투쟁은 계급적 자각과 집단적 권리의식 형성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고 1930년대 이후 일제의 폭압 속에서 비합법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으로 이어졌다.
해방 이후 노동운동은 더욱 급속히 성장했다. 1945년 11월 결성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는 약 40만 명의 조합원을 기반으로 한 대중적 조직으로 발전했으며, 1946년 노동절에는 수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이는 해방 공간에서 노동자들이 사회의 주체로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후 미군정과 그 앞잡이들은 노동운동의 정치적 잠재력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권은 전평을 약화시키고 말살하기 위해 어용 대한노총을 지원 육성했으며, 그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변경해 1958년부터 적용했다. 이는 국제적 노동절인 5월 1일의 역사성과 투쟁성을 희석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4.19혁명의 열기를 군홧발로 뭉갠 박정희 5.16쿠데타 세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1963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명칭 변경했다. ‘노동’이라는 계급적 개념을 제거하고, 노동자를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을 위한 생산요소로 재규정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당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연간 3,000시간을 상회할 정도로 장시간 노동이 일반화되어 있었고, 이는 OECD 평균(약 2,000시간 내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전환점은 1987년이었다. 6월항쟁과 이어진 7~9월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약 3천 건 이상의 파업이 발생했고, 신규 노동조합이 수천 개 설립되면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절의 역사적 의미를 회복하려는 요구도 본격화되었다. 1989년 5월 1일에는 연세대학교 노천광장에서 약 5천여 명의 노동자가 참가한 가운데 노동절 행사가 개최되며 ‘5월 1일 노동절’의 복원이 현실 정치 의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김영삼 정부는 1994년 ‘근로자의 날’을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변경했다. 그러나 명칭은 여전히 ‘근로자의 날’로 유지되었고, 노동의 역사성과 계급적 의미는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로 남았다. 이후에도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요구가 이어진 결과, 마침내 2026년 ‘노동절’ 명칭이 공식적으로 복원되었다. 이는 1963년 명칭 변경 이후 63년 만의 일이며, 동시에 전 국민에게 적용되는 공휴일로 지정되었다는 점에서 제도적 진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한국 노동절의 역사는 단순한 기념일의 변천이 아니라, 노동을 둘러싼 권력과 사회의 인식 투쟁의 역사이다. 식민지 시기 생존권 투쟁에서 출발해 독재정권의 억압을 거쳐 민주화 이후 권리 회복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노동절은 노동자가 사회의 주체임을 선언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아 왔다.
왜 ‘열사 정신 계승’ ‘원청교섭·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인가
‘열사정신 계승’은 보통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전국노동자대회의 타이틀이었다. 그러나 올해 세계 노동절 대회의 메인 구호가 되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 4월 20일 오전, 서광석 화물연대 전남지역본부 컨테이너 지부장이 2.5톤 트럭에 깔려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차 비용 보전과 운임 보장 등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요구하며 교섭을 촉구해 왔지만, BGF로지스 측은 이를 반복적으로 회피·지연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고, 사측은 대체 수송을 강행하며 파업을 무력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공권력 역시 이를 사실상 방조하거나 지원하는 상황에서, 고 서광석 열사는 질주하는 사측의 대체인력 대차 차량에 의해 사망했다.
이후 원청인 BGF로지스와 화물연대 간 잠정 합의가 이루어졌고, 4월 30일 조인식이 진행되었다.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뒤에야 태도가 바뀌는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 사건의 본질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있다. BGF리테일과 물류 자회사 BGF로지스는 전형적인 ‘원청–하청–재하청’ 다단계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BGF리테일은 CU 본사를 운영하는 원청으로서 물류 정책과 사업 구조를 총괄하고, BGF로지스는 전국 물류센터 운영과 점포별 배송 스케줄 및 물량 배분을 관리하는 중간 단계 역할을 수행한다. 그 아래에서 운송사와 개인 화물노동자가 실제 배송을 담당한다. 이들 다수는 개인사업자 형태의 특수고용 노동자이다.
문제는 핵심적인 노동조건이 상층부에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배송 단가, 물량, 노선 등은 사실상 BGF리테일과 BGF로지스가 좌우하지만, 계약상 사용자 책임은 하청업체나 개인에게 전가된다. BGF로지스를 거쳐 1차 운송업체, 2차 지입사 또는 위수탁 계약, 그리고 개인 화물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체계 속에서 운임은 단계별로 삭감된다.
책임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무거워지는 반면, 권한은 위로 집중되는 비대칭 구조가 형성된다. 그 결과 안전관리와 노동조건 개선의 책임 공백이 발생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차량 구입비, 유지비, 유류비, 보험료, 수리비 등 대부분의 비용을 노동자가 스스로 부담한다. 특수고용 화물노동자의 총수입 대비 비용 비중이 약 30~50%에 달할 지경이다.
겉으로는 개인사업자지만 실질적으로는 비용과 위험을 떠안는 저임금·장시간·열악한 환경의 노동구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원청 교섭’ 요구는 필연적으로 제기된다. 실질적 결정권을 가진 주체와 직접 교섭하지 않고서는 노동조건 개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제도적 한계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이는 법적으로 ‘근로자’로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실질적으로 작동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위수탁·도급 계약을 이유로 ‘사업자’로 분류되며, 노동조합법 적용이 제한된다. 사용자 책임도 불명확해진다. 이로인해 원청은 실질적 사용자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법적 책임에서는 벗어나게 된다.
더 나아가 집단행동 자체가 제약된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파업은 ‘노동쟁의’가 아니라 ‘영업 방해’로 해석하여 공정거래법 적용이나 손해배상 청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보장 역시 불완전하다. 고용보험 적용은 제한적이며, 산재보험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근로기준법의 핵심 규정 역시 상당 부분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 특수고용 및 플랫폼 노동자는 약 250만~300만 명 규모로 추정되며, 이들 상당수가 사회보험에서 배제되거나 부분 적용 상태에 놓여 있다.
사람보다 돈이 중요한 자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비용 절감과 위험 외주화를 가능하게 한다. 고용책임, 보험료, 퇴직금, 휴일 보장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인력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다. 반면 노동자는 고용-소득 불안정과 안전 위험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결국 이윤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전가되는 방식이다.
물론 변화의 조짐도 존재한다. 일부 직종에서 노동조합 설립이 인정되고 있으며, 국제노동기구 기준에 따른 노동자성 확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법원 판례에서도 ‘실질적 종속성’을 근거로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이번 비극이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유지한 채 부분적 개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원청과의 직접 교섭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실질적 사용자 책임을 명확히 하며,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제도 전반의 개편이 필요하다. 더 이상 노동자의 죽음이 교섭의 출발점이 되는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세계질서 변화의 과도기, 노동자의 삶
세계 노동절의 기원 자체가 노동자 착취와 억압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에도 형태는 달라졌지만, 미국 중심의 세계자본주의 정치·군사·경제 질서가 세계 노동자 민중의 삶을 극심하게 압박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 이후 더욱 노골화되는 미국의 침략전쟁과 경제약탈과 내정간섭으로 노동자 민중의 생명과 생활이 삼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을 거쳐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이후 약 30여년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현재 국제 질서는 미중 전략경쟁을 축으로 다극화로 이동하는 과도기에 있다. 경제적 지표만 보더라도 변화는 뚜렷하다. IMF 기준 구매력평가(PPP)로 볼 때 신흥국 GDP 비중은 약 59%에 이르며, 브릭스 국가들의 GDP 비중은 약 32%로 G7(약 30%)을 넘어선 상태이다.
금융질서에서도 변화가 진행 중이다.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은 2001년 약 72%에서 2024년 약 58% 수준으로 하락했다. 중국과 러시아 등은 자국 통화 결제 확대를 추진하며 달러 중심 체제에 도전하고 있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만이 아니라 조선의 강력한 핵억지력이 미 본토를 위협하고 이란의 극초음속 미사일 같은 첨단 재래식 무기 체계가 중동의 미군 기지를 실제 타격함으로써 기존 군사 패권 구조를 흔들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도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이 있듯이 세계 패권을 고수하려는 미국 제국주의자들의 마지막 발악이 석양을 민중의 피로 벌겋게 물들이고 있다. 충돌과 갈등이 격화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크라이나 전쟁, 베네수엘라 침공, 이란 중동전쟁이다. 이는 지역 분쟁을 넘어 세계 민생경제에 연쇄 충격을 가하고 있다.
첫째, 에너지 가격 급등이다. 전쟁 이후 국제유가는 전년 대비 약 50% 상승했고,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전쟁 이전 대비 최대 5~8배까지 급등했다. 그 결과 독일에서는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공장 가동이 축소되고 노동시간이 줄어들었으며, 영국에서는 ‘난방 빈곤’이 확산되었다. 한국 역시 전기·가스 요금 인상으로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둘째, 식량 위기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 밀 수출의 약 30%를 차지하는데, 전쟁으로 공급이 흔들리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곡물 가격이 30~60% 상승했다. 이집트에서는 빵 가격 상승으로 생계 위기가 심화되었고, 레바논과 에티오피아 등에서는 식량 부족과 기아 문제가 확대되었다. 세계은행은 약 7천만~9천만 명이 추가로 빈곤 상태에 놓일 위험이 있다고 분석한다.
셋째, 물류와 공급망의 불안정이다. 중동 긴장 고조로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 항로의 불안이 커지면서 보험료와 운송비가 상승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인플레이션을 장기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넷째, 고용 불안이다. 전쟁으로 에너지·곡물·비료 공급이 차질을 빚으며 생산 비용이 상승했고, 기업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의류 산업 주문 감소로 대량 해고가 발생했고, 베트남에서는 수출 감소로 임금 삭감이 진행되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전 세계 노동시간이 약 2% 감소했다고 추정하는데, 이는 수천만 개 일자리 감소 효과에 해당한다.
다섯째, 군사비 확대와 복지 축소 압박이다. 전 세계 군사비는 약 2.4조 달러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각국 정부는 군비를 늘리는 대신 복지 지출을 억제하거나 축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그 부담은 다시 국민 생활로 전가된다.
이러한 영향은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이란 중동전쟁의 장기화로 원자재·에너지·물류 비용이 급등하면서 중소기업의 수출 계약 취소, 운송 차질, 대금 미지급 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관련 기관 통계에 따르면 중동 전쟁 관련 피해·애로 신고가 700건 이상 접수되었다. 일부 기업은 생산을 중단하거나 무급휴업에 들어가고, 그 결과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과 고용 불안을 직접적으로 겪고 있다.
결국 현재 국제 질서 전환기의 충격이 에너지·식량·고용·복지 전반으로 확산되며 노동자 민중의 삶을 압박하는 구조적 위기이다. 노동절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과 억압에 맞선 국제적 연대의 역사이다. 오늘의 현실 역시 그 연대와 대응이 절실히 요구된다.
대미 의존 구조와 한국 노동의 위기
그뿐이 아니다. 한·미 협상에서 강요된 대규모 대미 투자는 한국 경제의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중대 사안이다. 연간 200억 달러 한도 아래 총 3,500억 달러(약 510조 원)에 이르는 투자와 더불어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구매, 1,500억 달러 한국 대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통상 협력 수준을 넘어 국내 자본과 정책 여력을 대거 해외로 이전하는 성격을 갖는다.
문제의 핵심은 자금의 흐름이다. 이 자금이 미국 내 공장 건설, 인프라 투자, 에너지 구매로 집중될 경우 국내 설비 투자 여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부 연구자들이 이를 “GDP의 15% 이상을 단기간에 해외에 투입하는 준(準) 마셜플랜”이라고 혹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 제조업 기반이 약화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곧바로 산업 공동화 문제로 이어진다. 제조업 설비 투자가 축소되면 중소 제조업체와 부품·하청 기업의 수주 물량이 감소하고, 생산 네트워크 전반이 흔들린다. 특히 전통 제조업이 밀집된 지역에서는 공장 가동 축소, 이전, 폐쇄가 이어지며 일자리 감소가 발생한다. 이는 미국의 산업 쇠퇴 지역을 지칭하는 ‘러스트벨트’와 유사한 현상이 한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금융 측면에서도 부담은 작지 않다. 대규모 해외 직접투자는 국내 자금 유출을 동반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국내 투자 재원을 위축시킬 수 있다. 동시에 미국 금리와 국채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수록 한국 금융시장 역시 동조 압력을 받는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미국의 금리 인상 국면에서 한국 역시 금리 인상 압박을 받았고, 그 결과 가계와 중소기업의 대출 부담이 증가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통화·금융 정책이 국내 경기 상황보다 미국의 재정·금리 환경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종속이 고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고용 문제로 직결된다. 기업이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하면 국내 생산라인은 축소되거나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특히 대기업 중심의 해외 이전은 협력업체와 하청 구조에 연쇄적인 타격을 준다. 원청 기업이 성장하더라도 그 하부에서 일하는 중소기업 노동자,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는 오히려 더 빠르게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감소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여기에 물가 상승과 이자 부담까지 겹치면 노동자와 서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일자리 감소와 소득 불안정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금융 비용까지 증가하면 가계부채 부담은 구조적으로 확대된다. 이는 곧 “금융 불안 → 취약계층 부담 집중 → 소비 위축 → 경기 둔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역 경제 차원에서도 장기적 영향이 예상된다. 제조업 중심 지역에서는 실업 증가와 함께 비정규직 확대가 나타나고, 중소 제조업과 관련 서비스 업종의 도산 위험이 높아진다. 청년층의 경우 지역 내 양질의 일자리와 교육·훈련 기회가 축소되면서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고, 지역 공동화 현상이 가속될 수 있다.
결국 대규모 대미 투자 압력은 외교·통상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 금융 안정, 고용 체계, 지역 균형까지 포괄하는 복합적 문제이다. 자본의 해외 이전이 곧바로 국내 산업 기반 약화와 노동자 생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노동자의 높은 관심과 적극적 대응 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산업 공동화와 사회적 불평등 심화라는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AI 시대와 노동의 재구성
한편 AI와 지능정보화의 발전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생산력 도약을 가능하게 했다. 자동화와 데이터 기반 기술은 인간의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생산력의 부족이 아니라, 그 성과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에 있다. 오늘날 실업과 불평등의 심화는 기술 그 자체의 결과라기보다, 소수의 거대 자본이 AI와 데이터의 이익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국제적 통계도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한다. 국제노동기구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일자리의 약 23%가 자동화 또는 AI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특히 사무·서비스·운송 분야에서 영향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2030년까지 최대 3억 명의 노동자가 직무 전환을 겪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는 단순한 일자리 감소가 아니라 노동구조 자체의 재편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환기에 필요한 것은 기술 발전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과를 사회적으로 재분배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첫째, 고용 안전망의 전면적 확대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제한적 고용보험 체계로는 다양한 고용 형태를 포괄할 수 없다. 전 국민 고용보험 체계를 구축하고, 산재보험의 적용 제외를 폐지하며, 실업급여 역시 지급 기간과 수준을 확대해 반복 실업과 불안정 고용에 대응해야 한다.
둘째, ‘전환기 소득보장’ 제도의 도입이 요구된다. AI로 인한 변화는 일자리의 소멸만이 아니라 직무 재편을 동반한다. 따라서 단순한 실업급여로는 부족하며, 직무 전환 과정에서 일정한 소득을 보전하고 재교육 참여를 조건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특히 산업 전환이 집중되는 지역에 대한 별도의 지원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가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AI는 생산성을 높이지만 그 이익이 고용 증가로 자동 연결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여전히 OECD 평균보다 높은 수준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생산성 증가의 성과를 노동자에게 환원할 필요가 있다. 주 4일제 도입이나 단계적 노동시간 단축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고용 안정 전략이다.
넷째, 데이터와 AI로 창출되는 이익의 사회적 환수가 필요하다. AI는 개별 기업의 산물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데이터와 공공 인프라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그럼에도 이익은 소수 기업에 집중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데이터 배당’이나 ‘AI세(로봇세)’ 도입을 검토하고, 초과이윤을 공공 재원으로 환수하여 사회 전체가 기술 발전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노동자 참여권과 알고리즘 통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AI는 단순한 생산 도구를 넘어 노동을 감시·평가·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알고리즘 결정에 대한 설명 요구권을 보장하고, AI 도입 시 노동조합과의 협의를 의무화하며, 과도한 감시 시스템을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여섯째, 평생교육과 재훈련에 대한 공공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AI 시대에는 한 번의 교육으로 평생을 일하는 구조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무상 직업교육 확대, 산업별 전환 교육 체계 구축, 기업의 교육기금 부담 의무화 등이 요구된다. 현재 한국의 직업훈련 참여율은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으로, 구조적 개선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중요하다. AI와 결합된 플랫폼 노동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만, 법·제도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성 인정 기준을 확대하고,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며, 최소임금 또는 수입 하한선을 설정하는 등 기본적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
AI 시대의 핵심 쟁점은 기술이 아니라 분배와 권력의 문제이다. 이미 인류는 더 적게 일하고도 충분히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불안정이 지속되는 구조를 유지할 것인지는 사회적 선택에 달려 있다.
미국의 전방위 압박과 이재명 정부의 대응 평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간섭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외부 압력이 국내 산업 구조와 노동조건, 정책 결정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먼저, 쿠팡 사례에서 보듯, 한국에서 영업하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미국 자본과 상장 구조를 기반으로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영향력이 작동하고 있다. 산재 문제, 플랫폼 노동 착취,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등 국내 사안이 외교 문제로 비화되는 구조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국내 사법 체계에 따른 문제”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법인과 실질 지배 구조의 동일성을 강조한 것은 주권 원칙을 지키려는 대응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투자자-국가 분쟁(ISDS), 통상 협정, 의회 청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한 구조적 압박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안보 영역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난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중 견제와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확장해 설명한 것은, 한반도 안보 구상이 미국의 전략 속에 편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에서 ‘시기’보다 ‘조건’을 강조하고 이 대통령 임기 중 전환을 ‘정치 편의주의’라 우회 비판했다. 정부는, 주독일 미군 감축의 정세와 자주국방의 원칙에 따라 전작권과 주한미군 문제에 보다 당당한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외교 영역에서는 대사 인선과 정보 문제에서도 긴장이 드러난다. 미셸 스틸과 같이 특정 성향이 분명한 인사가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될 경우, 대중·대북 정책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될 수 있다. 정동영 장관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에서 보듯, 정보 공유와 기밀 문제 역시 양국 간 정치적 긴장을 불가피하게 유발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밀 유출이 아니라고 밝히고 대북 정보 공유 제한에 적절히 대응한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이러한 압력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정책은 일정한 진전과 동시에 한계를 함께 드러낸다. 노동 정책 측면에서는 산재 예방 강화와 이른바 ‘노란봉투법’ 추진 등 노동권 확대를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노동시장은 비정규직 비중 약 35%, 노조 조직률 약 14%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 있다. 원청–하청 구조와 플랫폼 노동 확산을 고려할 때, 개별 법률이나 정책만으로는 실질적 변화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원청 책임을 법적으로 확대하고, 산업·지역 단위 교섭을 활성화하며,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 실질적 권리 보장 장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경제 정책에서는 대외 의존 구조가 핵심 제약으로 작용한다. 한국의 수출 의존도는 GDP 대비 약 40% 수준이며, 대미·대중 무역 비중도 절대적으로 높다. 이러한 조건에서 단순한 시장 다변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제 통화 다변화, 통화 스와프 확대, 공급망 이중화 등 금융·산업 구조를 함께 재편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달러 중심 금융 체제 의존을 완화하지 않는 한 외부 충격에 대한 취약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국방 정책에서는 자주국방의 방향성이 제시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한미동맹 구조와 전작권 미전환 상태라는 제약이 존재한다. 정보·정찰, 미사일 방어, 핵 억지 등 핵심 영역에서의 의존도를 고려할 때 단기간 내 독자적 전환은 어렵다. 따라서 전작권 전환 로드맵을 구체화하고, 감시정찰(ISR)과 지휘통제 능력 등 핵심 역량을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결국 현재 한국이 직면한 문제는 개별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조건의 문제이다. 미국, 글로벌 자본, 국내 대기업이 결합된 권력 구조 속에서 정책은 항상 외부와 내부의 압력 사이에서 조정될 수밖에 없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공정 경쟁 질서 확립, 외자-재벌 지배구조 개혁, 정책금융 확대, 로비 투명성 강화 등 제도적 기반을 변화시키는 접근이 필요하다.
국제 질서가 다극화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한국은 단일 선택이 아니라 복수의 선택지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안보와 핵심 기술 분야에서는 당장 동맹에서 못 벗어나더라도 경제와 외교에서는 자율성을 확대하는 ‘사안별 분리 대응’ 전략이 요구된다. 동시에 아세안, 인도 등 중견국과의 협력을 통해 협상력을 높이고, 공급망과 금융 충격에 대비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요컨대, 이재명 정부의 대응은 일정한 원칙과 방향을 갖고 있으나 구조적 제약 속에서 부분적 성과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향후 과제는 단기적 대응을 넘어, 외교·안보·경제·노동 전반에서 자율성과 균형을 확보할 수 있는 중장기 전략을 구축하는 데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자주·균형 외교 노력이 미국의 협박에 좌절된 경험, 문재인 대통령의 4.27 판문점선언·9.19 평양 선언이 미국의 방해로 이행되지 못한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 당당하고 슬기롭게 대응해주기를 바란다.
노동 존중 사회로의 전환 과제
세계 노동절의 기원인 헤이마켓 사건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권력과 자본에 맞섰던 역사적 출발점이다. 136년이 지난 오늘, 기술과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노동이 정당한 대접을 받는 사회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권리 보완이 아니라, 사회 운영 원리 자체를 노동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전환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의 정책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는 일이다. 대외 의존이 큰 구조에서는 노동 정책 역시 외세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통상·금융·안보가 결합된 국제 환경 속에서 정책 공간이 제약될 경우, 노동 존중 정책도 일관되게 추진되기 어렵다. 따라서 외교·경제 전략에서 자율성을 확대하고, 국내 정책이 미국의 압력에 종속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민주주의의 내용도 재구성되어야 한다. 선거 중심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와 시민의 요구와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원청 교섭을 비롯한 산업·지역 단위의 사회적 대화, 노동만이 아닌 경제 산업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노동자 참여, 공공 의사결정의 투명성 확대가 결합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생활 속에서 작동한다. 이는 절차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자원의 배분 구조를 바꾸는 문제이다.
한반도의 평화협력 문제 역시 노동의 삶과 직결된다. 긴장과 갈등이 지속되는 구조에서는 군비 부담이 확대되고 사회적 자원이 분산되며, 이는 결국 민생과 복지의 축소로 이어진다.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고 협력의 조건을 확대하는 것은 경제 안정과 노동조건 개선의 전제이기도 하다. 종속에서 자주로, 적대에서 협력으로 남(한국)을 먼저 바꾸어 대북 신뢰를 높이고 이를 지렛대로 북(조선)과 미국의 대화를 주선하여 남북교류협력의 문을 다시 열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의 변화를 위해 노동운동의 역할 또한 재정립되어야 한다. 임금·단체협상 중심의 활동을 넘어 주권 찾기, 산업 구조 전환, 불평등 해소, 생태 전환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특히 원청–하청 구조, 플랫폼 노동, 특수고용 확대 등 변화한 노동 현실에 맞게 조직 전략과 정책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약 14%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비정규직 비중은 약 35%에 달한다. 이 격차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노동 중심 사회로의 전환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 영역에서도 노동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 정책은 결국 입법과 제도 개혁을 통해 구현되기 때문에, 노동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이 중요하다. 정파, 계파를 넘고 과거 불신을 극복하여 다양한 사회정치세력이 참여하는 연대 구조를 확대 재편하고, 정책 중심의 협력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결국 과제는 명확하다. 정책 자율성 확보, 실질적 민주주의 강화, 평화 환경 조성, 노동운동의 혁신, 정치적 대표성 확대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는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도와 구조, 그리고 사회적 힘의 관계가 바뀔 때 비로소 가능하다. 세계 노동절 136주년은 그 전환을 다시 한번 요구하고 있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