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의 매력
누군가에게 종이에 편지를 썼던 적이 언제였던가? 과거에 편지는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마음이 담긴 글을 전달하기 위해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고, 쓰던 편지가 마음에 들지가 않아 찢어 버렸던 기억이 있다. 또한 편지를 다 쓰고 봉투에 넣어 우표까지 붙였지만 이내 보내지 않았던 일도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편지에 대한 신중함이 있었기에 계속 생각하고 문장을 다듬는 일을 하면서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편지는 사라지고 이메일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오늘날 이메일은 편지 보다 쉽고 빠르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진다. 그런데, 이메일은 편지만큼 마음을 전달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만큼의 가치가 담겨 있지 않은 듯한 가벼운 느낌이 든다. 생각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글쓴이의 손길을 볼 수 없는 차가운 글자만 보일 뿐이다.
아내는 이메일로 쓴 편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하기 전부터 아내는 손으로 쓴 편지 받기를 좋아했다. 결혼 후 어느 날 선교지에 한달 이상 나가야 할 때가 있었다. 그때 아내는 나에게 편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해외에서 사역하면서 매번 편지를 써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돌아와서 선교지에서 있었던 매일의 일들을 편지 형식으로 써서 한권의 노트를 준 적이 있다. 그때 아내는 크게 기뻐했다. 아마도 그 편지는 최고의 선물이었던 같다. 아마도 아내는 지금 손으로 쓴 편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약용이 유재지에서 보낸 편지들을 읽었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이 필기구가 발달하지 않은 상황이었을 텐데, 18년이 넘는 시간동안 멀리 떨어진 유배지에서 자녀를 가르치고 교훈하기 위해 편지를 써서 보냈다는 것을 상상하면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편지를 보내고 아들이 편지를 받기까지 시간을 보내고, 또 답장을 기다리면서 그는 생각하는 시간과 정리하는 시간을 보낸 듯하다. 그리움과 기다림의 오랜 시간들 속에 아들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그가 살아있게 하는 큰 힘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세계사 편력]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이자 정치가였던 [자와할랄 네루]가 감옥에서 자신의 외동딸에게 196회의 편지로 세계사 야기를 들려준 내용을 묶은 책이다. 사람들은 그 아버지의 편지로 딸 인디라가 훗날 인도 최초의 여성 수상이 되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마치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편지를 통해 아들들을 가르친 것처럼 보인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폐족으로 벼슬길이 막힌 두 아들이 잘 처신하도록 권면과 교훈을 주었다. 그가 말하는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 한가지 밖에 없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는 아들들에게 글에 대한 과제를 부여하기도 하고, 후에 그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답장을 받으면서 아들이 한 일에 대한 평가와 조언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꾸중을 하기도 한다. 독서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면서 책에 대한 비판을 하기도 하며, 중요한 책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전달한다. 또한 정치적 사회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고, 올바른 사대부의 기상, 올바른 벼슬을 사는 법, 근검 절약하는 삶 등 다양한 지식과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그는 분명 균형 잡힌 지식을 소유한 진정으로 살아있는 선비였다. 편지의 내용을 읽다 보면,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사람이라는 말만큼 그가 균형 잡힌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글의 힘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었고, 그 글의 힘이 독서를 통해 얻어진 것이라는 것을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며 알게 되었다.
폐가가 되어 쓸모 없이 바닥을 기는 처량한 집안이 아니라 진정 살아있는 집안을 소망하는 정약용의 마음이 느껴진다. 마치 에스겔의 마른 뼈의 환상을 생각하게 한다. 숨쉬고 살아있지만 죽은 자로 살지 않고, 오히려 망했으나, 그리고 죽은 것 같으나 하나님의 생령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되는 비전을 편지를 통해 보는 듯하다.
이제는 편지와 글을 통해 겉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정약용이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서 김기현 목사의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 라는 아버지와 아들의 질문과 답으로 구성된 책이 문득 생각난다. 편지를 통해 지식을 전달하고 마음을 전달하는 그런 편지 글이 부러워진다. 그런 편지 글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편지로, 글로 영향력 있는 모습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