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대장인 선배를 우연하게 카트만두에서 만나
랑탕 리우 원정대에 참가했다. 하지만 산을 오르면서 계속 고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전에 에베레스트를 오르다가 고소를 먹어 포터에게
제발 산 아래로 보내달라고 애원하던 나약한 기억이 생생했다.
머리를 부술 것 같은 두통, 계속되는 구토, 호흡곤란,
가끔 환영이 보이기도 했다. 새벽까지 기침을 했고 목이 모두 쉬어 말을 할 수
없었다. 몬순이 시작되는 시기라 더 많은 비가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높은 곳으로 올라야 한다는 강박감, 비를 맞으며 하루에 11시간씩 걸은
욕심과 탐심이 가져온 결과였다.
오직 빨리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뿐 계곡의 비탈에서
풀을 뜯는 산양의 모습,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와 웅장하게 펼쳐진
하얀 설산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힐러리가 만든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이
“안녕, 어디서 오셨나요.”라고 물었을 때도 “한국”이라고 짧게 대답하고
걸음을 재촉했는데 등 뒤로 어린학생이 “비스타레 자노스(천천히 가세요)라고
맑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린 친구의 조언을 무시한 결과는 참혹했다.
기침 때문에 목이 쉬어 말도 제대로 못한 채 그르렁거리며 포터의
손을 잡고 살려달라고, 지금 내려가자고 했다.
“너무 위험해요. 내려 가면 모두 죽어요.“
이대로 있으면 죽을 것 같다고 헤드랜턴을 켜고 그냥 내려가자는
날 보면서 착한 친구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하루에
5불을 받기로 하고 계약을 했다.
롯지의 양철 지붕위로 밤새워 비가 내렸고
동이 틀 때까지 한숨도 못자고 두드득, 두득거리는 빗소리를 들었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했던가.
해발 5000미터에서는 산소가 반으로 줄어 신체에 갖가지
이상증세가 나타나는데 이것을 고소, 혹은 고산병이라고 한다. 단순한
트래킹만 해도 4000미터에서 5000미터 이상까지 가기 때문에
히말라야를 오르기 위해서는 고소에 대한 상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간의 신체는 부적절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급격하게 고도를 높이면 뇌로 가는 산소가 부족해 고산병에 걸리는 것이다.
초기엔 두통, 호흡곤란, 구토가 나는데 얼굴이 부으며 심한 기침이
나오면 위험한 상태가 된다.
산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반대로 보는 곳까지
그 산이 쭉 따라온다든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동행자에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해도 고소 증상이 온 것이다.
체력을 과신해 오버페이스를 하거나 여러 가지 불만과
불평에 쌓여 산을 올라도 거의 고소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긴 시간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은 수행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자연에 대한 겸손한 사고와 인간에 대한 절대의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소를 먹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평온한 마음가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산에 오르는 여유, 느리게 걷고 느리게 생각하는
느림의 사고가 필요하다.
느리게 걷는 것과 빨리 걷는 것 중 어떤 것이 쉬울까?
내 경험으로는 느리게 걷는 것이 빠르게 가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트래킹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희생과 고통을 동반하는 등반과는 달리 소풍을 가듯
인간적인 즐거움이 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느리게 걸으면 누구라도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다.
고소 증상이 왔을 때 가장 빠른 치료법은 낮은 지역으로 빨리 이동하는 것이다.
예방법은 술과 담배를 금하고 물을 많이 섭취해서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고소 때문에 죽는 경우도 있는 만큼 예방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와 함께 떠난 등반대는 총 8명이고 포터 12명, 세르파 3명,
요리사 3명이다. 피크를 오르기 위한 음식, 장비도 많았고 등반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히말라야 트래킹만을 즐기던 내겐 여러 고민이 생겼다.
카트만두에서 준비를 하며 체력과 정신력, 무엇보다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마음의 각오를 다졌다.
세르파는 부족의 이름인데 세르(동쪽) 파(사람), 히말라야의
동쪽에서 온 사람이란 의미로 우리와 같은 혈통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주로 에베레스트 근처의 고지대에 살아 고산등반을 돕는 가이드
일을 하다보니 세르파는 곧 가이드란 의미가 되었다.
가이드와 포터의 직업상 위치는 엄청난 차이를 가진다.
힌두교의 기본 교리인 카스트제도가 뿌리 깊은 네팔에서 직업의 분업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세르파는 고산을 잘 아는 전문가인데
자존심도 강하고 포터를 하라고 하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 부탁하는 자체가
상대방에게 매우 큰 실례가 될 수도 있다.
다와 셀파, 아주 엘리트인 친구.
자줏빛으로 묶여진 카고 백은 평균 25킬로에서 30킬로가 나가는데
포터들은 끈으로 묶어 이마에 메고 산을 오른다.
포터들 말고도 산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삶의 무게와도 같은 끈을 이마에
이고 살아간다.
포터는 짐을 옮겨주는 것이 자신들이 몫이고 다른 어떤 책임도 없다.
트레커들이 고산병이 와서 며칠씩 침대에 누워있어도
그런 상태를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 그런 포터들이 책임감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가 맡은 책임, 즉 짐 옮기는 일을 훌륭히 해냈다면
더 이상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짐을 나르기 위해 준비하는 포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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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 지기엔 너무 엄청난 부피와 무게,
네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환경을 가졌지만 무게를 짊어지는 것이
삶의 일부가 된 나라..
히말라야를 오르기 위해선 등산화, 소형배낭,
카고백(모든 물품이 들어가서 포터들이 메고 가는 가방) 침낭과
등반용 매트리스 (숙소엔 난방 설비가 없고 눈과 비를 피하는 정도라서
필수적으로 필요함) 방한복, 상비약, 기타 2주 정도 간 필요한 모든 소모품,
MP3 플레이어가 유용하게 사용된다.
메모장이 필요한데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밤에 읽을 책(전기가 없는 관계로 헤드랜턴을 이용해서 읽을 수 있음)
가장 좋은 것으로 준비해야 할 품목은 침낭(Sleeping Bag)과 등산화이다.
3,000m이상에 가면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슬리핑백의 다운 함량은 1300g이 적당하고 스틱은 한 쌍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스틱을 잘 사용하면 네발로 걷는 효과를 얻기 때문이다.
눈 위에선 선글라스가 필수인데 안경 없이 계속 하얀 설산을 보고
걸으면 설맹이 오는 경우가 있다. 설맹에 걸리면 통증에 눈을 못 뜨고 앞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오래 전에 오래 전에 에베레스트 트래킹을 할 때
계속 산을 오르며 혼자 욕을 하던 동행자가 설맹에 걸려 이동을 포기한 적이
있다. 당시 세르파는 신이 노한 것이라고 했다.
현지 아이들에게 선물하기에 좋은 물건은 볼펜이다.
양치질을 자주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사탕, 초콜릿을 주면 치아를 상하게
만들 수도 있어 연필, 양말, T셔츠 또한 좋은 선물이 된다.
롯지에 딸린 매점은 70년대 한국의 모습과 비슷하고 트래킹을 하다가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산에서 비교적 번화한 곳에 속한다.
히말라야에 사는 아이들..
사진을 보고 좋아하던 아이..
눈이 마음의 창이라면 이 아이가 가진 창 안엔 얼마나 많은
보석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을까?
땔감을 구해 이마에 지고 오다가 수줍게 있는
아이들, 그애들과 잠시 휴식을 취하며 어린시절을 회상했다.
자세하게 보면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아이도 있다.
티베탄의 마을, 길다란 장대에 매달린 룽다.
어린 아이들은 룽다의 소리와 함께 자라고 그 푸득~ 푸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생의 생을 마감할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사는 사람들은
돌로 집을 짓고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며 대부분의 것들을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간다. 그들에게 형형색색으로 펄럭이는
룽다는 단순하게 흔들리는 깃발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 인생의 한 부분이다.
카트만두에서 트래킹의 시작이 되는 둔체까지 버스로
10시간이 걸렸고 다음 날 해발 1400미터인 사브루 벤지에서 2480미터의
라마호텔 까지 8시간을 걸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랑탕의 계곡은 끝없이 이어졌고
열대 우림 속으로 기암절벽이 펼쳐졌다. 산에서 노는 야생 원숭이,
가끔씩 보이는 산양, 절벽에 매달린 석청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열대우림의 숲을 지나면서...
산의 입구, 마을의 입구 어디서나 룽다와 타르초가 바람에 날렸다.
혹독한 환경과 가난에 그들이 기댈 곳은 신밖에 없고
룽다와 타르초는 그들의 신심에 의해 펄럭이는 것이다.
나무로 만든 다리도 지나고...
협곡도 지니며..
숲 사이로 보이는 하얀 설산,
바로 눈앞에 있지만 적어도 5일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하얀 설산만이 히말라야의 얼굴은 아니다.
열대우림부터 설산까지 히말라야를 오르면 사계절을 모두 볼 수 있다.
계곡을 따라서..
맨 앞에 세르파가 보폭을 조정해 걷는데 가능하면 숨이 차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걷는다. 하루 이틀에 끝내는 산행이 아니라
10일 이상 되는 긴 여정이라 체력을 오버하지 않기 위해서다.
포터들은 일찍 출발해서 목적지에 짐을 풀고 쿡 또한 우리 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해 음식을 준비한다. 우리와 함께 했던 포터와 세르파들은
8000미터의 고봉을 여러 번 오른 베테랑들이다.
해발 2000미터가 지나며 한국의 가을 같은 날씨가 되었고
랑탕의 아름다운 계곡과 절경은 계속 이어졌다. 길가엔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핏빛과도 같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랄리구라스는 나무이고 흰색, 분홍색, 빨간색 등 보통 3가지 색의 꽃이 핀다.
나무에 수없이 많은 봉우리들이 피며 대부분 군락을 이루고 있어
모든 산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기도 한다.
젊은 나무, 늙은 나무, 서로 조화를 이뤄 상생을 추구하며.
멀리 랑탕리우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수목한계점에 도달해 나무와 풀들이 자랄 수 없는
곳에 도달한다. 등반대장은 배낭을 메는 방법을 알려줬다.
어깨의 끈엔 작은 무게만 느껴야 하고 골반 위의 허리에 배낭의 무게를 모두
둬야 오랜 시간을 걸을 수 있다고 했다.
숨이 차면 보폭을 반으로 줄이거나 3분의 1로 줄여서 호흡을 조정하는
것도 가르쳐 줬다. 등반하는 내내 그는 완벽한 리더십을 보였고
대원들에게 고소를 먹지 않는 방법에 대한 여러 조언을 했다.
등반 대장은 오래 전 랑탕리우를 등반하다 한 명의 대원을 잃었다고 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대원을 묻고 룽다와 타르초를 걸어 놓은 곳에
도착한다. 그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고 나도 죽은 자를 추모하며 그 슬픔에
동참하고 싶었다.
히말라야를 사랑했던 그 분은 영원히 히말라야에 잠들었고
낡은 룽다와 타르초가 다음 생까지 무덤 위에서 푸르륵 거리며 울 것이다.
어느 묘비명에 이런 말이 써있다고 한다.
"오늘은 나, 내일은 당신."
3000미터 지점에 오르자
세르파의 발걸음은 영화에서 보는 슬로우 모션과 비슷했다.
워낙 경험이 풍부한 세르파들은 대원들이 오버하지 못하게 최선을 다 했지만
체력이 넘치는 몇 명의 대원들은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앞서
걸어 나가곤 했다.
숨이 차면 인체에 더 많은 산소가 필요해지고 쉽게 고산병에 걸린다.
산소가 부족해 잠이 안 오는 경우가 많은데 술을 마시면 숙면을 취할 것
같지만 대부분 고소증상을 느낀다. 알콜을 해독하기 위해 더 많은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 중의 일부는 4200미터에서 고소증상을 보이며
등반을 포기하는 아픔을 겪었다. 고소는 묘한 것이라 고소가 오기 전에
몸이 가뿐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도 하게 된다.
이것은 악마의 유혹으로 고산병이 오기 바로 전의 증세인데
“나는 고산 체질”이란 허황한 망상을 심어주는 경우도 있다. 비스타레
자노스(천천히 가세요) 세르파들이 우리에게 끝없이 주문했지만 빠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가장 힘겨운 것은 느리게 가는 것이다.
히말라야에선 느리게 걷고 느리게 생각하고 느리게 살아가야 한다.
등반대들이 자는 롯지, 바람이 들어오는 침상에
눈과 비를 피할 정도의 공간이다. 2000미터 정도에선 그렇게 춥지 않아
견딜 수 있었다. 랑탕에 오르는 동안 어디서나 계곡물소리가 들렸다.
그 물소리는 엄마의 양수에서 놀던 전생의 기억을 더듬게 했고
밤새워 펄럭이던 룽다소리는 아름답고 슬픈 지난 기억들을 데려와
생선처럼 펄떡이게 했다.
하루 평균 8시간을 걷고 저녁식사를 하면
잠시의 휴식이 주어진다. 전기가 없어 태양열로 발전기를 돌려 작은 전등을
켜는데 가끔 세르파와 포터들은 그들의 전통 노래인 레섬삐리리를 불렀다.
그들은 하루 7불도 안되는 돈에
25킬로, 혹은 30킬로 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산에 오른다.
하지만 언제나 행복한 표정이었고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세상에 행복만이 존재한다면 행복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불행이 존재함으로 행복이 빛날 수 있고 부족함을 채우려 하는 욕구가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들과 함께 며칠을 보내며 나는 그 친구들보다
행복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종종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일하고 내일 죽을 것처럼
기도하며 사는 그들의 모습, 그들이 가진 생활과 종교의 균형을 나는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사람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추억이 없는
사람이 정말로 가난한 사람일까?
"레섬 삐리리 레섬 삐리리 (만장이 펄럭인다)
우레라 종기 달라마 반장 (강하게 휘날린다 언덕과 계곡에)
레섬 삐리리(만장이 펄럭인다)
엑날레 반둑 두에날레 반둑(총 한자루 총 두자루)
미르고알라이 다케코(산의 짐승을 겨눈다)
마라고알라이 마일레 다케코 호이나(짐승과 나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마이 알라이 다케고(서로 포용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음률은 아리랑처럼 슬프고 비감하기까지 했다.
가끔씩 리듬에 맞춰 바닥을 발로 차며 춤을 췄고 어깨동무를 하고 합창을
했는데 친구들은 미소를 지으며 노래했지만 어떤 처연함이 있었다.
슬픈 과거를 가진 나라들은 노래를 많이 부른다고 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트래커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다
같이 어울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산에서는 국적이나 외모가
중요하지 않고 더불어 함께하는 사고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는 "우리"라는 것이고 가장 저급한 단어는
"나"란 사실을 서로를 통해 증명받는 것이다.
산위에선 기압이 낮아 물이 빨리 끓어 압력밥솥이 필수다.
가끔 주방에 들어가 그들과 어울려 음식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거나 설거지를
함께 하기도 했다.
결혼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롯지 주인은 딸을 한국에 데려가라고 했다.
포터와 세르파들도 잘 어울린다며 우리에게 박수를 보냈고 “같이 한국에 갈까?”라고
말하자 그녀는 대답대신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라무 라마 타망이란 이름을 가진 그녀는 타망족이고 자신의 모습이
예쁘게 나올 때까지 계속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주소를 적어주며
꼭 보내달라고 했다.
산을 오르다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나마스테라고 인사를 한다.
나마스테란 "당신이 믿는 신에게 존경을 표한다."라는 힌두 문화권이 만든
인사말이다. 두 손을 합장해도 되고 그냥 "나마스테"라고 말하면
모두 밝은 미소로 나마스테라고 응답한다.
히말라야에 오르는 길에 이런 안내문이 있다.
“당신이 히말라야에 있을 때 사진 이외는 가지려 하지 말고 발자국
이외는 남기지 말고 시간이외엔 죽이지 마시길.”
어떤 수행자는 인생의 무상함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은 길어야 백년 후면 모두 죽겠지요.
그 뒤에 남는 것이 바로 무상함 이랍니다“
돌에 새겨 놓은 옴마니 밧메흠.
단순하게 해석하면 연꽃 속의 보석이여 영원 하라는 뜻이지만 풀어 놓으면
한 권의 책으로 모자랄 정도의 수많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히말라야의 어디서나 보이는 바위에 그들은 다음 세상에 대한 축원을 담아
글을 새겼고 주변에 룽다와 타르초를 걸어 둔다.
포터, 세르파, 모두 함께 편을 갈라 윷놀이를 했다.
지는 편에서 양을 한 마리 잡기로 했는데 커다란 양 한 마리의 가격은
한화로 3만원 정도 했다. 양은 승려의 축원을 받은 다음에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이승을 하직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승려의 축원이 없이 잡은 고기는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한다. 양은 늙어 죽기보다는 누군가의 음식이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숙명을 다한 것이라고 했다.
무릇 살아있는 것은 모두가 존귀한 것이란
사고를 가진 그들은 삶과 죽음을 우리보다 더욱 명쾌하게 해석한다.
2400미터에서 다시 8시간을 걸어 수목한계점이 지난 3474미터인
랑탕고원에 도착했다. 랑탕의 고원지대는 히말라야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으뜸으로 치는 곳이다. 하얀 설산이 마을 전체를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산 너머엔 티베트가 있고 랑탕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티베트 난민들이다.
중국의 무력 침공 때문에 산을 넘어온 티베탄들은
야크의 똥을 연로로 삼아 힘겹게 살아간다. 이곳 출신인 세르파는 어려서
비교적 따뜻한 야크의 똥 위에서 계속 잤다고 했다.
해발 3000미터가 되면서 라면과 커피 믹스가 기압의 차이로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롯지의 방에 있는 물이 얼어붙고 고산용 침낭 속에서
파카까지 입고 잤지만 밤새워 추위에 떨었다. 머리를 감지 못했고 잘 때도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자야 한다. 머리에서 열을 빼앗기면 쉽게 고산병이
오기 때문이다.
눈 속에서 사는 야생의 야크가 나오며
본격적으로 설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야크는 해발 3000미터 이상에서
살고 그 아래의 고도로 내려오면 죽는다.
녀석들은 자신의 고향인 히말라야만큼이나 위풍당당했다.
랑탕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모습.
시간의 무의미함을 철저하게 느끼는 사람만이 진정한 히말라야를 볼 수
있다. 뒤에 보이는 산들은 뒷동산처럼 보이지만
해발 7200미터의 거대한 산들이다.
5일 동안 매일 7~8시간씩 걸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란 랑탕 히말라야의 칸진곰파에 도착했다.
이곳은 랑탕 리우 원정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곳이다.
2004년 2월 5일,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라고 했다.
달빛 아래 하얗게 빛나는 히말라야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고 어려서
불놀이를 하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모습,
랑탕에서 마지막의 민가가 있는 곳이고 여기부터는 야영을
해야 한다.
마을을 지키는 룽다...
대원의 일부는 고산병에 걸렸고
짙은 안개와 엄청난 폭설로 등반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무전 연락이
잘못되어 각기 다른 봉우리에서 헤맨 적도 있다. 하지만 모두는
만족한 마음으로 하산할 수 있었다.
매일 밤 울던 자칼의 울음소리, 달빛아래의 히말라야,
수 십 만년을 빙하로 자리했을 하얀 눈과 얼음들, 선하고 고운 사람들이 사는
세상, 쉬지 않고 펄럭이던 룽다와 타르초를 가슴에 담고 오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의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최초의 무산소 에베레스트 등정,
최초의 14좌 완등자인 라인홀트 매스너가 알파인식 등반을 유행시키기 전에는
극지법이란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극지법은 수많은 인력과 물자를 동원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캠프를 만들고 마지막 캠프에서 컨디션을 가장 잘 조절한 등반대의 리더가
정상을 공격하는 방법이다.
반대로 알파인 스타일은 초경량, 초고속 등반으로 대부분 산소통이나
세르파, 포터의 도움이 없이 혼자 힘으로 순식간에 정상을 정복하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도전은 알파인 스타일이다.
돈을 많이 쓰면 누구나 에베레스트 정상에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세르파들을 산에 가득 풀어 놓아 모든 위험지역을 극복한 후에
안전한 루트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정상을 정복하면 명예를 얻지만 그 영광뒤에는 그들을 위해 루트를 개척하다
죽어간 수많은 세르파들이 있다.
등반대원들은 하얀 산을 말없이 바라보곤 했다.
진정으로 이별이 슬픈 사람들은 떠날 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어쩌면 돌아갈 고향,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안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고
내 조국이 아름다운 것은 그 곳 어딘가에 날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이쪽의 산을 내려가 저쪽에 있는 생의 길을 따라
수많은 만남과 수많은 이별을 시작해야 한다. 눈 위에 남은 작은 발자국을 따라
작은 점이 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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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니 독수리가 날개를 달았나!!!!!!!!,, 많이 늘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