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페드라 ]
이 영화는 1940~50년대 할리우드에서 필름누아르(주로 암흑가를 다룬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줄스 닷신 감독이 만들었다. 매카시 열풍의 희생양이 된 그가 유럽을 떠돌다가 10년 만에 할리우드에 돌아와 만든 작품이다.(사진, 여주인공 역의 멜리나 메르쿠리)
인간의 욕망을 비장한 음악과 배우들의 절규로 풀어낸 자극적인 멜로드라마이다. 1967년 <죽어도 좋아>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개봉됐다.
근친상간이라는 비극적인 소재가 그리스를 대표하는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바흐의 음악과 맞물려 강렬한 감동을 준다. 절망의 끝에 자살을 선택한 앤서니 퍼킨스가 달리는 자동차에서 “파도야 반갑다, 보자마자 이별이구나. 라라라라라 라라라”라는 대사를 남긴 뒤 “페드라, 페드라!”라고 외치는 절규는 영화사에 남는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여기에서 여주인공으로 나왔던 멜리나 메르쿠리는 실제로는 대단한 여걸이요 인권운동가였다. 나중 그리스의 문화부장관으로서 88올림픽 당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1967년 국내 개봉될 때 근친상간 부분이 문제가 되어 삭제되었다가 이후 TV에서 처음으로 무삭제 방영되기도 했다. 극장에서 상영할 때 삭제된 채로 개봉을 해서인지 왜 안소니 퍼킨스가 자살하는지, 그 이유가 분명치 않았었다. 그래서 국내에선 영화 자체보다도 강렬한 음악 쪽이 보다 더 주목을 받았었다.
절망해서 절벽으로 차를 몰면서 자살하는는 안소니 퍼킨스가 마지막에 "페드라, 페드라~~" 라고 외치는 대목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또한 곧이어 파도치는 바다로 추락하는 자동차와 함께 강렬한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를 부르는 퍼킨스의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 이어진다.(사진, 메르쿠리와 안소니 퍼킨스)
● 줄스 닷신 감독
미국 태생의 그리스 감독인 줄스 닷신의 1962년작 <페드라>는 앤소니 퍼킨스가 '페드라!'라고 절규한 후 바흐의 명곡 '토카타와 푸가'를 목청껏 부르면서 스포츠카를 몰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미국에선 흥행에 별 볼일 없었지만, 유럽과 한국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TV를 통해 수차례 방송됐고, 90년대 중반에는 고전 영화팬들을 위해 짧게나마 재개봉되기도 했었다. 닷신 감독은 81년 그리스 국적을 취득했으며, 반평생 넘게 '그리스인보다 더 그리스를 사랑한 미국인'으로 전 세계에 알려져 왔다.(사진, 아버지 역의 라프 바로네)
1911년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러시아계 가정에서 태어난 닷신 감독은 1948년 필름누아르 <벌거벗은 도시>로 큰 인기를 누렸다. 할리우드의 잘 나가는 영화감독이었던 닷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1950년대 이른바 빨갱이 소탕 운동이었던 매카시 파동이었다. 진보파였던 닷신은 1950년 초반 매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하는 반미행동조사위원회에서 공산주의자로 지목돼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더 이상 미국에서의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닷신은 유럽으로 떠났고, 프랑스에서 탁월한 범죄스릴러 <리피피>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망명객 신분이었던 닷신의 인생은 1955년 칸영화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영화제에서 <리피피>로 감독상을 수상한 그가 그리스의 매력적인 영화배우 멜리나 메르쿠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사진, 줄스 닷신)
닷신의 나이 마흔셋, 메르쿠리는 서른 넷이었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은 1960년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란 히트작을 내놓는다. 그리스의 모든 것에 열광하는 미국의 청년 고고학자가 유쾌하고 낙천적이기 짝이 없는 창녀 일리아를 바른 길로 계도하려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제목의 <일요일은 참으세요>는 주인공 일리아가 주중엔 아무리 남의 손가락질을 받는 일을 하지만, 일요일엔 쉬면서 인생을 만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스 냄새가 물씬한 음악과 메르쿠리의 농염한 매력이 함께 어우러진 이 작품은 흥행에 대성공하는 한편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 등 여러 부문에 지명을 받았다.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국을 떠나야했던 닷신 감독으로선 금의환향이었던 셈이다. 2년 뒤 닷신은 앤소니 퍼킨스 주연의 비극적 러브스토리 <페드라>로 다시 한 번 인기를 모았다.
닷신은 67년 그리스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해 반 군부독재 운동을 펼쳤다. 74년 민정 복귀 후 닷신 부부는 귀국했고, 그 해 메르쿠리는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한다. 메르쿠리는 할아버지가 아테네 시장, 아버지는 국회의원, 삼촌은 사회당 당수를 지내는 등(사진, 멜리나 메르쿠리)
그리스의 저명한 정치가문 출신이었다. 81년 메르쿠리는 사회당 정부가 출범하자 문화장관직을 맡았고, 닷신 감독은 같은 해 미국 국적을 버리고 아내의 나라 그리스의 국적을 정식으로 취득하게 된다.
말년의 닷신 감독은 자신보다 먼저인 1994년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해 '멜리나 메리쿠리 재단'을 설립해 전 세계에 흩어진 그리스문화재의 반환운동을 주도해왔다. 그가 특별하게 관심과 열정을 기울였던 것이 이른바 '엘긴 마블스'로 불리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들이었다.
닷신과 메르쿠리 부부를 비롯한 수많은 그리스 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9세기초 영국의 7대 엘긴 백작이 약탈해간 문화재들은 여전히 200여 년 동안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영국 정부와 대영박물관 측은 '엘긴 마블'이 그리스만이 아닌 인류전체의 문화유산이며, 대기오염으로
악명높은 아테네에 돌려줄 경우 훼손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로 지금까지 반환을 거부해오고 있다.(사진, 대영 박물관에 있는 엘긴 마블스의 일부)
[ 간략한 줄거리 ]
그리스 해운업계의 거물 타노스(라프 바로네 분)는 상처(喪妻)하자 같은 업계 실력자의 딸 페드라(멜리나 메리쿠리 분)를 후처로 맞이한다. 전처소생 알렉시스(앤소니 퍼킨스 분)는 아버지의 재혼에 불만을 품고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 버린다. 페드라는 남편으로부터 상황을 전해 듣고 의붓아들 알렉시스의 마음을 돌려 놓기 위해 런던으로 그를 찾아간다. 그런데 런던에서 만난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져 버린다.두 사람은 마음껏 사랑의 불꽃을 태우다 그리스로 돌아온다.
타노스는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화해 기념으로 아들에게 멋들어진 고급 스포츠카를 사준다. 이들은 이후에도 몰래 금단의 사랑을 즐기지만 그들의 관계는 곧 들통이 나고 만다. 타노스가 아들 알렉시스를 엘시라는 아가씨와 결혼을 시키려고 하자 페드라의 질투심이 폭발한 것이다. 그녀는 알렉시스를 오해하고 복수심에 불타 남편에게 런던에서 있었던 일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털어놓는다.분노한 타노스는 아들을 무참하게 폭행하고 집에서 내쫓는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집에서 도망쳐 나온 알렉시스는 페드라를 저주하며 스포츠카에 오른다. 그는 해안 절벽에 난 도로를 질주하다가 “페드라!”를 외치며 도로 난간을 뚫고 바다로 뛰어든다. 이 소식을 들은 페드라는 자기 방 침대에서 수면제를 털어 넣고 영원한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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