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신앙고백서 11.성령의 신성
We believe and confess also that the Holy Spirit proceeds eternally from the Father and the Son-- neither made, nor created, nor begotten, but only proceeding from the two of them. In regard to order, he is the third person of the Trinity-- of one and the same essence, and majesty, and glory, with the Father and the Son.
우리가 성령에 대해 믿고 고백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영원히 나오십니다. 이는 성령께서는 조성되지도, 창조되지도, 태어나지도 않으시고 단지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나오시는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삼위일체이신 세 위격들의 순서상 성령께서는 세번째 위격이시나, 다른 두 위격이신 성부와 성자와 함께 단일하고 동일한 하나의 신적 본질과 동등한 권세와 영광을 가지십니다.
He is true and eternal God, as the Holy Scriptures teach us.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와 같이, 성령께서는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으로서,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시는 한편 스스로 두 위격들로부터 나오신다. 그러나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성부께로부터 태어나시는 것과는 다른 나오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성부께로부터 아들로서 태어나시지만,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태어나심이 아닌 나오심으로 나오신다.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나오시는 성령께서는 그대로 영원 전부터 성자와 연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영에 완전충만하게 거하시고, 그리스도의 인성의 혼의 의지와 육의 말씀의 명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신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인성의 의지와 뜻은 그리스도의 인성의 영을 가득 채우신 성령의 뜻이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 즉 성부와 성자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므로 성령의 뜻은 곧 성부와 성자의 뜻과도 동일하므로, 표면적으로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인성의 명령을 따르시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당신 자신의 뜻을 행하는 것과 동일하시다.
성령께서는 태초에 천지가 창조된 후 혼돈하고 공허해진 수면 위를 여호와의 영으로서 운행하셨고,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뜻을 따라 6일 동안 천지만물을 당신 자신의 능력으로 창조하셨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능력으로 영원 전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인성을 한없이 낮추셔서 처녀의 몸에 잉태되게 하시고 태어나게 하셨다. 여자에게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 점점 자라감에 따라 성령께서도 그에 맞춰 그리스도의 인성의 영을 점진적으로 밝히셨고,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는 이 땅에서의 구속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부어주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는 오시기 전 만큼의 완전한 성령충만은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다시 하늘로 오르신 때에야 비로소 성령께서는 영원 전만큼의 완전충만함으로 그리스도의 인성의 영에 거하시게 된 것이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성령께서 직접 당신 자신의 목소리를 발하신 것은 요한계시록 14:13절 밖에 없다.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시라 고백할 수 없고, 성령으로 말미암아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받은 자라 할 수 없다.
성령께서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처녀의 태에서부터 보호하시고 돌보시듯이, 창세 전에 선택된 성도들이 거듭남에 이를 때까지 그들 각자의 영과 혼과 육은 물론이고 모든 성장배경을 돌보시고 보살피시고 섭리해 이끄신다. 그래서 중생의 때가 되어 성도들 각자의 영에 실제적으로 거하셔서 그들의 죽어있던 영을 살리시고, 성령에 의해 살아난 그들의 영이 자신의 혼과 연계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로 자원하여 마음을 향하여 믿음을 가지게 하며 그 믿음으로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자신들의 의지로써 육신의 입술을 움직여 주님 앞에 회개하게 하시는 것이다. 선지자 에스겔이 예언한 바,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는 여호와 삼마는 바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영을 성전삼아 거기에 거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사역으로써 성도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주님의 구원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겨지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된다. 그러나 성도가 거듭나게 된 것만으로 보혜사로서의 성령의 사역이 끝난 것은 아니다. 성도들의 영은 이제 겨우 겨자씨 한알만큼만 새롭게 되었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도들의 영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고 여러 새들이 앉아서 쉴 수 있을만큼의 큰 겨자나무로 키우시기까지 잠시도 사역을 멈추시지 않으신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성도들의 신앙을 자라게 하시는데 결단코 성도들의 의지에 반하여 억지로나 강압적으로나 강제적으로 끌고 가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의지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선을 바라고 추구하게 하심으로써 그들 자신의 의지와 연합하셔서 역사하신다. 그래서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 사람이신 것처럼, 중생한 성도들의 모든 선한 신앙행위들은 전적으로 성령의 의지임과 동시에 전적으로 성도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펠라기우스-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성령의 의지를 배제하고, 극단적 개혁주의자들은 성도의 의지를 배제하는 우를 범하였다.
성령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성도들 각자에게 주신 모든 은사들은 성전 삼으신 성도들의 영을 특별하게 각성시키심으로써 발현되는 능력들이다. 어떤 은사들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혼과 육의 능력들 중에서 지성이나 감성이나 예술 등의 어느 특정한 분야에 탁월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어떤 은사들은 사람이 행할 수 없는 능력을 행하게 되는 소위 기적을 행하는 것이기도 한다. 그 중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신자들에게서 관심을 받아온 방언이라는 은사는 성령께서 기도하는 성도의 영을 강력하게 주관하셔서 정신활동을 주관하는 혼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육의 입술을 통해 하늘의 주님께 기도하게 하시는 것이다. 즉, 방언이라는 것은 성령께서 성도의 영과 입을 통해 직접 주님과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방언하는 성도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방언하는 성도는 교회에서는 하지 말고 집에서 혼자 하거나, 정 교회에서 해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방언 통역자를 둘 것을 명한다. 한편 사도 바울은 교회와 신자들의 방언에 대한 관심과는 달리, 일만 마디 방언보다 다섯마디 예언이 낫고, 모든 은사들 중에서 가장 큰 은사는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랑이라 가르친다.
성령훼방죄 또는 성령모독죄란 이미 복음의 진리를 접하고 신앙의 유익을 어느정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진리나 명백한 주님의 사역을 공공연하게 부정하는 죄를 말한다. 구약에서는 사울 왕과 요아스 왕이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한 대표적인 악인들이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어쫓으신 것을 보고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지폈다고 모독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베드로 사도 앞에서 땅 판 값을 속이려 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이 죄를 지은 대표적인 악인들이다. 사도 바울이 정죄한 거짓 사도 또는 거짓 교사들은 할례를 비롯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복음과 주님의 희생의 공로를 훼손하였으므로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였다. 사도 요한이 정죄한 바 교회에서 스스로 떨어져나간 자들은 교회의 참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저버림으로써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였다. 주님께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라 하시면서 정죄하셨던 발람과 이세벨의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과 니골라당은 음행 등의 더러운 죄를 저질러도 신자의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고 하여 주님의 값없는 구원의 은혜를 더럽힘으로써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였다. 그렇게 거짓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어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을 따라가는 자들도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사리사욕으로 교회를 운영하거나 목회하는 목사, 간음과 횡령을 저지르는 목사, 하나님더러 자기에게 까불면 죽인다고 하는 목사,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국가 지도자와 정부를 저주하고 비방하며 악담하는 목사들과, 이들을 맹종하는 교인들 모두가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인들이다.
사실 엄밀하게 따진다면 모든 죄는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과 주님께서는 무언가 최종적으로 무르익은 단계의 죄의 형태로 한정하시는 것 같다. 만약에 엄밀하게 모든 죄를 성령훼방과 모독죄로 여기게 된다면 주님께서 단언하신 바 아무도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모두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창세 전에 이미 구원하실 성도들을 선택하셨고 그들의 죄를 대속하셨고 그들에게 성령을 보혜사로 보내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택하신 성도들이라고 해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성도들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지은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며 그 죄를 짓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내용이 있는 것은, 우리로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는데로 나아가지 않게 하시려는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에 있으면서도 죄를 짓고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뻔뻔하여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설령 그들이 목사이건 장로이건 집사나 권사이건 교인이건 간에 장차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함으로써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떨어지게 된다고 볼 수가 있다. 교회 내 성령훼방모독자들은 처음부터 성령을 보혜사로 받았다가 성령께서 떠나신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성령을 보혜사로 받지 못했으면서 다른 성도들이 받은 성령의 은사와 유익들을 빵 부스러기처럼 잠시 맛보았던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그런 자들은 제아무리 교회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과 기적을 행하고 좌지우지하는 큰 영향력을 끼쳤다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했다는 판결을 받아 바깥 어두운데로 쫓겨나 울며 이를 갈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