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이 열리는 구포장이 인근이며, 구포역과 구포대교, 김해공항이 위치하고
김해는 물론 양산, 창원, 마산, 울산 등 위성도시의 교통 관문이기도 하다.
봄철에는 남편에게 주기 위하여 사위한테도 주지 않는다는 정구지(부추)는 물론
햇산나물과 여름철에는 오이, 호박, 가지 등이 시선을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장마와 태풍이 지나간 후 하늘이 더 한층 높아지고 찬바람이 불면 내가 기다리는
석이, 능이, 싸리버섯이 이곳 구포장에 나올 것이다.
석이, 능이, 싸리버섯은 맛과 향이 특별하여 어느 요리에 어울릴 뿐만 아니라
특히 술안주 요리로 육고기와 먹는 맛이 일품이라 버섯이 나는 계절이면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장을 즐겨 찾는다.
부산정보대학이라면 택시 기사들도 대부분 알지만 시랑골이라 하면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이곳 시랑골(侍郞谷)은 30여년전만 하여도 개발이 되지않은 아주 깊은 산골로서
그 당시 인가라고는 10여가구에 불과하였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벽지였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전 낙동강을 경계로 신라와 가야가 대치하다가 드디어
신라가 가야를 멸망시기키게 된다.
가야가 멸망하자 시랑벼슬을 하던 사람들이 대리천이 흘러내리는 이곳에 피신해
들어와 살게 되었고, 멀리 김해평해가 보이는 이곳 언덕에 정자를 짓고 해마다
나라가 망했던 날에는 사람들이 모여 가야를 그리워하며 재를 올렸다고 한다.
시랑(侍郞)은 지금벼슬로는 차관급으로서 장관인 상서아래의 직급이라 할 수있다.
이곳 암벽에 새겨진 모분재(募盆齋)라는 글은 가락의 중심 근거지인 김해 분산
(盆山)을 잊지 못해 재(齋)를 올린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벼슬하던 이들이 모여서 나라 잃은 슬픔을 나누던 정자를 세우게 되었고
이들을 보낸다고 하여 송우정(送友亭)이라는 정자 이름이 유래한다.
옛 시랑골 계곡은 지금은 부산정보대학교및 성도고등학교와 포천초등학교, 유치원
등이 들어서고 아파트와 다세대주택단지로 변해 버렸다.
그리 오래지 않아 '송우정'이라는 갈비탕과 설렁탕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나를 아는 이들은 이곳 역사적인 유래를 모른채 '송우정'이라는 상호만으로 나와
연관이 있는것으로 알고있다.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살고있는 곳의 지명과 유래에 대하여
설명을 하곤 한다.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곳의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려는 마음
에서이다.
마찬가지로 어릴적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에 대한 유래를 말하고는 하나 특별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을 절감하곤 한다.
"그대가 수천 리 밖에 나가 여행중일 때 집에 없는 것은 그대의 몸이고,
집에 남아있는 것은 마음이다.
사람의 몸은 형체가 있어 지금 있는 곳이 바로 머무는 곳이다.
수시로 그 위치가 바뀔 수 있으나 진실과 사랑은 사람의 마음이 항상 버무는
귀숙처(歸宿處)인 것이다."
고려말의 성리학자인 삼은(三隱) 이색의 '목은집' 집에 있는 말이다.
옛 가야의 시랑들이 그렇게 그리워하였던 고향인 김해평애가 바라다 보이는
이곳 시랑골에서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하며 생각한다.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여 살아가고 있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내가
태어나서 자란 '포천'라는 고향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포천초등학교'와 '송우정'이라는 낯설지 않은 지명에 대하여...
첫댓글 음....희우야 네가 고대하던 이송우 학자님 오셨다...
오랜만에 오셔셔 좋은글 올리셧군요 자주자주 올려주시구 반갑네유,,,,,
드디어 나타나셨네 자주 놀러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