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우유의 기분 / 하린
나는 딸기를 오해하고 어머니는 우유를 이해한다
처음부터 섞이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아이와 어른이 섞여서
어른아이가 되거나 아이어른이 되는 일만큼
자연스러우면서도 불완전한 상태인 게 없다
그 많던 씨들의 가능성은 어디로 갔나요 어머니, '진짜딸기우유' 속에는 딸기의 심장과 맥박과 숨소리가 있을 것만 같은데 진짜란 무엇을 위한 기억인가요
유통기한이 지나도 싱싱함을 보장하는 건 냉장고의 배려 혹은 음모
어머니는 알츠하이머의 원산지를 걱정했어야 했다
먹지도 버리지도 않고
쌓아 놓은 딸기 우유를 내게 내미는 습관
한 모금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딸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순하고 연한 빨강이 으깨지는
상상만 떠오르는데,
우유 속에서 딸기가 걸어 나와야
니 애비 속에서 여자가 걸어 나와야
온갖 편린들이 섞여 어머니의 지금을 증명했다
아, 아버지 닮은 나를 누군가 마시고 있다는 느낌
붉은 립스틱을 칠하던 어머니를
지금도 저녁이 외면한다는 느낌
- <시인수첩> 2020년 가을호
* 하린 시인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 학위.
2008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
시 창작 안내서 『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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