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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 보이는 미국 박사, 돈 있어야 가능 대학 입학 이후 100만달러 이상 순자금 필요 |
한인의 교육열이 남달라 박사학위를 지닌 한인1.5세와 2세가 많아 미국 박사가 흔해 보이지만, 여러 장학금 제도에도 불구하고 교육 재정 구조상 부모세대의 큰 희생이 수반된 결과다.
남미 파라과이 농업이민을 거쳐 지난 1987년 미국에 이민온 한인 김모씨는 고등학교 중퇴 학력 때문에 두 아이 만큼은 반드시 미국 박사를 만들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으며 그 꿈을 이뤘다. 그는 미국에 이민온지 30여년만에 처음으로 사는 곳 버지니아를 떠나 뉴욕주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을 했을 정도로 고생을 하며 돈을 모아 자녀 교육에 헌신했다. 그는 “대학부터 따지면 아들 한 명당 지금 돈으로 100만달러는 들어갔을 것”이라고 밝혔다.
터무니 없어 보일 정도로 많은 금액이지만, 현재 가치로 따져보더라도 얼추 맞아 들어가는 비용이다. 사립대학의 연간 평균 학비, 수수료, 기숙사비는 4만3440달러이며, 상위 10% 사립대학은 7만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교통비와 생활비 등을 합칠 경우 연간 10만달러를 잡아야 한다. 사립대학 석사과정의 연간 평균 학비, 수수료, 기숙사비는 4만110달러, 박사과정은 5만4560달러이다. 석사와 박사과정을 일반대학원의 경우 각각 과정만 2년씩 모두 4년이며, 석사 과정부터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평균 8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100만달러는 우습게 들어간다.
조교와 시간강사 생활을 병행할 경우 논문 완성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학사 학위자와 박사 학위자의 평균 연봉 차이는 평균적으로 53%에 이른다.
한국 대학의 박사학위와 미국 대학 박사학위 차이는 소요비용 뿐만 아니라 과정에 들어섰다고 해도 박사 학위를 받을 비율 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에서는 박사과정 대비 학위자 비율을 산출할 의미가 없을 정도로, 100% 가까운 비율을 보이지만 미국은 인문계의 경우 64%, 자연계의 경우 70% 정도에 불과하다. 같은 미국박사학위라고 하더라도 한국의 유학생과 미국에서 나고자란 한인학생의 학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외국 유학생에 대한 특혜, 즉 쉽게 박사학위를 준다는 조건을 내거는 미국 대학은 없지만, 미국내 학생에 비해 쉽게 학위를 따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교수들은 영어에 서툰 유학생에게 본토 출신 학생에 비해 훨씬 너그러운 학위 조건을 내걸기 때문에, 영어 못하는 미국 박사 출신의 한국 대학 교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 나고자란 한인학생의 경우 이러한 보이지 않는 특혜도 받을 수 없어 일종의 역차별을 받는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미국대학의 박사학위는 돈뿐만 아니라 개인의 학업적 능력과 성취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기 때문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학학비 증가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로 가다간 미국의 상위 30% 계층만이 자녀를 주립대학에 보낼 재정적 여유를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한인 등 이민자 가정의 박사 양성에도 상당한 제약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칼리지 보드의 최근 보고서 ‘대학 학비 동향(Trends in College Pricing) 2016’에 의하면 최근 1년새 전국 대학 학비, 수수료, 기숙사비 증가율은 3.2%로 물가상승률 1.2%, 수입증가율 1.4%, 대학재정지원 증감율 -0.9% 등을 훨씬 앞섰다. 현재 4년제 주립대학의 평균 학비, 수수료, 기숙사비는 연간 2만90달러로, 전년도에 비해 2.7% 상승했다. 비영리 사립대학은 4만5370달러로 3.4% 상승률을 기록했다.
주립대학의 전체학비 대비 장학금(연방정부 무상장학금, 대학 무상장학금 등) 비율은 29%로, 2만90달러의 71%인 1만4263달러를 각 가정에서 부담해야 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미국가정 저축성향을 따져보면, 현실적으로 연간 1만4000여달러를 자녀 학비를 위해 별도로 저축할 수 있는 가정은 미국 전체 가구의 1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융자를 얻어서 대학 학비를 조달해야 하는 것이다.
물가수준을 감안해 지난 2016~17학년도 주립대학 학비, 수수료, 기숙사비는 1986~87년보다 3.1배나 높았다. 이는 액면학비 증가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학비 증가율을 말하는 것이다. 30년 전과 동일한 경제수준을 지닌 가정에서 30년 전보다 3.1배나 높은 학비를 부담하게 된다는 얘기다.
미국가정의 소득 대비 학비 부담 능력, 대학 무상 장학금 등을 감안할 경우 30년전에는 하위 30% 가정도 자녀의 주립대학 인스테이트 학비를 넉넉하게 감당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상위 50% 이내에 들지 않는다면 주립대학 조차도 뒷바라지하기 힘들다는 얘기이다. 현재 수준의 학비 증가율이 10년간 계속된다면 그 기준이 상위 30%로 올라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립대학의 경우 현재 상위 20%에서 상위 10%로 좁혀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신경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맘놓고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충분히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김옥채/객원기자
[워싱턴 중앙일보] 2017/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