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투기가 중국 땅에서 추락한 사건은 여러 측면에서 의문을 갖게 한다. 지금까지 중국 관영 언론이 공식적으로 보도한 건 북한 것일 가능성이 있는 소형 비행기가 중국 랴오닝(遼寧) 푸순(撫順) 인근에서 추락, 조종사가 숨졌으며 북한 측과 접촉하고 있다는 게 전부다.
이처럼 정확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음으로써 왜 북한 전투기가 월경, 중국에 들어왔으며 왜 공항을 지척에 두고 추락했는지 등 많은 사항이 궁금증을 낳고 있다.
◆북한 미그-21기로 추정=당초 중국 관영 언론은 어느 나라 비행기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사건이 알려진 직후부터 사고 비행기가 북한 국적임은 사실상 확인됐었다. 현장 사진에서 북한 공군의 마크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사고 비행기가 헬기인지, 미그-15기인지, 미그-21기인지를 놓고 혼선이 있었지만 결국 미그-21기로 사실상 결론이 났다. 미그-15기는 동체가 짧고 단순한 원통형이지만, 사고기는 동체 상단에 반원통형의 몸체가 덧대어져 있어 미그-21기로 판독됐던 것이다.
◆탈북 기도 가능성 높아=그렇다면 왜 북한의 전투기가 중국 땅에서 추락했을까. 전문가들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에 가까운 단둥(丹東) 인근이 아닌 선양(瀋陽) 부근 푸순까지 가 추락했다는 사실에서 해명의 단서를 찾고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이번 북한 전투기는 의도적으로 중국 영공으로 진입한 것 같다. 북한 공군은 철저한 계획에 따라 비행훈련을 하며 미그-21기를 몰 정도의 베테랑 조종사가 실수로 월경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 실수로 대오를 이탈했더라도 거리상 충분히 선회 비행을 통해 복귀가 가능했다.
미그-21기는 최대속도 마하 2.05의 초음속 전투기다. 이 같은 성능의 미그-21기가 평안북도 방현비행장 상공에서 직선거리로 약 240㎞ 떨어진 추락 사고 현장까지 도달하는 데는 약 6분이 소요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중국 영공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탈북 시나리오가 맞는다면 추락 전투기의 조종사는 착륙이 가능한 선양 타오셴(桃仙)국제공항으로부터 27㎞ 떨어진 지점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한편 일부 홍콩 언론과 인터넷 등에서는 숨진 조종사 외에 다른 한명이 낙하산으로 탈출했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필사적 비상착륙”=사건 전개 과정에서 북한과 중국 공군 측이 왜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는지의 배경도 관심을 끈다. 한 소식통은 “전투기 이탈 사고가 발생하면 육상 레이더와 공중에서 몇 단계의 대응이 이뤄지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통상 지상 레이더 관제소 측에서 이탈 전투기를 향해 무선교신으로 경고신호가 전달되며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경고사격에 이어 대공포사격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 조종사가 의도적으로 교신을 거부하면 3∼5분 만에 지상에서 요격용 비행기가 출동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북한 공군의 요격용 비행기의 이륙이 지체돼 문제의 전투기는 무사히 압록강을 넘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중국 영공에서도 북한과 비슷한 대응이 이뤄지게 돼 있다. 그러나 한 군사 소식통은 “추락 현장 사진을 판독해보면 동체가 비교적 온전해 격추됐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상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조종사는 비상탈출을 시도하지만 이번 사건의 조종사는 필사적으로 착륙을 시도한 흔적이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어떻게든 비행기를 버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고기 조종사는 요격된 게 아니라 연료가 떨어져 비상 착륙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사고기 조종사가 러시아로 가려던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인은 중국으로 탈출하다 붙잡히면 자동적으로 북송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으로의 탈출을 우려한 북한 군부에서 북한 비행기에는 충분한 연료를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러시아 탈출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공군부대 간부 출신 탈북자인 최모씨는 “북한군 전투기 훈련 때는 연료난 때문에 연료 탱크의 3분의 2가량만 채워 30여 분간 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관행”이라고 전했다.
◆은밀히 처리될 듯=이번 사건의 처리는 북한과 중국 군 당국의 교섭을 통해 은밀하게 이뤄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공군 조종사가 탈북을 시도했을 경우 북한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며 “이런 정황을 고려해 중국 군부가 이번 사건의 경위를 더이상 공개하지 않고 덮으려 할 경우 자칫하면 이번 사건의 전모가 미궁에 빠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