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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탐구 생활 (7) ‘하느님의 말씀 주일’ 특집 ③ 독서자가 지켜야 할 전례 예절
미사 전례의 각 부분마다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는 봉사자가 있습니다. 말씀 전례를 거행할 때는 주례자, 독서자, 시편 선창자, 복음 선포자가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중에 독서자가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 알아봅시다.
먼저 독서자가 합당한 공경을 드리는 대상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74-275항에는 예식이 거행되는 동안 전례 봉사자들이 경우에 맞게 공경을 표시하는 대상 목록이 나와 있는데, 이 목록에는 말씀 전례의 ‘식탁’과 전례서 역할을 하는 독서대와 『미사 독서』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독서대와 『미사 독서』에는 전례 중에 공경을 표시하지 않는데, 이는 제대와 『복음집』에만 공경을 유보함으로써 제대와 『복음집』을 차별적으로 부각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첫째 독서와 둘째 독서를 선포하는 독서자는 제대에 공경의 표시로 몸을 굽혀 절하지만 독서대와 『미사 독서』 앞에 선 다음 그 앞에 다시 절하지 않습니다. 독서를 시작하기 전에 함께 모인 하느님의 백성(회중)을 향해 존중의 의미로 절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는데, 회중은 “제대 위에 빵과 성작을 준비한 다음”(「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76 ㄹ) 분향을 받게 되어 있으므로, 독서를 하기 전에 회중을 향하여 인사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습니다.
또 일각에서는 ‘주례 사제에게 독서 할 권한을 위임받는 행위로 독서자가 주례 사제에게 인사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 나오는 ‘독서자’가 독서직을 받은 정규 독서자이고, 실제 본당 전례에서는 대부분 일반 평신도가 독서를 맡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절차를 넣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사 독서 목록 지침」은 “전례 회중 안에는 독서직을 받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독서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알맞은 평신도 몇 사람을 잘 준비시켜 언제라도 이 임무를 수행하게 해야 한다.”(52항)고 규정하면서, 독서자의 범위를 ‘준비된 평신도’로 활짝 열어놓습니다. 그리고 더 높은 등급의 봉사자(이를테면 부제나 사제)가 있어도 “독서자에게는 성찬례 거행에서 수행해야 할 고유 임무가 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99항, 「독서 목록 지침」 51항)고 단언합니다.
따라서 독서자로 선정된 이는, 비록 정규 독서직을 받지 않았더라도, 이미 “고유한” 독서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지, “더 높은 등급의 봉사자”로부터 그때그때 직무를 위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독서 권한을 위임받는 동작으로 주례 사제에게 인사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동작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독서자는 독서대에 오르고 내려올 때 제대에만 공경의 표시로 인사를 드립니다.
말씀 전례는
묵상에 도움이 되도록 결코 서두르지 말아야 하며,
말씀 전례 거행 동안 짧은 침묵의 시간을 두어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느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기도로 응답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독서자는
충분한 여유를 두고 주례자와 전례 봉사자, 회중 전체가 잘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한 다음 분명하고 큰 목소리로 누구나 알아듣게 말씀을 선포하고, 선포를 마친 다음에도 알맞게 침묵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제주교구에서는 독서자가 본문을 다 읽은 다음 대략 5초의 여유를 두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고 노래하면 회중도 노래로 받습니다. 그리고 첫째 독서와 화답송 사이, 둘째 독서와 복음 환호송 사이에는 약 1분 동안 침묵하며 들은 말씀을 묵상합니다.
전례 중에 지켜야 할 이 모든 예절이 조금 까다로워 보일 수 있습니다. 독서자 개인이 사전에 신경 써야 할 여러 가지 준비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내 생각과 기분에 좌우되는 사사로운 말을 버리고, 세상 만민을 위한 하느님의 말씀을 내 입에 담기 위한 과정임을 떠올려 본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씀 선포의 봉사에 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님 봉헌 축일’(2월 2일) 의미와 전례
아기 예수를 하느님께 봉헌한 것 기리며 구원 역사 실현 선포
교회는 구약의 정결례 규정에 따라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이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하고 비둘기 한 쌍을 번제물과 속죄물로 바친 것을 기념해 주님 성탄 대축일부터 40일째 되는 날인 2월 2일을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날을 기념해 주님 봉헌의 의미와 전례를 살펴본다.
주님 봉헌 축일이란
루카 복음서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이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아기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봉헌했다(2,22)고 한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정결례(레위 12,1-8)법은 사내아이를 낳은 산모는 40일간, 여자아이를 낳은 산모는 80일간 불결한 것으로 여겼다. 산모는 이날이 지난 다음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번제물로 일 년 된 어린 양 한 마리와 속죄 제물로 비둘기 한 마리를 하느님께 바쳐야 다시 정결하게 되는 것으로 여겼다. 양 한 마리를 바칠 형편이 안 될 만큼 가난한 경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한 마리는 번제물로, 한 마리는 속죄물로 바쳐야 했다. 이를 ‘가난한 이의 제물’이라 하는데 성모 마리아도 그렇게 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성 요셉의 행동이다. 모세 율법에 따르면 출산으로 인해 남편이 부정하게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성 요셉은 정결례를 치를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예를 행했다. 요셉이 성모 마리아에게 얼마나 신실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울러 그의 행동은 구약의 엘카나와 한나 부부가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에 어린 자식 사무엘을 바친 것(1사무 1,24-28)을 상기시킨다.
또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맏아들, 곧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탈출 13,1)라는 하느님의 명에 따라 유다인들은 외아들이든 장남이든 아들을 처음으로 얻으면 하느님의 차지로 여겼다. 그래서 하느님 차지인 첫아들을 부모가 사서 기른다는 뜻으로 유다인들은 첫아들을 낳으면 한 달 안에 성전 비용으로 5세켈(20데나리온)을 바쳤다. 이를 ‘속량법’이라고 한다. 속량법에 따르면 부모나 아이가 예루살렘 성전으로 갈 필요 없이 어디서든 사제에게 속량값으로 5세켈을 치르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도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함께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외아들의 속량값을 치르고 예수를 하느님께 봉헌했다. 이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은 정결례와 더불어 아기 예수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속량하는 세 가지 예식을 한 것이다.
성모 마리아는 정결례 예식을 마치기에 앞서 율법에 따라 아기가 태어난 지 여드레가 되는 날 할례를 베풀고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다.(루카 2,21) 이 이름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것으로 예수는 우리말로 ‘하느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한편,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두 팔에 받아 안은 시메온은 이 아기가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라고 찬미한다.(루카 2,34-25) 이는 하느님의 구원이 예수를 통해 유다인뿐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실현될 것임을 선포한 말이다.
시메온은 더불어 성모 마리아께 이 아이 때문에 당신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예언(루카 2,34-35)을 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 고통의 신탁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깊은 정서의 원형”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과 함께 고통을 겪고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를 연민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선포”하기 때문이다.(「나자렛 예수-유년기」 121쪽 참고)
주님 봉헌 축일 전례
교회는 일찍부터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왔다. 예루살렘 교회는 4세기 말부터 이 축일을 기념했다. 아기 예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성전에 처음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시메온과 한나를 만난 사건을 기념해 ‘만남의 축일’이라 부르며 촛불 행렬을 했다. 예수께서 “계시의 빛”이라고 한 시메온의 찬미를 드러내기 위해 촛불을 밝힌 것이다. 이 예식이 5세기 중엽 로마 교회에도 알려지기 시작해 서방 교회에 전파됐다.
서방 교회에서는 동방 교회처럼 ‘만남의 축제일’ 또는 ‘성 시메온의 날’로 지냈다. 중세 후반에는 촛불 행렬 때문에 ‘성촉절(聖燭節)’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후 성모 신심과 성모 축일이 발달하면서 1969년까지 ‘성모 취결례(取潔禮)’로 지냈다. 오랫동안 주님 축일을 성모 축일로 지내온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으로 이 축일의 본뜻을 되찾아 1970년부터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내고 있다.
이날 행렬에 사용되는 초를 축복하던 전통은 한 해 동안 사용할 초를 축복하는 관습으로 정착됐다. 그래서 이날 교회와 가정에서 사용할 초를 축복한다.
초는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힌다. 교회는 일찍부터 ‘세상의 빛’(마태 5,14)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표지로 초를 사용해왔다. 이날 교회에서 초를 봉헌하는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께 봉헌되셨듯이 우리도 주님과 하나가 돼 나 자신을 봉헌하자는 뜻에서다. 이처럼 주님 봉헌 축일은 예수 성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축성 생활의 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7년에 주님 봉헌 축일을 ‘축성 생활의 날’로 제정하고,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다. 교황청 수도회성은 해마다 맞는 축성 생활의 날에 모든 신자가 특별히 수도 성소를 위해 기도하고, 축성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봉헌의 성경 의미는 ‘따로 떼어 놓는 것’(탈출 12,13)이다. 인간이 제물을 따로 떼어서 하느님께 드리면 하느님께서는 봉헌된 제물과 이를 봉헌한 인간 모두를 거룩하게 축성하신다. 따라서 봉헌은 인간 중심으로 보면 내어 놓음이지만 하느님 중심으로 보면 ‘축성’이다. 그러기에 축성 생활은 교회에 생명과 성덕을 가져오는(「교회 헌장」 44항) 생활이기에 이날을 ‘축성 생활의 날’이라 한다.
전례 탐구 생활 (6) ‘하느님의 말씀 주일’ 특집 ② 말씀 거행하기 : 「복음집」 사용
6세기 프랑스 아를의 주교였던 체사리오 성인께서 하신 강론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말해 보십시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하느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몸입니까? 여러분이 제대로 답하고 싶다면 분명히 하느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몸과 같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실 때 행여 바닥에 떨어뜨릴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말씀이 분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떠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 말씀을 무심하게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떨어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가 되는 일입니다.”
체사리오 성인 말고도 역사상 많은 교부들과 공의회가 성경을 그리스도의 몸처럼 공경하였고, 성찬 전례를 장엄하게 거행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그 품위에 맞게 거행하는 데에도 온갖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네 복음서를 중요하게 여겨 복음 선포를 언제나 말씀 전례의 절정으로 삼았습니다. 복음의 이러한 위상을 드러내기 위해 교회는 성경의 다른 본문을 담고 있는 전례서(「미사 독서」)와 구별하여 네 복음서만 따로 담은 전례서(「복음집」)를 만들고 아름답게 장식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음집」을 다른 「미사 독서」보다 더욱더 공경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주교좌성당 또는 규모가 크고 신자들이 많이 모이는 본당이나 성당에서는 다른 「미사 독서」와 구분하여 아름답게 장식한 「복음집」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지난 2017년 전례서들을 새로 편찬하면서 「복음집」을 따로 펴냈습니다. 그리고 그 서문에 「복음집」을 사용하여 거행할 수 있는 다양한 예식에 대한 안내를 수록하였습니다.
먼저, 미사 전례에서 「복음집」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살펴봅시다. 입당 행렬에서 부제나 다른 전례 봉사자는 「복음집」을 조금 높이 받쳐 들고 사제 앞에 서서 제대로 나아갑니다. 제단에 이르러 경의를 표시하지 않고 곧바로 제대에 다가가서 제대 중앙에 「복음집」을 내려놓습니다. 그다음 부제는 사제와 함께 제대에 깊은 절을 하며 경의를 표시합니다. 다른 전례 봉사자가 「복음집」을 들고 왔다면, 제대에 「복음집」을 내려놓고 깊은 절을 한 다음 정해진 자리로 갑니다.
복음 환호송을 노래하는 동안 회중은 모두 서서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환영하고 찬양합니다. 주례 사제가 향을 축복한 후에 봉사자들은 향을 피운 향로를 들고 또 촛불을 켜 들고 「복음집」이 놓여 있는 제대를 향해 나아갑니다. 복음을 선포할 직무자(부제 또는 사제)는 제대에서 「복음집」을 들고, 향로와 촛불을 든 봉사자들을 앞세우고, 독서대로 가서 예식 규정에 따라 복음을 선포합니다. 향을 쓸 때 직무자는 「복음집」에 향로를 두 번씩 세 번 흔들어 분향합니다. 복음 선포가 끝나면 「복음집」은 주수상이나 알맞고 품위 있는 다른 곳에 모셔 둘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만 아주 많은 감각적 표지들이 하느님의 말씀, 특히 복음을 둘러싸고 ‘춤을 추고’ 있습니다. 아름답게 장식한 「복음집」과 그 중심에 「복음집」이 우뚝 솟은 행렬이 우리 눈을 사로잡고, 우리 몸이 그 앞에서 굽혀집니다. 타오르는 향 연기와 냄새가 말씀을 찬양하는 소리와 어우러져 ‘기쁨의 축포’가 됩니다. 우리의 오감을 사로잡는 이러한 거행방식은 우리를 하느님 말씀의 깊은 핵심으로 인도합니다.
이 외에도 「복음집」은 「어른 입교 예식」의 ‘받아들이는 예식’을 거행할 때 행렬과 복음서 수여 예식에 사용할 수 있고, 장례 예식 때 시신을 모신 관 위에 믿음의 표지로 놓아둘 수도 있습니다. 새 본당 신부님이 부임해서 처음 드리는 미사의 말씀 전례 때 주임 신부는 주교나 그 대리인으로부터 「복음집」을 건네받아 복음을 선포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온 「복음집」은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하느님 말씀의 살아있는 신비를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문화사에 따른 전례] 전례의 역사란?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인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정의했다.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마음의 활동 상태의 기록이다. 세계사는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요, 조선사는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다.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는가?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아’라 하고 그 밖의 것을 ‘비아’라 한다. 이를테면 조선인은 조선을 ‘아’라 하고, 영국 · 러시아 · 프랑스 · 미국 등을 ‘비아’라 한다.”
역사에 대한 정의가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 또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곧 주체와 객체의 지속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면 역사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주체의 시각과 그 주체가 맺는 관계에 따라 역사관이 좌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전례 역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요한 23세 교황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차 회기의 폐막에서 “전례 안에서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가 표현됩니다.”라고 했음을 기억할 때,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 표현인 전례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변화되는 과정을 ‘전례 역사’라 할 수 있다.
전례는 계속 변화되는 부분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공의회를 개최하는 의도를 전례 헌장 1항에서 드러냈다. 그중에서 주의를 끄는 것은 시대의 요구에 잘 적응해야 하고 전례의 쇄신과 증진을 위한 배려를 소임이라 여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의회가 자신 있게 전례의 쇄신과 증진을 말할 수 있는이유는 교회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변화되는 역사의 과정에서 교회가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 왔느냐는 여러 측면에서 고찰해야 할 문제이다.
공의회는 전례가 “신적 제정으로서 변경할 수 없는 부분과 변경할 수 있는 부분”(전례 헌장, 21항)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전례에서 변경하면 안 되는 부분, 곧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부분과 그렇지 않고 시대와 문화, 지역과 민족에 따라 변경이 가능하고, 또는 변경해야 하는 부분을 분명히 구분한다.
원칙적으로 전례의 변경 가능한 부분에서 전례 자체의 깊은 본질에 잘 부합되지 못하는 것이나 덜 적합해진 것으로 판명되는 부분이 끼어 있다면 그 점을 검토하여 변화시키고 쇄신해야 한다.
전례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게 되었을까?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1티모 2,5)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교 예배의 중심이시다.
사람들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콜로 2,2)이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목적이었다.
모든 구원사는 그리스도에게로 향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시며’(1티모 2,4) ‘예전에는 에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히브 1,1), 때가 차 당신의 아들 곧 사람이 되신 말씀을 보내시고 …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가 되게 하셨다.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화해의 완전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하느님께 충만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전례 헌장, 5항).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성부에게서 파견되신 것처럼 그렇게 그리스도께서도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들을 파견하고는 그렇게 사도들이 “선포하는 구원 활동을 모든 전례 생활의 중심인 희생 제사와 성사들을 통하여 수행하게 하셨다”(전례 헌장, 6항).
일곱 시기의 구분을 따라 앞으로 본 지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세운, 신적 기원을 지닌 교회가 지난 이천 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각 시대의 문화적 배경에서 이루어진 전례의 변천, 발전과 쇄신의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일반적인 역사나 교회 역사의 시대 구분이 아니라 전례의 변천에서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전례 학자인 에드워드 폴리가 「예배와 성찬식의 역사」(원제: From age to age)에서 제시한 일곱 시기의 구분을 따르려 한다. 유명한 전례 역사가인 B. 노인호이저의 전례 역사 구분과 조금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 제1시기 - 신흥 그리스도교(1세기) : 유다와 로마의 문화 속에서 기본적인 틀을 마련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 제2시기 - 가정 교회(100-313년) : 사도들의 후계자들이 등장하고, 네로 황제의 박해 이후 공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힘든 시기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핵심적인 전례를 실행한다.
● 제3시기 - 로마 교회의 발전(313-750년) :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 제국 안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공적으로 전례를 거행할 수 있는 바실리카를 세우고 그리스도교는 발전한다.
● 제4시기 - 로마 전례의 게르만화(750-1073년) : 피핀이 프랑크족의 왕으로 등극하면서 카롤링거 왕국이 시작되었고, 로마 전례는 프랑크 왕국에서 게르만화 과정이 진행된다.
● 제5시기 - 개혁의 서곡인 종합과 대립(1073-1517년) :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의 등장으로 시작하여 다양한 지역 전례 양식이 통합되는 과정을 거치고 교회와 전례에서 지나친 성직자 중심은 교회 안에서 대립을 일으켰다.
● 제6시기 - 종교 개혁과 반종교 개혁(1517-1903년) : 마르틴 루터가 95개조의 반박문을 공포한 1517년부터 시작된 종교 개혁과 가톨릭의 반종교 개혁의 움직임이 전개되는 시기이다.
● 제7시기 - 전례 쇄신과 반작용, 그리고 펼쳐지는 비전(1903년부터 현재) :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에 대해서 언급한 비오 10세 교황의 1903년 교서인 「성음악에 관하여」(Tra le solicitudini)에서부터 본격적인 전례 쇄신을 위한 운동이 이루어졌다고 보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면서 그 이후의 반응들이 일어나는 현재까지의 시기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각각의 시기마다 건축, 전례 관련 서적, 전례 용기, 성찬 신학을 주제로 시대별 특징을 살펴보려고 한다.
문화사에 따른 전례를 고찰하는 목적은 전례의 기본적인 기원과 정신이 어떻게 시대마다 반영되었고 변화되어 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전례에 참석하는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이해의 바탕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전례 탐구 생활 (5) ‘하느님의 말씀 주일’ 특집 ① 말씀의 ‘곳간’이 열리다
지난 2019년 9월 30일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자의 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를 발표하시며,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 말씀의 거행과 성찰과 전파를 위하여 봉헌하는 날”로 선언하셨습니다(3항). 올해 처음 기념하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 주일(1월 26일)을 잘 준비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3회에 걸쳐 특집을 연재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함께 지난 400년 동안 이어져 온 로마 가톨릭 전례의 개정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열매 가운데 하나는 신자들이 성경의 보화를 더 넓고 깊게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의 더욱 풍성한 식탁을 신자들에게 마련하여 주도록 성서의 보고를 더 활짝 열어, 일정한 햇수 안에 성서의 더 중요한 부분들이 백성에게 봉독되어야 한다.”(「전례 헌장」 51항)는 공의회의 선언은 미사 독서 체계를 재정비하는 밑그림이 되었습니다. 이 정신을 이어받은 공의회 후속 전례 개정 위원회는 미사 독서 목록을 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뚜렷한 사목적 목표를 제시하였습니다. “전례주년 전체에, 특히 부활 사순 대림 시기 독서의 구체적인 선택과 배정은 그리스도 신자들이 스스로 고백하는 믿음을 차츰 깊게 하고 구원 역사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하는 목적을 갖는다.”(「미사 독서 목록 지침」 60항)
그 결과, 특히 이전과 비교해 볼 때 훨씬 풍성하고 일관된 성경 본문이 전례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1570년 미사 경본에 따른 독서 체계에서는 4복음서의 경우 22%, 복음을 제외한 신약성경의 말씀은 11%만을 읽었습니다. 구약성경은 오로지 층계송(시편), 파스카 성야, 성령 강림 대축일 전야, 공현 대축일과 그 팔일 축제, 성주간을 비롯한 몇몇 평일 독서에만 들어있었습니다. 그마저 1951년에는 성령 강림 대축일 전야 미사에서 구약성경 본문을 빼고, 주님 부활 성야 미사의 구약성경 본문도 12개에서 4개로 줄였습니다. 그 결과 1년 단위로 돌아가던 전례 주기에 따른 독서는 전체 구약성경의 1%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속 전례 개정 위원회는 주일 미사의 복음 전 독서를 2개로 늘리고, 주일과 축일뿐 아니라 평일에도 구약성경의 본문을 배치하였습니다. 독서 주기도 1년에서 3년으로 늘려, 신자들이 전례 안에서 성경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대폭 확대하였습니다. 현행 3년 주기 미사 독서 체계는 대략 구약성경 14%, 신약성경 72% 정도의 말씀을 전례 안에서 들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전례 개정 위원회는 전례 안에서 성경이 울려 퍼지게 하는 실제 방식도 손질하였습니다. 먼저, 성찬 전례(Liturgia eucharistica)의 예비 역할 정도로 여겨졌던 미사의 전반부에 처음으로 ‘말씀 전례(Liturgia verbi)’라는 정식 명칭을 부여하고, 성찬 전례와 밀접히 결합되어 오직 하나의 예배 행위를 이룬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품위에 맞도록 오랫동안 사라졌던 ‘하느님 말씀의 식탁’인 독서대를 복원하였습니다. 이전까지 독서와 복음 모두를 성직자가 제대에서 조용히 혼자 읽었는데, 이제는 독서대에서 “독서자가 독서를 하고, 부제, 또는 주례자가 아닌 다른 사제가 복음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59항). 이전까지는 독서 본문을 다 읽고 나서 성직자 혼자 “하느님, 감사합니다(Deo gratias).” 하는 말로 끝냈는데, 이제는 각 독서 다음에, 독서를 봉독한 사람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고 환호하면 회중이 이에 응답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교회의 전례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살이 되신 말씀’의 신비를 가까이서 보고, 듣고, 만져보고, 냄새 맡아보고, 그 말씀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기를 바랍니다. 다음 회에서는 이 과정이 실제 거행을 통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다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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