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 서형오
들국화를 볼 때 외
신발을 발에 꿰고 있는데
아버지가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접어 주며
이발소 주인에게
갖다 주라고 했다
등교할 때는
이발소 문이 잠겨 있었고
체육 시간에는
우리 동네 옆 동네
편을 갈라 축구를 했고
하교할 때는
이발소 문은 열려 있었지만
바지에 구멍이 나 있었다
밥때가 다 되어
어깨에 괭이를 메고
마당으로 들어선 아버지가
외상값을 전했냐고 물었다
나는 부엌 쪽을 흘깃 보고는
전해 줬다고 해버렸다
내가 나쁜 말을 한 것은
따지고 보면
축구 탓도 아니고
엄마 탓도 아니고
그게 다
나이롱 바지에 난
구멍 탓이다
여겼다
하룬가 이틀 뒤에
이발소 주인이
다른 볼일로 우리 동네에 왔다가
아버지에게 안부 인사를 하려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내가 아버지 심부름에 난 구멍을
어설피 때운 것이
다 들통나 버렸다
그때
누른 장판이 깔린 방에 엎드려
일기 쓰기 숙제를 하다가
문틈으로 동정을 엿보던
내 마음 안에서는
열기가 후끈 피어올랐고
장독대 앞 화단에는
들국화가 피어나
노란 향내를 풍기고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바라보는
저 꽃
해마다 500원짜리 이발비로 피어나는
저 노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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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날
졸업식 날입니다
날씨가 유난히 맵습니다
세수를 하려고
솥에서 데운 물을 떠
수돗가로 가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마당에 볏짚을 깔고 앉아
잠잠히 굴을 까고 있습니다
한 발채는 되겠다 싶게
껍데기가 소복합니다
어머니가 문득 고개를 들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오늘 아가 졸업장 타는디
갈 끼모 얼릉 채비하이소
내 말이 아버지의 대답을 앞지릅니다
바쁘신데 오지 마세요
졸업식을 마치고 오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짠물이 밴 목장갑을 낀 채
마당을 나설 때 모습 그대로
잠잠히 굴을 까고 있습니다
학교 신문 기자로서
맡은 바 역할을 잘했다고
공로상을 받았다는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조새가 굴을 쪼는 소리도
개가 꼬리를 흔드는 모양도
다 섭섭합니다
졸업장을 받는 일과 굴을 까는 일이
한날 함께 일어나서
마음이 퍽도 소란한
졸업식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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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오|경남 하동 출생. 2016년 《문예 연구》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낙하산을 펴다』(공저). 청소년 시집 『급식 시간』, 『신발 멀리 차기』가 있다. 부산데레사여고 국어 교사로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