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장님은 놀러 다니고..
허전한 기분이지만 난 내 할일 해야지...
여기 저기 찾아 보기도 하고 또 얇팍한 지식도 조금 섞어서 몇자 적어 봅니다.
이벤트 주제는 오스만 제국인데..
오스만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앞서 발표하신 선배님들의 글이 있기에 전 그들의 과거 행적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습니다.
여기로 부터 8000 키로나 떨어진 유럽의 끝자락에 우리와 같은 몽고 반점을 갖고 있는 나라..
터키 이다.
이 강인한 북방 유목 민족을 중국에선 오랑캐라는 뜻으로 돌궐이라 이름 지었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투르크(Turk)라 불렀다.
돌궐 이전의 북방 초원의 주인은 흉노였다.
기원전 2세기에 등장한 흉노는 몽골 초원에 유라시아 최초의 유목 제국을 건설한다.
그 세가 얼마나 막강했는지 진시황은 만리 장성을 쌓아야 했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조공을 바치기 까지 했다.
200년간의 흉노의 시대가 끝이 나고 그 비워진 대초원의 주인은 돌궐 이었다.
6세기의 일 이였다.
유목 국가의 최대 약점인 문자를 만들어 모래알 같은 민족의 결속력을 다지고 곳곳에 비문을 세워 자신들의 문자로
역사를 남겼으니 그들의 발자취는 뚜렸하게 역사에 기록 되어 있다.
이 비문에 우리 고구려와의 동맹에 관한 내용도 많이 적혀 있는데 이때부터 형제의 국가로 불리어 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돌궐은 파미르 고원을 넘어 카스피 해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유목 제국을 만든다.
지금 중국 전역과 맞먹는 크기였다.
실크로드를 장악한 돌궐은 중계 무역으로 부를 쌓았다.
중국 중원의 수나라,당나라도 돌궐과 군신관계를 맺고 조공을 바쳤다고 하니 그 당시 돌궐의 위세는 가히 짐작이 간다 하겠다.
극도로 팽창한 세에 왕위 계승을 놓고 분열이 생겨 결국 돌궐은 동,서로 분열되고 만다.
흉노와 마찬 가지로 200년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 것이다.
돌궐이 무너진 또 하나의 이유는 불교가 한 몫했다.
"살생하지 말라"는 가르침 때문이다.
분열된 동쪽은 중국에 동화가 되고 서쪽의 돌궐은 새로운 땅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하게 된다.
게르만 민족의 대 이동을 능가하는 투르크 민족의 대 이동이다.
이동의 첫번째 관문은 중동 지역이였다.
당시 중동에는 중세 이슬람의 황금 시대를 연 "아바스 왕조"가 있었는데 그 세력이 막강했었다.
결국 이방인이 된 돌궐인은 아바스 왕조의 용병으로 명맥을 이어 가게 된다.
아마 투르크가 이슬람화 된 시기가 이때 쯤 일 것 같다.
그리고 탈라스 전투.
탈라스 전투는 세계사 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지닌 전투 이다.
8세기(751년) 서진하던 당나라와 동진하는 아바스왕조가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탈라스 강에서 만나게 된다.
결과는 돌궐이 합세한 탈라스의 대승이였다.
이 전쟁의 결과로 오늘날 중앙아시아의 그 넓은 땅이 모두 이슬람이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투르크 인들은 마침내 11세기초(1037년) "셀주크 투르크"를 세우게 된다.
이것은 중동의 거의 전 지역을 석권하는 엄청난 크기의 이슬람 제국이었다.
셀주크는 과거 돌궐 제국과는 완전히 달랐다.
유목 제국이었던 돌궐 제국은 영토 점령 보다는 교역을 통한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 우선 이었는데 이는
점령한 영토를 다스릴 역량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셀주크는 팽창과 정복이라는 제국 특유의 기질로 무장된 제국이었다.
이들은 비잔틴 제국을 꺽음으로서 오늘날 터키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하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등 기독교 성지를 지배함으로서 십자군 전쟁을 불러 온다.
탈라스 전투에서 이슬람과 중국 문명권의 충돌 한복판에 섰던 투르크가 이번에는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 충돌의 선두에 다시 서게 된다.
셀주크 투르크는 돌궐의 유목 제국보다도 수명이 짧았다.
오랜 십자군 전쟁을 치르느라 국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막강 몽골 제국의 침입을 맞았기 때문이다.
셀주크는 200년도 안돼 문을 닫았지만 투르크의 생명력은 결코 꺼지지 않았다.
몽골이 물러나자 투르크는 또다시 부활하여 드디어 더 큰 "오스만 투르크 제국"(1299년)을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15세기(1453년)에 콘스탄티노블을 함락 시키고 천년의 로마 제국을 멸망 시킨다.
오스만 투르크는 유럽,아프리카,서 아시아에 걸쳐 옛 동로마 제국의 영토 대부분을 차지 하게 되고~
이들은 600년간 이나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게 된다.
하지만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 되면서 수명을 다했고 1923년 오늘날의 터기 공화국으로
재 탄생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 교과서에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우리의 조상은 중앙 아시아 초원의 흉노이다"..
'그리고 돌궐은 투르크 이름으로 건설한 최초의 국가 였다'.
'해서..우리의 건국 연도는 돌궐이 나라를 세운 552년이다'....라고..
터키의 교과서에는 영원한 동맹국인 고구려를 같은 우랄 알타이 민족이라고 역사 과목에서 비중있게 다룬다고 한다.
읽어 주시느라 고맙습니다.
방장님은...놀러 가셨는데...
땡깡 놀수도 없고..
모두 놀러갑시다^^....
첫댓글 역사를 아는자
미래의 주인공이 된다
잘음미 하고 갑니다.
선 라이즈님~
안녕하세요..
세게사에 대해 관심이 조금 있는 정도에요.
글은 여기 저기 찾아 보면서 쓴 글이라 조잡합니다.
항상 해가 뜨는 것처럼 밝고 즐거운 카페 생활 응원합니다.
지식이 상당하세요.
워낙 세계사엔 관심이 없어 잘 몰랐는데,
터키의 긴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긴 글 쓰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ㅎㅎ 거의 인용한 글이라..
특히 연대 같은 건 까 먹은 지 오래 되었구요.
그저 개념 정도만 알고 있는 건데..
과찬 에요..
방장님도 속이 시원찮아서
남풍을 쏘여야 낫는다니까
노시는 분들은 놀게 두고
일 하시는 분은 일 하시고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은
책이라도 보면서 놉시다
책도 보기 싫으면 나가 ㅎ
ㅎㅎ
선배님 ~왜 이리 웃기 십니까..
다른건 몰라도 몽연님 건강한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난...
누구랑 놀러 가나....
@김포인
오늘은 책도 보기 싫어서
한국 영화의 중흥을 위해
'카운트' 한편 봤습니다
서산 시내까지 봤는데
그냥 킬링 타임용으로도
뭔가 22%가 모자라서
노인네라 반값이니 봤지
온돈 주고는 못 보겠더이다
터키의 역사를
정리하시느라 애쓰셨어요
이번기회에
터키의 역사도 배우고
김포인님께 감사드려요
3월달 방장님의 식사초대는
따놓으셨네요 ~좋겠당! ㅎ
지호님도 한번 써 보세요.
거의 다 보고 쓴 거라..
직장 다니느라 바쁘시지요?
풍주 방의 보배 십니다.
@김포인 보배는
진짜로 저희딸 이름이구요 ㅎ
우째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드는건
왜 일까요??
ㅎㅎ
목포 오신다면 내일 올라 갈건데
그냥 눌러 있을께요
이벤트 글은 너무도 정리 요약을
잘 해 놓으셨네요.
동그라미 다섯개 입니다.
윽~24일 개띠 방 모임이라..ㅎㅎ
전 다음 기회에..
재밌게 쉬다 오세요^^~
조~~오기~이더님은 좀 덜 먹이세요^^~
@김포인 츠암나~
배고파 죽겠구만..
순~~회 종류로 만찬이라..
전복 굴 숭어 도미 산낙지 등등..
난 시른디~~잉잉
오늘저녁 겨우 삼겹살에
소주한잔~~캬~~!!!
덤비~~! 다죽었어요~
@이더
거짓말 하면 안되지라..
소주 반잔이였는데...
ㅎㅎ
@이더 소주 한잔이면 거의~
뵈는게 없는거 아녀요?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 입니다.
즐거운 여행 이시겠네요~
부럽~!
모범생 버전으로 열심 읽었어요~^^
정성이 듬뿍 묻어나니 A++예요~
옆의 방장님이 아주 흐믓해 하네요~^^
건강해 보여서 기분이 좋네요..
글이야 수준 미달 입니다만..
열심히는 했죠..ㅎㅎ
잘 지내다 오세요..
풍류방을 사수하시느라
불철주야 애 쓰시고 계신 김포인님께
남도에서 노니는 군졸들
다 함께
받들어 총! ㅎㅎㅎ
에효..
사수 라뇨...
겨우 면피 하고 있는 거죠.
이곳은..
매일 이쁜 꽃 보여주시는 동심 님도 계시고~
멋진 글 올려주시는 곡즉전님..비온뒤님..
또..마3 트리오 분들도 계시니~
전 그저 잘 차려진 밥상의 양념 정도 죠.
좋은 추억 거리 많이 만드세요^^~
글쓰신다고 수고하신 김포인 님
뎃글쓰신 모든분 전부 목포로 가시죠 ㅎ
ㅎㅎ그럴까요?
생각만 해도 신이 납니다.
훈족에서부터 돌궐을 거쳐 현대의 터어키에 이르는
2000년이 넘는 터어키민족의 역사를 깔끔하게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의 형제국이라는 의미가 단순히 6.25참전을 넘어 고구려와의 동맹까지
장구한 역사적 인연이 있음을 강조해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반갑습니다.
터어키가 6.25 참전을 빨리 결정한 이유는..
형제 국 이란 것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시대적 배경으로 터어키는 "NATO"미 가입국 이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막 끝난 불안한 형국에 연합국이 참전한 6.25 전쟁에 동참 함으로써 결국 1952년에 "NATO"가입에
성공합니다.
러시아(구 소련)에 대항하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참여로 비교적 외세로 부터 안정을 찾게 됩니다.
지금 전쟁이 한참인 우크라이나도 "NATO"가입이 절실한 상황인데..
예전 보다 더욱 복잡해진 국가 간의 이해 관계 때문에 아직 가입을 못하고 있는 실정 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과거 인류의 흔적을 찾아 보는 것은 나름 재미도 있고..
살아 가는데 좋은 토양이 되기도 합니다.
그 당시는 지금 처럼 공업이란 개념이 없었죠.
해서 비옥한 땅을 많이 가진 나라가 강국 이였고 또한 먹고 사는 문제를 조금 이나마 덜게 되었는데..
그렇게 국가의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싸웠나 봅니다.
동맹에서 적으로 손바닥 뒤집듯이 하기도 하면서요.
로에님..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