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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이 있다는 것은
행복의 조건인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몸에 밴 추억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그것은 마을 청소입니다.
학교에서 숙제로 마을 청소를 시켰지만
근면하고 성실하였던 어린 시절은 청소 대장이었습니다.
게으름을 피우는 동네 친구들도 많았지만
매일 습관적으로 마을청소를 하였습니다.
집 마당과 바깥 마당을 쓸고
동네 미을길을 다니면서 청소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지금도 생활 환경을 깨끗이 하는 습관은
어린 시절 몸에 밴 학습의 효과였습니다.
바른 생활은
정리 정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고등학교 때는
교회당 청소를 참으로 많이 하였습니다.
요즘은 교회마다 관리인이 있고 청소하는 사람을 용역으로 사용하지만
그 때 그 시절은 열심있는 중고등부 학생들이 교회당 청소를 다하였습니다.
토요일 학생회 성경공부와 기도회로 모인 후에
교회당과 강단을 항상 청소하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청소하는 일은
힘들지 않게 하였습니다.
어느 날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학교 행사로 선생님들의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수업이 없는 날이었지만 혼자 학교에 와서 자습을 하고 저녁 때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갔습니다.
운동장에는 씨름부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무심코 발밑을 보았습니다.
아!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1미터 방경 안에 수 십개의 담배 꽁초가
운동장 전체에 걸쳐 골고루 떨어져 있었습니다.
몇 발자국 걷다가 멈추어 서서는 가방을 계단에 내려 놓고
쓰레기장에 가서 비닐 봉지를 구해서 수 천개의 담배 꽁초를 모두 손으로 주워서 버렸습니다.
인근에 있는 쓰레기장으로 비닐 봉지에 담배 꽁초가 가득 찰 떄마다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선생들이 체육대회 하면서 피우고 버린 담배 꽃초 모두 치웠습니다.
고등학교가 기독교 재단이었는데
그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청소에 대한 기억은
학교 운동장과 교회 뿐만 아니라 버스 안도 있습니다.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볼 때도 많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빈자리에 앉을려고 하는데
술취한 사람이 토한 흔적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버스 뒷자리 의자 밑에 있는 밀대를 찾아서
깨끗이 청소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다음 코스에서 버스를 탄 사람들은
깨끗이 청소된 그 자리에 곧 바로 앉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 보면서
마음이 흐뭇하였습니다.
대중이 이용하는 버스 안에 누군가 토해서 불결하면......
밀대를 찾아서 청소를 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면을 하고
깨끗한 빈자리를 찾습니다.
또 어느 날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아침 운동을 하러 갔는데
철봉대 아래 모래 사장에 수 천 조각의 색종이가 어지럽게 늘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멈추고.......
색종이 조각 하나하나를 모래를 뒤져가며 모두 찾아 깨끗이 청소를 하였습니다.
청소하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이 훌쩍 넘었습니다.
아마도 어린 아이들이 철봉대 아래 모래에서
색종이를 가위로 자르는 놀이를 하였던 같았습니다.
몸에 밴 청소의 습관은
요즘도 집 안 청소며, 빨래며 설겆이를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샤워를 하고 욕실을 쓰고 나면.....
곧 바로 마른 수건으로 벽과 바닥에 물기가 하나도 없도록 깨끗이 닦습니다.
우리 집 욕실에는
곰팡이 때가 하나도 없습니다.
싱크대에 설겆이도 음식을 먹고 나면
물에 담가 놓지 않고 곧 바로 설겆이를 합니다.
그리고 그릇을 마른 행주로 깨끗이 닦에서 물기를 없애고
싱크대 안에도 물기가 하나도 없도록 마른 행주로 깨끗이 닦습니다.
싱크대에 곰팡이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청결하지 않는 음식 문화는
외식 뿐만 아니라 집밥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싱크대 배수구를 매일 청소해 주지 않으면
하수구 냄새가 납니다.
물기가 있는 곳에 항상 곰팡이가 생기고
세균이 득실거립니다.
청결한 생활 환경은
건강한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환경과 몸의 청결뿐만 아니라
청결한 양심과 마음을 믿음으로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성경의 정결의식은
선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성품을 대변합니다.
사람의 정결은 하나님의 뜻으로
구약 시대는 속죄의 피로 정결하엿습니다.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 그 부정함으로 말미암아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물을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번제와 소제를 제단에 드려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정결하리라고 하였습니다.(레14:20)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고 하였습니다.(시19:8-10)
정직한 여호와의 교훈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순결한 여호와의 계명은 계명은 마음의 눈을 밝게 하며
정결한 여호와의 도는 진실하고 의로운 마음을 갖게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라면서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속죄의 맑은 물은 하나님의 백성을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고 하였습니다.겔36:25-27)
히브리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를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히1:1-3)
또한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히9:13-15)
말라기서는 언약의 사자를 예언하며
그가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처럼 개끗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말3:1-3)
베드로는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고 하였습니다.(벧후2:13-14)
청결한 생활 환경은
삶의 자리도 정결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으로 정결한 교훈을 계시의 그 말씀으로 선포하였던 참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였습니다.
삶의 가치관과 비전은 성공신화가 아니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아브라함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입니다.
다윗의 위대한 신앙은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공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는 고백이요, 삶의 체험입니다.(삼하22:24-25)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고 노래하며 찬양하였습니다.(삼하22:26-29)
다윗에게 완전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었고
또한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을 받는 산 체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시18:30)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시19:7)
이렇게 완전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다윗은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시26:1-2)
또한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는 말씀의 진리 가운데 굳건하였습니다.(시37:37 )
죄의 악으로 가득한 삶의 자리는 악인의 길이며
의인의 길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거룩이 임하는 성전의 삶은
속죄의 맑은 물로 구속을 영원히 완성하여 정결하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바로 그 믿음의 자리입니다.
청결의 미학은 몸에 밴 청소로 위생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지만
우리 삶의 자리는 기부 천사라도 그 선행으로 청결한 양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정결하고 청결하고 순결하고 거룩하며 완전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생활 환경이 깨끗합니까?
삶의 자리가 청결합니까?
삶의 가치관으로 완전한 것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 앞에 완전한 자만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온전할 것입니다.
노아와 아브라함,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언약과 통치로 완전한 다윗에게 요구 되었던 것은 "너는 네 하나님 앞에 완전하라"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요, 자주의 자식인 우리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완전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종교적 탐심과 탐욕의 삶으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종교적 타락은
온갖 탐욕과 더러움과 부정으로 가득한 죄악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종교적 타락을 개의 탐욕으로 비유하였으며
몰지각한 목자로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 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사56:10-12)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고 눈물로 탄식하였습니다.(렘5:30-31)
미가 선지자는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미3:9-12)
사도 바울은 사도적 사명을 수행하는 가운데
아첨의 말과 탐심의 탈로 타락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였으며 경계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살전2:4-5)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종교적 탐심을 책망하며
지옥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23:2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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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마23:33 )
바리새인의 철저한 십일조 생활은
율법적 외식으로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는 예수님의 판단을 받았습니다.
율법의 정신보다 돈을 더 사랑하였던 바리새인의 표리부동한 십일조 생활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탐욕적인 종교적 타락의 전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유월절과 초막절을 지켰던 당시 율법 준수의 의무를 가진 바리새인과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신약의 초대 교회는 율법적 십일조를 복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연보로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십일조 정신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적인 온전한 십일조 준수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복음의 길은 전혀 없습니다.
율법적인 십일조로 성령의 전인 구속받은 하나님의 성도를 농단하는 것은
맘몬 신을 섬기는 사이비 종교 집단의 만행일 것입니다.
눈물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예수님은
언약의 사자로 제사장과 레위인이 깨뜨린 평화의 언약을 영원히 완전하게 하였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한 모든 것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슥13:1-2)
그러므로 죄와 더러움을 씻는 열린 샘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뜻으로 영원히 정결하고 청결하며 거룩하고 완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