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처음 만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소탈한 모습에 빠져들게 된다. 덜렁덜렁하고 호쾌하여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뒤끝이 없는 시인의 성격에서 우리는 우리의 참 이웃을 발견하게 된다. 이창우 시인은 열여섯의 나이에 홀로 상경하여 회사 사환, 입주가정교사 등 고학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직장을 다니면서 방송통신대학교를 거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오랜 마음의 숙원이었던 시인으로 등단하는 등 열심히 하는 자만이 기쁨을 얻는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의지의 한국인이다. 그는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하여 구청 과장에 오르는 모범적인 공무원이기도 하다.
내가 이창우 시인을 만난 것은 약 5년 전 인터넷 사이트에서다. 시인은 지난 2001년 5월 3일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서 ‘이웃과 더불어 산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우리가 가야할 이상향을 지향하는 [저 곳에 가는 길]이란 문학카페를 열었다. 그는 카페활동을 열심히 운영해오면서 시인으로 등단하는 영애와 함께 10여 차례에 걸친 정모를 통하여 회원 상호간에 우애를 돈독히 다져왔으며 「우리들의 삶의 공간」이라는 ‘길방문집’을 발행하는 등 시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해온 것은 물론 문학인구의 저변확대라는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기여와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해 왔다.
시인의 이웃사랑에 대한 희생정신은 “노숙자, 등 굽은 할머니, 좌판대, 봄비 속의 걸인, 경로잔치, 동네 노래자랑, 불우이웃돕기 김장, 동네 노래자랑, 어느 노년의 삶… ”등 시집 내부의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러면 구체적인 작품을 통하여 작가의 이웃사랑 정신을 엿보기로 하자.
찬 기운이 내 몸에 스며들어
영 잠이 오지 않는다.
노숙자 신세에 무슨 걱정이 있겠냐마는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과
멀쩡한 직장에서 쫓겨난 일이
내 몸을 억누른다.
그래, 잠이나 자두자.
언젠가는 내 몸에도
빛 들 날이 있을 거야.
[노숙자] 일부
오랜 공직생활에서 습관화된 작가의 눈은 서민의 애환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러기에 작가는 스스로 노숙자의 감정으로 몰입하여 체험적 모티브로 노래한다. 이 시인의 눈은 참으로 희망적이다. 단순히 노숙자를 보고 불쌍히 여기기보다는 ‘빛 들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통하여 노숙자들로 하여금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를 기도한다. 그러한 이 시인의 가슴에는 이웃사랑의 따스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끊으라는 아내에 성화에도
끊지 못해 피울 수밖에 없는 담배
쫓겨나다시피 4층 계단에 홀로 서서
담배 한 개비에 모든 시름을 내뿜어 본다.
작은 창문 틈으로 보이는
4대의 차량이 주차한 모습
마구 버려진 쓰레기들
간간이 이웃집 아줌마가
이리저리 살피다 아무도 없다 싶으면
시커먼 쓰레기봉투 하나를
내 집 모서리에 슬쩍 버리고 가는 모습에
피우던 담배의 구수한 맛이 다라나 버린다.
남들 눈을 피해 그렇게 사는 것이
아마도 우리들의 참모습인가 보다.
[창문 틈으로 바라보는 세상] 일부
아내의 성화에 쫓겨나 4층 계단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시인의 모습은 바로 우리 서민의 모습이다. 그가 담배를 피우러 몰래 나온 것처럼 시커먼 쓰레기봉투를 몰래 버리고 가는 이웃집 아줌마d의 모습에서 인간의 참모습은 어떤 것일까 반문한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남의 눈을 피하고 싶고 숨기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몸을 가리기 위하여 옷을 입었고 남들이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창문에 커튼을 친다. 몰래 일기를 쓰고 때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음흉한 웃음을 짓는다. 작가는 그러나 그것을 죄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 같으면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이웃집 아줌마를 따라 내려가 야단을 치던지 아니면 위에서 소리라도 지르련만 이 작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오히려 자신을 수양하는 계기로 삼는다.
달랑 배낭 하나 메고
산을 오른다
물 한 병과 김밥 한 줄
그리고 후식으로 먹을 사과 한 개
그 정도면 저 바위산도 오르거늘
어찌 그리 재물을 탐할까
정상에서 내려오는 약수터에서
빈 물병을 채운다
그냥 물병 정도 채우는 것이 인생이거늘
아등바등 산다고…
[불암산을 오르며] 전문
작가는 가끔 머리를 시킬 겸 시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가까운 불암산에 오른다. 그가 산에 오르는 것은 예쁜 야생화를 꺾고 싶어서도, 멋진 사진을 찍고 싶어서도, 좋은 수석 하나를 줍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가 산에 오르는 것은 빈손으로 왔던 인생이기에 단지 빈손으로 내려가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어짜피 인생이 공수래공수거라 한다면 땀 흘리며 고난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르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돌아갈 때 흔적 없이 돌아가는 일 또한 중요하다. 그러기에 그는 마시고 난 빈 물병 하나 채우는 것이 인생이라고 각설한다. 작가의 이러한 달관의 철학은 비단 문학에서 득한 것이 아니라 청년시절 홀로 상경하여 갖은 고초를 겪어내고 이루어낸 지금의 성취감에서 온 것이라 본다.
아…
어느덧
나를 실은 돛단배는
강 하구까지 물결 따라 흘러온 듯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처음 배를 타던 그곳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나를 실은 돛단배] 일부
그가 땀 흘리며 올랐던 산을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빈손으로 내려가려 했던 것처럼 작은 비바람에도 뒤집힐 것 같은 작은 돛단배에 몸을 싣고 인생이란 강물 위에 정처 없이 떠내려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인생의 강물을 거슬러 오를 수 없음을 알면서도 반어적 기법으로 되돌아가길 희망한다. 그것은 단지 꿈만으로 끝나지 않고 詩라는 또 다른 돛단배를 통하여 청년이 되고 소년이 되고 아이가 되는 역류를 통해 자아적 순수로 회귀한다. 여우도 죽을 땐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지 않던가? 하물며 사람이면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향하고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부모님 품을 그리워함은 거스를 수 없는 순리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처음 배를 탔던 그곳, 즉 고향이요 유년이요 어머니의 품으로 詩라는 최고의 영적 운반수단을 타고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핸들을 꽉 붙잡은 손
엉거주춤 걸터앉은 엉덩이
두 눈을 크게 뜬 채
금방 넘어질 듯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
불안하여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자전거가 나를 가지고 놀면서
세상의 섭리를 가르친다.
내가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가 어수룩한 한 인간을 태워
인생 연습을 시키는 것이다.
뒤뚱뒤뚱!
자전거는 몇 바퀴도 돌지 못하고
나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만다.
[자전거 타기] 전문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다. 우리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부모님께서 데려다주셨고 며칠 지나면 노심초사하시며 차조심해라 길조심해라 이르셨다. 궤도에 오른 기차가 안전하고 빠르듯 인생은 처음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위태롭지만 무슨 일이건 처음 시작할 땐 뒤뚱거리며 넘어지게 됨을 작가는 가르친다. 그러면서 작가는 철저한 준비와 반복되는 훈련만이 자전거가 사람을 내동댕이치지 않는 가장 최선의 길이라 여기는 작가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것은 그의 육신이 아니라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다. 보모에 대한 불효,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채찍질하며 자신에 대한 불충을 꾸짖는다.
비 오는 날이면
강가 숲속이나 개울가에 숨어
구슬프게 우는 청개구리 마음이 된다.
(중략)
더더욱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버님을 산에다 모시지 못하고
유골을 강에다 뿌렸기에
비가 오는 날이면 청개구리가 되어
빗속에서 구슬프게 울어야만 한다.
[나도 청개구리처럼 운다] 일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애절한 시다. 철모르던 시절에 작고하신 아버지를 산에다 모시지 못하고 화장하여 강에다 뿌렸다. 물론 그 땐 어려서 자의가 아니었다. 요즘은 매장보다는 화장을 장려하는 시대다. 아무리 화장이 깨끗하고 땅덩이가 좁아 매장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어느 자식이든 부모님을 물기 잘 빠지는 양지쪽에 모시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를 화장해서 유골을 빻아 강가에 뿌렸으니 비오는 날이면 울고 싶은 것은 이해가 간다. 그 눈물은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화한의 눈물이리라.
울퉁불퉁 먼지 나는 좁은 길가
홀로 핀 가느다란 코스모스 위
하늘을 날다 지친 잠자리 한 마리
피로를 풀고 있다.
때마침 술 취한 나그네
흥얼거리며 잠자리를 잡으려다
미끄러져 도랑 속에 나뒹굴자
하늘로 치솟았던 잠자리
나그네 머리 위를 맴돌다가
부화(火)를 돋우는 듯
삽시간에 얼굴을 핥고는
살랑살랑 약올리며 날아간다
[고추잠자리] 전문
감나무에서 땡감이
순간 거름더미 위로 떨어져
데굴데굴 구른다
지나던 강아지
뭔가 싶어 잽싸게
허를 내밀어 냉큼 입에 문다
땡감을 문 강아지는
텁텁하여 삼키지도 못하고
켁켁거리며 되 뱉으려 애를 쓴다
먼발치에서 지켜보단
어미개가 그 모습이 안타까워
하늘을 쳐다보며 멍멍 짖는다.
[땡감] 전문
이창우 시인의 시에는 삶이 있고 해학이 있다. 우리 조상들의 문학에 가장 핵심적인 정신사상 해학이었다. 主從關係와 官尊民卑, 男尊女卑로 대표되는 조선사회에서의 백성들의 생활은 해학적 요소를 가미하지 않고서는 삭막해서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듯 이창우 시인의 시에서 발견하는 해학은 요즘처럼 서로를 헐뜯고 시기하며 누르려는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웃음으로서 삶의 용기를 북돋우어 준다.
“고추잠자리, 땡감” 두 시에서 발견하는 것은 한 편의 동화나 꽁트 같은 즐거움이다. 땡감이 떨어지는 것을 덥썩 물었다 뱉는 강아지의 행동이나 가을 날 술 취한 사람이 잠자리를 잡으려다 도랑 속으로 뒹구는 모습은 누가 읽어도 웃음이 묻어난다. 이러한 시의 해학적 기교는 문학의 참 맛을 아는 사람으로 오랜 습작에서만 써 낼 수 있는 고난이도 기법이다.
이상에서처럼 이창우 시인에 시에 대한 느낌은 말 그대로 서민적이고 향토적이다. 그러나 시에 주로 나타나는 배경은 일부 나이든 사람들이 주로 쓰는 회고적인 기법에서 벗어나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음을 느끼고 시도하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우리가 글을 읽고 쓰는 까닭은 스스로를 비관하고 자살을 생각하며 침체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창우 시인의 시는 하나같이 고단한 삶의 해법을 모색하며 몸소 실천하려 애쓴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수십 년간 공직의 길을 걸어오면서 희생과 봉사라는 공무원 이념을 통해 베풀고 주어야만 기뻐지는 작가의 관습화 된 내면의 아름다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제 늦은 나이에 첫 시집을 상재하는 이창우 시인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을 줄 안다.
이창우 시인
경북 문경출생
점촌초등학교 졸업
문경중학교 졸업
서울 휘문고등학교 졸업
한국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졸업
단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행정학 석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 재학 중
서울시청 소비자보호과 계장(사무관)
서초구청 문화공보담당관 과장
동대문구청 사회복지과장
현재 동대문구 청량리1동 동장으로 재직 중
제22회 정부 모범공무원 표창
월간 시사문단 시부문 등단
문학공원 동인
동대문문인협회 회원
편저 시집「우리들의 삶의 공간」
동인지 「상처 많은 풀이 향기롭다」
첫댓글 에고!저 이창우 홀라당 벗겼네요 ㅎㅎㅎ 어쩐다요? 부끄러워서... 감사합니다 김순진 시인님 수고 하셨습니다 시집 잘 만들어 주세요
상세히 올려주셨네유 고생하셨구요 언제나 열심히 사시는 벽계수님 화~~~이~~~팅
숨은그림 속에서 빛을 밝혀주시는 개똥참외님 고생하셨구요...벽계수님 언제나 건강하시고 건필하십시요...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