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지학(爲己之學)이란 말은 최근에야 알게 된 말이다. 이 말은 ‘지기 자신을 위한 공부’란 뜻이다.
맞서는 말이 ‘위인지학(爲人之學)인데, ’ 타인을 위한 학문‘ 또는 ’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란 뜻이다.
이 말들은 주로 성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인데, 두 말 모두 매우 중요한 개념이며 학문으로서나 현실로서
영향력이 있는 말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하지 않는 용어라는 점에서 낯설 뿐이다.
왜 내가 새삼스레 이런 말에 주목하게 되었을까? 실은 이것은 누구한테 배우거나 들어서 안 것이 아니고,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시시콜콜하게 많아지다 보니 예각적으로 모아져서 얻게 된 생각이다.
나중에 아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위기 지학과 위인지학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한평생을 돌아볼 때 나도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 공부했고 누군가와 경쟁하기 위해서 공부한 사람이다.
말하자면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써먹기 위해서 공부했다는 말이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취직하고 승진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돈을 벌기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고 또 공부를 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참 허무한 일이다. 그래서 남은 것이 무어란 말인가? 모든 삶의 지름길들이 공부로 연결되었고
거기서 뒤처지면 낙오자가 되었고, 끝내 나락에 빠지는 일이었다. 문제는 부수적으로 생기는 경쟁심이요 스트레스요,
시기심, 분노, 절망 같은 마이너 감정들이다. 기껏 성취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만과 자아도취에 지나지 않는 서푼짜리
종이호랑이 가면 같은 자화상일 뿐이다.
이런 경쟁과정에서 가려지는 것이 바로 본성이라 한다. 인간은 본래 선한 마음, 측은지심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이러한 경쟁 과정에서 좋은 마음들이 가려지고 나쁜 마음들만이 가득한 인간으로 변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본래의 자기를 찾는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위기지학이요 성인의 길에 이르는 성학(聖學)이라는 것이다.
이런 거창한 담론은 조금씩 밀쳐 두고 나 자신 생각해 볼 때, 나는 그동안 너무나 남한테 보이기 위한 공부(爲人之學)에만
치중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써먹기 위한 공부만 해 왔다는 자괴심과 반성이 없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내가 평생 써 온 시는 어떤가? 나는 시인으로서 철저히 시골 시인이었고, 처음부터 개인정서
중심의 시인이었다. 나 자신 좋아하는 여성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시를 썼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렇다. 여기에 나의 인생 출구가 열린다. 열아홉 살 이래 교직에 몸담아 동당거리며 숨 가쁘게 살아온 나지만 그와 동시에
시를 써 온 일은 매우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것도 집단 정서에 한 번도 기웃대지 않고 개인정서에 철저하면서 조금은
고리타분한 전통 서정시를 고집한 일은 더더욱 잘한 일로 여겨진다.
정년퇴임하면서 결심한 일이 있다. 이제 나는 절대로 남을 위해서 살지 않고 나 자신을 위해서 살겠다는 결심이 그것이다.
남을 위해서 먹기 싫은 술도 먹지 않겠고, 가기 싫은 모임에도 가지 않을 것이며, 만나기 싫은 사람은 단호히 만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나 좋은 대로만 살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제는 구름을 보고 싶으면 구름을 보고, 바람을 만나고 싶으면 바람을 만나며 살리라.
또 음악을 듣고 싶으면 또 그렇게 할 일이다. 책을 읽더라도 이제부터는 써먹지 않기 위해서 읽을 것이다.
나 자신만을 위한 책 읽기,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는 공부, 좋은 책은 읽고서도 다시 읽을 것이고 읽기 싫은 책은 어떤 책도
읽지 않을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좋은 결단인가! 기쁨으로 하는 책 읽기와 공부가 거기에 있었다.
글을 쓰더라도 책으로 내거나 잡지에 발표하거나 더군다나 평론가들한테 칭찬받기 위해서는 쓰지 않으리라.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문학상을 타기 위해서는 더더욱 쓰지 말아야지.
실상 시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표현 양식이다. 처음부터 그러했고 나중까지도 마땅히 그래야 했다.
그런데 나부터 그것을 잘못 알고 잘못 운용해 온 것이 실수다.
이제 나이 먹어서라도 알았으니 다행한 일이 아닌가. 나는 여기에 한마디를 보태고자 한다.
시는 위기지학이고 본래의 나 자신을 찾아가는 머나먼 여행길이며,
나 좋아서 쓰는 예쁘고도 사랑스런 문장일 뿐이다.
(나태주의 위기지학으로의 시 중에서 )
* *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의 詩 건, 글이 건, 그림이 건, 기타 그 무엇이 건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것보다는
자기 스스로를 위한 것이야말로 진정 가치와 보람이 있을것이라는 시인의 글인데, 사실 이 부분은
매우 미묘한 것이라 실제 잘 구분이 안 가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러나 상당 부분에서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공부며 글을 쓰고 있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진정 나를 위한 그것이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것과 겹치는지 전혀 없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 아침 출근하며 평소 애청하는 불교방송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 나태주 시인이 평생 살아오면서 잘한 일 4가지를 꼽는데~'
그 첫째는 , 평생 시골에서만 살아왔다는 거~
둘째는 , 초등학교 교사로만 살아와서 평생 어린 동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거
셋째는, 시를 쓸수 있었다는 거~
넷째는, 평생 자동차 없이 자전거로만 살아서 길가의 풀, 꽃, 자연을 원 없이 즐길 수 있었다는 거
대략적인 내용은 이런것 이었다.
그러면서 이 방송을 듣는 당신은 평생 잘했다고 느끼는 것이 뭐라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그거야 각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 구구 각색~ 다 다르겠지만,
나도 나 나름대로 내 평생 이것은 정말 잘한 거이다~라는 게 있긴 있다.
물론 결과론적 지나고 보니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첫째는 시골 농촌에서 태어나 16년간 흙과 나무 농작물을 보고 만지고 자랄 수 있었다는 거,
덕분에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상당 부분 예리할 수 있었다.
둘째는 전혀 꿈도 꿀 수 없는 말도 안되는 환경에서 최고 학부를 마칠 수 있었다는 거,
셋째는 평생 나이 들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 그것이 아주 무의미한 일은
아니며 나름 의미와 약간의 보람도 있는 일이라는것~
넷째는 사진, 노래, 골프 등 취향에 맞는 취미 생활을 유효 적절하게 잘 병행하며 살아간다는 것.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지만 쓸데없는 자기 자랑에 불과할 소지가 많아 이쯤에서 나도 4가지 정도로
줄여본다.
반대로 평생 '이건 아니었는데~' 혹은 잘하지 못한 것도 물론 몇 가지 있긴 하다.
인생이란 그 어느 누구도 다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가 평생을 시골에서만 살아갔다는 점과 시를 쓰며 동심을 잃지 않고 살아갔다는 점은
도회지 생활에 익숙한 많은 분들에게는 그다지 귀에 들리지 않을 법도 하다.
더군다나 자동차 없이 자전거로만 모든 이동수단을 의지했다니~
그것이 요즘 흔한 비싼 자전거 타고 전국 일주하기 그런 것과는 영 방향이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얼핏 들으면 그야말로 별거 아닌 순 아날로그 방식으로 디지털 4차 혁명시대에 뒤처지는 고리타분한
얘기로 들리지만, 시인에게는 결정적으로 인생에서 잘한 일이라니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어찌 됐거나 나도 평범하지만, 평생 잘한 일을 곱씹으며, 감사하며 이 봄을 지내기로
작정을 해본다.
첫댓글 마론님이 교직에 계셨다는 것과 시를 쓰신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시를 쓰는 일은 고단하면서도 즐거운 일인데요, 저는 시인도 아니면서
가끔 흉내를 내지만 시다운 시를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석촌님의 시와 글을 좋아하고 즐겨 읽습니다.
마론님의 시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아하~ 이런,,
윗단의 글은 시인 나태주가 쓴 글을 인용했던거구요~
사진 아래부터 제가 쓴 글이랍니다^
조금 명확하지 않게 제가 글을 올린거 같군요!!
저는 시는 몇편 써 본것이 없어 나중에 기회되면
올려 보겠습니다^
마론님 오랜만입니다
한동안 안 보여서 걱정 했습니다
앞으로는 자주 보이시면 좋겠습니당 충성
이왕 이야기 나온김에
나도 내가 내 평생 잘한거?
내나이 만 71세 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거
거주할 집이 있다는거
먹구 살 수입이 있다는거
뭐 그정도면 잘 살은거 아닙니까?
그리고 두아들 다 열심히 잘살고 있으니 나는 행복합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봄철 며칠 여행하고 사진 정리하고~
카메라 렌즈 수리해 본다고 또 며칠 발버둥 쳐보고
그러다 날짜가 휙 지나가 버렸답니다.
그렇지요!
잘한일 이 금세 이렇게 떠 오른다는것은 자신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잘 파악하고 계시다는 반증
아니겠습네까? ㅎㅎ
위기지학은 익숙하고 위인지학은 생경하고 ㅎ
남을 위해 공부하기 보다는 남들도
그러하니 무의식적으로 따라갈 수 밖에 없는 학창시절이고
혹은 우리의 교육정책이 그러하니,,,
다만 성인이 되어서는 위기지학 넓게는 나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명제는 확실하지요.
남을 위한 남에게 보여주는 삻은 허망하고 거짓이니
지금이라도 나를 위해 힘껏 즐겁게 살아 갑시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건강하세요.
저도 나태주 시인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불교방송을 들었고,
해서 찾아보니 저런 글이 있더군요!
헌데, 사람의 인생이란 사실 대부분 남에게
보여주기위해 사는 면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초중장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자기를
나타내고 자랑을 하고 싶고~ 등등
그렇게 살았지 않나 생각 되지요.
그러나 나태주 시인의 글의 마지막 부분은
좀 따라해도 좋겠다,, 생각되누만요!
남들이야 무어라 하든 마론님도 참 잘 했네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거야 운명이었지만
최고 학부에서 수학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 자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고
각종 취미생활을 위한 소양을 갖추고 있으니 그런거지요.
그런데 인간은 사회성이 있는 목숨이기에
함께 살아가면서 자신을 부단히 표현하게 마련입니다.
때론 그걸 다 해본 사람들이 마지막에 모두 버리고 자연으로 숨어들기도 하는데
끝까지 사회에 머물며 자신을 표현하며 살아가든
아니면 모두 버리고 은거생활 하든 자신이 선택해 나가는 것이겠지요.
나태주 시인의 글을 인용하다보니 저의 경우를
동시에 언급을 안할수가 없어 그리 됬어요!
그런데 위기지학인지, 위인지학 인지는 사실
구분이 어려울듯하고 어디에 당선되기 위해서나
평론가의 좋은 평을 기대한다든가.. 이런건 전문가들의
영역에 속하고 일반 보통 사람들에겐 해당조차 안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보일려는 마음도 때론 필요한 동기부여가
될거란 생각은 듭니다.
전혀 자신만을 위한 글이나 작품등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를 전에도 종종 생각해 봤던 주제 이기도 하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효! 뭐 그렇게나 칭찬을 하시나이까?
ㅎㅎ 쑥스럽구만유~
그것보다도 왜? 나태주 시인의 위의 글이 눈에 띄였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해 본다고 해 왔지만, 역시
위기지학과 위인지학을 반반은 섞어 활용한게 아닌가~
그런 생각은 듭니다.
제가 블러그를 하는 이유 이기도 하지요.
남에게 보여줄 이유가 없는 블러그는 애당초 존재 이유가
없을테니 말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먼저 자신을 위한 德과 수양을 쌓는 것이지요.
자신을 완성하기 위한 爲己之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위기지학을 갖추고 난 후에는 남을 위해 학문을 할 수도 있지요.
논어에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은 남에게 알려지려고 자기를 과시하는 학문을 말한다고 하지만
내가 배웠으면 후학을 가르치기 위한 공부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만에 오신 마론님,
화창한 사월의 꽃사진에 온통 전념하셨나요.
수필방에도 좋은 사진있으면 올려주시면 합니다.
어느새 사월의 마지막 주네요.
꽃피는 계절과 신록의 계절이 바톤터치 하게 되었네요.
자주 뵈옵기를 요.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오로지 자기를 위함이 있다면 반드시 남을
위함도 있어야 배움의 가치는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올핸 사진을 그닥 전념을 못했지만, 중간에
여행이 며칠 있었고, 그거 정리에 렌즈 떨어뜨린것
수리등에 시간을 뺏기다 보니,, 그리 된거 같습니다.
오늘도 비 온후에 너무도 신록이 우렁차게 함성을
지르고 있더군요!
예년의 5월초가 한 1주일 빨리 온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