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형이 가져온 편지
이 준 연
횡횡 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얀 눈가루가 뽀얗게 날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종잇조각들은 파들파들 떨면서 뿔뿔이 흩어졌읍니다.
절름발이공주인형은 웅크리고 앉아서 벌벌 떨었읍니다.
뚜우 하고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렸읍니다.
그칠 줄 모르는 찬바람은 사정없이 불어와 쓰레기들을 마구 흩어놓았읍니다.
공주인형도 몇 차례나 떼굴떼굴 곤두박질했는지 모릅니다.
눈가루가 쏴악 하고 날릴 때마다 숨이 콱콱 막혔읍니다. 공주인형은 두 손으로 입을 꾹 막고 눈을 감고 앉아 있었읍니다.
“아이 추워, 힝힝.”
“누가 저렇게 올까?”
공주인형은 귀를 쫑그리고 앉아서 다 죽어가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읍니다.
“누굴까? 몹시 추운가봐.”
공주인형은 팔을 길게 뻗쳐서 주위를 더듬어보았읍니다.
하얗게 눈이 내려서 뭐가 뭔지 통 보이지 않았읍니다.
“얘, 누구니, 응?”
“저예요, 살려주세요. 추워 죽겠어요. 숨이 막혀 죽겠어요. 그라고 옷이 온통 젖었어요.”
예쁜 목소리가 처량하게 공주인형이 도사리고 앉아 있는 앞에서 들려왔읍니다. 공주인형윤 엉금엉금 기어갔읍니다.
“얘! 어디 있니? 앞이 안 보여.”
“여기예요, 여기. 날아가버랄까봐 사과껍데기들 밑에 있어요.”
공주인형은 손바닥으로 더듬더듬 하다가 축축하게 젖어버린 편지를 손에다 쥐었읍니다.
“고마와요. 저를 살려주세요. 제 몸뚱이에 물이 묻으면 글씨가 모두 지워져요. 눈을 안 맞게 해주세요.”
“편지얘요. 집을 나온 지 열흘이나 지났는데 집을 찾지 못했어요.”
“너의 집이 어다나?”
“아주 먼 시골이에요.”
“그래? 그럼 왜 여기까지 왔니?”
“글쎄, 저도 잘 몰라요.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하도 많이 울었기 때문에 눈이 퉁퉁 부어 앞이 통 보이지 않아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생갇을 해보겠어요.”
“응! 너 심부름 나왔다가 길 잃어버린 것 아니냐?”
“그랬어요. 공주님! 절 꼭 껴안아주세요. 몸이 마르면 제 몸에 쓰여진 글씨를 읽어보세요. 그리고 제 이야길 들어보세요. 네?”
“그래 그래. 너도 나처럼 가없구나. 나도 이렇게 쓰레기통으로 쫓겨났어.”
“어머나! 요렇게 예쁜 공주님이, 왜요?”
“글쎄 말이야. 내 얘길 들어보면 너도 알 거야. 아이 추워.”
공주인형은 편지를 꼭 껴안았읍니다.
“공주님!”
“응?”
“정말 고마워요, 공주님! 제 얘길 들어보시겠어요?”
“그래, 추워서 잠도 못 자겠으니, 우리 얘기냐 하자.”
“아이 좋아. 그럼 얘가를 하겠어요.”
편지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를 시작하였읍니다. 공주인형은 귀를 쫑그리고 앉아서 편지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2
하얀 물새들이 날으는 바닷가에 우리집은 있지요. 우리집엔 병으로 앓고 있는 선영이 언니와 할머니, 모두 두 식구뿐이예요. 아이 참, 그리고 날마다 찾아오는 혜정이 언니도 있어요
밤이면 갈매기의 구슬픈 노랫소리도 듣고, 호롱불심지를 돋우며 책을 읽어요. 아주 재미나는 옛날이야기책을 혜경이 언니가 읽으면 우리 선영이 언니는 눈을 스르르 감고 들어요. 우리 선영이 언니는 노래를 참 잘해요. 예쁘고 고운 목소리로요. 그렇지만 노래를 부르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아요. 몹쓸 병 때문에 몸이 아파서요. 찬바람이 불어오자 선영이 언니는 말도 잘 못하고 밥은 안 먹고 끙끙 앓고만 있어요. 동그스름한 예쁜 얼굴이 깡말라서 뼈만 남았어요. 그리고 밤마다 잠꼬대를 해요.
“소영아! 소영아! 너는 아주 나를 잊었느냐?”
고요.
가랑비가 촉촉히 내리는 어느 날, 선영이 언니는 혜경이 언니를 마구 졸랐어요.
“언니! 아카시아밭에 가, 언니, 응!”
“안돼, 오늘은 밖이 추워서.”
“아냐 아냐. 갈래! 응, 언니?”
견디다 못해 혜경이 언니는 선영야 언니를 붙들고 아카시아나무가 늘어선 바닷가에 나갔어요. 그날 밤부터 선영이 언니는 열이 더 심했고 미친사람모양 소영 이를 불렀어요.
이틀날 아침, 혜경 언니는 선영이 언니의 책상서랍에서 분홍 종이를 꺼냈어요. 그리고 선영이 언니에게,
“얘! 선영아! 네가 말을 해. 내가 받아쓸께. 소영이를 오라고 하면 되잖아.” 선영이 언니는 모기소리모양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을 하고, 혜경이 언니는 천천히 글씨를 썼어요.
“뭐라고 썼니?”
“글쎄요? 공주 아가씨가 읽어보세요.”
분홍 편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바람은 잠잠해졌고 흩날리던 눈보라도 멈추 었읍니다.
언제 눈가루를 퍼부었느냐는 듯 하늘에는 꽁꽁 언 별들이 빛났읍니다.
정말 신기했읍니다. 별 하나가 반딧불 모양 훨훨 날아왔옵니다.
“너희들은 참 재미나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나도 다 들었어. 정말 눈물이 나오려고 해. 나도 선영이라는 아이가 누워 있는 창가엘 간 일이 있어. 착하고 가없은 아이야. 내가 그 편지를 읽어줄 테니 이리 줘요.”
아기별은 편지를 읽었읍니다.
〈보고 싶은 소영아! 잘 있니? 그렇게 파랗던 하늘이 자꾸만 어두워지는구나. 넌, 파란 하늘이 되고 싶다고 했지? 난 정말 바다가 될 테야. 난, 영영 죽을 것만 같애. 이젠 노래도 못한단다. 너의 하모니카소리도 듣고 싶어. 그리고 네가 보고 싶어. 겨울방학이 오면, 한번이라도 좋으니 우리집에 와줘, 응? 네가 올 때까진 난 안 죽을 테야. 소영아! 꼭 와줘, 응? 너를 만나면 내 병도 나을는지 몰라, 꼭 나을 것만 같아.
어제는 우리들이 꽃을 따던 바닷가 언덕엘 갔어. 혜경 언니를 붙잡고 갔는데 몇 번이나 쓰러졌는지 몰라. 아버지가 전근 가시게 되어 서울로 떠나야 한다고 울면서 찾아왔던 그날, 너와 나는 꼭 껴안고 밤까지 울었지? 그때엔 하얀 아카시아꽃이 싱싱한 향기를 풍기며 우리들의 까만 머리 위에 한잎 한잎 내렸지.
하늘가에 아롱진 분홍빛 노을이 아카시아 흰꽃에 곱게곱게 연분홍을 물들여놓았지! 그런데 지금은 꽃도 잎도 없는 앙상한 가지들이 찬바람에 부들부들 떨고
있어. 다시 아카시아꽃이 필 때 중학교 교복을 입고 예쁜 녹색 배지를 달고 온다고 그랬지? 그때까지는 못 기다릴 것만 같애. 난 겨울도 채 못 가서 죽을 것만 같애.
소영아! 한번만 꼭 와줘, 응? 그럼 기다릴 태야. 잘 있어.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
바닷가 오막살이집에서. 이 선영 씀,〉
펀지를 다 읽고 난 아기별도 공주인형도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읍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여태껏 소영이한테 못 갔니?”
“빨리 가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아요.”
“글쎄 말이야.”
“공주 아가씨! 제 이야기를 다 들으세요.”
“그래.”
“혜경이 언니가 하얀 봉투 위에다 〈서울특별시 정화국민학교 육학년 일반, 김
소영〉이라고 찾아갈 주소를 써주었는데------아이, 어쩌면 좋아.”
분홍 편지는 울음을 터뜨렸읍니다.
“울긴, 바보처럼, 어디 얘기나 해봐.”
편지는 울음을 그치고 이야기를 시작했읍니다.
집을 떠난 지 이틀 만에 정화국민학교 편지꽂이 안에서 소영이가 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가슴을 두근거리며 소영이를 기다려도 와주지 않아서 화가
났어요.
“이게 뭐야, 따분하게. 소영이라는 아이는 저한테 편지온 줄도 모르고 뭘 하고 있누? 아, 졸려.”
나는 짜증난 목소리로 투덜거리고 있는데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어요.
“아! 편지 많구나! 내 것도 있을까?”
장난꾸러기 일남이가,
“시, 기분나쁘게, 요렇게 많은데 내 건 한 장도 없어.”
일남이는 나를 쑤욱 뽑아서 앞뒤를 바라보더니,
“요것 봐라, 소영이한테 왔다. 잘됐어. 곯려줘야지. 그 계집애는 공부 좀 잘
한다고 아주 뽐내거든.”
“어디?”
“누구한테서 왔니? 어다 좀 봐.”
몰려왔던 아이들은 편지를 서로 빼앗아보려고 야단을 피우다가 겉봉이 짝하고 찢어졌어요.
“저런, 어쩌면 좋아.”
아이들은 서로들 얼굴만 바라보았어요.
“임마! 난몰라. 일남이 잡아당겨서 그랬어. 난 몰라. 선생님한테 들키면 야단맞아.”
“임마! 너희들이 빼앗으려니까 그랬지.”
“난 몰라.”
“나도 몰라.”
아이들은 모두 뿔뿔이 달아나버렸어요. 일남이만 찢어진 봉투를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어요.
“망할 자식들, 집에 가서 다시 써서 주지 뭐.”
일남이는 저를 바지 뒷주머니 속에 넣고 봉투는 웃저고리 앞주머니에다 구겨넣고 부랴부랴 도망쳐나갔어요. 그 뒤엔 잘 몰라요. 주머니 속이 어찌나 캄캄하고 답답한지 엉엉 울고만 있었으니까요. 얼마쯤 지났어요. 일남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나봐요. 일남이는 수돌이와 신나게 떠들면서 걸어가고 있었어요.
“아이구 갑갑해. 코가 막혀서. 어젯밤엔 이불을 차고 갔더니 감기가 들었나봐. 나 휴지 좀 주어, 킁킁.”
수돌이는코방귀를 뀌면서 말했어요. 일남이는 아무말 없이 주머니 속을 쓱쓱 뒤지더니 앗! 나를 보지도 않고 수돌이에게 내주었어요.
수돌이도 일남이처럽 나를 보지도 않고 코를 팽 하고 풀어서 나를 가지고 쓱쓱 문질러닦더니 그냥 길바닥에 내던져버렸어요.
“어쩌면---”
“쯔쯔......”
공주인형과 아기별은 한숨을 내쉬었읍니다.
왔어요.
“아기별님! 공주 아가씨! 전 어떡하면 좋아요. 흑흑.”
편지는 흑흑혹 느껴 울었읍니다.
공주인형도 아무말 없이 눈물만 쪼르륵 흘렸읍니다.
아기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울고만 앉아 있던 공주인형이 고개를 들었읍니다.
“편지야!”
“응.”
“내가 있던 집에 소영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어. 국민학교 6학년에 다녀.”
“어머나! 정말?”
“그래.”
“그럼 왜 진작 얘기 안했어요?”
“네 얘길 다 듣고 하려고.”
“그럼 인형 아가씨도 얘기를 해요, 네?”
공주인형은 고개를 끄덕였읍니다. 아기별이 말을 했읍니다.
“난 벌써 다 알고 었었어. 너희들이 같은 집으로 가야 될 것을.”
“어쩌면 그렇게 다 아세요?”
“정말?”
“난 하늘에서 살지 않니? 그리고 밤이면 반짝반짝 등불을 켜들고 여러곳을 돌아다니지 않니, 누가 뭘 하는지 다 알아. 공부를 하는지, 장난을 하는지, 엄마를 조르는지, 뭐든 다 알아. 낮에는 햇님이 무서워서 밖엘 못 돌아다니지만.”
“아기별님! 제 이야기도 들어주세요.”
“그래 그래.”
공주인형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3
우리집은 돈암동이에요.
저는 신신백화점 유리곽 속에서 살고 있었어요. 거기엔 예쁘고 귀여운 동무들이 많이 살고 었었어요 병정 원숭이, 바둑이, 그리고 꼬마아이들도요. 영국, 미
국, 프랑스, 여러나라의 어린이들도 있었어요. 저는 페르시아의 공주였어요. 저
를 만든 아주머니가 이름 지어주었어요. 분홍 나일론으로 모자도 만들어주었고, 주름이 많이 잡힌 동그란 스커트며 빨강, 파랑, 초록, 노랑 무늬가 곱게 박힌 비단옷을 입혀주었어요. 지금은 이렇게 옷도 떨어지고 더럽지만.
공주인형은 걸레조각처럼 짝짝 떨어진 옷을 매만져보면서 한숨을 쉬었읍니다.
어느날, 비오는 날이었나봐요. 빨간 비옷을 입은 조그마한 아이가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진열장 앞으로 왔어요.
“옥희야! 골라봐라. 마음에 드는 걸로. 오늘은 우리 옥회 생일날이니까 아빠가 하나 사줄 테다.”
“아이 좋아라. 아빠! 나 이것, 응? 아빠! 참 예쁘지?”
옥희는 수많은 인형들 중에서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읍니다.
“그래, 그걸 사주마.”
저는 옥희의 품에 안겨서 옥희네 집으로 왔어요. 그때부터 옥희네 식구가 되었어요.
옥희는 유치원에 갈 때도, 그리고 집에서 놀 때에도 저를 꼭 껴안고 다녔어요. 그런데 저 때문에 옥희는 밤낮 영길이하고 자꾸 싸웠어요. 서로들 제 거라구요. 그리고 아버지는 옥희를 더 예뻐하니까 영길이는 화가 났나봐요. 영길이는 국민학교 이학년인데 아주 까불어요. 장난꾸러기예요.
옥희가 저를 껴안고 소꼽장난을 할 때도, 영길이는 와락 달려들어 저를 빼앗아서 방바닥에다 내동댕이를 치고 공처럼 발로 마구 왔어요.
그럴 때면 옥희는 울음보따리를 앙 하고 풀어놓았어요.
밖에서 옥희 언니 소영이가 쫓아와서,
“얘! 영길아! 왜 까불어. 인형이 공이냐?”
하고 소리를 지르면 영길이는 욕을 하고 달아나버리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토요일이었나봐요. 옥희는 소꼽장난을 하다가 저를 방문 앞에다 놓고 잠이 들어버렸어요. 우당탕탕 문소리가 나더니, 영길이가 방으로 뛰어들어오다가 저를 꽉 밟아버렸어요.
그때, 전 죽어버릴 뻔했어요.
“어어, 인형이 부서졌네, 이크!”
영길이는 다리가 두 동강이로 부러진 저를 들고 어쩔 줄 몰라 쩔쩔매더니,
“이크! 큰일났다! 엄마가 알면 막 야단칠 거야. 옥희만 예뻐하는 아빠! 옥희 편만 드는 깍정이누나! 욕심장이 옥희! 아무도 몰래 밖에다가 살짝 버려야지. 들키는 날엔 재미없을 거야.”
영길이는 신주머니 속에다 저를 넣어가지고 어디론지 갔어요. 한참 후에,
“히히, 여기다 파묻어야지. 하하.”
쓰레기통에다 저를 넣고 쓰레기로 덮어두고는 도망쳐가버렸어요.
“아기별님! 저를 옥희한테 데려다주세요. 네? 옥희가 보고 싶어요. 아마 집에서 난리가 났을 거예요. 장난꾸러기 영길이는 아버지 어머니를 감쪽같이 속일 거예요. 옥희가 인형을 잃어버렸다구요. 옥희만 혼날 거야요. 제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죄다 이를 테야요. 그럼, 영길이는 혼날 거야요. 아기별님! 저를 옥희네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아기별님! 저두요. 인형 아가씨와 함께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소영이를 꼭 만나야겠어요. 우리 선영이 언니가 죽으면 어떻게 해요, 네?”
공주인형파 분홍 편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애원을 했옵니다.
잠자코 앉아서 듣고만 있던 아기별이 말했읍니다.
“정말 너희들은 착하구나. 너희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인정이 많구나. 내가 데려다줄께, 울지 마.”
“아이 좋아.”
인형과 편지는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읍니다.
그때 멀리서 통금해제 사이렌이 뚜우 하고 울렸읍니다.
“잘들 있어. 난 인제 가봐야겠다. 하늘나라 햇님이 잠이 깨면, 난 야단맞을 거야.”
아기별은 일어섰읍니다.
“저희들은 어떡하구요? 아기별님, 혼자만 가세요?”
“그건 염려 말아요. 바람 아저씨를 시켜서 너희들을 소영이네 대문 앞에다 데려다줄께. 그리고 편지 넌, 바람이 불면 날아가버릴 테니까 인형을 꼬옥 붙들어야 해.”
“어머나! 전 손이 없는데 어떻게 해요? 힝, 전번에도 바람이 불 때, 사과껍데기가 굴러와서 저를 붙잡아주었어요, 힝.”
“그럼, 어떻게 할까?”
“……?”
“옳지, 됐다. 인형아! 너, 주머니 었지? 그 속에다 편지를 넣어라, 응?”
“옷이 다 떨어졌어요. 주머니도 빵구가 났어요. 편지가 빠져버림 어떻게 해요?”
“ ! 그래. 그럼 또 어떻게 하나? 호호호, 인형아, 넌 말이야, 뿔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네 몸뚱이는 텅 비어 있거든. 내가 편지를 차곡차곡 접어서 부러진 네 다리 구멍 속에다 넣어줄께, 하하. 편지야! 이리 와. 내가 넣어줄께.”
아기별은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 웃으면서 편지를 곱게곱게 접어서 인형의 몸뚱이 속에다 넣어주었읍니다.
“자아, 그럼 난 바빠서 간다. 조금만 기다리면 바람 아저씨가 너희들을 데리러 올 거야. 잘들 가거라.”
아기별은 반짝반짝 등불을 켜들고 어두운 하늘 속으로 훨훨 날아갔읍니다. 공주인형은 손을 흔들면서 소리를 질렀읍니다.
“아기별님! 안녕히 가세요!”
“안녕! 안녕. 아기별님. 안녕히.”
분홍 편지도 인형의 몸뚱이 속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4
날이 밝았읍니다. 금빛 같은 고운 햇님이 떠올랐읍니다. 욍 위잉 바람이 소리
를 지르며 왔읍니다. 길가는 사람들은 외투깃을 세웠읍니다.
“아이 추워. 웬 바람이 이렇게 갑자기 부나? 아이 추워·”
하면서 지나갔옵니다.
“오라, 요것들이구나, 히히.”
바람이 외투를 펄럭이면서 인형의 곁으로 왔읍니다.
“자아, 가자 욍욍.”
인형은 떼굴떼굴 굴러갑니다. 인형은 순식간에 옥희네 집 대문 앞에 쓰러져 있었읍니다.
바로 그때였읍니다.
“바둑아! 바둑아! 이리 나와.”
커다란 영길이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대문이 뼈걱하고 열리며, 영길이와 바둑이가 골목길로 뛰어나왔읍니다. 깜짝 놀란 인형은 눈이 휘둥그래졌읍니다. 인형은 무서워서 벌벌 떨고만 있었읍니다.
“어어, 저게 옥희의 인형이? 누가 갖다놓았을까? 울보 옥희가 알면 어떡하지? 이크! 큰일이다. 저걸 돌맹이로 깨뜨려버려야지.”
영길이는 돌맹이를 주워들고 인형에게 덤벼들었읍니다.
“하나, 둘, 셋.”
영길이는 돌맹이를 던지려다가 인형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바둑이를 부릅니다.
“바둑아! 네가 물어다 내버려.”
바둑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꼬리를 흔들면서 영길이를 빙빙 돌고만 있었읍니다.
“옳지, 이걸 땅속에다 파묻어버려야지. 들키면 야단맞으니까 아무도 없을 때 해야지.”
영길이는 인형을 집었읍니다.
“공주인형 아가씨! 어떡하면 좋아요? 언제 땅속에 파묻히면 영영 나오지 못할 탠데------?”
---글쎄, 큰일났어. 어떻게든지 영길이외 손에서 빠져나야겠는데------
인형과 편지는 가슴을 조이면셔 엉엉 울고 있었읍니다.
“인젠 먼데다 파묻어야지, 앞산에다가 바둑아! 바둑아, 이리 와, 가자 가. 옥
희 인형을 땅속에다 파묻자.”
바로 그때였읍니다. 인형 속애 들어 있던 편저가 땅바닥으로 굴러나왔읍니다.
“어어 ! 요건 또 뭐야? 아아, 편지다 편지. 어디 읽어볼까? 보고 싶은 소영아! 으응! 소영이 누나 거야. 소영이 누나한테 온 편저로구나.”
영길이는 더듬더듬 편지를 읽고 있읍니다.
“영걸아! 뭐 하니? 빨리 아침밥 먹고 학교에 가. 시간 없어.”
소영이 누나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왔읍니다.
“그게 뭐니? 옥희 인형 아냐?”
“옥희야! 옥희야! 네 인형 찾았다. 네 인형. 빨리 나와.”
“영길아, 이리 내놔, 빨리.”
소영이 누나는 영길이가 들고 있는 편지와 인형을 빼앗았읍니다.
“내 인형, 내 인형 줘.”
옥희가 눈을 비비며 뛰어나왔읍니다.
인형은 옥회의 가슴에 안겼읍니다.
옥희는 좋아라고 인형을 꼬옥 껴안고 소영이 누냐는 편지를 손에 들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버렸읍니다.
혼자 남은 영길이는 바보처럼 대문 밖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