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주님, 저도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나는 눈이 좋지 않습니다. 어려서는 눈이 좋아서 눈이 나쁜 사람들이 안경을 쓰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나도 안경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 30이 되어서 갑자기 눈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1자가 11로 보이고, 사람의 윤곽이 확실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책을 조금만 보아도 눈물이 나고, 모든 것이 흐려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과를 처음으로 찾아갔다가 내가 지독한 난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안경을 쓰지 않으면 시력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안경을 쓰고 나서야 물체를 똑똑히 볼 수 있었지만 콧등과 귀가 안경걸이 때문에 무척 아팠습니다. 그렇게 아픈 적응기간을 4-5년이나 보냈습니다. 아내도 근시였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눈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안경의 도수를 계속 높여서 쓰면서 많이 불편해도 그럭저럭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셋이 모두 안경을 쓰고 있어서 부모가 그런 인자를 물려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경을 쓰고 글자를 보거나 사물을 보는 것은 많이 좋아졌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잘 보지 못하는 소경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눈을 멀쩡히 뜨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세상을 볼 줄 모르고 현명한 사람들을 찾지 못하고, 내 삶 속에 찌들어 있는 죄의 찌꺼기와 이기심과 헛된 욕망과 병들어 있는 잘못 된 관행을 살필 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내 편견과 아집과 교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1. 하느님께서 주시는 징표나 계시를 아직도 보지 못합니다. 이미 신자가 된지 50년이 넘었고, 교리교사도 하고, 교회 내에서 많은 운동도 참여하고, 사람들에게 강의도 하고, 묵상도 하지만 아직도 이 시대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징표를 볼 줄 모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성경을 보아도 건성으로 보아서 계시를 알지 못합니다. 경제적 상황에만 신경이 곤두서고, 하느님의 말씀은 전혀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게 주신 그 계시와 징표를 전혀 못 보고 있습니다.
2. 세상 속에서 사랑과 진실과 아름다움을 보지 못합니다. 뉴스만 보면 짜증이 납니다. 나를 치료하던 의사는 나보고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을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매일 부정적인 뉴스에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뉴스와 세상의 겉 표면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들 때문에 감추어져 있는 진선미(眞善美)를 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진리와 사랑과 아름다움을 못보고 그냥 다른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으로 전부 보고 아는 것처럼 때우고 있습니다.
3.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지 못합니다.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삶을 보면서 나를 그곳에 비교합니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편하고 쉬운 방법을 찾아서 이제는 조금만 어렵고 더럽고 위험해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고, 신상품을 소개하는 홈쇼핑에서처럼 더 편하고 내 일신상의 안락함만을 찾고 있습니다.
4. 세상을 슬기롭게 사는 방법을 찾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지혜는 은총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지식이 많고, 능력이 뛰어난다고 하여도 지혜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슬기로워지지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고, 내 고집으로 내 지식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 교만으로 모든 것을 다 뒤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이룬 지혜는 가치가 있습니다. 쉽게 만든 내 규칙은 지혜와 전혀 다른 길을 인도합니다.
5. 내 앞날을 전혀 보지 못합니다. 지나온 나의 삶을 살펴 반성하면 나의 앞날을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삶을 잘 살펴보지도 못하였고, 반성과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소경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 ‘온고이지신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라는 말에서 온 말인데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입니다. 지난날의 내 삶을 통해서 내 삶의 새로운 모습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내 모습에 취(醉)해서 과거를 살피지도 못하고 내 앞 날도 전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이제 나도 주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게 해 달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그동안 교만했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자비에 의해서 모든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소경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