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부베의 연인 ]
한 여자가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고 있다. 혼자서 쓸쓸이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그녀는 감옥에 있는 연인 부베를 만나러 가는 중 이었다.....
영화 <부베의 여인>은 이탈리아의 고전 멜러물로 취급된다.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쇼 정권에 저항하는 반파시스트인 부베(조지 차키리스 분)는 동지의 아버지가 사는 집에 들르게 되고, 거기서 마라(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분)라는 여인을 만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혁명가'와 '시골처녀'의 사랑, 이것이 그냥 풍파없이 흘러갈 리는 만무하다. 부베는 친구를 죽인 경찰관을 살해하게 되고 쫓기는 몸이 된다. 도망자 신세가 된 부베는 마라를 데리고 함께 도피생활을 하다가 결국 혼자서 외국으로 떠난다. 이렇게 해서 열렬히 사랑하던 두 청춘남녀는 헤어지게 된다.
여기까지는 그냥 평범한 청춘남녀의 연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후 세월이 흐르고 두 남녀가 재회하게 되면서 이 평범한 멜러물은 굉장히 진한 감동을 주는 '여인의 순정'으로 발전하게 된다.
보통 남녀가 사랑하면서 본의 아니게 헤어져서 지내게 되는 경우, 대부분의 영화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비극적 스토리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부베의 연인>처럼 열렬히 사랑하는 남녀가 전쟁이나 다른 이유로 떨어져 지내게 되는 이야기는 <애수>를 비롯하여 <쉘부르의 우산>, <초원의 빛>, <해바라기> 등 많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오랜만에 재회한 두 남녀에게는 각각의 애인이 생겼고, 이루지 못할 사랑 앞에서 끝내 애틋한 이별을 하고 끝나고 만다. 사실 <부베의 연인>도 그렇게 끝났다면 진부한 멜러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뜻밖의 감동을 준다. 부베와 헤어진 마라는 그동안 잘 생기고 멋진 완벽한 청년 스테파노를 만난다. 미모의 마라에게 집적거리는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스테파노는 예의바르고 건실한 청년이다. 마라는 이 청년과 데이트를 하면서 비로소 삶의 행복을 느끼게 된다. 옛 애인인 부베는 앞길이 불투명한 도망자 신세이고 현재의 남자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전망 있는 청년이다. 과연 이러한 현실 앞에서 대부분의 여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영화의 후반부에서 철없는 시골처녀인 마라는 지고지순의 순정파 여인으로 변신하게 된다. 부베와 데이트를 하면서 구두 사달라, 레스토랑에 데려가 달라 하고 조르기만 하고, 잠자리가 불편한 부베의 집에서 따로 침대를 달라고 떼쓰기만 하던 철부지 처녀인 마라는 외국에서 도피생활을 하다가 붙잡혀 와서 재판을 받는 부베와 재회하게 되고
이 때부터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마라는 부베를 선택한다. 그녀는 앞길이 보장되는 청년과의 결혼대신에 14년이라는 기나긴 감옥생활을 하게 된 부베를 기꺼이 선택한 것이다.
헤어진 연인을 보통 얼마나 기다릴 수 있을까? 특히 애인이 감옥에서 장기간 복역해야 하는 경우라면? 다소 통속적인 신파극일 수 있는 <부베의 연인>은 이 부분에서 꽤 신선한 감동을 준다. 당시 꽤 유망했던 풋풋한 젊은날의 클라우디에 카르디날레와 조지 차키리스의 모습과 영화 내내 잔잔히 흐르는 익숙한 테마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수년 동안 먼 감옥에 있는 부베를 기차로 면회를 가던 마라를 우연히 만난 스테파노는 미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참 강한 여자요.”
마라는 “부베는 훨씬 더 강해요.”라는 말로 대답한다. 철없던 10대 후반의 처녀시절에 만난 첫사랑 부베와 비로소 사랑을 이루고 가정을 이루려면 마라는 30대가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시 함께 살 수 있는 그날만을 기다리며 2주에 한 번 주어지는 짧은 만남의 시간을 가지며 하루하루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연인이었다.
요즘처럼 남녀가 쉽게 만나서 쉽게 사랑하고 또 그만큼 쉽게 헤어지는 애정이 메말라가는 시대에 <부베의 여인>은 헌신적이고도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를 깨우쳐주는 영화이다.
[ 간략한 줄거리 ]
과도기 이탈리아, 반정부주의와 살인죄로 1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약혼녀 부베를 찾아가는 마라의 회상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마라는 이곳저곳 옮겨 다녀야만 하는 부베와의 면회를 자그마치 14년째 계속하고 있으며 오직 그가 석방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마라가 부베를 처음 만난 것은 북부 이탈리아의 산중에 있는 가난한 빈촌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년 7월 한여름 마라의 집에 부베라는 청년이 찾아오게 되면서이다.
부베는 레지스탕스로 나치에게 처형된 오빠 산태의 동지로 오빠 전사 소식을 전하러 왔던 것이다.
이들은 처음 본 순간 서로 이끌렸고 하룻밤을 마라의 집에서 묵은 부베는 전쟁에서 기념으로 가지고 온 낙하산 천으로 옷이나 만들어 입으라는 말을 남긴 뒤 떠난다. 그 후부터 부베의 편지가 끊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후 겨울, 다시 찾아온 부베는 마라의 의사를 묻지도 않은 채 마라의 아버지에게 약혼 승낙을 받는다.
그리고 얼마 후 부베가 다시 찾아왔을 때 부베는 친구 운베르토가 경찰에 사살되어 보복으로 그 경찰을 죽이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1년 만에 유고 정부로부터 송환되어 재판을 받게 된 부베에게 마라는 더는 인연을 끊으려고 재판장에 갔다가 부베가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에 그의 연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14년을 기다리며 일주일에 두 번씩 기차를 타고 꼬박꼬박 면회를 가는 마라의 삶이 시작된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한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