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지척이었을까
구멍을 찾아 분주히 떠돌아다니는 단어들과
이제 더는 찾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게으른 햇살 사이가
방금 눈알이 까뒤집혀 실려온 여자를 우르르 햇살같이 흰 가운의 간호사들이 둘러싼다 심폐소생실에서는 축 늘어진 지느러미를 탁탁 때리는 소리. 가리개 사이로 보이는 늙은 여자의 자궁, 한때 번성했을 알집을 아랑곳 않고 똥을 닦아내는 딸. 인턴들은 그 사이에도 졸고 있다 저 풀기 없는 부시시한 흰 잠처럼 유예된 삶이 핀셋 하나로 남김없이 풀어헤쳐지고 주사바늘들이 위풍당당하게 벽마다 가 꽂힌다. 위 세척실 고지랑물에서 일순 풍겨나오는 지독한 해금내
피하여 밖으로 나오니 건너 낮은 건물에서는 정지된 화면 자꾸 뒤로 밀려가는 소리들이 웅웅거린다 더러 몇이는 터를 잡고 화툿장을 돌리고 더러 몇이는 삼삼오오 저들끼리 귀엣말로 음한히 서성거리는데 그 사이를 탁탁 튀는 모닥불 …한때 저 뒷골목에도 나락두지나 곡갑(穀匣)에 차곡차곡 쟁여두던 욕망, 화려한 시절 있었지 그 중 서너알은 쓸만한 밭에다 뿌리기도 했지만 결국 돼지비계와 새우젓과 김치의 잘 배합된 생애처럼 플러쉬가 확 터지고 새벽으로 가는 조리개가 지금 서서히 닫히고 있다
옆으로 뽀작 난 한길, 낙엽 자욱히 깔린 보도 위를
한 남자와 여자가 팔짱을 끼고 지나간다
한 쪽 팔은 허리를 다른 팔은 상대편 팔을 어깨 넘어로 잡고 걸어가는데
마치 한 몸같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링게르와 커진 귀와 붉은 시트
국화 다발과 젖은 눈과 풀 선 베옷
여자와 남자 사이가 이렇게 다정하다니
나는 두 건물 사이 공터에 버려진 무수한 꽁초 위에
담뱃불 짓이겨 끄고
하늘 멍하니 쳐다보다가
열뜬 꽃잎 한 장 밀어 넣어 시동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