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53신]꽃세상, 나무세상 만세닷!
‘농촌 시인’이자 듬직한 농부인 친구에게.
요즘 뒷산에만 오르면 저절로 얼굴이 펴지고 웃음이 나는 것은 진달래와 개나리 때문이라네.
드문드문 피어난 진달래 연분홍 빛깔과 개나리 노오란 빛깔이 어찌 그리 예쁜지,
요 며칠은 지천에 돋아난 쑥을 캐고, 머위를 뜯느라 정신이 없었네.
아아, 봄은 꽃세상이고 나무세상임을 2년째 제대로 실감하고 있네.
근 40년 동안 말단 경찰에서 시작하여
직장 말년에는 경제사범 등을 조사하던 경제팀장의 귀향과 귀농
그리고 아버지를 홀로 모시는 자네의 ‘눈부신 변신’에 놀란 친구들이 참 많았다네.
게다가 가끔씩 단톡방에 올리는 자네의 운문韻文이 어찌나 맛깔스럽고 세련되었던지,
오죽하면 문단文壇에 데뷔하라고 아우성이었겠나?
생긴 것은 삼국지의 장비張飛 형상인데,
마음은 곰살맞을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주위 친구들을 배려하는 마음은 비단緋緞이 아니던가.
지금도 그러하지만,
서울에 살 때 동창모임을 위한 자네의 헌신을 모르는 동문들이 어디 있을 것인가.
그래, 자네가 내 고향과 가까이(40여km) 살고 있는 것이 든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네.
이제 와 얘기하지만, 2년 전 고향집을 리모델링하는 데 근 3주간을 출퇴근하다시피 하며
헌신해준 그 엄청난 공을 잊은 적이 없었네.
친구이지만 마치 형과 같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의지가지도 많이 되고 있지.
또한 나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고 자네와 같이 월말부부인 셈이니 동병상련이 될 것은 당연지사.
어제는 자네와 함께 모처럼 봄바람, 콧바람을 쐬러 충북 옥천의 나무시장을 갔다왔지.
그 감흥感興에 겨워 자네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쓰네.
야산 8000여평을 겨우내 혼자 포클레인작업 등으로 개간해
밭으로 만들어놓았다지. 거기에 두릅나무를 몇 천 그루를 심고자 나무시장에 간다는 말에 나도 따라나섰지.
전국에서 가장 크다는 나무시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지.
아니나다를까, 정말 놀랐네.
‘충북농원’ 하나만 구경했는데도 그 규모와 풍부한 수종樹種에 “역시”를 연발했었네.
덕분에 사또 덕분에 나팔 분다고 나도 황금소나무와 황금반송,
등나무 등을 사 마당 꽃밭에 심어놓고 흐뭇해 했네.
날이 새면 자네가 덤으로 준 두릅나무 10여그루를 가족묘지 아래에 심을 생각이네.
두릅순을 따먹을 때마다 자네 생각을 하게 될 터이니 일석이조.
어제도 고마웠네. 흐흐.
어제밤 동네친구와 자네의 효심孝心에 대해 얘기를 했다네.
귀가 너무 어둡고 거동이 불편한 80대 후반의 아버지를 모시는
자네는 이 시대 장남長男 역할을 가장 톡톡히 하고 있질 않은가.
아들 3형제의 큰아들인지라,
안봐도 뻔하겠지만, ‘형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향하여
아버지와 농사를 책임진 자네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네.
손재주, 눈썰미도 좋아 중장비도 잘 다루니 무엇인들 못할까.
포클레인으로 석축을 쌓는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네.
서울 아파트 화장실을 다 뜯어 뚝딱뚝딱 수리해놓자 형수가 그 다음부터는 모든 일을 완전히 신복信服했다지.
그러니, 혼자서 사랑채를 1년 반 동안 지었겠지.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이던가?
나같은 ‘무녀리’는 꿈조차 꾸지 못할 일을 척척 해치우는 것을 볼 때마다 정말 부러웠었네.
고성능 보청기도 아무 소용이 없기에 아버지와 필담筆談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실제로 나도 지난해 어른과 필담을 해보면서 자네의 애로사항을 조금 엿보았지.
아버지가 소변을 종종 지리는 바람에 이불을 빨면서도
“필담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항상 웃는 자네의 넉넉한 마음에 감동받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
어디 그뿐인가?
10여년 전, 자당이 사고로 돌아가시자 자네의 직장근처 단골식당의 참한 아주머니를
새 엄마로 모셨다는 에피소드에는 혀를 내둘렀네.
아무도 할 수 없는 효행孝行을 실천하고도 내색을 하지 않던 자네의 깊은 속내는
휴먼 다큐멘터리, 바로 그것이었네.
참으로 대단하이.
우리 친구들은 어찌 이리 효자孝子들이 많을까?
고교시절 인성교육을 얼마나 잘 시켰으면 이리저리 둘러보니 맨 효자들뿐이더군.
96세 노모를 홀로 모시는 완주 비봉에 사는 친구도 자네 잘 알지 않는가?
남원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부모를 모시는 친구,
아버지 병간호를 도맡기에 사회생활하기도 힘든 친구,
요양병원을 10여년간 옮겨다니는 동안
서울에서 전주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주말마다 오르락내리락했다는
한 친구는 병원으로부터 ‘효자상’을 받았다지 않던가?
오죽하면 친구들끼리 모일 때마다
고교 교장과 동문회장을 만나
교명校名을 ‘전라고등학교’에서 ‘전북 효자고등학교’로 바꾸는
제안을 하자며 친구들의 미담美談을 줄줄줄 늘어놓았겠는가.
새삼스레 말하지만,
자네는 우리들에게 참 멋지고 자랑스런 친구네.
지난해 미니양배추를 시험재배하듯 ‘신농업인’으로 거듭난 자네는 “할 일이 태산”이라며
볼 때마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더군.
지난 가을엔 벌초대행만으로 200만원을 벌었다며 수줍게 웃는 자네,
타고난 건강을 바탕으로 ‘인생 제2막’을 성공한 농업인으로
이름 석 자 남길 것을 우리 친구들 누가 의심하겠는가?
무한한 박수와 격려를 보내네.
더불어 임실-남원 귀향친구 10여명과 농사정보도 부지런히 주고받으며 돈독한 우의友誼도 쌓아가세.
또 한 친구가 서울서 겨울잠을 자고 엊그제 내려왔으니 수일내 회동하여 단합대회를 하세.
이만 줄이네.
3월 27일
임실에서 미욱한 친구 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