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푸틴이 사라지면… 핵탄두 5889개 어디로
반란 이후, 핵 통제권 뜨거운 논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각) 남부 캅카스 지역의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을 방문해 세르게이 멜리코프 공화국 정부 수장과 면담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푸틴 없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달 24일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이 하루 만에 진압됐지만, 이를 계기로 ‘포스트 푸틴’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장기 독재 체제를 구축한 블라디미르 푸틴(71) 대통령은 반란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공식적인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푸틴이 어떤 계기로든 실각할 경우 권력 분쟁이 일어나면서 러시아가 혼돈으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러시아 내 세력이 대립하며 실제 정변이 일어날 경우, 러시아에 있는 핵무기에 대한 통제가 풀리며 글로벌 위험으로 확산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프리고진이 반란에 성공해 (러시아 대통령실인) 크렘린궁에 있고 핵무기 지휘권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라며 러시아 내 혼란 발생 시 핵 통제권 상실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푸틴이 축출되면 우리는 더 고약한 사람과 상대해야 할 수 있다”면서 “만약 푸틴이 계속 집권하면 러시아 국민은 (자유를) 잃는다. 하지만 푸틴이 패배하고 이후 혼란이 휘몰아치면 전 세계가 (안정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타임지는 “단 하나의 러시아 핵탄두라도 테러 집단, 불량 국가 등 위험한 존재 손에 들어간다면 이는 미국 대통령에겐 악몽”이라고 했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향후 바그너그룹과 유사한 ‘용병’이 쿠데타에 성공할 경우 핵무기의 안정성 문제는 물론 핵 물질과 핵 기술의 제3국 이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러시아의 핵 통제력 상실은 (한반도와 일본 등) 주변국의 핵 보유 필요성을 자극하는 등 글로벌 안정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과학자연맹(FAS)에 따르면, 러시아는 현재 핵탄두 총재고가 5889개로 미국(5244개)보다 645개 많다. 러시아 핵탄두 중 1674개는 실전 배치돼 있다.
이들 핵은 푸틴이라는 ‘단일 권력’에 의해 아슬아슬하게 통제되는 중이다. 그런데 ‘푸틴의 러시아’엔 2인자가 없기 때문에 푸틴이 갑자기 권력을 잃을 경우, 집권을 노리는 세력이 저마다 핵무기를 손에 넣으려 하면서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헌법상 연임 제한 규정으로 2008~2012년 푸틴 대신 ‘허수아비’ 대통령직을 맡았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후계자로 점쳐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부정 축재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총리직에서 한직인 안보회의 부의장으로 2020년 물러났다. 푸틴의 잠재적 후계자로는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회의 서기,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실로비키(정보 당국이나 군 출신 푸틴 측근들)가 거론된다.
하지만 이들 또한 푸틴의 대안이 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제성훈 한국외대 노어과 교수는 “현재로서는 고만고만한 2인자들을 유일하게 조정하는 사람이 푸틴”이라며 “푸틴이 무너지면 모든 엘리트가 무너진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독재에 질린 러시아 국민들이 민주화 혁명을 일으킬 경우, 수감 중인 푸틴의 정적(政敵) 알렉세이 나발니 전 러시아진보당 대표가 차기 지도자로 거론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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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만약 실각할 경우 기계적으로는 러시아 헌법에 따라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는다. 그는 실로비키가 아닌, 국세청장을 지낸 경제 관료 출신이다. 무기를 다루고 전투를 아는 실로비키를 통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두진호 위원은 “이번 반란으로 푸틴 체제의 ‘내구성’이 약화됐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그간 억눌렸던 소수 민족의 분리주의 혹은 극단주의로 분출될 수 있다”며 “러시아 전체가 민족 단위의 개별 국가로 연쇄 붕괴하는 최악의 경우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치러야 할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푸틴이 이 같은 ‘대혼란 시나리오’를 오히려 장기 집권의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舊)소련 붕괴 당시 극도의 혼돈을 경험했던 러시아 국민들이 ‘독재 없는 혼란’보다는 ‘혼란 없는 독재’를 선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태림 국립외교원 교수는 “러시아 국민 사이엔 (이번 반란 사태를) 큰 갈등 없이 수습해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그래픽=송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