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進… 東進… 말씀은 두 길로 통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에 언제 누구에 의해서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었을까?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백성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게 하셨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 답해 보겠지만 기독교의 전파과정을 지리적으로 관찰하면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 복음은 안디옥을 거쳐 서쪽의 에베소, 고린도, 그리고 로마로 나아가는 서진(西進) 혹은 서행(西行)의 과정이었다. 즉 주후 30년경에 설립된 예루살렘교회는 세계교회의 모체가 되었고, 바울의 선교활동을 통해 기독교 복음은 소아시아의 연안지방을 거쳐 에베소, 빌립보, 그리고 고린도로 확장되었고, 드디어는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로 전파된 것이다. 적어도 로마에는 49년 이전에 기독교가 소개된 것으로 보지만, 58년경에는 로마 교회에 대한 소문이 당시 세계에 전파되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교회의 소문을 듣고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롬 1:8). 원래 기독교는 유대주의적 배경에서 배태되었으나 불과 30여년이 못 되어 유대주의적 한계를 넘어 이방세계로 전파되었고, 사회 계층의 벽을 극복하고, 문화의 장벽을 넘어 당시 세계의 중심지로 확산되어 간 것이다. 이 서진의 과정 속에서 구라파에 전파된 기독교는 16세기 이후 북미대륙으로 전파되었고, 북미대륙에서 다시 아시아로, 그리고 19세기 말에는 한국으로 전파된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전파의 주된 흐름이었다.
그런데, 이런 서진의 과정과는 달리 복음의 동진(東進) 혹은 동점(東漸)의 과정도 없지 않았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 복음은 익명의 전도자들에 의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로도 전파되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런 무명의 전도자들을 ‘그 흩어진 사람들’(행 8:4)이라고 불렀다. 지난 역사 속에 간간이 노출되는 이 희미한 흔적은 복음의 동점과정을 보여 준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시리아와 인도를 거쳐 중국까지 왕래했다는 주장이 있고, 그 복음운동이 우리나라에까지 이르렀다는 주장이 있으나 주후 60년대에 기독교가 중국에까지 전래되었다고 보기에는 해명해야 할 문제점이 남아 있다.
그러나 주전 200년경에 중국을 통일한 진(秦)이 이미 로마에까지 알려진 것으로 보아 동서 교섭의 역사는 일찍부터 있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실크 로드(Silk Road)는 한대(漢代)에 개척된 것으로 한대 이후 동서 교류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이 통로를 따라 기독교는 중국을 거쳐 한국에까지 전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훨씬 후의 일이지만 19세기 이전의 한국과 기독교와의 접촉은 대체적으로 중국을 징검다리로 하여 이루어졌다.
정리하면, 기독교복음의 한국 전래 과정은 두 경로로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서진의 과정으로서, 19세기 이후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을 통한 접촉이고, 다른 하나는 동진 과정으로서, 16세기 이전의 중국을 경유한 접촉이다. 후자의 경우는 문헌으로 확증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흔히 고대기독전래설이라고 말해 왔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천주교 첫 접촉은 1593년 임진왜란을 통해 시작되었고, 개신교의 경우 1832년 독일 루터교 목사인 귀츨라프의 내한으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지만 이보다 훨씬 앞서 기독교와 한국 간의 접촉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어떤 이는 주후 31년에서 84년 어간에 이미 한국에 기독교가 소개되었고, 72년에는 사도 도마가 바닷길로 인도, 중국을 거쳐 신라에까지 왔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 3세기경에 중국을 징검다리로 기독교와 접촉했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경상북도 영풍군 평은면 왕유동(王留洞)에서 1987년 8월 발견된 도마의 분처석상(分處石像)인데, 두부(頭部)가 떨어져나간 이 암각상이 기독교 흔적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다. 이 상의 높이는 약 5m, 가슴너비는 약 3.3m이며, 상면과 암면(岩面)에는 음각(陰刻)한 3점의 명문(銘文)이 있다. 즉 상의 좌측 암면에는 ‘도메’라고 읽을 수 있는 히브리어가 새겨져 있어 ‘성(聖) 도마상(像)’이라는 주장이 있다.
또 상면 하단에는 ‘야소화왕인도자’(耶蘇花王引導者)라는 글과 ‘명전행’(名全行)이라는 한자 명문이 있다. 이곳의 조형기법이 특이하고 문양이 확연하여 여러 모로 고증이 가능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조형기법에 있어서 손 모양(手勢)이 불상의 수인(手印)과는 다르고 특히 1908년 중국 돈황(敦煌)에서 발견된 흔히 그리스도상이라고 추정되는 경교화상(景敎畵像)의 수세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형태로 간주되고 있다. 명문에서도 도메로 읽을 수 있는 히브리어 외에도 ‘야소화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도자’는 전도자를 칭하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이것이 후에 소개할 경교의 흔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 이전의 기독교와의 접촉 흔적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문헌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8세기 경 경교(景敎)가 소개되기 이전에도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소개되었다는 주장을 고대기독교 전래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