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지학과 위인지학에 관해 / 마론님 글을 읽고
김 난 석
마론님이 나태주 시인의 글을 인용해 소개한 위기지학은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요
이와 달리 위인지학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 했다.
위기지학과 위인지학의 그 뜻이 아리송하기도 하지만
남을 의식해 거짓으로 꾸미는 걸 지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진정한 자기 삶을 사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이 허세를 부리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그 허세라는 게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하는 것들일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헛 노력을 하게 되고
그러노라면 자신이 피폐해질 뿐이요
급기야는 허망해지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있는 것만큼만 자랑하고
아는 것만큼만 알리고
생긴 것만큼만 내보이면 될 테다.
그 수준을 좀 더 향상시키기 위해 홀로 노력하는 거야
누가 무어라 하랴.
그런데 그 수준은 자기 자신에 전속된 것이므로
그게 남들보다 낮다 하여 비굴해질 필요도 없고
그게 남들보다 높다 하여 기고만장할 것도 아니니
오로지 있는 대로 생긴 대로 살아갈 일이다.
나는 위기지학과 위인지학을 그와는 달리 해석한다.
위기지학은 자기 수양이요
위인지학은 經世의 지혜를 함양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달리 표현하면
위기지학은 안으로, 위인지학은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大學 편에서도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는데
수신과 제가는 안으로 수양하는 것이요
그런 연후에 밖으로 눈을 돌려 치국평천하 하라는 것이니
위기지학은 수신제가와 연결되고
위인지학은 치국평천하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공자와 맹자가 이룩한 유교사상의 궁극목적은
중국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興於詩立於禮成於樂을 들었는데(논어 태백편)
시와 같은 고운 심성을 타고 일어나(興於詩)
인간으로서의 예의범절을 갖추고(立於禮)
음악으로 조화로운 세상을 완성한다는 것이다.(成於樂)
여기서 詩는 詩經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데
공자는 詩經의 시 삼백 수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무사(思無邪) 라 했으니
시와 같은 심성이란 삿됨이 없는 심경을 말하는 것이요
그래서 나는 그 흉내라도 내기 위해
시와 음악을 즐긴다.
나태주 시인은 나의 사범학교 1년 후배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친분관계는 없다.
그는 지방에서 자라 지방에서 살고 있고
나는 지방에서 자라 도회에서 살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임했지만
나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뛰쳐나와
중앙행정기관에서 근무하다가 조금 일찍 퇴직했다.
그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다가 지금도 자전거로 주유한다고 했다.
나는 승용차로 출퇴근하다가 지금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거주지의 환경으로 보아 그는 자전거도 가능하지만
나는 승용차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한다.
그는 시인으로 활동 중이며
한국시인협회 이사장도 했다.(지금은 유자효 시인이 회장)
그러나 나는 한국시인협회 평회원일 뿐이다.
그는 여러 편의 시를 써서 발표하고 시집도 펴냈다.
나도 여러 편의 시를 쓰고 시집도 냈지만
한 번도 어느 누구의 추천을 받거나 격려의 글을 받진 않았다.
그는 이제부터 “나 좋은 대로만 살겠다” 고 술회함으로써
마치 그동안엔 이것저것 눈치 보고 휩쓸리며 살았다는 걸 암시한다.
시를 씀에 있어서도 책으로 내거나 발표하거나
평론가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는 쓰지 않으리라고 했다.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나
문학상을 타기 위해서 쓰지도 않으리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어떤가...
나는 내 의지대로 직장생활을 하고
사회생활도 내 좋은 대로만 해왔다.
그래서 충돌되는 일들도 있었지만
그런 땐 맞서지 않고 비켜갔을 뿐이다.
문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무슨 문학상을 타기 위해 발버둥치진 않았다.
그저 지면이 허락하는 대로 담담하게 발표해왔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표현하길
“고리타분한 서정시를 써왔다” 고 했다.
그에 비해 나는 비교적 주지주의의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런 면에서 그와 나는 조금 대비가 된다고도 하겠다.
그렇다고 우리 둘 사이에 우열이 있는 건 아니다.
릴케의 악의 꽃이 더 좋다 하거나
김춘수의 꽃이 더 좋다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나태주의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꽃이 좋다 할 수 없고
서정주의 국화꽃이 더 좋다 할 수도 없다.
문학은 주관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골에서 자라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자전거로 주유하고,
서정시를 쓰고 있는 걸 잘한 일이라 했다.
그러면 나는 어떤가?
나는 지금의 이 모습이 오롯이 나일뿐이요
그걸 다 다행이라 생각하고 잘한 일이라 치부한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교사도 못해본 사람은?
자전거도 없는 사람은?
시도 쓰지 못하는 사람은?
은퇴 뒤에 연금도 받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잘한 일이 없는 걸까?
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불행한 인생이요
있는 대로, 생긴 대로에서 더 이상 용쓸 것 없이
모쪼록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일이다.
공부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요
시나 글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임에도
그게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는데
장황한 글이 되고 말았다.
상을 받기 위해 시를 쓴다는 것과
시를 썼더니 상을 주더라는 것은 천양지차가 있는 말이다.
그냥 처지대로 살아갈 뿐이요
그러노라면 애쓰지 않아도 칭송도 받게 마련이다.
도연명의 귀거라사를 읽든
카네기의 처세술을 읽든
그건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는 하나씩 놓아가며
가볍게 살아갈 일이기도 하다.
글의 생생한 표현상 마론님과 나태주 시인을 거명한 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첫댓글 나태주 시인은 국민시인이라 할까요?
편하게 읆조릴 수 있는 시 이지요
어려운 시는 시인이 좋아하고 편한 시는 국민이 좋아하는
제 나름데로 생각해 보는겁니다.
글이란 우선 본인이 쓰고 싶어서 좋아서 쓰는 글이 최고일듯 해요.
저는 글 쓰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누구에게 보여 주는것이 아닌 나만의 글쓰기죠.
유명한 평론가가 저 더러 시집을 내라고 하는데 내가 좋아서 쓴 시
굳이 시집을 내야 하나 생각 중이에요.
평론가 말씀이 잘 쓴 시를 세상에 보여야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제 스스로 부끄러운 시라 여기기에
혼자 간직 하는거
세상에 선 보이는거
깊이 생각해보고자 한답니다.
네에
건필을 바랍니다.
위기지학은 자신의 덕을 닦기위한 자신을 위한 공부입니다.
위인지학은 배운 것으로 남을 위해 가르침으로
간편하게 답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고는 남을 가르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 가르침이 펼치는 것일 수도 있고 떨칠 수도 있는 것이
후학을 일으키는 일이고 나아가 공덕을 쌓는 일입니다.
비록 같은 학교를 나왔다할지라도
졸업연도가 다르고 살아 온 자세도 틀릴 것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이끌어 온 것은 사실입니다만,
구태어, 나태주 시인과 석촌님을 견주어 비교하는 것은 아닐진데
무엇을 나타내고 싶은 것인지 모호합니다.
저는 아침 9시에 딸과 며느리와 약속이 있어
분당에 다녀왔는데, 여태 댓글이 없어 제가 맘이 다 쓰이네요.ㅎ
글, 잘 읽었습니다.
댓글을 쓰고 나오니,
다행스럽게 가희님의 댓글이 올랐네요.
맞아요.
위인지학이 남에게 보이기위한게 아니지요.
저는 솔직히 이날껏 나태주 시인이 존재한다는것만
알았지 그의 시 한줄 정성스럽게 읽어본 적도 없는
어찌보면 참 시에 대해 문외한에 속한다 하겠습니다.
아침 불교방송에서 성전 스님인가 하는 분이 예의 그
4가지 잘했다고 생각되는 일을 말씀하시기에, 부랴부랴
좀 찾아보고 그 글을 덧붙인게 시작이 된 건데,,
다른건 고사하고 자전거로만 살았다는것과 시골서만
살았다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는 그 말에,
어떤 확신? 진짜 자존감? 그런걸 얼핏 느꼇지요.
첨부된 글은 인터넷 서핑에서 덧붙여 나온 글인데,
저도 첨 보았고 예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글도 아니
었습니다.
나이 들어 정년퇴직 후 느끼는 시인의 담담한 소회 정도로
혹여 일말의 도움이 될지도 모른단 생각은 듭니다만,
사족이 된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글 쓴 취지도 잘 이해해요.
그런데 그분 좀 자기합리화를 하고있는데
그게 좀 그렇네요.
잘 보고 공부 열심히 하고 갑니다.
저는 차도 있고 자전거도 있는데요 , 시를 쓰는 기술은 없습니다. ㅎㅎ
나태주 시인의 시는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정서를 담고 있어서 저도 좋아합니다.
암호 같은 시로 독자를 농락하는 그런 부류의 시인은 아니지요.
사람은 누구나 제 잘난 멋에 사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글도 역시 마찬가지구요, 전에 어떤 사람이 " 지자랑이나 하는 글들 " 이라는 댓글에
반박글을 쓴 적도 있는데요, 그 사람에게 많이 미안하고 후회가 됩니다. 맞는 말을 한 것인데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실 자기자랑 하더라도 그냥 받아주면 되겠지요.
그런데 어떤 경우엔 배배 꼬아서 표현하는 경우도 있던데
그런 경우엔 공강이 안 가데요.
나태주 시인이라는 분이 있다는 것도 네덜란드 온 후에
알게 됐으니 시에 대하 문외한이지만 나중 몇 개 읽어보니
읽기 편해 대중에게 인기?가 있을 것 같더군요.
공부하는 것은 일차 자기수양 ,나아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사회공헌으로 조금 다르게 해석하신 것에 공감합니다.
아쩻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신념을 가지고 남의 눈치 안보고 살아가야 할 터 입니다.
항상 곰 씹으며 읽게 되는 좋은 글 감사 드리며
건강하세요.
맞아요.
위인지학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게 아닐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