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했던 아일랜드가 작년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가 됐다. 단 30년 만의 압축성장으로 한강의 기적보다 더 빠른 국가적 변신인 셈이다. 2022년 아일랜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상으로는 13만1034달러(추정치). 이는 세계 3위, 유럽(EU) 2위의 기록이다. 그러나 1위 룩셈부르크(14만1587달러)와 2위 싱가포르(13만1426달러)는 사실 국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도시국가 수준이라 사실상 아일랜드가 세계 최고 부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 실적은 세계 경제가 코로나 사태로 최악의 침체를 겪던 2021~2022년에 성취한 것이어서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2022년 1인당 GDP 13만달러
실제 아일랜드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거둔 경제성장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2018년만 해도 경제성장률이 8.3%였는데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번지기 시작한 2019년에는 성장률 5.5%를, 모든 국가들이 역성장을 하던 2020년마저 무려 3.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코로나 사태에서 숨을 좀 돌리기 시작하던 2021년에는 무려 13.7%의 성장을 달성했다. 이런 아일랜드의 압축적 급성장은 서유럽 기준으로는 정말 특이한 경우이고, 유럽 최고의 빈국이던 스위스가 최상위 부국이 된 것과도 비교된다.
어떻게 유럽의 ‘가난한 늙은 여인(The Poor Old Woman)’이라고 동정받던 아일랜드가 단 30년 만에 ‘켈틱 타이거(Celtic Tiger·‘켈트족 호랑이’라는 뜻으로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에 빗댄말)’를 거쳐 세계 최부국으로 군림하게 되었을까. 2023년 한국의 지평선에 드리워진 경제 불황의 검은 구름을 보면서 제2의 ‘한강의 기적’ 시사점을 아일랜드에서 얻었으면 한다.
아일랜드의 1인당 GDP를 연도별로 보면 경제발전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1990년 1만4310달러로 시작해 단 10년 만인 2000년 3만달러 클럽에 진입한다. 이어 2004년 4만달러를 돌파하고 2007년 4만7173달러로 정점을 찍는다. 이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바닥을 치지만 2010년부터 다시 상승을 시작해 2013년까지 4만달러 수준을 계속 유지한다.
이어 2014년 드디어 5만달러 클럽에 가입함으로써 부국 반열에 들어서고 바로 다음 해인 2015년 6만달러를 돌파한다. 이어 매년 1인당 GDP가 거의 1만달러씩 늘어나는 파죽지세를 이어간다. 특히 모든 주요 국가들이 역성장을 하던 2020년에는 9만6618달러를 기록해 1인당 GDP가 6.5% 성장하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낸다. 코로나 사태에서 한숨을 돌리기 시작하던 2021년에는 11만3267달러를 달성하면서 드디어 10만달러를 넘어선다.
1인당 GDP 영국의 2.34배
아일랜드는 ‘켈틱 타이거’로 올라서면서 비단 1인당 GDP뿐 아니라 모든 경제 지표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GDP는 500억달러에서 1490억달러로 3배가, 수출액은 250억달러에서 975억달러로 거의 4배가 늘었다. 반대로 국가채무는 GDP의 96%에서 33%로 거의 3분의1로 줄었다. 동시에 고용인원은 50%가 늘어 190만명이 되면서 실업률이 12.9%에서 4.8%로 떨어져 거의 완전고용을 이루었다. 인플레이션도 3.4%에서 3.5%로 거의 변화하지 않아 경제가 안정되었다. 같은 기간 EU 전체의 평균 경제성장은 단 2%, 미국은 3%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는 8%나 됐다. 1990년만 해도 아일랜드인의 수입은 EU 평균의 60%에 불과했으나 2003년에는 135%로 역전됐다. ‘가난한 아일랜드인’이 이제 ‘부자 아일랜드인’이 된 셈이다.
아일랜드의 2022년 1인당 GDP 예상치는 13만1034달러. 영국의 2022년 예상치 5만5861달러의 무려 2.34배이다. 이로써 아일랜드는 1921년 독립하기까지 거의 1000년 가까이 강대국 영국에 당한 압제의 설욕을 제대로 한 셈이 된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아직 인구로는 설욕을 못 했다.
감자대기근(1846~1851) 이전만 해도 아일랜드 인구(1100만명)는 영국(1600만명)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512만명 대 6779만명으로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 이걸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인들이 일으킨 교묘한 ‘감자대기근 인종청소’라고 칭하니 아직도 그 원한을 다 갚으려면 먼 길을 가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