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季文子三思而後行 子聞之 曰 再斯可矣 계문자는 세 번 생각해 본 후에 일을 행하니,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두 번만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 季文子, 魯大夫, 名行父. 每事必三思而後行, 若使晉而求遭喪之禮以行, 亦其一事也. 계문자는 노나라 대부이고, 이름은 행보다. 매사에 반드시 세 번 생각한 후에 행하였는데,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경우에도 상을 당했을 때의 예를 구하여 알아본 후에 떠났으니 이 역시 그 하나의 일이다.
左傳文公六年 季文子將聘于晉使 求遭喪之禮以行 杜註 聞晉侯病故 旣而晉襄公果卒 좌전 노문공 6년에, 계문자가 장차 진나라에 사신으로 빙문을 가려할 적에, 상을 당했을 때의 예절을 구하여서 떠났다고 하였다. 두씨의 주석에, 진나라 제후가 병고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윽고 진나라 양공이 과연 죽었다고 하였다. |
2 | 斯 語辭. 程子曰: “爲惡之人, 未嘗知有思, 有思則爲善矣. 然至於再則已審, 三則私意起而反惑矣, 故夫子譏之.” 斯는 어조사다. 정자가 말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생각함이 있다는 것을 일찍이 알지 못하니, 생각함이 있다는 것은 곧 선을 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함이 두 번에 이르면, 이미 살핀 것이니, 세 번이면 곧 사사로운 뜻이 일어나 도리어 미혹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이를 나무란 것이다.”
朱子曰 天下之事以義理斷之 則是非當否再思而已 審以私意揣之 則利害得喪萬變而無窮 思止於再者 欲人之以義制事而不汨於利害之私也 주자가 말하길, “천하의 일은 의리로 판단한다면, 시비당부는 두 번 생각할 따름이다. 사사로운 뜻으로 살펴서 헤아린다면, 이해득실이 만변하여 끝이 없을 것이다. 생각함이 두 번에 그쳐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의로써 일을 통제하여, 이해의 사사로움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思之未得者 須著子細思 到思而得之 方是一思 雖見得已是 又須平心更思一遍 如此則無不當 생각해도 미처 터득하지 못한 것은 반드시 착실하고 자세하게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여 터득하는 지경에 이르면, 비로소 한 번 생각한 것이다. 비록 이미 옳다는 것을 보아서 알았지만, 다시 반드시 마음을 평정하고서, 재차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한다면, 합당하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다.
問周公仰而思之 夜以繼日 所思豈止於三 曰 橫渠云 未知立心 惡多思之致疑 已知立心 惡講治之不精 講治之思 莫非術內 雖勤而何厭 推此求之 可見 누군가 묻기를, “주공은 하늘을 우러러 생각하기를 밤으로 낮을 이었다고 하니, 생각하는 바가 어찌 3번에 그쳤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장횡거가 이르길, ‘아직 마음을 세울 줄 모른다면, 그것을 많이 생각하여 의문을 품는 것을 싫어하고, 이미 마음을 세울 줄 안다면, 다스림을 강구하기가 정밀하지 않음을 싫어하는 법이다. 다스림을 강구하려는 생각은 그저 배우는 방법 안에 있는 것이 아님이 없다. 비록 애쓴다고 해도, 어찌 싫증을 내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를 미루어서 구한다면,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潛室陳氏曰 若爲學之道 則不厭思 此只爲應事言之耳 잠실진씨가 말하길, “만약 학문을 하는 道라면 생각하기를 싫증내지 않는 법이다. 이것은 그저 일에 대응하기 위하여 말한 것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
3 | ○ 愚按: 季文子慮事如此, 可謂詳審, 而宜無過擧矣. 而宣公簒立, 文子乃不能討, 反爲之使齊而納賂焉, 豈非程子所謂私意起而反惑之驗歟? 是以君子務窮理而貴果斷, 不徒多思之爲尙.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계문자가 일을 깊이 생각한 것이 이와 같으니, 상세히 살폈다고 일컬을 만하고, 또한 지나친 행동거지가 없는 것도 당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선공이 찬탈하여 즉위하였는데, 문자는 능히 토벌하지 못하였고, 도리어 그를 위하여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뇌물을 바쳤으니, 어찌 정자가 말한 이른바 사사로운 뜻이 일어나 도리어 미혹되었다 것의 본보기가 아니겠는가? 이 때문에 군자는 이치를 궁구함에 힘쓰면서도, 과감한 결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니, 헛되이 생각만 많이 하는 것을 숭상할만한 것으로 삼지 않는다.
左傳文公十八年二月公薨 文公二妃敬嬴生宣公 敬嬴嬖而私事襄仲 宣公長而屬諸襄仲 襄仲欲立之 見於齊侯而請之 齊侯新立而欲親魯許之 冬十月仲殺惡及視(惡太子 視其母弟) 宣公元年夏季文子如齊納賂而請會 會于平州(齊地)以定公位(簒立者諸侯旣與之會 則不得討 臣子殺之 與弑君同 故公與齊會而位定) 좌전 문공 18년 2월에, 노문공이 죽었다. 문공의 두 번째 妃인 경영이 선공을 낳았다. 경영은 양중을 사랑하여 사사로이 섬겼다. 선공이 자라자, 양중에게 부탁하였고, 양중은 그를 임금자리에 세우고자 하였다. 제나라 제후를 접견하고서 이를 청하자, 제나라 제후도 새로 즉위하였기에 노나라와 친하게 지내고자 하여, 이를 허락하였다. 겨울 10월에 양중은 惡과 視(악은 태자고, 시는 동모 동생이다)를 죽였다. 선공 원년 여름에 계문자가 제나라에 가서 뇌물을 바치며, 회맹을 요청하였다. 평주(제나라 땅이다)에서 회맹함으로써 선공의 지위를 안정시켰다(임금자리를 찬탈하여 즉위한 자의 경우, 제후가 이미 그와 더불어 회맹을 하였다면, 토벌할 수가 없었다. 신하가 그를 죽일 경우, 임금을 시해한 것과 동일하게 처벌하였기 때문에, 선공은 제나라와 회맹해서 그 지위가 안정되었던 것이다). 問再斯可矣 只是就季文子身上行事處說 在學者窮索義理 則思之思之 而又思之愈深而愈精 豈可以數限 而君子物格知至者 萬事透徹 事物之來 皆有定則 則從容以應之 亦豈待臨時方致其思 不審此語 只是文子事 抑衆人通法 皆當以再爲可耶 不容有越思耶 而程子又何故 只就爲惡一邊說也 朱子曰 物格知至者 應物雖從容 然臨事豈可不思 況未至此 豈可不熟思耶 故以再思爲衆人之通法 蓋至此 則思已熟而事可決 過則惑矣 누군가 묻기를, “두 번이면 된다는 것은 그저 계문자의 몸 위로 나아가 일을 행한 부분으로 말한 것입니다. 배우는 자들이 의리를 궁구하고 탐색함에 있어서는, 생각하고 생각하여야 하고, 또한 생각함이 깊을수록 더욱 정밀해지는 것이니, 어찌 숫자로써 제한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군자 중에 만물의 이치가 궁구되고 앎이 지극해진 사람은 만사에 환하게 통하는 법이므로, 사물이 오는 것에 모두 일정한 법칙이 있다면, 조용하게 그에 응하는 것이니, 이 역시 어찌 때가 임하기를 기다린 후에 비로소 그 생각을 지극히 하겠습니까? 이 말이 그저 계문자의 일인지, 아니면 뭇사람의 통법인지 살피지 아니하고, 모두 두 번 생각하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겨야 마땅한 것입니까? 더욱 생각함이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까? 또한 정자는 또 무슨 이유로 그저 악을 행한다는 한 측면에만 나아가 말을 한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만물의 이치가 궁구되어 앎이 지극해진 사람은 사물에 대응하는 것이 비록 조용하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일에 임하여 어찌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는가? 하물며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경우라면, 어찌 무르익도록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두 번 생각하는 것을 뭇사람의 통법으로 삼은 것이다. 대체로 이런 경지에 이른다면, 생각은 이미 충분히 익었을 것이고, 일은 결단할만할 것이니, 이를 지나치면 미혹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窮理是思以前事 果斷是思以後事 쌍봉요씨가 말하길, “窮理란 이전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고, 果斷이란 이후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陳氏曰 理之明 則是非判 斷之果 則從違決 진씨가 말하길, “이치에 밝으면, 옳고 그름이 판별되고, 결단이 과감하면 따르고 거스름이 결정된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務窮理 明也 貴果斷 決也 明於方思之初 決於旣思之後 若不明不決而徒多思 則愈思而愈惑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치를 궁구함에 힘쓰면 밝을 것이고, 과단함을 귀하게 여기면 결단성이 있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생각하는 처음에 밝아야 하고, 이미 생각한 다음에는 결단성이 있어야 한다. 만약 밝지도 않고 결단성도 없으면서 공연히 많이만 생각한다면, 생각할수록 더욱 미혹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