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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베일에 묻혔던 빨치산 호남지구 총사령관 남태준 생포 주인공 찾았다 생포의 주인공은 지리산 토벌대 육군 5사단 소속 박정용 상사 실제 본지가 입수한 육군본부의 상훈대장에는 박 상사의 훈장 수여 사실이 누락돼 있다. 당시 작성된 육본의 자료에 따르면 50~54년까지 훈장을 받은 사람은 총 16명. 그러나 박 상사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육본측은 현재 관련 자료를 모두 확인해 봤지만, 훈장 수여 사실은 확인이 안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육본의 한 고위 관계자는 “상훈명령지와 상훈대장을 확인해 봤지만 박씨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박씨가 소속돼 있는 5사단의 역사기록까지 뒤져봤지만 마찬가지였다”고 털어놓았다. 이 관계자는 심지어 박 상사가 남태준 총사령관을 생포한 사실조차도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박씨의 소속 부대인 5사단이 남태준 총사령관의 토벌에 가담한 것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확인이 됐다. 그러나 생포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면서 “현재로서는 박씨가 남태준을 생포한 사실 자체도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입장은 다르다. 부주의로 분실하기는 했지만, 두 눈으로 훈장을 확인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유족들은 그 근거로 지난 67년 9월9일자로 발행된 전우신문(현 국방일보 전신) 사본을 제시했다. 박 상사의 딸인 박인숙(47)씨는 “당시 전우신문에서 아버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면서 “이 신문에 남태준을 생포한 뒤, 훈장을 받은 내용이 상세하게 게재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부대 주임상사’ 코너에 실린 당시 인터뷰 기사에는 남태준 생포 당시 상황이 자세히 게재돼 있다. 신문은 “그는 지리산 지구, 빨치산 작전에 참가해 호남지구 빨치산 총사령관인 남태준을 생포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신문은 이어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일 때 그의 가슴은 화랑훈장으로 더욱 빛났다”면서 화랑무공훈장 수여 사실도 확인해 주었다. 육본측도 이 부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관련 자료를 다 뒤져보았지만 박씨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육본 고위 관계자는 “남태준이 생포된 50여일 후인 54년 4월25일 전남 광양의 진상중학교 운동장에서는 군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훈장 수여식을 가졌다”면서 “당시 기록에도 박씨의 이름은 누락돼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다. 심증만 가지고는 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게 육본측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는 “국방부와 국가보훈처에 관련 사항을 논의했지만 불가 입장만을 전해 들었다”면서 “상훈대장 없이는 보상은 물론이고 명예회복도 불가능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당시 상황은 휴전 협정이 체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특히 남태준 총사령관은 당시 호남지구 빨치산 부대의 정신적 지주. 이런 거물이 생포됐다는 소식은 북측에 달갑게 들릴 리 만무하다. 적지 않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게 유족들의 설명이다. 실제 박 상사의 자력표(일종의 인사기록카드)에는 현재 두개의 군번이 존재한다. 남태준을 생포할 당시 군번인 2602****번과 8000****번. 박씨는 이 군번이 당시 남태준 총사령관을 생포한 아버지를 숨기기 위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육본측은 “말도 안된다”며 관련 사실을 일축했다. 육본 관계자는 “군에서는 그동안 6·25 전쟁에 참여한 노병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당시 상황을 은폐할 이유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박씨의 기사가 게재된 전우신문에 대한 다각적인 인증 절차를 현재 진행중”이라면서 “신문 내용이 검증된 사실일 경우 행자부와 대통령 결재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 기자> 3Dsuk@tradenews.net">suk@tradenews.net 인터뷰 - 박 상사 딸 박인숙씨 “아버지는 불행한 역사의 희생양” 박 상사 유족에 따르면 박 상사는 평소 인자한 아버지였지만, 전투에서만큼은 호랑이였다. 유족들이 털어놓는 일화 한토막. 6·25 전쟁이 발발한 지난 50년 박 상사는 강원도 강구지구 전투에 참가했다가 방망이 수류탄에 맞고 부상을 당했다. 당시 군에서는 제대를 권유했지만, 박 상사는 이를 거부했다. 이후 배치된 곳이 남태준을 생포한 5사단이다. 박 상사의 딸 박인숙씨는 “지난 67년 9월9일자로 발행된 전우신문에서 아버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 신문에 남태준을 생포한 사실과 훈장을 받은 내용이 상세하게 게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박씨가 아버지의 훈장 수여 사실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5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같은 사실을 알리는 것은 결코 돈을 바라서가 아니다. 돈은 살만큼은 있다”면서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 - 육군본부 고위 관계자 A씨 “심증은 가지만 물증 없으면 곤란” 육본측은 현재 심증이 있더라도 물증이 없으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육본 관계자는 “상훈명령지와 상훈대장 뿐 아니라 박씨가 소속된 5사단의 역사기록까지 찾아봤지만 박씨의 이름이 없다”면서 “현재로서는 관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군에서는 그동안 6·25 전쟁에 참여한 노병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박 상사의 경우 근거가 확실하다면 당연히 훈장을 수여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할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한다. 그는 “남태준이 생포된 50여일 후인 54년 4월25일 전남 광양의 진상중학교 운동장에서는 군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훈장 수여식을 가졌다”면서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각종 기록을 모두 확인해 봤지만 박씨의 이름은 누락돼 있다”고 설명했다. 2005-04-09 07:50:12 |
첫댓글 저의 아버님 사진이구요,,그리고,가족사진은 오른쪽 남장이 저입니다,,,4살때부터,남장이었죠,,,,,
저는 20년전부터,육본하고 싸워지만,아직도,,육본은 서류가,없다,내가,제시한것이,최고다,,그래서,슬프다,,그러나,청와대,,찾어갔으니,이제,,기다려본다,,
소희님 그당시 아버님과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을 만날수 있다면 그분들의 증언도 많은도움이 될겁니다 아직도 병원이세요?
수많은 고통의 세월을 살으셨을 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기만 하네요.속히 인정을 받아 유공자의 대우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으악새님,고맙구요,,,국방부장관님과,청와대에서,,다이시어요,,이제,,어느정도,,가닥이,잡혀서요,,걱정해주셔서,고맙습니다,,저한테,서류,,와,육본서류가,,일치했어요,,,
이제 서류를 찾으셨다니 다행이네요~~차차 매듭이 풀리겠죠!고만 좀 우셔요어머님 아시면 어쩔려구!소희님 가슴 아퍼요 정말
아버님근무당시,,1948년 국방경비대 16연대 1기생 명단이 없대요,,,이런슬픔이 여수,순천을 14연대에서시작했구요,아버님16연대 진압이었거든요,그리고,,육본에 서류없어요,,,그래서,저가,,약50장제시했자너요,,ㅠ,ㅠ
소희님 아직도 병원에 계신가요?걱정이네요~그리구요 닉에는 부호를 못쓰게 돼어있으니 (괄호)들어 간 것 지워주시구요 소희님 이름에 본명 넣구 싶으시면 그냥 한칸 띄어서 써 주셔요!부탁하나더!사랑방 꼴글은 꼬리글 잇기로 갑니다 부탁이요~
그러게요 모든것이 증거가 있어도 참으로 인정 받기가 어려운것이 많더군요 부디 좋은 결과 있으시면 좋겠읍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요. 마음고생이 많으시네요. 일이잘풀려야될텐데.. 사필귀정이라했잖아요.잘될것입니다. 힘내세요 소희님.! 그리고 아직도 병원이신가요 빠른쾌유를 기원합니다.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여러모로 힘든 일을 겪고 있을 소희님 소식 안타깝네요. 게다가 병원 신세까지 지고 있고, 어머니마저 편찮으시니... 으악새님 말씀대로 동료들의 증언은 어떻게 도움이 안될지... 안타깝습니다.
슬품이군요,잘되시길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