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삐삐는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에 구입한 시티폰을 들고 곧장 전화 부스 근처에서 전화하려 했는데 삐삐는 오지 않았습니다. 말괄량이 삐삐가 해적선을 타고 “자~떠나자!” 외치면 그녀의 충성스런 부하인 토미와 아니카는 배에 올라 노 젓는 시늉을 했지요. 삐삐가 울리면 저도 곧장 사범님의 배에 오르려했지요. 저는 스승이 불에 섶이라도 지고 뛰어들라면 일단 뛰어들고 볼 정도로 고지식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의 오류 메시지인 비프음 같은 삐삐는 울리지 않았습니다. 1년여의 시간이 속절없이 지났지요. 한국기원에 연락해 사범님의 연락처를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굳이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나이 많고 재능 없고 금전적 여유까지 없는 제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둑으로 취직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산역의 주간바둑361, 후암동의 바둑뉴스사 등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한국기원 고급반에도 들어 故 강철민 사범님의 강의도 들었지요. 청계천의 헌책방에 가서 바둑책만 골라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98년, IMF한파가 불던 시절 저는 개인적으로 행복했습니다. 퀵서비스를 하며 압구정초등학교에서 바둑강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후죽순 생기던 PC방에서 바둑을 둘 수 있었거든요. 네오스톤과 넷바둑이 인기 있는 바둑사이트였는데 저는 넷바둑이 취향에 맞았습니다. 비록 자주 끊어져 재접속하는 일이 빈번했지만 UI(유저 인터페이스)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지요. 특히 여러 기우들과 색색별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쪽지기능이 가장 좋았습니다. 온라인 대국의 초창기라 여러 부작용도 많았지만 온라인에서의 대화를 통해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나 바둑을 두는 일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천기문이라는 젊은 기우회도 만들어 여러 고수들과도 교우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한양대 앞에서 번개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넷바둑 관계자와 함께하는 모임이었지요. 그곳에서 現 엠게임 회장님인 손승철 사장님을 만났지요. 제 아이디는 천기소군주였고 만화캐릭터 같던 손승철 사장님의 아이디는 아더왕이었습니다. 그는 엑스칼리버를 찾아 떠나는 아더왕과 기사들의 모험을 보고 그러한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저는 넷바둑의 지도사범이 되었습니다. 지도사범3이란 아이디였고 한양대 대학원에 다니던 천기신군이란 아이디를 사용하던 형에게 물려받았지요. 넷바둑 지도사범은 적지만 어느 정도의 지도대국료도 받을 수 있었고 일부 아이디에는 채금(채팅금지)기능까지 사용할 수 있었지요.(계속)
첫댓글 ...
^^
다음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