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는 제주도 남서쪽 모슬포와 최남단 섬 마라도의 사이에 있는 섬이다.
한국의 유인도 중에서 가장 낮은 섬인 가파도는 제주올레 10-1코스다
이 땅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라산과 가장 낮은 섬 가파도가 함께 있다는 사실은 의미 깊다.
낮은 섬 가파도는 느리게 걸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작다.
모슬포에서 이틀째 묵고 가파도행 첫배를 타기 위해 운진항으로 나갔다
어제 예약한 아침 9시 출발, 11시 20분에 돌아오는 배표를 받았다
오후부터 날씨가 안 좋아진다는 예보가 있어 직원들은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가파도행 정기여객선 블루 레이(Blue Ray) 2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 이름이 '푸른 가오리'란 뜻인데 가파도의 지형에서 유추된 것 같았다
섬 전체가 가오리처럼 덮개 모양을 띄고 있어 가파도라 부른다
가파도처럼 나지막한 지형을 가진 평지섬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한다.
위에서 보면 가오리를 닮았고, 옆에서 보면 구릉 하나 없이 평평한 지형이다.
섬의 가장 높은 곳도 20m를 넘지 않는 접시 모양이다
동서 약 1.3km, 남북 약 1.4km 크기의 가파도는 걷기에 매우 이상적인 섬이다.
가파도는 모슬포 운진항에서 약 5km 거리에 있다
여객선이 출항한 후 15분만에 가파도 상동포구에 닿았다.
'친환경 명품섬'이란 돌기둥과 돌하루방이 여행객을 반겨주었다.
상동포구에서 출발하여 오른쪽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아담하게 꾸며진 상동마을 할망당을 만났다
가파리 주민들을 수호해주는 해신당으로 당신을 돈지하르방, 돈지할망이라고 한다.
1년에 한 번씩 집안과 객지로 나간 가족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당이다.
상동마을에 들어서면 돌담과 함께 소라, 전복, 고동 등 조개껍질로 꾸민 담벽들이 눈에 띈다.
소라껍질 등으로 꾸민 담벽은 예술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 주민인 김부전·이춘자 부부가 10여 년에 걸쳐 하나하나 쌓아올린 작품이라 한다.
참으로 놀랄 만한 정성과 노력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마을은 돌담 안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다
바람이 심한 가파도에서 지붕은 낮아지고, 돌담은 처마 밑까지 닿았다
이 바위는 큰 바람을 일으킨다 하여 큰왕돌(보름바위)이란 이름이 붙었다.
함부로 올라가거나 걸터앉으면 강풍이 불어 큰 재난이 일어난다고 하여 신성하게 여기는 바위라고 한다
섬이나 해안가 마을 사람들은 자연의 위력 앞에서 지극히 겸손하다
가파도는 제주 올레 10-1코스에 속해 있어서 올레꾼들이 많이 온다
중요한 길목에 올레길을 알리는 리본이 나부끼고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제주도내에서 발견된 180여 기의 고인돌 중 135기가 가파도에 있다.
가파도 사람들은 고인돌을 '왕돌'이라 부른다.
가파도의 왕돌은 전형적인 남방식 고인돌이다.
판석을 세우지 않고 지하에 묘실을 만든 다음 작은 굄돌을 놓고 그 위에 큰 덮개돌을 올려놓았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우산을 받쳐 들고 소망전망대로 올라갔다.
가파도에서 제일 높은 위치(해발 20.5m)에 설치한 전망대다.
이곳 전망대에서는 마라도는 물론, 제주 본섬과 한라산, 사방 푸른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소이다.
전망대 앞에는 몽골식 게르 모양의 텐트가 설치되어 있고, 그 안에는 소원을 쓸 수 있는 도구가 있다.
마을의 한가운데에는 보리도정공장이 있었다
봄이면 섬 전체가 청보리로 가득 덮이는데, 보리 수확을 위한 공장인가 보다
청보리는 ‘향맥’이라는 제주 향토 품종으로, 전국에서 가장 먼저 자라 봄이 되면 푸른 물결이 굽이치는 장관을 연출한다
가파도의 정중앙에 가파초등학교가 있다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공립 초등학교이다.
마라도에 마라분교를 두고 있다
전교생이 100여명을 넘던 지난날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7명이 전부다.
운동장은 전부 잔디밭으로 되어 있고, 야자나무가 정원수처럼 걸려있다.
가파초등학교 교정 앞에는 ‘회을공원(悔乙公園)’이라고 이름 붙여진 공원이 있었다
순국장병충혼비와 함께 회을 김성숙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성숙 선생은 가파도 출신으로 독립운동가로 활약하였을 뿐 아니라 해방 후엔 국회의원을 역임한 분이다.
김성숙 선생의 애국애족과 향토사랑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가파초등학교가 조성한 공원이다.
이 작은 섬에도 어김없이 교회가 들오와 있다
교회가 들어오면 섬에서 전해지는 토속신앙이 말살되기 쉽다
위도에서 근무할 때 교회 가족과 토속신앙팀이 갈등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예술작품처럼 가꾸어진 아담한 주택이 보였다
마당에 깔린 잔디는 정성스럽게 손질되어 있었고, 각종 화초가 자라고 있었다
집 주위를 나즈막한 돌담이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분위기가 풍겼다
마을 안길 담장에는 섬의 문화를 소개하는 각종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가파도는 제주도 해안마을의 문화적 특징과 함께 작은 섬마을 특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주민들의 공간과 생활 속에서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엿볼 수 있다.
하동마을에는 "바닷가의 샘 끄트머리"라는 뜻의 돈물깍이 있다
'돈물'은 감수(맛있는 물)를 일컫는 제주방언으로 음료수로 사용할 수 있는 물을 말한다.
‘깍“은 끝을 의미하는 제주어다.
지금은 지하수와 해수담수화 시설을 통해 물이 공급되고 있으므로 유물로 남아있는 상태다.
해마다 음력 1월이면 마을 제사를 모시는 마을제단이다.
지금도 제관으로 뽑힌 마을 남자 7명은 3박4일 동안 제단집에 머물며 부정을 피한 뒤 제사를 올린다.
둥글게 돌담을 쌓고 가운데 작은 돌 두 개를 받친 뒤 위에 평평한 반석을 얹어 제단처럼 만든 형태다.
제주 민간신앙에서 ‘제단’은 남자들이 주관하며 마을의 풍요와 안전을 비는 축제 성격의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당은 여자들이 주도하여 어부와 해녀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곳이다.
고래등을 큰 바위로 눌러 버리듯
산만한 파도가 화를 부리는 분노
첫 바람 앞에서 촛불을 살리기만큼이나
그 노도를 가라앉히기 어렵다
제물을 바쳐 노기를 달래려 해도
제상(祭床)을 때려 부수는
분노를 가라앉힐 길이 없다......................................................................이생진 <가파도1> 부분
마을의 공동묘지는 하동에서 상동으로 돌아가는 북쪽 해안가에 있다.
가파도 북쪽 해안 길은 이승의 길이 아니다.
삶의 이면도로는 묘지들로 가득하다.
묘지의 주인들은 끝내 평생 자맥질하던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바다 곁에 누웠다.
상동마을 동쪽에 잘 생긴 두개의 바위가 있었다
가파도 주민들은 이 돌을 어망, 아방 돌이라 부르고 있다
사람이 올라가면 파도가 높아진다 하여 바위에 올라가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물도 나무도 귀한 섬에서
점심도 못 먹고 물질을 해서
한푼 두푼 모은 돈이
서방님 용돈에 다 들어간다.
어떤 년은 팔자가 좋아
분단장 하고 살아가는데
이 내 팔자 허망하여
물질하면서 살아간다
한라산을 등에 지고....................................................................제주 민요 <잠수노래> 중에서
돌담 너머에 심하게 구부러져 살고 있는 사철나무가 보였다
거센 바람에 시달려서 바다와 반대쪽으로 누웠다
바람에 휘어진 나무가 가파도 사람들의 고된 일상처럼 애잔하였다
돌담이 섬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돌과 돌의 사이에 틈을 만들며 돌담을 쌓는 것이 삶의 지혜다
이 틈을 통해서 바람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절대로 돌담이 무너지지 않는다
상동포구와 가까운 곳에 아주 예쁜 카페가 있어서 쉬어갔다
<낭꾸러기>라는 카페에는 '마음이 쉬는 의자'가 놓여 있어서 누구가 앉을 수 있다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 가도 주인은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11시 10분에 나가는 뱃시간에 시간이 많이 남았다
포구 윗쪽에 있는 '블랑로쉐'라는 예쁜 카페에 올라가서 냉커피를 마셨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카페 2층에서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바다와 꽃이 어우러진 섬 풍경은 이국적이었다
가파도는 머물렀을 때 작은 섬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섬 사람들이 꽃처럼 아름답고 바다처럼 푸르게 살아가길 기원하며 가파도를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