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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 선원장스님이신 정광스님 음성법문입니다.법문에 참가한 대중은 약500 명
정도 입니다.저희 아비라카페회원은 약250명정도입니다. 성철스님의 봉암사 결사
때도 계셨던 스님이시고 40년이 넘게 한결같이 참선수행정진하신 스님입니다.귀한
시간 내주시어 법문해주신데 대해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아비라 대중일동 2007.8.12 ()()()
법문주제 : 선에 관한 법문
오늘 일기도 좋지 않는데 봉암사를 찾아주신 우리 불자님들에게 친히 감사의 말씀
을 드립니다. 에~ 오늘 이러한 조그만 인연으로 더욱 더 부처님의 설법을 믿고 실행
하면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지혜가 더욱 밝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한 30분간 불
자님들하고 인연을 맺는 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에~ 부처님께서 맨 처
음 마라타국에서 선도하신 도를 이루시고 냉철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기이하고 기이하다. 일체 중생을 보니 전부다가 여래의 지혜를 부처님과 똑같은 지
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나니 다만 망상, 분별, 집착으로 천대를 하는구나"
아, 이 부처님 말씀 중에 평생동안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이 글귀 속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 덕상, 불심과 같은 불성이 갖추어져 있고 ,
또한 완전무결한 인격자로서의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내것을 갖추고 있건만 무엇때
문에 그러한 지혜, 덕상의 유사심이 나타나는 것인가? 이것은 망상, 분별, 집착 때문
이다. 우리들의 무식한대로의 나의 주관과 여러가지 객관과 나의 사고와 행위간의
한계를 가지고 그것으로써 생활해야 옳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우리들 나름
대로의 각 개인의 이러한 인생관과 생활관으로 해서 빼앗기고 있습니다.
이게 잘 바뀌지 않습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문제 요소가 내 모습의 우상이 되어가지
고.... 그 밖의 것은 조금도 내가 먼저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나의 식대로 살아가는 바
람에... 그래서 훌륭하고 좋은 것과 좋은 곳의 환경에서 살고자 원하더라도 내가 내
마음에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왜그러냐하면 지금 내가 사고하고 생활하는 모든 것
을 지워버리고 다른 모든 것을 하려니까 그것에 익숙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생
활 할 수 있느냐?
부족해도 부적절함에도 내식대로 행하는 것이 편안하고 좋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부다 일체 중생이 한계의 고비 속에 빠져가지고 여기
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부처님이 해탈법을.... 우리는 벗어나 볼란다. 왜 내가 내
식대로 살고자고만 하고 그렇지 않은 좋은 법과 좋은 화보와 그리고 환경과 그러한
모습에 쌓여서 영원히 살지 못하느냐! 그렇게 하는 그것의 요소가 무엇이냐! 그것은
망상, 분별, 집착이다. 이렇게 강하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수행하는데
는 탐,진,치 3독을 없애야 한다고 불교에서 이렇게 말하죠? 이게 망상, 분별, 집착을
요목해서 하는 말씀이예요.
누구든지 망상, 분별, 집착을 여윌것 같으면 당장에 그자리에서 본래부터 갖추어진
부처님과 똑같은 여래의 자연이치가 그대로 실현이 되어가지고 일체 중생이 자유스
럽게 내가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결국 행위를 표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말씀대로 모든 분들이 실행하고 살
아가는 .... ... 많은 편견이 있고 더 닦은분이야지, 우리와 같은 그런 막디동승은(?)...
소용이 없지 않나? 이렇게 스스로가 나아가지 못하는 분들한테 방편으로 착하게.....
딱 물러서지 말고 내 삶을 갖다가 완전무결하게 내가 할 수 있도록 용기를 가지고 살
아보도록 해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 참선의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돌아갔을 때에 그 당시에 부처님이 "우리가 똑같이 불상과 또한 모
든 지혜 불상이 갖추어져 있으므로해서 이 땅에서 나의 과거의 업을 참회 해 버리고
망상, 분별, 집착이 없는 나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바로 부처님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해가지고 열반했으므로 화엄........ 그대로 부처님 설법을 듣고 그대로 그자
리에서 성불을 하시면서 모든 것을 그대로 생사를 벗어나시었습니다. 이래서 이 사
바 세계에 부처님이 이렇게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법문을 전법해서 이심전
심(以心傳心)으로 가섭존자한테 전하시고 가섭존자가 쭉 대대로 연결해서 28대 달
마대사에게 전해주시고, 달마대사가 또 스스로 설법하시가지고 이 선법을 전했습니
다. 그래서 오늘은 달마대사가 처음으로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선법(禪法)을 가지고
우리 불자님들하고의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이 달마 스님이 맨 처름 설법하신 선법(禪法)을 이해하셔야만이 선(禪)에 관한 내용
을 이해하고, 또한 불교를 이해하고 나아가서는 우리들의 삶에 현실에도 보탬이 되
지, 그렇지 않게 될 것 같으면 보탬이 되질 않습니다. 불교는 현실에 불구하고 내 삶
에 보탬이 되어서 내 삶이 그대로 명경과 같이 맑고 청정하게 되면서 내 과거의 업장
이 전부 소멸되어 버리고, 구애됨이 없이 그런 활발하고 깨끗 투명한 그런 사람이 참
된 진실한 말씀이지 그렇지 않으면 선문(禪門)에서 벗어납니다.
선문에서 그대로 말씀 하시듯이 "누구든지 직하의 자기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갈 것
같으면 선자리 앉은 자리에서 완전무결한 모습으로 돌아가서 조금도 부족한 삶과 의
례 두려워 하지 않는다."
우리 봉암사에는 맨 처음 창건하신 분이 희양 스님으로 해서 고산스님 후에 이 희양
선문을 갔다가 개척하신 분이예요. 이 분의 사회(?)를 ...... 최치원씨가 지원을 했습
니다. 여기에 선종(禪宗)이 맨처음에 이 해동(海東)에 들어와 가지고 모든 분들한테
에 그 깨달음의 법을 갔다가 전해 주시는데 지금까지 여러가지 조국의..... 법을 설하
신... 이 분을 잊지 못하고 의심해서 깊이 수행을 못한다. 이렇게 하면서 이 종지(宗
旨)에 대해서 말씀을 하겠다. 이렇게 해서 간단하게 그당시에 돈오(頓悟)의 종지(宗
旨)를 받자와 최치원씨가 말씀을 하셨다.
이 돈오(頓悟)의 종지를 정식으로 이야기를 핸것은 선종사((禪宗史)에 하나의 큰 하
나의 획입니다. 여러 후배의 선사 스님들과 많은 분들이 돈오(頓悟)에 관한 말씀을
했지만 실제적인 기록상에 가장 역사에도 오래되고 바르고 확실하게 기록된 내용은
저는 최치원씨의 지증대사비문(智證大師碑文)속에 나타난 기록으로 돈오(頓悟)의 역
(譯)이 가장 완전하고 가장 담담하게 이렇게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 그래서 이 가
운데에 한 구절을 갔다가 말씀을 드리면, 참 그 말씀 가운데도 우리들의 일상에 들을
수 있는, 누구나도 듣고 이해 할 수 있는 청렴한 삶으로 설명을 잘 했어요.
"아침에 범부(凡夫)가 저녁에 성인(聖人) 이 되게한다" 아! 이렇게 돈오의 종지(宗旨)
가 어떤 것이냐? 아침 나절의 범부(凡夫)! 여러가지로 부족하고 몰랐던, 그때도 갈팡
질팡하는 망상 속의 집착에 의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무지한 범부(凡夫)가 저녁 나절
에는 바로 성인(聖人) 이 된다는 것이다. 아! 돈오(頓悟)라는 말이 시간과 공간을 초
월해 가지고 그 자리에서 범부(凡夫)가 바로 성인(聖人) 이 되게하는 이 당시에 돈오
법문(頓悟法文)의 냉철한 마조의 제자가 되시든 대학(?) 일체가 되시든 일체 제자로
부터 바로 결제된 분들이 구산선문을 형성했습니다.
그 때에 최치원씨도 같이 중국에 유학하고 돌아와 가지고 그 당시에 그대로 기록한,
이것은 누가 조작을 하지 못합니다. 이래서.... 가장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선법을
설명해도 이와같이 간단하고 명백하게 설명한 내용을 저는 아직 보지 못했어요. "아
침의 범부가 저녁에 성인이 되어가지고, 범부는 없고 그대로 성인의 생활 그대로 한
다" 우리들이 선에서 이야기 하기를 종지를 깨달아서 부처님의 돈오법을 깨달을 것
같으면 내가 아직 불행하고 모든 사람하고 그 비교되지 않는 것.. 이런 것이 저녁 때
가서는 하나도 없어진 것이다.
이런 불교를- 우리의 깨달음의 법을 부처님이 말씀을 하셨고, 이것이 선종으로 해서
쭉 내려와 가지고.... 그래서 불교의 선사상! 돈오사상은 21세기를 지나서 앞으로 미
래세계에 우리 지구상에 모든 분들을 이끌어 주고, 미래를 향해 지향해서 나아가는
데 가장 훌륭하고 간격한 우리들의 .... 해법이 된다......... 달마선사가 맨 처음에 선
을 말할 때 무엇을 전했을까? 그 내용을 음미해 보도록 합시다. 아시는 분들은 많이
아시겠지만 아주 선사상에 유명한, 선종을 아는분은 달마선사를 잘 알죠. 달마선사
이름을 다 들어봤어요. 그래서 벽화라든지 또 그림이라든지 여러가지 많습니다.
그리고 ........이라든가 많지 않지만 아주 간략하게...... 그 가운데 요구되는 것을 말
씀드립니다. 여기에 '안심법문', '벽관'(壁觀) 이라 하는 두가지의 글귀가 아주 달마
선법문의 요지 입니다.'안심법문', '벽관(壁觀)'이라면, 누구든지 안심하고 편안한 마
음으로 이 선법을 공부할 수 있다.
벽처럼 되어가지고....선을 공부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선(禪)이라 하는 것은 그
대로 인도에서 건너와 가지고 중국 이렇게 우리들에게 언급되어 나온말로 남방에서
공부하셔서 이곳에 전래되어 연상을 하는 이야기하는 선의 내용으로 들어서... 선의
해석으로 들어가 있다. 또 이러한 청여, 고요이 생각한다, 고요한 생각을 해서 수행
을 한다. 이런 법문으로 해석 합니다.
선의 해석이 이렇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래서 안심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든
지-지식이 있든지 없든지, 또는 경제적으로 부유하든지 부유하지 않든지 - 일체 관
계가 없이, 지금 있는 그대로, 조금도 버리고 더하고 하지 말고 그대로의 지금 현재
에서 안심하고 살아 갈 수 있는 내용의 선의 법이 이 선법이다. 모든 수행이라든지
공부라든지 이런 것들은 아주 힘들고 올찹니다. 어떻게 하든지간에 그렇게 말씀하신
그 궤도에 올라가기 위하여 준비가 되어가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정신적으로라든
지 물질적으로라든지 필요함.......
선은 그러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언제 어느 때 든지, 지식의 있고 없고, 내가 경제
적으로 넉넉하고 부유하든지, 근심 걱정이 있든지 없든지, 불행한 사람이든지 행복
한 사람이든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증.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봐
서 자기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것이 '안심법문'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세계에서 사람이 안심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첫째는 우리들이 잘 알
고 있는 그 물질(物質)입니다. 물질적으로 어느 정도 우리들이 살아 갈 수 있는 요소
가 되어야 될게 안닌가? 이렇게 들어가서 그 다음은 환경(環境)이 좋아야 되겠다. 이
런 것 하고 그 다음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이 그대로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쪽이 되
어야 되겠다. 그래서 물질(物質)과 정신(精神)이 두가지가 필수적으로 들어가지만,
선(禪)은 그것까지를 요구 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를 초월한 이런 것과 관계없이 선(禪)을 합니다. 이래서 선(禪)이라는 것은
정신적으로 어떠한 상태에 내가 있든지 이를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환
경적으로 내가 어떠한 곳에 있든지 이를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 그 때 나는 내 모습
대로 이자리에서 여기 내 삶을 살고 있는 하심.. 이래서 이를 갖가다 부처님께선 각
각의 실상(實像)이라고 그래요. 자기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진실한 모습이 현실
에 있다. 이런 말씀입니다. 이 진실한 모습을 내가 스스로 지키지 못하고 방관해 버
리면 이를 누가 지켜주나?
본 자신이.. 본자신이 방관(傍觀)하지 않하고 자신을 보필하고 도움해서 근실하고 바
르게 살아 가겠다는 마음을 지금 이자리에서 가지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이러한 여러
가지 조건들을 싹 없애버리고 허공과 같이 마음을 쏙~ 빼서 깨끗하고 맑고 청정한
마음의 본래의 자리! 선(善)과 악(惡)이 일어나기 이전의 자리로 돌아갈 것 같으면 근
원으로 돌아가는 자리! 이 마음이라는 것은 근원으로 돌아가야만이 자기 자신이 살
아가지, 그렇지 않으면 살아 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참선(參禪)을 한다! 선(禪)을 한다! 하는 것은 글귀로서 학구참선이라 하되,
학구참선은 하지 않는다. 학구참선이란 것은 뭐냐? 내가 사량해서 분별해서못하나,
이것이냐 저것이냐 일어나기 이전의 나로 돌아가서 내 자신을 본다는 뜻이다. 아 그
게 이렇게 아주 묘한 법문이다. 내가 행,불행,선과 악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끔
거기에 지금까지 일어났던 내 마음의 한량없는 고뇌와 고민과 여러가지 문제요소가
이자리에 놓을라해야 놓을 데가 없습니다. 내 자신이 어떻게 해야알수 있나?
그렇게 당장에 지금 선을 하기 시작하면 앉은 자리에 선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지금
까지 내가 사고 했던 방법 그리고 한계의 요소, 지어진 직,후의 모든 문제 이런 것을
놓아버리고 해야지, 가지고 해버리면 선을 할 수 있는 선문에 들어올 수 없다. 아, 이
게 안심법문이다. 필요한 것을 아무 것도 요구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심하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벽관(壁觀)이란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사상지심하여 은심불다 " '사임방
(?)'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질없는 이것, 저것의 생각을 버리고 그 다음에
참된 마음으로 돌아가서 마음을 모아 벽처럼 관(觀)한다.
벽(壁)에 대한 내용을 갖다가 선(禪)을 하는 분들이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조금 설명
을 해서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달마스님의 약간의 설명에 세구절로 부터 크롭
(?)이 되어 있습니다. " 외입견하고 내심무천하면 심여단결해하여 가이 벗어난다
바깥으로 오는 모든 인연을 시도해라! 바깥이든 안이든! 자기를 갖다가 안이라 계산
하고, 자기외의 모든 문제 환경과 여러 사람들과 그리고 몽땅 문제의 요소, 이를 바
깥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바깥에서 오는 정신 세계와 물질 세계로 인하여 나의 삶과
미래에 조금도 문제를 갖다가 되지를 않으니까 시도를 해라! 거기에 문제의 요소와
저촉을 받는다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해라. 이 첫째의 이야기가 벽관(壁觀), 벽
(壁)이 된다라는 이야기의 설명이 됩니다.
그 다음에 '내심무천'하면, 안으로 마음이 흐트러짐이 없도록 해라! 바깥의 모든 문
제를 내가 받아 들이지 않으면 내가 가진바가 미천하고 부족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만족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것으로서 내 삶이 이렇게... 아! 그렇지 않아요~~~ . 어
떻게 구해서 채워서 내가 떳떳하고 남이 볼 때에도 부족함이 없이 내 것이된 후에 될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래서 밖으로 안으로 동서사방으로, 정신으
로는 제자백가(諸子百家)를 구하고, 선각자에게 구해서 중요한 정신적인 요소가 되
면 지킬 것이고, 또한 환경적으로 그를 구하지 않으면 여러가지 거주 하면서 환경을
만들고,
또 전체적으로 살아 가면서 여러가지 문제들을 이렇게 해야 되지 않는가 하는 이런
마음에 가만히 그렇게 참 불가에 붙들 수가 없어요. 이런 생각을 버리고서 조금도 불
편하지 말고 이래서 안과 밖의 모든 문제가 치워버리면 어떻게 되나! 아! 저녁때 되
면 심여장벽이다. 이제 장벽에 관한 해석을 하면 우리들은 벽이라 할 것 같으면 무슨
일을 하다가 벽에 부딪혔다 , 더할 수 없이 앞에 가로 막았다는 뜻이 되죠. 그런데
내만 그렇지 않고 내한테 화까지 생겨갔고 문제가 있는데 벽이되서 외부의 침입자들
이 침입을 못하게 할 때는 벽이 나를 보호하는 벽이 되버린다.
그래서 부처님이 그러셨죠. 굳은 선법이 되어서 외적의 침입을 못하도록 하는 벽이
다. 그리고 불필요한 그런 사람이나 물건들이 출입을 금하도록 하기 위하여 벽을 갖
다가 쌓아둔다고 했다. 그대로 절대로 옆으로 보지 말라, 갖지 말라고 해서 벽이되고
이렇게 되는 것이 뭐~냐(무엇이냐)!
내마음에 조금도 문제의 요소가 되질 않고 조금도 저촉을 받지 않는 내가 이겨야 된
다. 정말 마음이 벽같이 되어 버리는 것!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된다. 그래서 진
리의 동자지(?)는 벽과 같다. 마치 벽과 같다. 왜그러느냐! '동요하지 않고 굳굳하다'
이런 뜻입니다. 내마음 자리가 진리의 동자지(?)가 환경과 또한 지식과 또한 깨달음
의 검찰가로서 흔들리면서 이랬다 저랬다 마음 쓸 것 같으면 어떻게 그 안심하
고...... 이건 안된다! 이런 뜻이죠.
그래서 벽이라 하는 말은 " 움직이지 않는다! 동(動)하지 안는다! " 하는 이 뜻이 아주
첫째가는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 육조스님께서......................... 자기
자신이 어떤 본래부터 동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하느냐. 조금도 자기의 본래의 선법
자리가 움직임이 없이 그대로 흔들임이 없이 그대로 안개끼여 있는 줄 어떻게 아나!
천년만년 동안 보배 보석이 진흙 속에 파 묻혀 있더라도 그 보배의 빛과 귀한 모습이
없어지지 않고 진한 보배방탱이 그대로더라!
우리들의 마음의 본래의 모습이 망상, 번뇌, 집착 이런 여러가지 속에서 한량없이 불
행과 업보를 받아서 내가 내 마음대로 자유스럽고 원활하고 마음먹은 대로 살 수 없
지만 이걸 닦고 그럴 것 같으면 본래의 보배는 내한테 다 갖추어져 있으니 그때 말해
도 된다. 이래서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무과보' '무기장보고' 같은 이런 뜻이죠. 이렇
게 "동하지 않고 변천함이 없이 그대로 우리의 본래의 모습대로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이런 뜻입니다. 얼마나 안심법문입니까?
지금까지 문제가 있어가지고 이런 문제를 깨달을 것 같으면 어디서 가지고 올낀가
하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고 내 속에 갖추어 있어가지고 조금도 ....... 그대로 있어
가지고 아, 이거 천만 뜻밖에 안심 할 수 있는 겁니다. 그 다음에 또 비유를 보지요.
허공(虛空)과 같은 것을 벽(壁)이라 한다. 허공은 그대로 텅텅 비어져가 있습니다. 일
체 모든 것이 비어져가지고 하나도 없는 상태를 허공이라 합니다. 그러나 허공 중에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허공인데도 허공이가 "삼라만상(森羅萬象) 너희들이 그게 허공 속에 살고 있으니까
허공이 이렇게 노출되어 있으니 너희들이 가줬으면 좋겠다 " 이렇게 한다고 할 것 같
으면 좀 이상 할 것입니다. 그러면 허공의 모습이 아닐 것이고 삼라만상 허공이 살
수가 없어요! 허공은 텅비어 있지만 삼라만상이 자기 가운데로 생명을 유지하면서
자기식대로 살아 갈 수 있는 터전이 한량없이 무한대로 그 대로 있다 이거죠.
그러다가 삼라만상이 변천되서 사라지고 없게 되면 그 자리에 ....... 하는 것은 그대
로 조금도 변천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있습니다. 그자리에 딱 .... 하는 것이 자리
를 잡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것이 우리의 마음자리는 허공 속으로서는 다 되어가지
고 조금도 .....도를 갖다가 감격(?)되어 있지 않고 "조금도 문제가 없이 그렇게 되어
있는 상태다" 이래가지고 불교 공부를 할 때는 처음부터 마음을 비워라 하는 말을 갖
다가 이야기를 많이 듣고 하지요.
또 반야(般若)는 공(空)이다. 공(空)의 이야기를 절대로.......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반야심경(般若心經)에 오온개공(五蘊皆空)! 공(空)의 도리를 알지 못하면 반야를 알
지 못하고 반야를 알지 못하면 불교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맨 처음 설법
을 하실 때에 아주 요목을 들어서 불교의 도리는 무아(無我)와 연비, 이 두가지의 요
목을 이야기 많이 하고 그다음에 전도라는 글귀죠.
이 세가지 글귀 같으면, 나(我)라는 ....... 나(我)의 모습이 있지 않으니까 나(我)를 고
집하지 마라! 그러니 오온개공입니다. 그러니까 사대((四大:불교에서, 땅·물·불·바람
의 네 가지를 만물의 근원이라는 뜻에서 이르는 말)가 무한(無限) 합니다. 나의 몸뚱
이는 사대로부터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변이되고, 또....... 붙잡을 것이 못된다 . 이
것은 전부다 생명법이니까 이러한 생명법을 마음 속에 두면서 정신력과 물질적으로
비교해서 내가 살아 가기를 , 내 삶도 온전하지 못하고 깨달음도 얻을 수 없고 거기
에서 ..... 못하다. 그래서 적멸이상입니다.
부처님의 종지(宗旨)는 물질과 정신세계 전부다 소거해서 상대가 없는 점들의 세계
를 말합니다. 점도 없이... 이점을 깨닫고 알게 될 것 같으면 그자리에서 바로 부처님
과 같은 똑 같은 넓은 삶과 인격자가 되고 세계가 그대로... 이게 습관적으로... 망상,
분별, 집착으로 인하여 내 식대로만 살고자 하고 남의 것은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하
는 내가 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
그래서 수용한 사람은 출가사문(出家沙門:삭발을 하고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며 신심
을 가다듬어 선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을 말한다)이라 합니
다.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자기의 참다운 모습의 세계를 갖다가 개척하
고 찾아가는 사람이 되야 된다
이 법은 법화경 같이 공부를 하지만 전체 상기 할 것 같으면 "마치 무소의 뿔처럼 혼
자서 가라" 이 말이 유명한 저 문학과 철학 같은 것에 나오는 거죠. "인생은 고독하
다" 이거죠. 고독한 자기 자신과 스스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 나를
살린다. 이 대화를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으면 어떻게 되느냐!
어떤 문제를 그 속에 채워가지고 내 고독을 갖다가 위안 받겠다 이러하면 그 대상이
내 고독을 위안 해 주도록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반드시 행패를 부리면서 나를 희
롱하길 바랍니다. 이게 불행이 됩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더라도 그 친한 사람이 용
그하게 나를 살려 주길 바랍니다.(?) .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어느 때든지 서로 헤어
지게 됩니다. 이게 고독입니다. 어떤 물건이 어떠한 모습이라도 변천하지, 그대로 무
궁무궁하게 나를 지켜 줄 것 같은 것이 이 세상에 있지를 않습니다.
이 상대가 끊어지면 적멸입니다. 이 상대가 전부다 끊어지고 내 마음 속에 거기에이
타하지 않고 이타한 마음을 전부다 끊어버리고 그 마음들이 사라져 버리고 난 다음
그대로 모든 것을 ..... 우리들 마음은 일체의 모든 것의 근심으로 부터 자유를 얻는
다. 부처님의 말씀은! 부처님의 법전은 이 하나를 갖다가 되새겨 두면 된다.
이래서 일체 모든 내 마음 자리는 본래 굳어져 있어져 있지만 이 마음이 움직이지 일
체 만물과 전부다 수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아량과 그렇게 될 수 있는 도량이 한량
없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 내 마음의 본산이다.......
본래부터 움직이지 않고 항상 그대로 변동되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이다. 아무것도 갖
추어져 있지 않고 수용하고 있지 않으면서 일체 모든 삼라만상이그대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 해서 받아 들일 수 있다. 그래서 불교 공부 할 때는 '무소유' 소유하는 바가
없어야 된다.. '욕망을 끊어라!" 갈망하는 마음을 끊어라! 이런 근원적인 내 자신에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 공부를 할 수 있는 분들은 ... 일체 모든 것을 보
시한다. 베풀도록 해라! 베풀지 않게되면 어떻게 되나! "내 자신으로 못 돌아 간다"
이겁니다.
남을 위하여 베풀지 않으면 당신이 볼 때 나도 조금도 베풀지 않고.... 다 빼앗기는
거라고 생각을 하여 서로가 믿지를 못합니다. 그 삶은 전부 이승이되서 필요할 때는
필요한척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온통 그 자리에서 그대로 다 벗겨 버립니다. 알겠
습니까? 그대로 다 벗겨 버리고 없게 되면 그러면 각자가 다 나와 관계가 없어요, 하
고 다 떠나는 거예요. 그렇죠? 아무 관계가 없이 될 것 같은 상태가 되면 " 아, 자 이
제 각기 삽시다" 하죠. 아, 지금 불쌍한 것이 요새 거사님들이라고 해요. 돈벌어 주는
기계가 되어가지고 안 벌어 주면 당장 가라 하면 꼼짝을 못한다고 해요.
그런가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만.. 이와 같은 문제의 요소가 생기니까 이 세
계가 어떻게 안심 될 수 있느냐? 그래서 이 것을 없애야 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 자리고, 우리들의 준비하는 것이......
그 다음에 벽이라고 하는 것은 명경을 또 비유합니다. 명경과 같은, 단순 거울과 같
은 것을 벽이라 합니다. 명경이 밝은 거울이죠. 벽에 걸려가 있으면 햇빛이 비치고,
방금 빛이 비추게 될 것 같으면 거기에 좋은 얼굴, 나쁜 얼굴같은 것이 낱낱이 조근
없이 다 비친다. 부처님이 말씀하셨고 조사스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마음의 동자
승은 아주 우리들로부터 부서지지 않고 바로 밝은 광명이 그대로 더러나 있는 보배
입니다. 옛법성 그대로 갖추어져 있는 그런 오래된 밝고 조금도 때묻지 않은 ..... 이
라!
이렇게 이야기 하고 ..보살, .. 부서진다. 이런 등등의 이야기로 설명을 합니다. 이게
벽에 관한 설명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렇게 내 마음의 첫째 요소가 벽이 되어서 삼라
만상과 나의 현재의 삶과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도록 되야만이 선을 할 수 있다. 이
게 안심벽관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벽과 같은 마음이 되어 가지고 일체의 삶과 미
래가 내가 모든 사람이 될 때에 선을 하는 내다! 아! 생각만 해도 거창하지 않습니
까?
이 근사한 이야기는 부처님이나, 조사스님의 말씀이라든지 서양 철학자들이 .... 전
부다 비워버리고 거기 하나도 붙일 것이 없는 뜻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는 내
가 있는 지금 이자리에조금도 더하고 버릴 것이 없이 나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 갈 것
같으면 나에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한량없는 보배창고와 보배들이 나에게 무
진장 생기기 않겠습니까? 그걸 쓰게 될 것 같으면 미래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래서 지금까지 내려와서 당나라에서 해동으로 와서는 ... 간화선 할 것 같으면 더
욱더 벽을 관한다는 이 내용을 실제적으로 쉽도록 우리들이 이길 수 있는 것을 한 가
지 더....... 아, 벽을 관한다! 마음을 동하지 않는 사람,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명경과
같은 마음으로 해야 된다. 때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
나? 아무나 하겠나? 이래서 화두(話頭)를 하나 들게 됩니다. 스님들도!
화두를 하나 지니면서 일체 근심과 사고, 또는.... 망상하는 마음을 버리고 이 화두하
는 데에 집중하면 정신세계와 물질세계가 조금도 개입하지 못하는 알 수 없는 학문
이다. 내가 알지 못하고 궁극에 알 지 못하는 학문적인 세계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여기에 마음을 비우면 화두 하나만 쭉 들고 있으면 가고 오고 하는 사이에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업과 근심걱정이 전부다 사라지게 된다.
오늘 이자리 이후 부터 내 삶은 밝고 빛이나게 될 것입니다. 선(禪)의 생활, 화두(話
頭) 그런 관계로서 공부를 했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지금이후로부터 선(禪)하고
생활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그대로 생활화 되 갈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시
간이 다되어서 마지막으로 법문을 종결짓는 의미에서 우리 불자님들 하고... 이루면
서, 우리 불자님들! 모두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셔서 나를 따라 하세요!
"현존하는 한 생각이 청정(淸淨) 하면 시방이 청정(淸淨) 하다" 현재 지금 내 생각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 갈 것 같으면 이 세상이 그대로 깨끗한 금강경치가 될것입니다.
아,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우리 불자님들은 마음 속으로 잊어버리지 말고 화두(話頭)
하나만 들어야 합니다. 한 번 더 하겠습니다. "현존하는 한 생각이 청정(淸淨) 하면,
시방이 청정(淸淨) 하다" 맑고 청정(淸淨) 한 우리 불자님의 삶이 끊이지 않기를 빕니
다. <마침>
<녹취39> 또 반야(般若)는 공(空)이다. 공(空)의 이야기를 절대로.......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반야심경(般若心經)에 오온개공(五蘊皆空)! 공(空)의 도리를 알지 못하면 반야를 알지 못하고 반야를 알지 못하면 불교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맨 처음 설법을 하실 때에 아주 요목을 들어서 불교의 도리는 무아(無我)와 연비, 이 두가지의 요목을 이야기 많이 하고 그다음에 전도라는 글귀죠.
<녹취40> 이 세가지 글귀 같으면, 나(我)라는 ....... 나(我)의 모습이 있지 않으니까 나(我)를 고집하지 마라! 그러니 오온개공입니다. 그러니까 사대((四大:불교에서, 땅·물·불·바람의 네 가지를 만물의 근원이라는 뜻에서 이르는 말)가 무한(無限) 합니다. 나의 몸뚱이는 사대로부터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변이되고, 또....... 붙잡을 것이 못된다 . 이것은 전부다 생명법이니까 이러한 생명법을 마음 속에 두면서 정신력과 물질적으로 비교해서 내가 살아 가기를 , 내 삶도 온전하지 못하고 깨달음도 얻을 수 없고 거기에서 ..... 못하다. 그래서 전멸이상입니다.
<녹취 41> 부처님의 종지(宗旨)는 물질과 정신세계 전부다 소거해서 상대가 없는 점들의 세계를 말합니다. 점도 없이... 이점을 깨닫고 알게 될 것 같으면 그자리에서 바로 부처님과 같은 똑 같은 넓은 삶과 인격자가 되고 세계가 그대로... 이게 습관적으로... 망상, 분별, 집착으로 인하여 내 식대로만 살고자 하고 남의 것은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
<녹취 42> 그래서 수용한 사람은 출가사문(出家沙門:삭발을 하고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며 신심을 가다듬어 선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을 말한다)이라 합니다.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자기의 참다운 모습의 세계를 갖다가 개척하고 찾아가는 사람이 되야 된다.
<녹취 43> 이 법은 법화경 같이 공부를 하지만 전체 상기 할 것 같으면 "마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말이 유명한 저 문학과 철학 같은 것에 나오는 거죠. "인생은 고독하다" 이거죠. 고독한 자기 자신과 스스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 나를 살린다. 이 대화를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으면 어떻게 되느냐!
<녹취 44> 어떤 문제를 그 속에 채워가지고 내 고독을 갖다가 위안 받겠다 이러하면 그 대상이 내 고독을 위안 해 주도록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반드시 행패를 부리면서 나를 희롱하길 바랍니다. 이게 불행이 됩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더라도 그 친한 사람이 용그하게 나를 살려 주길 바랍니다.(?) .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어느 때든지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이게 고독입니다. 어떤 물건이 어떠한 모습이라도 변천하지, 그대로 무궁무궁하게 나를 지켜 줄 것 같은 것이 이 세상에 있지를 않습니다.
<녹취 45> 이 상대가 끊어지면 적멸입니다. 이 상대가 전부다 끊어지고 내 마음 속에 거기에이타하지 않고 이타한 마음을 전부다 끊어버리고 그 마음들이 사라져 버리고 난 다음 그대로 모든 것을 ..... 우리들 마음은 일체의 모든 것의 근심으로 부터 자유를 얻는다. 부처님의 말씀은! 부처님의 법전은 이 하나를 갖다가 되새겨 두면 된다.
<녹취46> 이래서 일체 모든 내 마음 자리는 본래 굳어져 있어져 있지만 이 마음이 움직이지 일체 만물과 전부다 수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아량과 그렇게 될 수 있는 도량이 한량없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 내 마음의 본산이다.......
<녹취47> 본래부터 움직이지 않고 항상 그대로 변동되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이다. 아무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고 수용하고 있지 않으면서 일체 모든 삼라만상이그대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 해서 받아 들일 수 있다. 그래서 불교 공부 할 때는 '무소유' 소유하는 바가 없어야 된다.. '욕망을 끊어라!" 갈망하는 마음을 끊어라! 이런 근원적인 내 자신에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 공부를 할 수 있는 분들은 ... 일체 모든 것을 보시한다. 베풀도록 해라! 베풀지 않게되면 어떻게 되나! "내 자신으로 못 돌아 간다" 이겁니다.
<녹취48> 남을 위하여 베풀지 않으면 당신이 볼 때 나도 조금도 베풀지 않고.... 다 빼앗기는 거라고 생각을 하여 서로가 믿지를 못합니다. 그 삶은 전부 이승이되서 필요할 때는 필요한척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온통 그 자리에서 그대로 다 벗겨 버립니다. 알겠습니까? 그대로 다 벗겨 버리고 없게 되면 그러면 각자가 다 나와 관계가 없어요, 하고 다 떠나는 거예요. 그렇죠? 아무 관계가 없이 될 것 같은 상태가 되면 " 아, 자 이제 각기 삽시다" 하죠. 아, 지금 불쌍한 것이 요새 거사님들이라고 해요. 돈벌어 주는 기계가 되어가지고 안 벌어 주면 당장 가라 하면 꼼짝을 못한다고 해요.
< 녹취49> 그런가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만.. 이와 같은 문제의 요소가 생기니까 이 세계가 어떻게 안심 될 수 있느냐? 그래서 이 것을 없애야 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 자리고, 우리들의 준비하는 것이......
<녹취50> 그 다음에 벽이라고 하는 것은 명경을 또 비유합니다. 명경과 같은, 단순 거울과 같은 것을 벽이라 합니다. 명경이 밝은 거울이죠. 벽에 걸려가 있으면 햇빛이 비치고, 방금 빛이 비추게 될 것 같으면 거기에 좋은 얼굴, 나쁜 얼굴같은 것이 낱낱이 조근 없이 다 비친다. 부처님이 말씀하셨고 조사스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마음의 동자승은 아주 우리들로부터 부서지지 않고 바로 밝은 광명이 그대로 더러나 있는 보배입니다. 옛법성 그대로 갖추어져 있는 그런 오래된 밝고 조금도 때묻지 않은 ..... 이라!
<녹취51> 이렇게 이야기 하고 ..보살, .. 부서진다. 이런 등등의 이야기로 설명을 합니다. 이게 벽에 관한 설명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렇게 내 마음의 첫째 요소가 벽이 되어서 삼라만상과 나의 현재의 삶과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도록 되야만이 선을 할 수 있다. 이게 안심벽관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벽과 같은 마음이 되어 가지고 일체의 삶과 미래가 내가 모든 사람이 될 때에 선을 하는 내다! 아! 생각만 해도 거창하지 않습니까?
<녹취52> 이 근사한 이야기는 부처님이나, 조사스님의 말씀이라든지 서양 철학자들이 .... 전부다 비워버리고 거기 하나도 붙일 것이 없는 뜻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는 내가 있는 지금 이자리에조금도 더하고 버릴 것이 없이 나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 갈 것 같으면 나에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한량없는 보배창고와 보배들이 나에게 무진장 생기기 않겠습니까? 그걸 쓰게 될 것 같으면 미래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녹취53> 그래서 지금까지 내려와서 당나라에서 해동으로 와서는 ... 간화선 할 것 같으면 더욱더 벽을 관한다는 이 내용을 실제적으로 쉽도록 우리들이 이길 수 있는 것을 한 가지 더....... 아, 벽을 관한다! 마음을 동하지 않는 사람,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명경과 같은 마음으로 해야 된다. 때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나? 아무나 하겠나? 이래서 화두(話頭)를 하나 들게 됩니다. 스님들도!
<녹취54> 화두를 하나 지니면서 일체 근심과 사고, 또는.... 망상하는 마음을 버리고 이 화두하는 데에 집중하면 정신세계와 물질세계가 조금도 개입하지 못하는 알 수 없는 학문이다. 내가 알지 못하고 궁극에 알 지 못하는 학문적인 세계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여기에 마음을 비우면 화두 하나만 쭉 들고 있으면 가고 오고 하는 사이에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업과 근심걱정이 전부다 사라지게 된다.
<녹취55> 오늘 이자리 이후 부터 내 삶은 밝고 빛이나게 될 것입니다. 선(禪)의 생활, 화두(話頭) 그런 관계로서 공부를 했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지금이후로부터 선(禪)하고 생활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그대로 생활화 되 갈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시간이 다되어서 마지막으로 법문을 종결짓는 의미에서 우리 불자님들 하고... 이루면서, 우리 불자님들! 모두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셔서 나를 따라 하세요! "현존하는 한 생각이 청정(淸淨) 하면 시방이 청정(淸淨) 하다" 현재 지금 내 생각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 갈 것 같으면 이 세상이 그대로 깨끗한 금강경치가 될것입니다.
<녹취56> 아,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우리 불자님들은 마음 속으로 잊어버리지 말고 화두(話頭) 하나만 들어야 합니다. 한 번 더 하겠습니다. "현존하는 한 생각이 청정(淸淨) 하면, 시방이 청정(淸淨) 하다" 맑고 청정(淸淨) 한 우리 불자님의 삶이 끊이지 않기를 빕니다. _()()()_
< 녹취를 마치면서...> 정광스님의 법문을 녹취하면서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청정(淸淨) 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청정(淸淨) 한 삶이 되길 기원합니다. ___()()()___ <ps> 저 내일(8.20일)설악산 봉정암으로 잠시 다녀옵니다. 녹취가 잘못된 부분이나 오타가 있는 부분은 어질이님! 살펴 보시고 수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수고 많으시고 공덕 많이 쌓으십니다. ()()()
만덕향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
_()()()_
_()()()_
만덕향님 녹취하신다고 더운날 수고 하셨습니다..덕분에 많은분들께 도움이 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만덕향님 수고하셨습니다_()()()_
감사합니다.
정말 수고가 많으셨네요...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만덕향님수고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좋은법문듣게해주어감사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된다면 영광입니다.
우와, 정말 소리없이 법문녹취 불사를 하고 계셨군요. 이제서야 눈이 뜨여 접하게 되네요. 졸면서 이 법문을 들었던 터라, 이렇게 많은 좋은 내용이 있었는 줄 몰랐습니다. 만덕향님의 법문녹취 공덕을 찬탄드립니다. _()()()_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